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위험지대 동물의 왕국을 지나야 한다.
에디터 : 이호선

짐바브웨의 수도인 하라레(Harare)에 가까워온다. 멀리 지평선 위로 하늘을 향해 치솟은 많지 않은 빌딩들이 나의 눈에 포착된다. 오후 4시경 하라레(Harare)에 도착한다.
오늘이 5월 1일로, 4월 22일 아침 사우스아프리카의 프레토리아(Pretoria)를 떠나 열 하루째 날이다. 그 동안 1,065km를 달렸다. (Pretoria- Beitbridge: 485km, Beitbridge-Harare:580km
)
택시기사들에게 묻고 물어 시 외곽에 위치한 로지(Lodge)를 찾아내나 결코 싸지 않다(20불). 하지만 이미 어둠에 휩싸인 생소한 곳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불행하게도 이 곳은 매음굴로 밤새도록 사방에서 들려오는 기성(奇聲)과 시끄러운 여관 상주자(常住者)들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이틀간 머물렀던 하라레(Harare)시의 외곽에 있는 퀸즈 호텔(Queens Hotel) 방(15불)

아침 일찍 여관을 나온 나는 한국대사관을 찾기로 한다. 하라레(Harare)에서 서북으로 365km만 달리면 다음 나라, 잠비아(Zambia)가 등장한다. 서서히 말라리아의 경계(警戒)지역이 시작될 것이기에 말라리아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듣고 싶다.
행인들에게 물어 대사관 밀집지역을 알아내고 돌아보지만 한국대사관의 흔적이 전혀 없다. 다행스럽게도 한 경비업체직원이 한국대사관의 정확한 위치를 나에게 알려준다. 사무실과 상가가 있는 한 빌딩(East Gate Bldg) 3층에 있었다.
단숨에 달려 올라가보니 오늘이 마침 짐바브웨 공휴일로 문이 잠겨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뒤돌아 어제 묵었던 여관주위로 다시 돌아와 싼 여관을 다시 찾은 끝에 고요하기 짝이 없는 15불의 여관방을 찾아내고는 그대로 골아 떨어진다.

상쾌한 마음으로 20여분을 천천히 걸어 한국대사관에 도착한다. 자그맣지만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합동 대사관이라고 한다. 정 광식영사님을 비롯해 아프리카에서 이미 20년 이상을 거주하고 있다는 이 진호과장님, 그리고 임 지영님이 나를 반긴다.
세 분 모두 상당한 역마살의 소유자들로 세계를 떠돌고 있는 이들이다. 이 분들의 말을 들어보니 계절이 이미 가을로 접어들어 모기들의 극성이 나날이 세력을 잃을 것이고 설령 말라리아에 걸렸다 해도 빨리 약을 먹으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나는 비로소 안심을 한다.
점심시간이 되어 나는 영사님의 배려로 세 분과 함께 짐바브웨 유일의 한국식당 '신라'에서 꿈 같은 한국음식을 마주하며 온 몸을 떤다.
'역시 한국대사관에 오길 잘 했어!'

옛날에는 영국령의 '로디지아'로 번성하는 나라였던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를 길지 않은 시간동안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니 도시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로디지아 시절의 번듯번듯한 영국식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수 십 년을 집권하고 있는 만년 대통령, 무가베( Mugabe)씨는 이미 90이 넘었다는데 아직도 건강하다고 한다. 그의 집안은 대단한 장수가문이라고.
실업률이 80%나 되고 물가는 우리의 그것을 빰 치는 수준의 아주 힘겨운 나라이지만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고 높은 교육열로 상당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라고 한다.

