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탈을 쓴 천사들
에디터 : 이호선

2년 전 캐나다 횡단 시 달렸던 #1 하이웨이가 아닌 미국 국경과 면한 #3 하이웨이를 달린다. 나는 미국의 아이다호(Idaho)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내려갈 것이다.

나는 지금 밴쿠버에서 제자리 뛰기를 반복하고 있건만 시간은 하루에 이틀씩 지나가는 듯이 맹렬한 스피드로 질주한다. 그 동안 밴쿠버에서의 3주간이 막대한 가산탕진과 시간탕진으로 일관된 듯한 가운데, 조금은 조급했던 나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지 않았음은 밴쿠버 아일랜드에서뿐만 아니라 밴쿠버시티에서도 많은 소중한 만남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내가 잠시나마 본의 아닌 머무름의 사치를 누리는 동안 얻은 생각지 않은 수입이었다. 그런데 그 수입은 그 어떤 숫자나 동그라미로 나타낼 수 없는 감동이라는 삶의 최고의 가치였다. 결국 인생은 +-=0로 공평하다는 짐짓 고루하기까지 한 진리를 뼈저리게 되새기게 된다. 하나를 잃은 듯해서 가슴을 쥐어 뜯을 새 없이 또 다른 삶의 찬미가 나를 춤추게 하는 것이다. 삶의 소중한 순간순간들을 계산기의 두드림으로 일관한다면 나는 정말 밑지는 장사의 삶을 살게 되고 말거야.

불신과 악다구니의 도시의 정글에서 헤매는 동안 "성악설(性惡說)"로 치닫던 나의 윤리(倫理) 저울바늘은 이렇게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막무가내로 정 반대편의 "성선설(性善說)"쪽으로 기울고 만다. 내가 변덕스러운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삶 자체가 종잡을 수 없는 것인가?!!
내가 이 판국에 인간의 기원(起源), 인간성(人間性)의 기원을 논하겠는가?!
나는 단지 말하고 싶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탈을 쓴 천사들이 경이로울 정도로 많다."

주말을 맞아 캐나다 캠핑족들으 모든 강가와 개울가를 점령했다.

내가 지난 5월 7일, 시청 앞에서 세계 행 자전거에 올라 탄지 2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적지 않은 지구촌의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나는 나의 삶에 대한 장문의 반성문을 하염없이 써야 했다.
나는 과연 50년이 넘는 나의 삶 동안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며 살아 왔는가?! 단 한 번쯤이라도 남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남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을 해 본적이 있는가?! 설령 한 번쯤 해 본적이 있다고 한다면, 단지 생각과 말뿐이 아니고 그에게 진심 어린 손을 내 밀어 본 적이 있는가?!
그 동안 내가 만났던 적지 않은 천사 같은 사람들은–나는 번번히 경이롭다고 감동을 마지 않았고 하늘을 우러러 나는 행운아임을 부르짖었다- 나에게 그저 그들의 당연한 일상처럼 뜨거운 손을 내밀고 포옹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행운아임을 부르짖은 만큼, 어쩌면 꽤나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당연'을 나는 '경이'로 간주하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앞으로도 2년 동안이나 계속될 나의 여행기의 결론이 이미 나버렸어!! 결국 앞으로 계속 될 나의 여행기는 이 결론의 반복으로 일관될 것이다.

내가 5년 전 아버지의 운명 후, 장기기증, 시신기증을 서약하고 30번 이상의 헌혈을 감행한 것조차 없었다면 나의 삶이 쪽 팔려서 더 이상 하늘도 우러러 보지 못할 뻔했다.
아무리 느낌과 생각이 있다고 해도 액션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어.
이제부터라도 나의 '당연'이 그 어떤 이에게 '경이'로 생각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죽는 날까지 내가 일관해야 할 삶의 가치임에 두 말의 여지가 없다.
3주간 정말 부유한 머무름이었지만, 연일 이어지는 숨가쁜 자아 비판 속에 시간은 나는 듯 지나갔다. 우리 인간들은 삶의 무게에 눌려 때론 물 속에서 허우적대기도 하고, 때론 암흑과 고독의 긴 터널을 지나기도 하지만 역시 인생은 끈질기게 살아 볼 만한 것이야.
우리 자신이 비틀어진 선글라스를 벗고 귀에 꽂고 있는 고 볼륨의 이어폰을 벗어 버리고 솔직 담백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듣는다면 이 세상 구석구석에는 우리의 고통과 외로움에 공감하며 구명튜브를 던지고 후래쉬를 비추며 길을 안내 해 줄 많은 이들이 있음이다. 우리 자신이 불신, 아집, 그리고 선입관의 늪에서 기어 나오지 않는다면 구원의 종소리는 영원히 들을 수 없다.

