밴쿠버 아일랜드 일주 2편-가족이란?
에디터 : 이호선

캐나다에 오고부터는 커피를 위가 쓰라리도록 마시고 있다. 서양사람들은 커피를 차 마시듯, 숭늉 마시듯, 그리고 물 마시듯 마신다.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있었던 중국과 몽고의 사전에는 커피라는 단어가 결코 없었다. 숲 속에서 밤을 보내고 이름 모를 작은 마을의 카페에 들어 섰을 때 나의 온 몸에 엄습하는 커피의 향기는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유혹이자 삶의 기쁨이다.
내가 처음 도착한 Departure Bay가 있는 Nanaimo City를 지나 또 다른 제법 큰 Campbell River City를 수 십km를 지난 지점에서 가까스로 식당의 푯말 한 개를 발견한다.

"800m Ahead
Sue's Place   Coffee shop
  Fresh Baking
  Home Cooking
  And more"

Sue's Place

나무 벌목장의 숲 속에서 밤을 보내고 텅 빈 위를 달래가며 달리던 중 눈에 들어 온 이 푯말에 나는 이미 마녀 같은 커피의 향기에 온 몸이 안전부절이다. 작고 초라하기조차 한, 하지만 새 건물의 "Sue's Place".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식당이라기보다는 자그마한 주방 그 자체인 식당실내이다.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쬐그만 원탁이 한 개,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카운터가 고작인 식당인데 식당을 장악하고 있는 단 한 명의 주방장, 웨이츄레스, 그리고 사장인 60전후의 여인은 어떤 형용사의 나열을 일축하는 눈부신 미소로 나를 맞이한다.

가족을 지상 최대 최고의 가치로 신봉하는 Sue Jensen

그녀의 오른쪽어깨에는 천사의 그림과 함께
자신의 세 아들의 이니셜 D(avid), R(andy), R(ichard)을,
그녀의 등에는 來, 民, 車라는 한자를 그려 넣었는데


"세상에 저렇게도 아름다운 사람이,……"
그녀의 이름은 "Sue Jensen"으로 12살 때 영국 런던의 남부, South Hampton에서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한 여인인데, 어릴 적부터 유별나게 수줍음을 잘 탔으며 평생 캐나다 이외의 어느 나라에도 가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녀는 전통적인 한국의 어머니처럼 가족을 위해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가사일을 하는 동안이 가장 평화스럽고 편한 시간이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밴쿠버에 온 ESL과정의 한국유학생을 상대로 캐나다의 음식문화강좌를 여러 차례에 걸쳐 담당하기도 한 요리전문가였다. 그래서인지 몇 마디의 한국말을 기억하고 있었고 자신의 이름을 "수-Sue"라고 적는다.

그녀는 그녀의 몸 여기저기 문신을 넣었는데, 그녀의 오른쪽어깨에는 천사의 그림과 함께 자신의 세 아들의 이니셜 D(avid), R(andy), R(ichard)을, 그녀의 등에는 來, 民, 車라는 한자를 그려 넣었는데 각각은 자신의 언니와 여동생을 포함한 세 자매의 한자 이니셜로 Marilyn, Sue, Wendy를 뜻한다. 오른 쪽 발목에 있는 초생 달과 세 개의 별은 자신을 포함한 언니, 여동생으로 하늘 아래, 신 앞에 평등함을,………….
그녀의 지상 최대 최고의 가치는 바로 가족이다. 엉키고 설키고 끈적끈적한 우리의 가족 관에 익숙되어 있는 나에게, 항상 조금은 냉정하고 건조할 것만 같이 생각되는 그들에게서 우리들보다 오히려 더욱 심각한 가족애와 가족 관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원래 Roman Catholic이지만 교회는 결코 가지 않는다고 한다. 신은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 어디에도 있으며 자신은 항상 하늘을 우러러 신에게 묻고, 신과 대화를 하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한다.

