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11/08
아프리카, 경찰 자쿠의 현명한 집행
2011-12-15   이호선

이스터 휴일을 맞아 짐바브웨의 국경을 향해 달리는 1번 국도는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승용차들이 서행을 계속하는 동안 운전자들이 나에게 카메라를 정조준하고 관심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나와 '엘파마'가 이들의 열렬한 환호에 만취된 채, 어깨에 잔뜩 힘주고 달리고 있는데 천둥소리와 함께 나타난 3명의 모터사이클 경찰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데 특이하게도 모두 백인이다.
"이 고속도로에서의 자전거 주행은 위험천만한 일로 당신은 이 길이 아닌 구(舊)고속도로를 달려야 하오!"
그들은 본국(本局)에 전화를 걸어 나를 위해 픽업트럭을 보내도록 조치를 하고 나는 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트럭을 기다린다. 세 명 모두 상당한 베테랑으로 보이는 중년의 이들은 부드러운 말투로 느낌이 아주 좋다.
곧 픽업트럭이 내 앞에 섰는데 운전자는 루키(Rookie)로 보이는 아주 젊은 경찰관으로 거한이다.
구 고속도로는 서로 1km도 채 안 떨어진 곳을 신 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고 있는데 도로와 도로주변의 사정은 극과 극이다. 구(舊)고속도로는 흑인들의 주 주거지역을 달리는 지방도로로서 갓길은 없고 도로는 사정없이 깨져 있으며 차량들이 도로 위를 무질서하게 달리고 있어 정말 위험천만이다.

Jacu는 20대 초반의 젊음이지만, 그의 큰 덩치만큼이나 큰 지혜를 소유하고 있다.
그는 분명 현자(賢者)이지만, 경찰관으로서 성공하기엔 애당초 틀린 듯하다.
나를 순식간에 애기로 만들어 버린 이 거한(巨漢)은 나에게 Super감동과 너털웃음을
남기고 나를 떠났다.

이름이 자쿠(Jacu)인 이 젊은 경찰관이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정작 위험천만한 길은 신 고속도로가 아니고 바로 이 길이요! 이 길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어! 내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상 당신을 차마 이 곳에 내려놓고 갈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나도 명령을 절대복종 해야 하는 경찰관이란 말이요…"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다.
"내가 당신을 이곳에서 40여 km 떨어진, 이 지역, 프레토리아(Pretoria)의 경계구역까지 바래다 주겠소. 그 곳에서부터는 당신이 아까 만났던 세 명의 모터사이클 경찰들을 결단코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요. 나는 이 구 고속도로와 신 고속도로의 중간지점에서 당신을 내려줄 테니 그 때부터는 어느 쪽을 택하던 당신의 선택에 달렸소!"
20대 초반의 경찰, 자쿠는 한 마디로 현인(賢人)이다. 공익을 위해 예외 없는 법의 집행을 해야 하는 경찰관이지만, 한 움큼의 관용을 더욱 베풀며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제공하는 그의 심장은 그의 큰 덩치만큼이나 거심(巨心)이다. 그는 공익(公益)을 위한 그 어떤 법의 집행도 한 사람을 결코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는 것까지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헌데, 당신 몇 살이요?!"
"어…………오십하고 둘인데…"
"뭐야, 도대체! 52이면 내 아버지와 같은 서열이잖아?! 참, 기막혀 죽을 판이네! 좌우지간 대단하슈!"

