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로 가는 비행, 짐이 없어졌다.
에디터 : 이호선

"뭐라고, 나에게 '보딩 패스(Boarding Pass)'를 발급할 수 없다고?!"
항공사 여직원의 '사막에 눈 내리는 소리'에 나는 나의 양쪽 귀를 몇 번이고 후빈다.
"손님, 이것 좀 봐요! 우리가 호주 이민국에 전문을 보냈는데 번번이 '입국O.K'의 사인이 안 떨어지고 있어요!"

호주는 특별히 비자를 받을 필요 없이, 여행사에서 비행기티켓을 사면 여행사가 호주이민국에 통보만 하는 것으로 끝난다. 나는 서둘러 공중전화박스로 달려가 티켓을 산 고려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저녁 8시경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강 사장님께 나의 사태를 설명한다. 아무래도 강 사장님이 호주이민국에 보고하는 절차를 잊은 것 같다. 10분만 기다려 달라는 강사장님의 요청으로 나는 공항대합실에서 마치 하루 같은 긴 10분을 서성거린다.

"O.K 사인이 이미 떨어졌어요. 이제 항공사 직원에게 가 보세요!"
내가 항공사 카운터를 바라보는 순간, 냉담하게 보딩패스 발급거부를 선언했던 그 여직원이 먼저 나를 발견하고 빨리 오라는 듯 손을 흔든다. 철렁했던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달려가 그녀 앞에 서니 그녀는 '히딩크'의 승리의 어퍼컷에 맞먹는 흥분과 기쁨의 제스처로 나에게 소리친다.
"나왔어, 나왔다고요! 이제 당신의 앞길을 막을 자 그 누구도 없어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에세이사(Ezeiza)국제공항 대합실에 있는 카페에서 로메로(Romero)그리고 아나이스(Anais)와 아침을 들며 함께한 한 컷.
나와 거의 같이 늙어가고 있는 로메로는 결코 각이 없는 원만한 인상만큼이나 마음이 진국이다.
그의 사랑스런 아내 역시 너무도 닮았다.
사랑, 특히 '부부의 사랑이란?' 질문에 대해 긴 설명 필요 없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두 사람. 나는 이들을 보면서 부부가 오랫동안 정답게 살다 보면 형제처럼 닮는다는 속설(俗說)이 명백한 진실임을 깨닫게 된다.
부모는 한결같다고 그들은 자신의 3명의 딸 자랑에 침이 마르고 목이 마르다. 보기만해도 흐뭇한 부부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행 비행기는 티켓에 찍혀 진대로 정확하게 23시 25분에 깡마른 페루의 밤공기를 사정없이 찢으며 거칠 것 없이 수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로 치솟아 올라 또 한 개의 별이 되었다.
5시간의 비행 끝에 비행기가 아르헨티나의 에세이사(Ezeiza) 국제공항에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새벽공기를 자르며 내려 앉는다. 짧지 않은 비행이었지만 그렇게 지루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부터로, 시드니 행 비행기의 탑승시각이 내일 새벽 2시 반이기에 아직 새벽인 지금부터 내일 새벽까지 거의 하루를 기다려야 한다.

갈아 탈 비행기도 같은 항공사 비행기이기에 짐을 찾을 필요도 없어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어슬렁대며 대합실로 걸어 나오다가 나는 리마(Lima)의 공항대합실에서 만났던 베네수엘라인인 로메로(Romero)와 아나이스(Anais) 부부를 만난다.
로메로는 리마공항에서 나의 길고도 특별한 여행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며 여러 각도에서 그의 대형 카메라를 나에게 들이댔다. 마치 형제처럼 닮아 보이는 그들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 특히 부부애(夫婦愛)를 긴 설명 필요 없이 보여주는 한 쌍이다.
그들의 세 딸이 이미 장성할 만큼 긴 결혼생활을 해 온 그들이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과 제스처에는 상호 신뢰와 사랑이 가득하다. 로메로는 베이커휴이(Baker Hughes)라는 대형 원유회사의 간부직원으로 아르헨티나의 남부지역인 파타고니아의 지사로 이주하는 중인데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에 염증을 느낀 그들은 조국인 베네수엘라에 작별을 고하고 아르헨티나에서 영구적으로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내가 뉴욕을 지날 때 센트럴 파크 앞에 모여 "독재자 차베스를 타도하자!"는 플래카드와 함께 농성 중이던 많은 뉴욕의 베네수엘라교민들의 모습이 불현듯 나의 눈을 가로 막는다.

