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아도르, 활화산 사이를 통과하며
에디터 : 이호선

'에쿠아도르'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를 질리게 하는 상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개(犬)'스키들이다.
이곳엔 정말 엄청난 숫자의 개들이 동네 거리와 도로변을 떼를 지어 설치고 다닌다. 한 집당 3-4마리씩 어슬렁대기 일쑤다. 마치 2년 전 달렸던 인디아를 연상시킨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보통 3-4마리의 개가 무조건 나를 향해 거리로 뛰쳐나와 자전거를 에워싼다. 어떤 놈은 철망 처리된 대문으로 돌진해 나오다가 철망과 충돌하며 깨갱대는 코뿔소처럼 앞 못 보는 천치 같은 개도 있고, 한 참이나 나와 마주 보고 있다가 조용히 자신의 주인집으로 한 참 어슬렁대며 걸어가다가 가까스로 자신의 중요한 일과를 기억해낸 듯 갑자기 맹렬하게 짖어대며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눔이 있는가 하면, 내가 묵고 있었던 오타발로의 호스텔의 옆 집에 사는 개는 밤새도록 쉬지 않고 짖어대다가 끝내는 목이 쉬어 캥캥대며 더 이상 짖지 못하고 자진하는 어이없는 개까지, 개가 워낙 많다 보니 가지가지 군상이 연출된다.

인도의 거리를 무색하게 하는 에쿠아도르 거리의 상전, '개 눔 스키들'.
거리의 무법자들인 그들의 대부분은 병들어 있어 보고 지나치기가 불쾌하기 짝이 없다.

더욱 끔찍한 눔들이 떠돌이 개들인데 거의 모두가 병든 채 쓰레기를 뒤지고 같은 동족의 사체까지 입을 대는데 가끔씩 전혀 짖지도 않고 나에게 다가와 정신 없이 나의 다리에 몸을 비비고 핥아대는 놈들이 있다. 한 번은 두 마리가 나에게 달라붙으며 비비고 핥아대며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차 버릴 수도 없어 이러 저리 피하다 겨우 그들을 벗어 났는데, 다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도망가기 일쑤다.
"어, 저 눔 스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조금 전에 나를 무차별로 핥던 그 개 스키가 입에서 무엇인가를 토해내고 그것을 다시 먹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떤 동물의 창자!

좌우간 이 지역의 개들은 엄청 시끄럽게 짖어대고 지겹게 쫓아 오지만 그리스에서처럼 나의 다리를 향해 몸을 날리며 필살의 일격을 가할 정도의 근성을 가진 족보 있는 독종개가 아닌 '똥' 내지는 '잡' 개들이라 완전무시하고 달리다 보면 제풀에 나가 떨어진다.
결국 도로 변에는 또 하나의 꼴 보기 싫은 상전인 하늘의 하이에나, 까마귀들을 노래하고 춤추게 하는 수 많은 개들의 사체가 나의 앞 길을 막고 그 지독한 악취로 잠시나마 나의 숨을 막아야 한다. 세상 모르고 날뛰며 놀다가 동반사한 두 마리 개의 사체들까지 종종 목격된다.


에쿠아도르의 수도, 키토(Quito)의 산등성이를 타고 길게 뻗은 주거지.
키토의 외곽을 지나는 도로를 타고 지나다 키토 중심가의 촬영을 시도해 보지만
또 다른 산들에 막혀 불가능.

키토를 지나 51km지점에 나타난 작은 마을, 라소(Lasso)에 있는 아주 예쁜 호스텔
"Los Volcanes(화산들)"

수도권을 완전히 빠져 나가 달리다 보니 난데없는 평지길이 상당거리 계속되며 나의 마음을 평화스럽게 한다.
평지길이 이다지도 좋은 지 예전에 미쳐 몰랐어!
키토에서 정확히 51km인 지점에 어둠 속으로 서서히 잠겨가는 작은 마을, 라소(Lasso)의 입구에 서 있던 동네 보안관이 나를 가로 막는다.
"우리 마을에서 여관을 찾고 있다면, 200m전방의 왼쪽에 있는 호스텔이 전부야!"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나그네를 반기는 그에게 나는 잠시 고향을 느낀다. 보통 이 정도 크기의 마을에는 여관이란 없는 것이 통례이건만…
"Cabanas Los Volcanes"(캐빈 '화산(火山)들') 깜찍하게 예쁜 호스텔이다. 입구에 들어 서서 왼편의 사무실문 옆에 난데없는 한글로 적혀 진 온도계가 걸려 있어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 했다.

