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운전자들은 양보나 배려가 없다.
에디터 : 이호선

사막 위의 공동묘지. 묘지는 언제나 그러하지만, 사상묘지(沙上墓地)는 삭막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묘지들조차 길지 않은 세월 뒤엔 모래처럼 부서지고 모래먼지가 되어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갈 것 만 같은 생각에 허무하기 그지없다.
"Dust in the wind" 그 노래 제목, 그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또 다른 상당크기의 도시, 침보테(Chimbote)시(市) 부터는 도로가 태평양을 바라다보며 달린다.

페루 땅에 들어서면서부터 도로변의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Keico"의 행진.
케이코(Keico)는 후지모리 (Fujimori) 전 페루 대통령의 딸인데 2011년 10월에 있을 대통령선거의 명실상부한 후보자이다.
40초반의 그녀는 지금 리마의 감방에 있는 아버지, '후지모리'씨의 뒤를 이어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무서운 여인이다. 좌우지간 두고 볼 일이다.


카스마(Casma)를 불과 수km 남겨 놓은 지점에 작은 관광 마을인 토르투가스(Tortugas)가 있다. 마을의 입구에는 가브리엘라(Gabriela)라는 아담한 호스텔이 있는데, 이곳의 주인은 내가 지나 온 도시, 침보테(Chimbote)에서 치과를 두 개씩이나 운영하고 있는 성공한 치과의사인 47세의 루이스(Luis)인데 8년 전 이 호스텔을 접수해 온 가족이 주말마다 이곳에서 지낸다.
그의 소형 디카에는 눈에 넣어도 결코 아프지 않을 그의 예쁜 세 딸(20, 14, 12)의 사진이 짜증날 정도로 많이 들어있는데, 그는 한 순간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싱글벙글하며 딸들의 사진들을 계속 찍어 올려 나에게 들이대며 나를 향한 고문을 멈추지 않는다.
'루이스, 나는 그대의 행복함이 한 없이 부럽지만 그것을 결코 탐내지는 않기로 했네!'

카스마(Casma)를 얼마 안 남긴 지점에 작은 관광 촌인 토르투가스(Tortugas)가 있다.

가브리엘라(Gabriela)라는 작은 호스텔의 주인은 내가 지나 온 도시, 침보테(Chimbote)에서 치과를 두 개씩이나 운영하고 있는 치과의사, 루이스(Luis)인데 8년 전, 작은 이 호스텔을 접수해 온 가족이 주말마다 이 곳에서 지낸다.
그의 소형 디카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의 예쁜 세 딸(20, 14, 12)의 사진이 싫증날 정도로 들어있다.


40대 후반인 그는 결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싱글벙글하며 딸들의 사진들을 계속 찍어 올려
나에게 들이대며 나를 향한 고문을 멈추지 않는다.
'루이스, 나는 그대의 행복함이 부럽기 짝이 없지만 그것을 탐내지는 않기로 했네!'


지난 밤 웬일인지 잠을 제대로 못 잤지만 나는 또 습관처럼 페달 젓기 자세를 취한다. 또 다른 100km의 힘겨운 하루를 마무리 짓기 위해 찾은 마을, 후아르메이(Huarmey)에서는 나의 출현에 노소남녀를 불문하고 기이한 표정을 지으며 '치노'를 연발해 나를 기막히게 한다.
가게에 들어가면 주인은 손님의 연령, 성별, 인종, 국적에 관계없이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아니면 그저 '미소'로써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범 세계적인 상식이다. 중남미의 많은 상점들의 사람들은 이런 상식을 곧잘 무시해버리기 일쑤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나를 향해 내 뱉듯 날아 오는 그들의 인사는 바로 "치노!"
굳은 표정으로 한국인임을 선언한 후에도 그들은 절대 사과 따위는 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뒤통수 깨질 일이다. 나의 등장이 '자전거 여행자의 출현'이 아닌 '한 치노(Chino)의 출현'으로 해석되고 평가되며, '호선'이가 '철수'나 '병태'도 아닌 '왕 서방'이 되어버린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그들과의 스토리 전개는 커녕 스토리가 시작도 되지 않으며 그저 그들을 빨리 지나쳐 가는 것만이 최선의 선택이 된다.
한마디로, 그들과의 대화란 없다.
이것이 바로 중남미지역 여행의 한계이며 맹점이다.
잠깐, 한 가지! 이렇게 중국인과 주변 동양인이 노골적으로 무시되는 가운데에서도 같은 동양의 나라인 일본과 일본인들만은 언제 어디서나 완전 열외가 되고 있는 이유는?!