자전거 주행 중 우연히 만나, 나에게 또 한 번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한 '박 재교'형님과 '이 석란' 형수님을 비롯한 밴쿠버의 모든 교민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드디어 밴쿠버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오늘 밤, 캐나다는 내일(7월 1일: Canada Day-캐나다의 생일)을 앞두고 이미 축제 분위기이다. 많은 젊은이들의 손에는 맥주 캔 꾸러미 일색이다. 미국에서 경험했던 풍경 그대로이다. 오로지 바베큐와 맥주!
나는 나의 본래의 신분인 나그네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린다. 나는 그 동안 몽고에서 스포츠 영웅이 진땀을 흘리며 나를 위해 타이어 안에 붙여준 천막 천을 뜯어 내고 밴쿠버시내의 한 바이크샵에서 사 온 펑크 방지용 테이프(20$)를 타이어안에 감았다. 마치 권투 글러브를 끼기 전에 손가락마디를 보호하기 위해 붕대를 감고 있는 마음으로,…. 그 동안 엄청 무거웠던 두 바퀴가 날렵해졌다.
'엘파마'의 발걸음이 춤추듯이 가벼워진 것이다.

심상치 않은 소리에 문밖을 열어보니 나그네에겐 결코 반갑지 않은 비가 내린다. 떠나려는 나의 의지는 졸지에 빗물이 되어 대지 위에 허무하게 흩어진다.
"그래 내일 떠나자. 요 며칠 새 제대로 잠도 못 잤지 않아?! 오늘 하루 종일 후회 없이 한 번 자는 거다." 밴쿠버 아일랜드일주를 끝내고 돌아온 후부터는 방이 아닌 부엌의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다. 방은 30불이지만 소파에서는 10불로 주인과 타협을 보았다. 무거웠던 마음의 무게는 1/3 이하로 감량이 되어 홀가분해졌으나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모두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엌이라 늦게까지 어지럽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들 나간 후에야 조용히 소파에서 잠을 잘 수가 있다.

7월 2일 날씨는 아직 흐려 있지만 비는 이미 모든 기력을 탕진한 상태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밴쿠버가 깨어나기 전에 살금살금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뒤도 돌아 볼 새 없이 달려 버린 130km. 호프(Hope)의 도로 표지판이 불쑥 나의 앞을 가로 막는다. 밴쿠버는 이제 아득히 먼 곳에 있다.
밴쿠버를 떠날 때, 미터기의 눈금은 2875km이었다. 나의 숙소를 찾기 위해 어둠 속을 달리다가 선택의 여지없이 경치 조망 대에서 발을 멎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으나 모기편대의 비행과 폭격은 계속된다. 양말과 옷을 그대로 뚫고 들어온다. 어쨌거나 나는 도시의 안락을 즐기고 야생의 벌판으로다시 돌아왔다.

#3 하이웨이는 종종 언덕길이 나를 가로 막으며 숨 가쁘게 한다.
한국의 한계령을 조금 넘는 높이다.


호프에서부터는 #3 하이웨이를 타고 달린다. 도로변에 있는 작은 공원에 있는 식당 겸 잡화상에 들어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한 사나이, 스테판(Stephan). 그는 퀘벡 출신의 사나이로서 불어와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는데 휴지통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사람들이 피우고 난 꽁초를 간절하게 주워 피고 있었다. 그는 자유에 미쳐 고향과 부모 형제들을 떠나 홀로 캐나다 대륙을 때론 바람처럼, 때론 구름처럼 대륙을 정처 없이 떠 돌고 있다. 그는 배낭을 지고 있었는데 그저 침낭 한 개와 옷가지 몇 개, 그리고 간단한 세면도구가 고작이었다.
나는 나의 담배갑에서 피다 만 꽁초를 꺼내 내가 피고, 새 담배 한가치를 그에게 건네준다.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는 박장대소와 함께 가벼운 목례를 건넨다. 한 가치를 더 건네지만 그는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 듯 결사 반대한다. (캐나다에서는 담뱃값이 정말 비싸다.)
내가 그를 배려 한 것처럼, 그 또한 나를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담배 한 가치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담배연기 입자 입자를 분석이라도 하는 듯, 아주 찬찬히 그리고 아주 맛있게 피우고 있다. 그런 그를 보고 있는 나의 마음 또한 흐믓하다. 그의 작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에 나는 많은 인간애와 동족애를 느낀다. 없는 자는 없는 자대로, 있는 자는 있는 자대로 서로서로를 배려 할 때, 세상은 살기에 괜찮은 곳이 될 것이다. 담배 한 가치, 식빵 한 조각의 하찮은 얘기로 들릴지 모르나, 배려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고 다만 배려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뿐이다.
그는 마치 더스틴 호프만을 연상시키는 외모뿐만 아니라 그의 말은 부드럽고 아름답다.
"너의 집은 어디냐?"
"나의 집은 캐나다의 어디든!!"
"너 혼자 다니냐?"
잠시 쓰라린 듯한 표정도 잠시,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그래, 나는 늘 혼자야!"
"우리에게 자유는 삶의 최고 가치이지!"
"맞아, 네 말 그대로야!" 그는 아주 통쾌한 듯 큰소리로 외친다.
"우리는 자유를 쫓아 방랑하지만 우리가 자유를 소유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댓가 또한 결코 만만치 않아!!"
"우리는 그것들이 어떤 것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우리는 서로의 행운을 기원하며 악수를 나눈다. 그의 손은 작지만 아주 따뜻하다.

마치 더스틴 호프만처럼 가끔씩 말을 더듬는 스테판.
그와 나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카메라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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