하라레를 지나 치노이(Chinhoyi)를 향해 달리던 중 만난 독일여성, 캐롤린(Carolyn). 독일정부의 아프리카원조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모잠비크에 파견되어 3년간을 일해 온 그녀는 모잠비크에서의 3년은 자신에게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정작 모잠비크 인들에게 자신의 노력이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미지수라고…
"이곳의 사람들은 도통 자발적으로 움직이려고 하지를 않아!"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서두른다. 어제 우리음식을 확실하게 먹어 둔 덕에 오늘 하루가 힘차다. 별다른 애로 사항 없이 시내를 빠져 나와 교외로 접어든다.
치노이(Chinhoyi)를 향해 달리다가 그 동안 결코 만나지 못했던 국제 바이커를 만난다. 상당한 신장을 가진 여인, 캐롤린(Carolyn)은 독일인인데, 독일정부의 아프리카 원조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모잠비크에 파견되어 지난 3년 동안 컴퓨터를 기본으로 한, 현지인들의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위해 일해왔다고 한다.
이제 3년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독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기 전에 주변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다고 한다.
모잠비크에서의 지난 3년은 그녀 자신에게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자부를 하고 있으나, 정작 모잠비크 인들에게 자신의 노력이 얼마나 어필 되었을까에대해서는 전혀 확신이 없다고 한다.
"이들은 도대체 매사 자발적으로 움직이려 들지를 않아요!"
그녀는 카리바(Kariba)를 거쳐 페리를 타고 카리바 호수(Lake Kariba)를 달려 빅토리아 폭포로 간다고 한다. 유유자적하며 자유를 만끽하고픈 그녀를 뒤로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치노이를 10여km 지난 지점의 숲 속으로 들어 가 해먹을 친다. 밤이 되어 바람이 상당히 차지만 좁은 공간의 텐트 속이 답답해 옷을 껴입고 해먹에서 자기로 마음먹는다.
"추워 죽겠다!"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집안으로 뛰어 들어오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놀라 눈을 떴다. 나 또한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다. 온도계를 꺼내보니 영상 8도로 내가 아프리카에 온 후, 오늘 새벽이 가장 낮은 기온인 것 같다. 오늘이 5월 5일이다.
잔뜩 몸을 웅크린 채 해먹에서 뭉그적대다가 끝내 해먹을 걷어치우며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

새벽이 되어 기온이 급강하하며 몸을 잔뜩 웅크려야 했던 5월 5일 날.
온도계의 눈금이 영상8도를 가리킨다.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딛고 처음으로 맞는 싸늘함이다.

잠비아와의 국경이 다가올 수록 인적은 더욱 뜸해지고 고요한 숲이 계속된다. 도로변을 따라 계속되던 철책도 사라지며 그야말로 자연 속을 달리고 있다. 이제 곧 등장하게 될 작은 마을, 마쿠티(Makuti)에서부터 국경마을인 치룬두(Chirundu)까지의 60여km의 구간은 본격적인 야생동물 출몰지역(오픈 되어있는 Safari Area)으로 어둠 속에서 숲 속을 어슬렁거렸다가는 그야말로 뼈도 못 추리는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카로이(Karoi)를 지나면서 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주변정세를 파악한다. 어떤 젊은이들은 밤에는 물론 위험천만이지만 낮에도 위험하다며 겁을 주고 있고, 지긋한 연배의 분들에게 물으니 밤에는 위험하지만 낮에는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대륙횡단 바이커들은 안전을 고려해 버스를 타고 넘어간다고 덧붙인다.
동네 아줌마들은 몸을 움츠리며 무섭다고 호들갑이다.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는 야생동물 가운데 역시 최고의 득표율을 자랑하고 있는 것은 바로 라이언(Lion)!

나는 가끔씩 나의 죽음의 방법을 생각해 본 적은 있으나, '라이언'에게 산산조각이 나서 죽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이제 아주 가까운 현실로 나에게 다가오고 만 것이다.
나는 역시 나이 든 분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선택하기로 한다. 해는 이미 지평선 가까이까지 다가와 있어 나는 서둘러 페달을 밟는다.
도로변에 철책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고 인적도 차량의 왕래도 뜸해 야영지 물색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 곳이나 자리 깔고 누우면 나의 숙소이지만, 이제부터는 야생동물의 출현을 염두에 두어야 할 판이다.
카로이(Karoi)를 40km 지난 지점에서 빽빽한 억새풀밭 너머 나무아래 텐트를 치고 침낭 속으로 기어든다.


마쿠티(Makuti)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동물의 왕국'을 통과하기 직전 숲 속에서의 야영.