도로를 달리는 도중 수 많은 선전탑의 선전문구들을 접하게 된다. 한국의 트럭 선전을 비롯 길고도 화려한 선전문구들이 대부분의 선전간판을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제품 선전 간판의 선전문구들은 간결하기 짝이 없다. 단지 "일본 제", 혹은 "일본에서 100% 제조 되었음." 이것이 모두다!!

정말 오랫동안 나의 동족인, 대륙횡단 바이커는 고사하고 현지인 바이커조차 만나지 못하며 달리고 있는 가운데 리마에 살고 있는 모터 바이커인 루이스(Luis)가 그의 큰 덩치만큼이나 대형 오스트리아 제 모터사이클을 내 앞에 세운다.
난데없는 그의 유창한 영어에 나는 한 동안 얼떨떨해 한다.
그 동안 이 곳 현지인들과 영어로 대화한 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실인 즉,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10여 년을 미국의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나에게 경의를 표하고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 주곤 순식간에 한 점이 되고 바람이 되어 사라졌다.




리마를 200여km 남겨놓은 지점에 크지는 않지만 도시가 연이어 나타나고 도로의 갓길도 넓어진다. 201km지점에 있는 도시인 파티빌카(Pativilca)시 입구에는 'Keiko'의 선전문구가 어지럽다.
페루의 땅을 달리기 시작하면서 도로변 건물벽들을 어지럽게 장식하고 있는 2011년 10월에 있을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의 이름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Keico"가 나를 줄곧 섬찟하게 만든다. 40 대 초반의 그녀는 전직 페루의 대통령, 후지모리(Fujimori)씨-그는 지금 리마의 한 형무소에 감금되어 있다-의 딸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후지모리 신화'를 재현하려는 대단한 야망의 여인이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지켜 볼 일이다.

내가 이틀간 고요 속에 도를 닦던 파티빌카(Pativilca)시의 형무소 같은 여관,
엘 솔(El Sol:스페인어로 '태양')의 전모.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을 허비해 12 Soles(4불)의 여인숙을 발견했는데 이 여관이 예사롭지 않다. 정확하게 형무소의 구조를 하고 있는 이 여관의 창문은 모두 철창처리 되어있고 방안에는 전기코드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조차 없이 백열전구 하나와 침대 하나가 전부인데 백열전구 점등을 위한 스위치조차 방 바깥에 붙어 있다.
공동화장실과 욕실은 정확하게 내 방에서부터 19m 떨어진 건물의 끝에 위치하고 있다. 2열 종대로 길게 늘어서 있는 모든 방들의 상황이 건물 양 끝의 2층에 있는 주인 방에서 한 눈에 파악이 된다.
공동화장실의 변기는 2개인데 한 개는 구멍만 있는 대변기이고 또 다른 양변기는 소변용이다.
샤워장엔 이곳의 일상적인 모습으로 수도 파이프 하나가 벽에 꽂혀있다. 이 형무소 소장은 40대 후반의 후아나 마리아(Juana Maria)로 그녀의 20살 아들과 단 둘이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
문제는 작은 도시인 파티빌카(Pativilca)가 너무 평화스러워 이 감방에 수감 될 자들이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너무도 고요하다. 전기 콘센트조차 없어 문서작업이나 사진정리조차 할 수 없고 백열등조차 밤이 되어 비로소 점등된다. 하지만 4불을 지불한 이 감방 같은 곳에서 나는 무한한 자유를 만끽한다. 나를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인가 하고 싶기도 않지만 그 무엇을 할 수도 없다. 나 자신 그저 고요 속에 풍덩 빠져 고요가 될 뿐이다.