호스텔 주인 마르셀로 씨와 그의 딸 모니카

"안녕 하세요?" 나를 반기는 주인 아저씨, 마르셀로 씨(Marcelo Araquel)에게 나도 모르게 한국의 인사말이 나와 버렸지만 나에게 돌아 온 그의 대답은 무언의 미소뿐이다.
그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어디에서도 아주 쉽게 마주칠 수 있는 무뚝뚝하나 정으로 가득한 한국아저씨의 전형이다. 그의 딸, 모니카(Monica)역시 그녀의 아버지와 전혀 다름이 없는 타입의 아가씨이다.
에쿠아도르에는 60여 개의 화산이 있는데 4개의 화산이 아직도 살아 맹렬하게 활동 중이라고 한다. 이 화산들을 보기 위해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세계각지에서 몰려온다고 한다. 내가 달려 갈 남쪽방향 저 멀리에 활화산인 퉁구라후와(Tungurahua) 화산이 결코 유쾌하지 않은 연기를 다량 내뿜으며 남쪽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가는 비가 내리고 있는 창문 밖을 내다보며 나는 또 고향생각에 흠뻑 젖는다.

너무 조용해 좋기만 한 시골 길을 달려간다. 남쪽을 향해 달리는 동안 줄곧 나의 눈 앞에 활화산 퉁구르후와 화산이 버티고 앉아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라소(Lasso)에서부터 40여km의 평지를 달리는 기쁨을 누린다.
나는 내리막길 주행의 엑스타시를 사양하겠어.
나는 평생 큰 욕심 부린 적이 없어.
그저 한 페달 질에 수 십cm의 주행거리만 보장해주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어느 장례식. 오른 쪽의 영안실에서 교회당으로 운구 중인데
악사들의 연주와 함께 직계가족이 관을 이끌고 있다.

퉁구라후와 화산에 가까워오며 결코 유쾌하지 않은 바람이 엄청 세게 불기 시작한다. 내리막 길에서는 자전거의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계곡으로 날아 가 버릴 정도다.
도로변 곳곳에는 화산이 폭발했을 때 도피를 해야 할 방향과 거리가 명시되어 있다. 최대 위험 반경을 막 벗어나자마자 작은 마을이지만 예쁜 관광명소, 바니오스(Baños)가 함빡 웃으며 나를 반긴다.
마을 구석구석에서 보이는 많은 서양 배낭 족들의 모습에 즐겁다. 도로를 달리면서 바이커이건 배낭 족이건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기가 정말 힘겨운데, 겨우 만난 이들도 서양인들뿐이다. 이 여행을 시작하고부터 단 한 명의 동양인 여행객도 목격하지 못했다.
활화산을 경험하기 위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향해 달려 오지만 관광안내서에는 연일 뿜어져 나오고 있는 유독가스는 건강에 분명 유해하니 주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모두 용감한 이들임에 틀림이 없다.