새벽에 기온이 급강하하며 텐트 속의 나를 잔뜩 웅크리게 했다. 오늘은 위험지대 60여km를 지나야 하기에 마음이 바쁘다. 하루를 서두르며 숲 속을 뚫고 도로에 나왔으나 페달 위에 발을 얹어 놓기도 전에 자전거의 낌새가 이상하다.
"뭐야 이건?! 또 펑크야!"
앞 바퀴의 바람이 순식간에 빠져 버린다. 60km길을 단숨에 넘어버리겠다던 야무진 의지와 전신을 팽팽하게 했던 기분 좋은 긴장감은 바람 빠져 축 늘어져버린 앞 바퀴가 되어버렸다.
엘파마를 뒤집어 놓고 앞 타이어를 체크해보니 굵고 단단한 가시 한 개와 작은 가시 한 개가 타이어의 측면에 정확하게 직각으로 꽂혀 있다. 숲 속을 뚫고 나오다가 당한 것이다.
"그 동안 야영을 위해 숲 속을 들락거리다가 이렇게 당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하필 오늘같이 몸도 마음도 바쁜 날에……"

맥 빠져 있는 전신에 기합을 넣고 몸을 움직여 스페어 튜브로 교체하고 잠시 늘어져 버렸던 긴장의 끈을 다시 단단히 붙들어 매고 페달을 찍어 누른다. 마쿠티(Makuti)를 지나 높은 언덕 위에 작은 가게 하나가 나온 것을 끝으로 인적은 완전히 끊어졌고 차량들 또한 뜸해졌다.
고요한 동물의 왕국을 가로지르며 달리고 있는 동안 으스스한 기분은 어쩔 수 없으나 평화와 자유를 만끽한다. 가끔 나를 스쳐 지나가는 흰색의 사파리Jeep들은 야생동물보호단체의 단원들로 보이는데 한결같이 백인들이다.

고요하기 짝이 없는 숲 속에 난데없이 경찰의 체크포인트가 나타나는데 수 십 마리의 크고 작은 야생 원숭이들이 체크 포인트를 포위하고 있다. 민간복장을 하고 있는 두 명의 사내가 이 곳을 지키고 있는데, 그들은 오직 밝은 낮에만 이 곳에 있을 뿐이라고 한다. 
"어-엉, 또 뭔가 이상해?!"
이번에는 뒤 바퀴가 흔들리며 서서히 무너진다.
"도대체 오늘 왜 이러는 거야?!! 오늘, 운명의 여신(女神)의 심술이 정도를 지나치는군!"
오늘이 5월 6로 내가 한국을 떠난 지(작년 5월 7일 출발) 정확하게 1년이 되는 날인데……..

'동물의 왕국'을 단 숨에 뛰어넘기 위해 긴장의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새벽을 앞당기며
하루를 서둘러 시작했던 나를 운명의 여신은 너그러운 미소대신 꼬집고 할퀴며 심통을 부린다.

이번에도 역시 작은 가시인데 펑크방지용 테이프까지 뚫고 튜브에 구멍을 냈다. 한 낮에는 태양이 너무 뜨거워 타이어도 펑크방지테이프도 물렁물렁해지고 흐물흐물해져 종종 이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작은 가시에도 뚫려 버린다.
"허-어, 이러다간 동물의 왕국 속에서 날 새버리겠는걸… 이젠 스페어튜브도 더 이상 없다."
또 다시 도로를 독차지하고 달려가다가 도로변에 선 채, 으스스함을 전신에 느끼며 비스킷을 먹는다. 라이언에 물려가도 먹을 것은 먹어야 한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어깨에 걸고 혹시라도 나에게 찾아 올 횡재 수를 기대하며 고요한 숲 속을 가로 지른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은 몇 마리의 작은 노루와 토끼, 떼거지의 야생 원숭이, 그리고 나의 인기척에 놀라 무서운 속도로 달아나는 한 무리의 나의 동족, 야생돼지뿐이었다.
캐나다의 로키산맥(Rockies)을 넘을 때는 수 차례에 걸쳐 단지 10여m를 사이에 두고 흑 곰과 마주보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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