결국 그는 프레토리아 주경계를 넘자마자 나를 내려주고,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신 고속도로로 달려 나간다. 도로는 이미 그 어떤 법 집행도, 집행관도 필요 없는 평화스런 곳이 되어있다. 주차장을 방불케 하던 도로는 어느덧 옛 얘기가 되어 버린 채, 한산하기 조차하다. 곳곳에 흑인 경찰관이 탄 순찰차가 도로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으나 나를 방해하는 분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북진에 북진을 거듭하는 가운데 도로의 차선 깊숙이 달리고 있던 흰색 소형 승용차가 급작스럽게 왼쪽 깜빡이로 긴급상황을 알리며 차선 밖으로 비상탈출을 시도한다.(이곳은 좌측주행이다.)
"저 친구에게 무슨 일이……설사?!"
갓길에 급정거한 흰색소형차는 분명 '현대'인데 차문을 급히 열고 나와 정확히 '쪼그려 쏴' 사격자세로 나를 향해 카메라를 정조준하고 있는 이는 다름아닌, 나의 자전거 뒤에 자랑스럽게 게양되어 있는 태극기에 제대로 감동 먹은 사람, 대한민국인(人)인 '이 병준' 씨다. 그는 미국거주한국인으로 이곳, 남아공에 시장개척을 위해 파견된 이로서 연휴를 이용해 친구 집에 가는 길에 나를 만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국에서 수 만리 떨어진 아프리카의 한 도로변에서 태극기 앞에 하나가 되었다.

엘파마의 등에서 펄럭이고 있는 태극기에 심각하게 감동하여 차선을 비상탈출하며 급정거한 대한의 건아, 이 병준씨.
우리는 고국에서 수 만리 떨어져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도로변에서 태극기 앞에 하나가 되었다.


어둠의 그림자가 서서히 대지 위에 드리워지기 시작할 무렵, 베라베라(Bela Bela)시 입구의 주유소가 눈길에 채였다. 도로를 달려 오는 동안 도로변을 따라 철책이 결코 끊김 없이 이어져 있어 나의 숙소를 잡기가 쉽지 않음을 감지한 나는 주유소에 멈춰 음료수를 마시며 그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야영할 만한 곳을 묻던 중, 한 트럭운전사가 환한 미소와 함께 나를 한 무더기의 건장한 사나이들에게 인도한다.
"이 사람들이 분명 당신에게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거야!"
토요타 대형픽업트럭 뒤에 모여 서 있는 한결같이 '한 덩치'하는 세 사나이들, 숀(Shaun)과 스프링(Spring), 그리고 찰스(Charles)는 이미 시작된 긴 '이스터 휴일'을 축하하며 위스키를 얼음과 콜라에 칵테일해서 연신 들이키고 있다.
"술, 술! 이 세상에 술이 없다면……"

주유소가 마치 선술집이 되어버린 전대미문의 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흑인경관들이 탄 순찰차가 주유하기 위해 주유소 안에 들이닥치자, 그들은 술병과 술잔을 소리 없이 태연하게 픽업트럭의 덮개용 비닐 밑에 밀어 넣고는 착한 소년들이 되어 순진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서 있다. 하지만 순찰차가 떠나자마자 술병과 술잔은 또 다시 그들의 손에 쥐어지고 "Cheers!"는 계속된다.
"우리들 앞에서 잠 잘 곳을 걱정하다니. 그것은 우리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그들의 넘쳐 흐르는 호의에 나는 일말의 긴장의 끈조차 다 풀어버리고 그들과의 술잔 부딪기에 돌입한다. 그들은 마치 오랜 친구인 듯 전혀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나를 대한다. 얼마를 마셨을까?! 주위는 이미 어둠이 무겁게 찍어 누르고 있다.

Shaun, Spring, 그리고 Charles는 장난기로 가득 찬 혈기 왕성한 청년들인데 어린애들처럼 순수하고 솔직 담백하다.
전대미문의 선술집이 되어버린 Bela Bela시 입구에 있는 주유소를 떠나, 그들의 친구인 Pieter 집의 뜰에서 벌어진 2차 술판에서 우리들은 결국 부풀고, 찌그러지고, 일그러졌다.
"아저씨, 그리고 아줌마! 도대체 술이 뭐야?!"