이곳, 바니오스(Baños)에 들어서서 나는 비로소 내가 '팬 아메리카나'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음을 인지한다. 이곳에 들어오기 바로 전의 큰 도시인 암바토(Ambato)에서부터 나의 노선이 확 바뀌어 버린 것이다. 중남미지역을 확실하고 안전하게 여행하기 위해서는 북미에서부터 시작해 태평양연안을 따라 중남미를 종단하는 '팬 아메리카나(Pan Americana)'를 달려야 한다.
이 길은 내륙을 달리는 다른 길보다 훨씬 완만하며 그 지역의 경찰력도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팬 아메리카나'의 정 반대인 멕시코 동부의 산악을 돌고 도는 도로를 달리며 힘겨움의 구렁텅이에서 헤매다 결국 사고까지 당하며 나의 몸을 골병 들게 했다.
어쨌거나 중 남미지역은 내륙으로 들어가면 갈 수록 단단한 각오를 해야 한다. '팬 아메리카나'를 달리는 동안은 지도조차 필요 없지만 이제부터는 정확한 지명과 가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도로 변의 소방서에서 나이가 지긋한 한 소방관에게 물어 국경인 마카라(Macara)까지의 모든 주요 마을의 지명을 순서대로 적고 그것을 지도 삼아 달리기 시작한다.

암바토(Ambato)시 입구. 나는 여기서부터 '팬 아메리카나(Pan Americana)' 도로와
본의 아니게 결별을 하게 되고 고난의 길을 걷게 되지만
나에겐 또 하나의 특별한 경험이었다.

키토를 지난 후부터 줄곧 나의 앞길을 막아 서며 위용을 뽐내 온
살아있는 화산, 퉁구라후아(Tungrahua).

암바토(Ambato)시를 지나고부터는 이 화산을 끼고 달리는 도로를 따라 달리게 된다.

화산이 폭발했을 때, 대피 방향과 안전지대까지의 거리가 명시된 도로표지판이
도로변의 곳곳에 세워져 있어 긴장감이 감돈다.

화산의 분화구 아래에서 분화구를 올려다 보며 서 있는,
때론 해골같이 때론 유령처럼 보이기도 하는 자그마한 성당.
문득, 히로시마의 앙상한 '원폭 돔'을 연상시키며 몸을 움츠리게 한다.

퉁구라후와 화산을 끼고 달리는 길 도중에 긴 내리막길이 나타나는 산악 도로 구간에 5개의 터널이 줄줄이 이어지며 나의 숨을 빼앗는다. 이 화산 주변은 첩첩 산중으로 관광객들을 위한 레저시설이 간간이 있을 뿐이다.
이제 화산지대를 완전히 빠져 나와 가축들이 있고 밭이 있는 농촌지역으로 무대가 옮겨진다. 내가 달리고 있는 도로주변은 완벽한 '깡촌'으로 띄엄띄엄 한 움큼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 나타날 뿐이다.
도로는 나를 스쳐 지나가는 차량이 시간 당 불과 10여 대에 불과할 정도로 고요하고, 급기야는 동네 조무래기들의 축구장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가게나 식당조차도 없어 한 번 가게를 만나면 물과 빵을 넉넉하게 사서 비축해 비상사태에 대처해야 한다.

작은 시인 푸요(Puyo)를 향해 달려가다 도로변에 있는 희한한 곳에서 세 남녀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안경을 낀 중년의 사나이, 마이크(Mike)와 20대 후반의 젊은 남녀, '신디아(Synthia)'와 '르노(Reno)'가 그들인데, 마이크(Mike)는 25년간 70개 국을 여행한 아르헨티나인으로 공식 거주지인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는 자신의 아내는 없고 딸만 9명이 살고 있으며 그는 이 집 소유인의 권유로 이 곳을 관리하며 홀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이름은 "에쿠아도르 팜(Ecuador Farm)"인데 이 층의 목조건물로 지나가는 여행자들이 무료로 며칠이고 쉬었다가 갈 수 있는 곳이다. 여행자들은 집 뒤 쪽의 넓은 땅에 심어져 있는 많은 과수나무의 열매들을 따 먹을 수도 있고 이곳의 주방에서 자기 멋대로 요리를 해 먹을 수도 있다.
신디아와 르노는 캐나다 퀘벡 출신의 배낭 족으로 이 곳에서 그저 뭉개고 있는 중이다. 마이크는 나에게 이곳에서 잠시나마 주저 앉아 있으라고 권유를 하지만, 나는 '공짜 여인숙'의 달콤한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돌아 선다.
조금이라도 늦은 시각이었다면 하루 정도는 거저 묵고 가는 건데, 지금 시각이 대낮 12시야!
그래도 '신디아'에게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셔 나의 마음이 한결 덜 아픈 것 같아.