Sue's Place의 메뉴들

그녀의 매일 매일의 삶 중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사람과의 만남이고,
상호 믿음과 사랑인데 그 실천방법이 바로 "Hug(껴안음)"이다.

그녀의 매일 매일의 삶 중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사람과의 만남이고, 상호 믿음과 사랑인데 그 실천방법이 바로 "Hug(껴안음)"이다. 벽에는 자신의 "Hug철학"을 써 놓았다.
그녀의 세 아들은 모두 다른 곳에서 살고 있고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이곳에서 남자친구와 동업을 하고 있는데 그녀는 식당을, 남자친구는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요리 전문가답게 그녀의 음식은 기발하고 맛이 있었다. 더함도 덜함도 없이 정확하게 나의 엄마와 똑 같이, 평생을 캐나다와 부엌에서만 살아 온 사람으로 전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나와 나의 끝없이 이어지는 세상 이야기에 그녀는 거의 넋을 잃었다.
모든 것을 혼자 소화하고 있어 엄청 바쁜 와중에서도 우리의 대화는 끝을 모르고 계속되었다. 내가 그곳을 떠난 것은 세 시간 후였는데 빅 사이즈 커피를 3잔 반을 마셨다.(약1.8L) 먹은 조반은 이미 소화가 끝나 나의 위장은 텅 빔과 부어진 다량의 커피로 인해 쓰라리고 뒤틀렸다.

밴쿠버아일랜드 북쪽의 땅 끝 항구인 포트 하디(Port Hardy)를 향해 매일 평균 130km를 달린다. 종종 바이커들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도로가 포장이 잘 되어있고 차량도 그다지 많지 않아 바이킹(Biking)에 아주 좋은 코스인 것 같다.
태양이 하루의 수명을 다하고 서쪽의 산 너머로 넘어 갈 즈음에 나는 마을 인구가 200여 명에 불과한 WOSS에서 나의 심장을 멎게 하는 일대 장관과 마주친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와 10살 미만에서 10살 정도의 세 명의 자녀들과 함께 5인승 자전거를 타고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하고 있는 켄터키출신의 자전거여행자들을 만났다. 이미 해가 넘어가 그들이 그들의 행보를 서두르고 있었기에 그들과 긴 대화를 나눌 수가 없어 안타까웠지만 그들의 모습은 "가족이란?!" 질문에 대해 명백하고 확실한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어린 아이들이 장기간에 걸친 힘든 여행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고 눈부신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 엄청난 감동과 삶의 찬미로 느껴졌다. 비록 조금은 다른 형용사로 표현되고 있지만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가족'은 우리 지구촌의 모든 인간들에게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가치임에 두 말의 여지가 없다.
이 마을에 있는 유일한 주유소이자 상점의 사장님이 놀랍게도 이민 온지 20년이 되는 한국인이고 이 분의 배려로 자신이 또한 경영하는 모텔에서 몇 일 만에 뜨거운 샤워를 하며  부티나게 하룻밤을 보낸다.

나의 심장을 멋게 하는 일대 장관 -가족이 함께 자전거 여행-과 마주친다.


유일한 주유소이자 상점의 사장님이 놀랍게도 이민 온지 20년이 되는 한국인이고

주유소 사장님 JJ. Kim

주유소 사장님 JJ. Kim씨의 배려로 부티나게 모텔 방에서 하룻밤을...

나의 서구식 식사(햄과 치즈, 그리고 아보카도의 자작 샌드위치)