로메로는 대합실에 있는 카페로 나를 인도하며 아침을 같이하자고 한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커피 한 잔에 평화와 만족감이 나의 온 몸에 엄습한다. 로메로는 여느 아빠들과 한치도 다름없이 그의 사랑스런 세 딸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카메라 스크린에 올리며 자식자랑에 여념이 없다.
온 몸이 풀어져 버린 듯한 느긋함의 시간이 지나고 "Mr. Romero"라는 푯말을 든 한 중년 사내가 대합실에 들어서더니 이내 우리들을 향해 다가온다. 그는 로메로를 픽업하기 위해 회사에서 보낸 운전기사이다. 나와 포옹을 하고 다시 악수를 나누는 가운데 로메로는 따스한 미소와 함께 나의 손에 무엇인가 건네주며 속삭인다.
"항상 배가 고플텐데 뭐 하나 사먹어요!"
멀리 사라져가는 그들의 승용차를 멍하니 바라보다 손바닥을 펴 보니 그것은 미화 50달러 지폐였다.

생각지도 않게 두 발로 체험한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특별함 없는 스페인풍의 도시이고 거리지만
4달 동안이나 무질서와 무차별한 경적소리에 지쳐있던 나에게 까맣게 잊고 있었던
 '유(有)질서'와 고요함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중남미의 어디를 가도 경멸의 대상이 되어버린 '치노(Chino)'들이지만 그들은 어디에 가도
그들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발휘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중앙역사(中央驛舍)안에는
봄을 알리는 '봄(春)'으로 충만하다.

길고 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도대체 대책이 서지 않고 있던 나에게 로메로는 해답을 주었다. 공항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까지 버스로 45분인데 요금이 45페소 (11불)로 왕복하면 22불이 된다.
간간히 비를 뿌리는 결코 산뜻하지 않은 날씨이지만 뭔지 모를 희망에 부풀어 버스에 뛰어 오른다. 버스에 올라타 자리에 앉자 마자 졸음이 쓰나미처럼 나의 전신을 덮친다. 지난 밤 좁은 비행기좌석에 그저 눈뜨고 앉아 있었을 뿐으로 한 숨도 잠을 자지 못했다. 바위같이 무겁게 느껴지는 눈꺼풀을 가까스로 밀어 올리며 겨우 눈을 떴을 때, 버스는 이미 도시의 한 복판을 달리고 있다.
몇 겹의 혼돈과 소음으로 둘러 쌓여 있던 페루의 리마와 어쩌면 이렇게 극한의 대조를 보이고 있는가?!
아직 이른 시각이라 거리는 고요하고 아침 산책객들이 고작인데, 적지 않은 산책객들이 적게는 너 댓 마리에서 10 마리 가까이의 개(중남미 10개국을 지나 오면서 결코 보지 못했던 족보 있는 유럽 견(犬))들을 이끌고 조별과업을 하고 있다.

중남미 10개국을 지나 오면서 결코 보지 못했던 족보 있는 유럽 견들이 주인과 함께 조별과업을 하고 있다.
그들이 개들에게 보여주는 아낌없는 집착은 개를 향한 무한한 사랑일 수도 있으나 사랑을 애타게 갈구하는 지독한 외로움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도로에서 날뛰는 '개'사마들은 내가 결코 스쳐 지나가고 싶지 않은 인사(人士)들이다.


중앙역 가까이로 작은 공원이 이어지는데 한 여인의 동상이 나의 두 눈을 강렬하게 잡아 당기며 나를 멈춰 세운다.
그녀는 바로 "Don't cry for me, Argentina!"의 주인공인 에비타(Evita)이다.
이제는 많은 세월이 흘러 그녀의 존재도, 그리고 의미도 많이 퇴색되어 세상사람들에게 버려진 듯 외롭고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름 모를 군상 앞에서

공원을 걷다가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목격되는 풍경에 발을 멈춘다.
할아버지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가부좌(跏趺坐)로 앉아 "Si(Yes:예)!"를 연발하며 진지하게 듣고 있는 손자.
심각하게 책을 읽어주는 할아버지의 진심만큼이나 심각하게 그것을 듣고 있는 소년. 진심의 소통은 결국 감동을 만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 '톱 5'에 들어가는 한 컷이다.