"자, 이젠 집에 가서 본격적으로 시작을 해야 되지 않겠어!"
나와 엘파마를 짐칸에 태운 픽업트럭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10여 km를 달려 벨라벨라(Bela Bela)시에 있는 그들의 친구, 피터(Pieter)의 집에 도착한다. 꿈결처럼 스쳐 지나 온, 작은 벨라벨라市의 모습은 정겹고 사랑스럽기 조차하다.
피터의 집은 상당한 공간의 저택이다. 뒤뜰의 바비큐 철판 위에서 생나무로 고기를 구우며 또 다시 위스키와 브랜디의 술판이 이어진다. 오랜만에 만나는 술판에서 나도 이미 내 정신이 아니다. 그들도 나도 한결같이 미친 개가 되었다.
결국 나는 여러 개의 방 중 어느 한 곳에 쓰러져 골아 떨어졌고 아침 6시가 넘은 시각, 그들의 웅성거림에 눈을 뜬다. 그들은 어제 밤 잠을 자지 않고 그대로 나이트클럽으로 가서 밤새 놀다가 오늘 아침 7시경에, 어제 나를 태운 그 주유소까지 나를 다시 태워다 주겠다는 그들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돌아 온 것이다.
어제 밤과 변함없는 겁나는 속도로 좁은 시골길을 달려 그들은 나를 N1국도 진입 구에 내려 놓는다. 돌아서는 나에게 그들 전원은 주머니를 톡톡 털어, 만 원, 수 천원 상당의 돈을 있는 대로 긁어 모아 나의 손에 쥐어준다.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고, 있을 법한 상황이 우리나라와 수 만리 떨어진, 전혀 생소한 이 곳에서도 이렇게 태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며 감동한다. 여행을 하면서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시 한 번, 인간의 마음은 한결같다!
숀과 스프링, 그리고 찰스는 내가 도로를 달리고 있는 동안 줄 곳 천진난만한 웃음을 남발하며 나의 눈앞을 가로 막았다.
 
어젯밤 오랜만에 들이킨 술로 발생한 약간의 두통과 함께하는 전신무기력증을 일축하며 페달을 밟는다. 인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고요한 N1국도변은 방대한 목축지대로 철책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기에 철책 안쪽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야영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나마 나타나는 작은 숲조차도 나의 키를 훌쩍 넘는 억새풀들과 강력한 가시로 무장한 가시나무들 뿐으로 안으로 쑤시고 들어가기 위해선 어둠 속에 찢기고 찔리고 긁혀대며 일대 전쟁을 치러야 한다.
숲으로 들어가는 타이밍을 놓쳐 어둠 속을 급히 헤집고 들어간 곳이 완벽한 가시나무들의 숲으로 몸을 움직이는 대로 사정없이 찔리고 있다. 억새풀의 풀밭바닥조차도 울퉁불퉁한 구덩이천지라 빠지고 찔리고 찢기고 온 몸이 거덜이 난다.
"아, 어젯밤은 정말 행복하기조차 했는데……"
겨우 철책 앞에 텐트를 되는대로 치고 침낭 속으로 기어든다.

새들의 요란스러움에 눈을 뜬다.
"느그들이 야단법석을 안쳐도 새벽은 깨진다구!"
또 숲 속을 기어 나와 도로 위에 선다. 도로변에 나타나는 대형주유소는 제대로 된 식당과 마트가 겸비된 고자본의 비즈니스인데 역시 모두가 백인들 소유다. 여관들조차 모두 고급으로 싸구려 여관이 없다. 중남미에서는 다양한 등급의 여관들이 있었으나 이곳에는 흑인들을 위한 상권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소유주가 누구라 한들 이런 큰 비즈니스라도 자꾸 생겨 흑인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껴야 할 판이다.
한 주유소 백인 매니저의 배려로 나는 뜨거운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한 뒤, 나를 부러운 듯 바라다보는 많은 흑인 종업원들을 밀어내며 나의 길을 재촉한다.

폴로크와네(Polokwane) 시의 한 슈퍼마켓에서 나에게 경의를 표하는 직원들과 함께.