이층 창문에 보이는 여인이 형무소장인 후아나 마리아(Juana Maria).

아침 일찍 삼삼오오 열을 지어 농장으로 향하는 농부들.

다름아닌 딸기 밭이다.
이곳은 죽음의 땅, 사막이지만 물만 있으면 비가 없이 계속되는 강렬한 태양 덕에
당도 높은 과일이 탄생한다.

그 동안 차량이 결코 많지 않은 900여 km 페루의 팬 아메리카나를 달려오면서 페루 운전자들의 분별없는 경적은 나를 정말 돌아버리게 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앞에 얼쩡거리는 물체를 향해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눌러댄다.
도시나 마을에 들어가면 지나다니는 차량도 몇 대 안 되는 도로임에도 한 마디로 아비규환의 현장이다. 특히 도시의 무법자들인 택시, 밴, 세발오토바이들은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무차별 경적과 무차별 질주 정차를 일삼기 때문에 정신 바짝 안 차리면 언제 그들에게 받히거나 밟힐지 모를 지경이다.
철저한 차량우선, 차량우월주의자들인 페루 운전자들에게 양보나 배려란 없다. 보행자들은 차량의 뻔뻔스런 돌진과 무차별 경적난사에 우매할 정도로 무력하고 관대하다.
불과 너 댓 초(秒)를 못 참아 모래먼지같이 부질없는 아우성을 쳐대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성질 급하고 배려심 적은, 얼마 전까지의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고 있는 듯해서 마음은 혼란하고 얼굴이 뜨겁기만 하다.
그 동안 '빨리빨리'라는 발군의 미덕으로 수 많은 신화를 창조한 우리들이지만 세계를 향한 숨가쁜 변화와 개혁의 폭주 속에서도 '차량우선' 주의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지 않은가?!! 교통질서란 두 말 필요 없이 현대 사회의 중대상식이며 시민의식의 척도이다.

찬카이(Chancay)시의 입구에 있는 한 노점상은 다른 노점상들에 비해 유독 손님이 많다.
팔고 있는 것이라곤 그저 작은 햄버거 빵을 반 갈라 계란 후라이 하나 달랑 넣은 계란 버거, 삶은 닭고기 약간 달랑 넣은 닭고기 버거, 소시지 몇 조각 달랑 넣은 소시지 버거 뿐으로 음료수는 과일천국인 페루답게 집에서 직접 여러 종류의 과일을 갈아 놓은 주스로 여느 노점상들과 다름이 없지만 뭔가 다른 것이 있다.
페루를 비롯한 중남미 나라들의 대부분의 노점상들은 일회용 잔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이 아까워서다.
결국 작은 대야에 담겨 있는 물에 손님이 마시고 난 주스 잔을 대강 흔들어 씻고는 또 다시 다른 사람의 주스 잔이 된다.
내가 치크라요의 여관방에서 일주일을 뒹굴며 설사를 한 이유로 가장 심증이 짙은 것이 저 컵, 아니면 맛이 간 주스이다.
나는 사막을 달리는 동안 도로변에 있는 노점상을 만날 때마다 저 과일주스를 자주 마셔왔다.
그는 수도꼭지가 달린 생철용기에 물을 담아놓고 물을 틀어 일일이 세제로 컵을 닦았고 거울 두 개를 벽면에 붙여 놓아 손님들이 음식을 먹은 뒤에 거울을 보며 입 주변을 정결히 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다.
잘 나가는 식당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페루 인들의 기질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 고유의 격투기인 춤비빌카스(Chumbivilcas)이다. 용감무쌍한 두 명의 파이터는 사각의 링이 아닌 그들의 삶터인 산정의 초원 위에서 관중들에 겹겹이 둘러 쌓인 채 그저 평상복을 입고 아무런 보호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채 맨 주먹과 맨 다리로 일전을 벌이는데, 그야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격투기들의 발상이랄 수 있는 원시모형이다.
정권(正拳)이니 스트레이트, 훅, 어퍼컷이고 나발이고 없이 한 마디로 '마구 휘둘러 치기'이고 킥 또한 앞차기, 옆차기, 무릎 킥, 돌려차기…, 다 무시한 '마구 걷어차기'이다.
여성 파이터들 또한 치마를 입은 채 맨 손에 맨 다리로 치열하게 마구잡이로 휘둘러 댄다. 그런데, 무지막지하게만 보이는 주먹과 다리의 마구잡이 휘두름 속에 강력하고 예리한 정타(正打)는 거의 없기에 심각한 부상도 없다. 결국 휘둘러진 주먹이나 다리에 밀려 나가 떨어지기 일쑤다.