거리와 골목의 구석구석까지 스페인의 향기로 흥건하지만 평범하고 밍밍하기 짝이 없다. 대로를 따라 걷다가 뒷골목 구석구석까지 2시간 넘게 걸어보지만 따분하기 짝이 없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스페인계 인종이고 스페인문화가 제대로 정착된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멕시코를 시작으로 길고 긴 중남미 여행을 하는 동안 당연하게 생각하고 인정해야 했던 풍경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려 허전함을 느낄 정도다.
고막을 찢고 심장을 멎게 하던 분별없는 경적소리들은?! 셀 수 없이 늘어서 있던 경찰들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잡혀 있으며 조용하고 억지가 없다. 비록 따분해서 하품을 연발할지언정 고요하고 정돈됨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역시 좋은 것이다. 멕시코에서부터 시작되어 중남미를 거치는 동안 이어지던 '금연의 계절'은 여기서 드디어 끝이 나고 맹렬한 흡연의 그것이 시작된다. 금연의 바람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과 아시아는 아직 큰 동요 없이 흡연의 길을 고집하고 있다. 나의 눈을 현혹시키는 한 컷의 풍경조차 만나지 못하고 나는 터덜터덜 공항 대합실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 보내야 하는 12시간은 끔찍하게 긴 시간이지만 참고 견디는 수 밖에.
2월 9일 새벽 3시경, 나를 태운 시드니 행 비행기는 내 고향이 있는 서쪽 편의 대륙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징검다리 대륙, 호주의 시드니를 향해 힘찬 비상을 시작한다.

페루의 리마에서부터 시드니까지 똑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있던 캔버라 출신의 호주인, 톰(Tom Delandre)과 메간(Megan White).
톰은 18년 경력의 요리사로 이혼을 한 후, 9세 아들인 아이작(Izak)과 7세 딸인 마카이라(Makayla)와 함께 살고 있는데 그의 여자친구인 메간과 함께 페루를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이다.
말이 없는 성격의 톰이지만, 그의 자식사랑은 지극하다.
그는 두 꾸러미 선물을 꼭 쥐고 있으며 그의 소지품 어디에도 그의 두 자식이 들어 있다.


길고 긴 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시드니공항.
비행기 창문 밖으로 아주 반가운, 파란 하늘색 바탕에 선명한 태극마크가……

"뭐라고요, 내 짐이 없다고?!"
나는 자전거를 픽업한 후 한 참 동안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끝내 나의 짐(나는 자전거용 4개의 가방을 하나로 압축시켜 단단히 묶어 수하물처리를 했다.)은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모두들 떠난 텅 빈 수하물 처리소에서 망연자실 서 있을 뿐이다. 내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은, 나의 관자놀이에 정확하고 강력한 훅을 한 방 허용한 뒤 보게 되는 미친 노란 빛깔의 세상, 바로 그것이다.
수하물 사무소를 찾아가 두 중국인여자 직원에게 내 짐의 특징을 자세히 서술하자, 그들은 나에게 내일 사무소에 전화를 해줄 것을 요청했고 최악의 경우, 일주일정도 기다릴 수도 있다는 끔찍한 말을 하며 나를 침몰시킨다. 사무실을 나왔으나 나는 넋 나간 허수아비가 되어 사무실 건너편에 있는 벤치 위에 마냥 주저앉아 있을 뿐이다. 자전거는 있으나 분해시킨 핸들을 다시 원위치 시킬 육각나사 조임 툴(Tool)이 없고 빠져있는 양쪽 바퀴에 바람을 넣을 공기펌프가 없으니 자전거는 거추장스런 짐일 뿐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리고 중국인 여직원이 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 뒤 종종걸음으로 나를 앞장서서 걸어간다. 수하물 창고 앞에 서서 10여분 기다리고 있으니 문이 열리며 나의 소중한 짐이 굴러 나온다.
운명의 여신이여, 아무래도 그대가 나에게 너무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게 틀림이 없어.
이렇게 연타로 나의 심장에 심각한 쇼크를 주면 내가 내 명에 못 죽는다고요!
나 또한 누구처럼 천수(天壽)를 다 누리고 죽고 싶단 말이요!