폴로크와네(Polokwane)시를 지나 얼마 안되어 나를 쫓는 작은 승용차의 낌새를 알아차리나 이를 무시하고 나의 길을 달린다. 결국, 이 차는 나의 앞을 가로막으며 그 정체를 순순히 드러낸다. 운전자의 이름은 칼(Carl)인데 그의 두 갓난애를 데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폴로크와네 시 주위를 가볍게 드라이브하던 중, 나를 발견하고 나를 쫓으며 카메라로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구형 폭스바겐 소형승용차를 박차고 나온 그는 그가 타고 있는 작은 승용차를 한 손으로 집어 던질만한 거한(巨漢)으로 나를 아연실색시킨다.
호주의 시골에서도 그랬듯이 이 곳에도 2m가 훌쩍 넘는 백인 거한들이 종종 목격된다.

폴로크와네(Polokwane) 시를 지난 지 얼마 안되어 나의 뒤를 쫓으며 나를 동영상 촬영했던,
자신이 타고 있던 폭스바겐 소형 승용차와 완벽한 언밸런스를 연출한 또 한 명의 거한(巨漢), Carl.

키가 결코 크지 않은 관목들이 끝도 없이 펼쳐지며 지평선을 이루고 있는 평원을 가르며 달리던 중, 나는 뜻밖의 장엄한 광경을 목격하고 엘파마를 급히 세운다.
'황소'일가(一家)의 가장(家長)인 '황 소팔'이 그의 가족을 이끌고 풀커녕 흙 한 톨 없는 바위산을 힘겹게 기어 오르더니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잔잔히 내려다 보고 있다.
"여보, 그리고 우돌, 우순아! 저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봐 봐! 명색이 황소가문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저 돼지, 양, 염소들처럼 하루 종일 머리 처박고 오로지 쳐 먹기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우리가 지금 서 있는 발 밑의 숲 속에 눌러 있는 한, 죽는 날까지 굶어 죽는 일없이 살 수 있겠지만 우리의 삶이 결코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 우리와 똑같이 네발 가지고 대지를 질주하는 사자눔들이나 말스키 들처럼 우리도 진정한 삶의 의미를 온 몸으로 누리면서 살다가 가야 하지 않겠어! 저 밑에서 하루 종일 하늘 한 번 올려다 볼 새 없이 땅에 머리 쳐 박고 줄기차게 먹기만 해대는 우리의 가엾은 동족들을 봐 봐! 그 뿐 아니지. 그늘아래 벌렁 퍼져 누워 우리처럼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친구들을 가차없이 씹어대고 저주하며 박살내고 있는 놈들은 또 어떻고?! 아이고, 귀 가려워! 저 놈들이 또 우리들의 흉을 보고 있어!"
"나의 사랑스런 아들, 우돌, 그리고 사랑스런 딸, 우순아! 이제부턴 그저 '에미넴(Emenem)'이나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음악 뿐만 아니라,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나 닐 다이아몬드의 'Be-Jonathan Livingston Seagull'을 들어보렴. 우리도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삶의 최고의 가치를 맛보기 위해 저 지평선너머를 꿈꾸고, 저 지평선너머로 질주해야 되지 않겠냐?!"
"여봇!!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좋고 리차드 바크(Richard Bach)의 '갈매기의 꿈'도 좋고 자유도 좋은데 지평선 너머로 달려가다가 우리가 먹을 풀이 없으면?! 그 뿐이야, 흉악무도한 사자 눔 스키들과 표범 눔 스키들에게 걸리면 우리는 뼈도 못 추린다고! 정신 차려욧!!"
"으으으으음----메↘"

풀커녕 흙 한 톨 없는 저 높은 바위산 위로 도대체 왜, '황 소팔'은 그의 가족을 이끌고 오르고 있는 것일까?!
그는 분명 눈 덮인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표범과 푸른 창공을 힘차게 비상하는 갈매기, 조나단이 치열하게 갈구했던 존재(Be)와 자유에의 염원을 간직한 채 그것을 잊지 않고 확인하고 다짐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사랑스런 자식들인 우돌과 우순에게 '자유'라는 삶의 최고의 가치를 깨우쳐 주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이 바위산을 오르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여행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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