리마를 40여km 남겨 놓은 지점에 있는 안콘(Ancon)시(市)의 변두리 주택가.
참으로 평범하지 않은 풍경이다.


도시의 도로에서 자주 눈에 잡히는 아비규환의 현장.
우리나라에서도 언젠가 까지 이와 비슷한 고약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 목격되곤 했다.

어쨌거나 악마 같은 차량들과 경적이 나를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나 이외에 그 어떤 수감자도 없는 완벽한 나만의 공간이다. 자유, 자유다! 자유란 '안락과 풍요'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특별한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자유를 찾아 수 많은 곳을 헤매지만, 자유란 결국 나의 마음 속에 있고, 자유를 누리겠다는 나의 의지에 있다. 나는 이곳에서 하루를 더 있기로 한다.

하루 종일 맨발에 반 바지만의 차림으로 가지고 있던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생각지도 않게 걸려 든 올드 팝송을 들으며 빨래를 하고 펑크 난 튜브를 때우고 낮잠도 잤다.
식사는 여관 입구에 있는 중국음식점에서 해결한다. 이곳 파티빌카에는 식당의 대부분이 중국음식점의 간판 치파(Chifa)(중남미의 중국음식점들은 모두 치파(Chifa)로 통칭되는데 중국어의 '吃饭 [chīfàn]츠판'(밥을 먹는다)이 와전되어 '치파'가 된 듯하다.)를 달고 중국음식과 현지음식을 같이 팔고 있는데 놀랍게도 주방장들이 중국인이 아닌 페루 인들이다. 중국음식은 이미 색 다른 맛을 애타게 찾고 있는 페루 인들이 선호하는 음식이 되어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고요한 여관방은 나에게 산소 탱크였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는 않지만 떠나는 것이 나의 삶임을 내 자신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순순히 태양을 향해 걸어 나간다. 리마에 가까워오며 큰 도시가 속속 이어지는 가운데 찬카이(Chancay), 안콘(Ancon)을 거쳐 모래 먼지와 무법차량들의 발광으로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인 리마 외곽의 거리에 도착한다.
리마의 중심가에서 5km가량 떨어진 곳이다. 중심가로 들어갈 필요도 없이 이곳에서 지내다가 바로 호주로 날아가면 될 것이다.

북미를 비롯해 중 남미의 여행루트

내가 지금 있는, 리마의 중심가에서 5km 떨어져 있는 곳의 여관과 나의 방.(7$)

정말 힘겨운 페루의 주행이 끝나고(1,159km), 길고 길었던 중남미의 여행 또한 끝이다. 오늘이 2011년 1월 14일이니 작년 9월 18일 멕시코에 들어 와 거의 4개월 만이다. 멕시코에서 중미의 마지막인 파나마까지가 4,205km이고, 남미의 시작 콜롬비아의 칼리(Cali)시에서 페루의 리마(Lima)까지가 2,771km로 중ㆍ남미가 총 6,976km이다. 작년 5월 7일, 서울을 떠난 뒤 오늘(2011, 1월14일)까지 총 15,303km를 달렸다. 에쿠아도르를 떠나기 전 날, 국경도시인 마카라(Macara)의 여관 방에서 세 번째로 타이어를 교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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