에쿠아도르 팜(ECUADOR FARM)의 전모.
에쿠아도르 팜(Ecuador Farm)의 장(莊)지기인 마이크(Mike)와
캐나다 퀘백의 백패커인 신디아와 르노.


 마이크는 지난 25년 간 70개 국을 여행하며 '날 건달'의 삶을 살아 온
'아르헨티나' 국적 인으로 공식 거주 등록 지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나
이곳에 눌러 앉은 지가 벌써 수년이 지났다.

푸요(Puyo)를 지나 마카스(Macas)를 향해 달리던 중,
애기 손바닥만한 마을인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의 유일한 식당에서
만난 두 은행직원. 이들은 나의 사진을 그들의 페이스 북에 올린다며…

'시몬 볼리바르' 유일식당의 사장님과 그의 가족.
그는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고 계속해서 얘기를 유도하면서 주의 깊게 경청하고 칭찬을
연발하는 대단한 서양식 커먼센스(Common sense)를 가지고 있다.
그의 아내이며 주방장인 그녀는 깡 촌의 식당답지 않은 식당이지만 손님을 위해
정성에 정성을 아끼지 않는 지극함으로 나를 감동시킨다.

도로는 완만하게 오름 내림을 계속하나 나는 변함없이 뜨거운 여름의 한 복판을 달리고 있다.
텅 빈 도로를 달리고 있는 동안 어둠이 물밀듯이 들이 닥친다. 끔찍한 숲 속으로 들어 갈 엄두조차 못 내고 지붕이 있는 구조물을 찾으나 아무것도 안 보인다. 이 곳에서는 창문도 없고 불도 켜져 있지 않아 버려진 집처럼 보이는 곳에서 사람들이 모두 살고 있다.
어둠 속에 허연 구조물을 발견하고 도로변의 언덕길을 오르려 하는데 어둠 속에 더욱 새까만 점 두 개가 움직인다. 분명 사람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다시 도로로 나와 천천히 걸어간다.
새까만 두 점의 정체는 바로 키가 큰 한 남자와 작은 키의 여자이다. 어디에도 빛이라곤 전혀 없는 어둠 속에 그들의 피부조차 나와 같은 짙은 갈색이니 그들의 얼굴윤곽은 전혀 알 길이 없다.

"이 동네에는 여인숙이 없나요?"
나는 이 지역엔 여인숙의 '여'자도 없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 가볍게 잽을 날려본다. 침묵이 흐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이미 상당량 놀라고 있음을 감지하고, 나는 그들에게 간략한 나의 소개를 한다.
사람들, 특히 외부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은 이곳에서는 밤에 이방인이 출현하면 무조건 휴대폰을 두드려 경찰을 부른다고 한다.
이름이 루이스(Luis)인 키가 큰 사내와 조그만 여자, 피에다드(Piedad)는 부부로 지금 도로변의 작은 개울로 목욕을 가는 중이다. 루이스는 목욕을 후딱 해치울 테니 잠시만 기다렸다가 자신의 집으로 같이 가자고 한다.
그는 정말 정직한 사내였다. 10분도 안되어 둘은 씩씩거리며 개울에서 도로로 돌아왔는데 그는 바지와 셔츠를 입을 새도 없이 팬티차림이다.
그의 말대로 '후딱(Rapido)' 해치웠다. 나는 '미안하다'를 연발하며 그들을 따른다.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그들의 집이 있는데 집 주변도 집에도 빛은 전혀 없다. 그저 방금 전에 두터운 구름을 비집고 간신히 새어 나온 개운치 않은 달 빛이 전부다.
그들은 지금 집을 짓고 있는 중으로 제대로 되어 있는 것이라곤 나무로 된 사방의 벽과 생철지붕이 전부로 물과 전기는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다. 우리들은 정말 시원치 않은 달빛에 상대 방 얼굴의 윤곽선만을 간신히 확인한 채 어둠 속에 그저 앉아 있다가 갑자기 피에다드(Piedad)가 무언가 중대한 것을 기억해 낸 듯 소리친다.
"유카(Yuka) 삶아먹자!"

