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하고 싶은 일, 버킷리스트
에디터 : 박규동

2010년 08월 09일 경천대-상주-해평.  52km.   청소년수련원 야영장. 


어저께 MBC TV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낙동강여행을 찍고 싶다는 것이다. 20일 금요일에 아침 9시 반에 방영되는 프로에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아내와 의논한 끝에 그러자고 했다.
내용은 버킷리스트(Bucket List)다.
"죽기전에 하고 싶은 일 10가지"이다.
나는 그 중에 하나가 아내와 세계를 자전거로 여행하는 것인 데, 그런 내용으로 만들고 싶다고 방송담당 작가님이 전해온 것이다. 내 블로그를 다 읽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일 열 가지를 생각해 두라는 것이다.

이참에 생각나는 것이 그럼 나에게도 Bucket List가 있었던가? 하는 것이다.

딱히 그런 건 없었다. 그저 우리 부부가 좋아하게 된 자전거타기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조금씩 꿈이 부풀어진 게 있는 데, 그게 자전거로 하는 세계여행이다.
아내가 자전거를 배우고 나서 싫어하는 기색이 없는 것만으로도 나는 좋았었다. 시골 길을 무난히 달리는 것을 보고는 가까운 왕방산 임도를 함께 갔더니 힘은 들어 하면서도 좋아하는 게 아닌가! 그러다가 2007년 여름에  아내의 생일기념으로 강화도로 1박2일 야영을 다녀온 후 아내는 자전거여행에 부쩍 자신감이 생겼던 것이다.

사벌왕릉 앞에서


1996년에 나는 호주의 동,서 5천km를 가로 지르는, 그것도 70%가 사막인 길을 아들 창민이와 자전거로 두 달 동안 횡단하였다. 그리고 나서 다음에는 아내와 전국일주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글로 적으면 이뤄질 확률이 더 높다고 했던가!
2008년에는 아내와 둘이서 전국을 해안선을 따라 26일 간 1천6백km를 자전거로 야영을 하면서 완주하였다. 아내와 둘이서 이룬 이 경험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또다른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그래서 세운 다음 목표가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출발하여 고비사막을 거친 다음 중국을 경유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고비원정"이 된 것이다.

지금으로선 Bucket List의 첫번 째가 고비원정이다.
두번 째는 아내와 둘이서 손자들을 데리고 자전거로 전국을 일주하는 것이다.
그 다음도 며느리를 포함한 가족들과 자전거여행을 하는 것이다.

경천대를 떠나 사벌왕릉을 들렸다.
한 때에 이 곳을 호령하였을 사람의 무덤이다. 돌 계단에 앉아 그를 생각해 본다. 리더란 무엇인가?

날은 아침부터 더웠다.
더위 탓일까, 아니면 내일부터 찍을 촬영을 생각하느라 그랬을까? 내가 길을 잃은 것이다. 좀처럼 없는 일이다. 병성동에서 25번국도를 만나면서 좌회전을 해야하는 것을 그만 우회전을 하고 말았다. 그런 걸 모른 체 상주 시내까지 온 다음에야 알게된 것이다. 되돌아 나오기까지 한 5km는 까먹은 것 같다. 돌아올 때에는 자전거길을 따라 나왔다. 상주에는 자전거도시답게 자전거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상주의 자전거길 중에 한곳

도개면사무소 앞에서 너구리님(오른쪽)을 만나

고속화 됀 25번을 타다가 옛길로 내려섰다. 고속화도로를 타면 평균속도는 올라 가지만 너무 심심하다는 게 모든 이의 생각이었다. 버려진 옛길은 자전거가 다니기엔 아주 좋다. 구도로는 자전거도로! 뭐, 이런 날이 올 것 같다.

도개에서 점심을 먹었다.
콩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너구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구미에서 천 세대나 되는 아파트건설의 현장 최고 책임자로 와 계시는 너구리님이다. 구미에 오면 꼭 들려서 맛있는 민물매운탕 한 그릇 먹고 가야 된다고 미리부터 주문을 하였었다. 반가운 인사에 기분이 좋아졌다. 해평 부근에 있는 야영장도 미리 알아 놓고 지금 도개로 차를 타고 마중을 오고 있단다.
도개에서 점심을 먹고는 교량 밑에 있는 게이트볼 경기장에서 낮잠을 잤다. 왁자지껄한 소리에 잠을 깼다. 마을 노인들이 오셔서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가 눕혀 놓은 자전거를 보면서
"자전거도 다 환자가? 와 이리 둘뤄있노?"하는 바람에 벌떡 일어났다.
이럴 때마다 내가 하는 착각이 있다. 나는 그들을 노인이라고 부르면서도 나는 내가 노인인 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도개면사무소 앞에서 너구리님을 반갑게 만났다.
마주잡은 손이 두툼하였다. 또 멋진 미소는 어쩌라고!
너구리님이 차랑으로 인도하는 길을 따라 야영장에 도착하였다. 제4호 태풍 댄무의 영향권에 들면서 잔뜩 낀 구름이 비를 몰고 오고 있었다. 텐트를 치고나서 너구리님의 차를 타고 구미로 갔다. 미리 골라둔 식당에서 시원한 신선주에 매운탕을 먹었다. 너구리님의 신선주는 소주와 맥주의 비율이 아주 정형화 되어있다. 맥주컵에 소주 한 잔을 먼저 붓고 나머지를 맥주로 채운다. 산장지기님의 신선주보다 약간 독한 게 뒷맛에 소주기운이 더하다. 나도 세 잔을 했다. 자작나무님이 좋아라 한다. 야영생활에 길들여진 몸이 문화생활의 호사에 복이 터졌다.

바람개비님과 자작나무님

내일은 자작나무와 바람개비님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무림리 이웃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은 부부가 다 교사다. 국어와 영어를 가르친다. 아들 건우와 선우를 누님댁에 부탁하고 온 처지라 길게 있고 싶어도 마음처럼 쉽지가 않은 것이다. 그렇찮아도 벌써 귀가 예정일을 이틀이나 넘겼다.
국어선생이면서도 국어보다 미술을 더 좋아하고 미술보다 음악을 더 좋아 하는 자작나무님의 40대는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모습이다. 배우 이영애님보다 더 예쁜 바람개비님의 꿈은 남편에게 사람받는 여인이다. 지난 겨울에 산정호수에서 야영을 하고 난 아침에 텐트를 열면서 바람개비님이 한 말이 있다.
"아! 이런게 아침이야! 지금까지 아침은 아침이 아니었어!" 는 쇠말패의 어록에 올랐다.
안동에서 구미까지 4박 5일, 자작나무와 바람개비님이 보태준 젊은 기운은 내가 더 늙지 못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무대 위에 지은 텐트

야영장으로 돌아와 밤하늘을 헤매다가 별처럼 잠이 들었다.
잠결에 투둑투둑 빗방울 소리가 들렸다. 부리나케 일어나 텐트를 짊어지고 야외공연장의 무대로 옮겼다. 반 돔형의 무대에는 지붕이 있었다. 저녁에 찾아온 관리인이 만약에 비가 오면 무대로 옮기는 것도 좋을 거라고 귀뜸을 해 주었었다.
자전거여행 중에, 이처럼 맛있는 저녁을 먹고 비가림이 되는 자리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건 보통 행운이 아니다. 내가 쌓은 공덕이 이만치나 컸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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