포장된 자전거를 풀어 보니 철사로 얽어놓은 짐받이대가 또 다시 내려 앉아 있다. 수하물 처리되는 과정에서 어딘가에 부딪쳤음에 틀림이 없다. 무너져 있는 짐받이대 위에 막무가내로 짐을 얹고 그대로 공항을 빠져 나와 10여km를 달리니 결코 낯설지 않은 다운타운의 빌딩들이 나를 환영한다. 시드니의 거리는 20여 년 전과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지만 많은 인종들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 첫눈에 느껴진다.

20여 년 만에 다시 찾아 온 시드니는 그 당시 내가 찍어 놓았던 사진의 풍경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 세월의 흐름을 극구 부정한다.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하버브리지(Harbor Bridge)와 오페라하우스(Opera House)주변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시드니만의 풍경은 지난 20여 년 동안 내가 줄 곳 나의 뇌 속에 간직하고 있던 한 컷의 시드니만의 풍경사진과 정확하게 일치하며 세월을 흐름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다.
뒤바뀐 도로규칙(좌측주행)에 가끔씩 본의 아닌 교통법규위반을 감행하며 중심가를 맴돌다가 인도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하룻밤 25불의 백패커스(Backpacker's Inn)를 용케 발견한다(한 방에 10명).
주인과 종업원 모두가 인도인들로 이젠 세계 어디를 가도 인도인들의 눈부신 약진을 목격한다. 내가 이미 지나 온 캐나다와 미국에서도 그들은 한국과 중국인들이 처음 진출했던 비지니스의 뒤를 이어 억척스레 한 발 한 발 우리의 뒤를 쫓는다.

나는 그 동안 수 많은 나라와 수 많은 도시를 지나 왔지만 이 곳, 시드니만큼 물가가 비싼 곳을 기억하지 못한다. '최소한의 밥' 한끼를 때우기 위해선 적어도 10불(12,000원)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한 병의 음료수, 한 잔의 커피 또한 3불(4,000원) 전후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10불의 햄버거 정식을 시키면 큰 햄버거에 적지 않은 양의 감자튀김과 커피까지 함께 나오고 커피는 리필(Refill)까지 해 준다. 이 곳에서는 햄버거 하나 달랑으로 감자튀김과 커피는 또 따로 돈을 내고 사야 하는데 모두 합치면 20불에 상당한다. 북미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이렇게 비싸지 않다.

고(高)물가의 시드니 한 복판에서 이틀을 머물면서 줄기차게 먹었던 김밥과 떡.
제일 싸고 배부른 것이지만 이 두 줄 김밥조차 7,000원에 상당한다.

내가 있는 숙소의 바로 옆에는 차이나 타운이 있는데 비록 뉴욕보다는 훨씬 규모가 작지만 음식값이 현지의 다른 식당들과 전혀 다름없이 비싸다는 사실이 끝내 나를 절망시키고 만다. 배고픔을 참고 조금은 허술해 보이는 식당을 찾아 보지만 그 가격은 조금도 허술하지 않다.
이제 호주 땅에서 믿을 것이 없다. 이제 나의 유일한 선택이란 한국식품점에 있는, 만만한 가격에 배부른 김밥(두 줄에 6불: 7,000원 상당)과 떡뿐이다. 시드니 중심가에는 중국과 일본식당을 비롯해 적지 않은 수의 한국음식점과 슈퍼가 있고 캐셔들의 대부분은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로 호주에 온 한국의 젊은이들이다.
비록 선택의 여지없이 먹는 김밥과 떡이지만 나에게는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는 꿈같은 음식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백패커스의 3층 방의 창가에 있는 나의 침대에 걸터 앉아 김밥을 안주 삼아 수돗물을 마시고 있는 동안, 바로 길 건너편 3층에 있는 한국식당의 식탁에선 고기 굽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소주잔이 바쁘게 오간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그 식당은 상당히 크고 손님들이 아주 많다. 그것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지금 마치 서울에 있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든다.
비록 거리 상으론 단지 15m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곳은 이미 나에겐 '건널 수 없는 다리', '갈 수 없는 나라' 이다.

3층 여관의 창가에 있는 침대에 앉아 밖을 내다보니 바로 길 건너에 한국식당이 있다.
내가 김밥을 안주 삼아 수도 물을 마시고 있을 때, 그 곳에선 고기 굽는 냄새와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나는 오랜만에 먹어보는 김밥에 인사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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