마카스(Macas)를 목전에 둔 곳,
와린츠(Warints)에서의 루이스(Luis) & 피에다드(Piedad)가족들과 함께.

그녀는 무겁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침묵을 깨기 위해 어둠 속에서 무언가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던 것이다. 유카는 간단히 말해 우리의 고구마이다. 루이스와 피에다드가 주위에 뒹굴고 있는 나무들을 있는 대로 주워 와 동그란 동심원으로 가지런히 쌓은 후 상당량의 종이를 소비한 후에야 비로소 나무에 불이 붙었다.
하늘은 잔뜩 흐려있고 바람이 축축하다. 아무래도 또 비가 한 바탕 쏟아질 것 같다. 타오르는 모닥불 위로 유카가 들어 있는 일그러진 냄비가 보글보글 소리를 낸다. 우리 모두는 모닥불 앞에 앉아 비로소 서로를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하며 두터운 친근감을 느낀다.
하늘이 잔뜩 흐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은 할 수 없으나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나 홀로 노래를 부른다.


"모닥불 피워 놓고……….
……………………………..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그들 가족들의 표정은 한결같다. '무심(無心)!'
흐르는 침묵 속에 우리의 텅 빈 마음 속으로 느긋한 여유와 평화가 시시각각 차 오른다. 유카 두 조각을 먹고 나자 나의 위까지 꽉 차오른 완벽한 만족의 경지에 이른다.
루이스와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담배의 마지막 두 가치를 사이 좋게 한 가치씩 나누어 피우는데 그는 담배가 필터만 남기는 최후의 그 순간까지, 그저 바라다 보기만해도 아주 흐뭇할 정도로 정말 맛있게 피운다.
그는 다 타고난 담배꽁초를 모닥불 위로 던질 때까지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달콤한 자유를 만끽했다.


내가 그들과 처음 만났을 때, 루이스는 나를 정확하게 '오리엔테(Oriente)-동양인'으로 불렀다. 멕시코를 시작으로 중남미를 여행 한 지 3개월 만에 에쿠아도르의 한 깡촌에 있는 한 농부에게서 처음으로 들은 '오리엔테!' 그것은 감동이고 기쁨이었다.
루이스는 간혹 서양인 관광객들을 목격하기도 했지만 동양인은 단 한 번도 없다며 나의 출현을 아주 신기하게 여기고 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들은 두 딸과 두 아들(9세, 7세, 5세, 3세)을 가지고 있는데 피에다드는 지금 만삭이다. 주기상에 혼란이 있는 것으로 보아 피에다드의 뱃속에 있는 애는 계산 외의……?!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나는 이 곳의 토종 인들이 스페인에게 점령 당하면서 그들의 말이 완전히 없어진 줄 알았으나 4가지의 토족 어들이 아직까지 말해지고 쓰여지고 있다고 하며 학교에서조차 자신의 선택에 의해 4가지 중 하나를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루이스는 영악하게 생긴 것만큼이나 4가지 모두를 다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한 줌도 안 되는 이 마을을 기억해 보려 한다. "와린츠(Warints)!"-마카스(Macas)를 얼마 안 남긴 지점이다. 결국 예상했던 대로 하늘은 무너져 내리고 생철지붕을 두들겨대는 예리한 빗소리는 수 차례에 걸쳐 나의 단 꿈을 갈갈이 찢는다.
아침 7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비가 멎은 하늘을 향해 나는 또 다른 하루의 발걸음을 내 딛는다. 일렬 횡대로 늘어서서 나를 순진무구하게 바라다 보고 있는 6명의 가족이 또 하나의 장대한 자연의 풍경이 되어 나의 전신을 압도하며 감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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