Woss를 지나자 더욱 고요한 숲 속이 된다. 최후의 항구인 Port Hardy에 가까워짐과 동시에 어둠은 빠른 속도로 주위를 뒤 덮기 시작한다. 나는 원래 Port Hardy에서 배를 타고 북쪽에 있는 벨라쿨라(Bella Coola)까지 가서 시계방향으로 돌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위슬러(Whisler)로 해서 다시 밴쿠버시티까지 돌아오는 Short Trip의 바이킹을 계획했었다.
이미 밤 10시 반을 넘어선 어둠의 한가운데에 서서 우선 나는 상점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허겁지겁 삼킨 후, 길 건너편에 밝은 불빛의 대단치 않아 보이는 호텔로 향한다. 나는 이미 한 여행책자에서 금요일인 내일 배편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곳으로 왔지만 일단 호텔에 가서 확인을 하고 싶었다.
"Providence Place"라는 이름의 허름한 호텔이다. 체크-인 카운터엔 단 한 명의 여자 직원이 나를 반긴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40초반으로 보이는 그녀, Judy는 페리 스케줄을 묻는 나의 요청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지만 그녀의 결론은 4일을 기다려야 배가 있단다. 허탈해 하는 나와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가 그녀는 자신의 집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남편에게 나에 대한 얘기를 한다.
결국 나는 그녀의 배려로 그녀의 집에서 자기로 합의를 보고 일을 끝낸 그녀가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앞장서고 나는 그녀의 뒤를 좆는다. 그녀가 말 한대로 정확히 5분도 채 안되어 그녀의 집에 도착한다. 그녀의 남편인 Jim은 조그만 보트를 가지고 바다낚시를 원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정말 놀라울 정도로 밝고 경쾌한 사람이다.
위층에 있는 방에는 내일 아침 낚시를 갈 낚시꾼들이 자고 있어, 나는 아래층에서 밴쿠버시티에서 Jim을 방문한 Jim의 형, Bill과 함께 소파 위에서 하룻밤을 신세 진다. 비록 소파 위에서 자고 있지만 마치 내 집처럼 편하고 포근하다. 나그네인 나를 맞이하는 그들의 환대는 내가 몽고에서 받았던 그것과 글자의 받침 하나조차 다름없이 똑 같다. 긴 낱말의 나열함 없이 그저 당연하게 그저 솔직 담백하게 나를 대하고 받아들인다. 어떤 부담감을 주는 것 없이, 마치 나의 오랜 친구처럼 마치 나의 형제처럼,………

영악한 곰들이 휴지통을 헤집어 놓는 횡포를 막기 위해 고안한 이중 잠금 장치로
안에서 밀면서 위로 들어 올려야 휴지통이 비로소 열린다.

새벽이 부산하다. 바다낚시를 위해 모두 서둘러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포근하고 부드러운 모포 속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채 달콤한 휴식을 계속한다. Judy마저 출근해 버려 집에는 나 뿐이지만 나는 속 편하게 뒹군다. 오후가 되어 Jim과 Bill을 위시한 낚시꾼들이 돌아오고 Judy 또한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다.
결코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상당히 큰 생선이 아이스박스에서 쏟아져 나온다. 클리닝을 끝낸 후, 발려진 살들은 모두 집 랩에 담겨져 대형 냉동고안에 쌓여졌는데 냉동고안에는 통 연어 수 마리가 이미 들어가 있었다. 쥬디는 잡아 온 생선으로 스튜를 만들어 푸짐하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제공했다. 항상 야생의 자연에서 자연 그대로 살고 있는 캐나다 인답게 그들이 즐겨 보는 T.V프로그램은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hpic)'이었고 그들의 주요 화제 또한 자연과 야생동물에 관한 것 이었는데, 비록 캐나다의 그것과 완벽하게 다른 풍경이지만, 몽고의 고비사막에서 자연 그대로 살고 있는 그들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그들의 삶은 솔직 담백 명료하며 그저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항상 불신과 탐욕의 검은 바다 속을 헤매며 사람들끼리 물어 뜯고, 치고 박으며 헐떡거리며 살고 있는 도시인들의 삶과는 아득하게 먼 삶의 모습이다. 내가 체험한 고비의 사람들과 이곳 사람들의 삶은 나에게 한 점 티 없는 거울이 되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먼지투성이의 나의 모습에 나의 온 몸이 저리고 아프다.

포트 하디에서 Jim, Bill, Judy, 그리고 Jeff(빅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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