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욱, 즐기면서 타는 멋진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에디터 : 바이크매거진

우연한 기회에 자전거를 접하고, 산악자전거(MTB)와 만난 권진욱 선수는 나이에 비해 많은 위기와 극복으로 스스로를 다져내었고, 이번 시즌 그의 첫 전국체육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성장도구가 된 많은 위기와 극복의 경험들은 체력만큼이나 정신력을 강하게 만들었고 지금의 그가 있게 한 것과 선수로서 전진하는데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자전거는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했나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자전거를 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결정하는 연합고사를 치르고 나서 한가해진 시기에 학교에서 학원까지 걸어 다니는 게 힘들다고 느낀 때였죠.
근처 샵에서 5천원 짜리 중고 자전거를 구매해 타고 다니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몸무게가 95kg이 나갈 정도로 비대했고, 방황하던 시기인데다 몸도 좋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모든 게 무기력하던 그때 자전거를 통해 맛 본 재미는 단순한 재미 이상이었고, 자전거에 흥미로워하는 내 모습을 지켜본 아버지께서 산악자전거를 구매해 함께 산을 타보자고 권유하시기에 이르렀습니다.
산을 타는 게 힘들긴 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신이 나서 아침에 나가면 밤이 되야 돌아오곤 했어요. 그리고 특별한 음식조절을 한 것도 아닌데 한달 사이 15kg를 감량하는 효과까지 경험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여기저기서 MTB 대회가 열리기 시작했고, 생애 첫 도전으로 참가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입상하게 됐고, 단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죠. 그 맛을 잊지 못하고 1년 동안 웬만한 경기는 거의 다 출전했고 자신감도 붙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임에도 겁 없이 엘리트 경기에 도전했다가 처절한 경험도 맛보긴 했지만 자전거를 탄다는 그 자체가 행복이고 재미였습니다.
당시 운동을 지도해주시던 전 국가대표 선수 출신의 코치님이 계셨는데 고등부 상급자로 올라가면서 공부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이셨습니다. 그래서 야간자율학습 시간까지 빼먹지 않고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면서 하교 후 새벽까지 자전거를 타고 아침이 되면 다시 등교하는 생활을 반복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이입니다.

재미로 시작한 자전거가 삶의 활력소가 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고등학교 때는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었고, 자전거를 타는 것도 승부욕 보다는 혼자만의 만족감이 전부였기 때문에 마냥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들어가던 시기부터 방황은 시작되었습니다.
울산대학교 체육대학에 진학했고 당시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자전거를 팔아서 등록금을 낼 정도로 열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배들을 통해 듣는 미래의 방향성, 강압적이고 자극적인 과내 분위기 등으로 2년 정도 심리적인 방황이 컸던 것 같았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재대로 가고 있는지, 뭔가 뜻대로 되지 않고 벼랑 끝에 몰려있는 느낌과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하다는 자괴감으로 사면초과에 놓인 것 같았거든요.
자전거를 멀리한 채 허송세월 보내는 동안 군대 영장이 발부되었고, 군대에 가면 모든 게 끝날 것만 같은 억울한 기분이 들어 1년 휴학을 내고 다시 후회 없도록 페달을 밟았습니다. 1년 동안 일반부에서 성적을 끌어올리고 나서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첫 번째 방황이 끝나 있었습니다.
군대 전역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기부터 얼마 동안 두 번째 방황이 시작되었는데, 전역을 약 3개월 앞두고 무릎 부상을 당했던 것이죠. 후방십자인대가 파열되고, 전방은 거의 파손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자전거를 탈 수 없게 될까 두려웠고, 백방으로 수술과 치료를 알아보던 중 주변의 권유로 재활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6개월 동안 어금니가 다 깨질 정도로 독하게 재활 및 회복에 집중하고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탄지 일주일만에 대회에 나갔는데 입상은 못했지만 성적이 좋게 나와 다시 희망을 갖기 시작했죠.


무릎 회복은 쉽지 않은데, 성공적인 재활 방법은?

보통 무릎, 허리, 쇄골 등을 많이 다치는데 일부 선수들은 단순히 쉬면 낫는다고 생각해서 운동을 놔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해 어떻게 몸을 활용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부상을 완화해야 되는지에 대해 계속 공부했습니다.
방법 중 한가지가 다친 곳을 제외한 주변부와 다른 곳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부상당한 무릎이 오히려 더욱 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재활 치료를 통해 내가 내 몸에 대해 더 잘 아는 계기가 되었고, 나만을 위한 운동법을 터득하게 되어 입대 전보다 몸이 더 좋아졌고, 더 좋은 성적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현재 기능적으로 약간의 제약이 있긴 하나, 결정적으로 내 선수 생활을 막는 데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정도입니다.



군대 전역 후, 다시 선수가 되기까지

선수들은 웬만하면 군대를 회피하려 하거나 상무팀으로 입대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가야 한다면 기분 좋게 임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군대는 사실 운동선수로서 모든 걸 잃게 하는 곳입니다. 원하는 자전거를 못 타니 실력과 체력이 떨어지고, 욕설과 구타가 난무하는 분위기에 정신과 육체가 매우 지치고 힘들어 집니다.
이런 절제된 생활 속에서 바닥까지 내려가 보니까 오히려 올라갈 일만 보이고 희망을 가질 일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사회가 얼마나 편하고 쉬운 곳인지, 현재의 행복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군대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 선수를 하든 하지 않든, 사회에 나가서 경험해야 할 것이 많은데 미리 많이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소라고 봅니다.

제대 이후에도 잦은 부상이 있었던 데다 주변으로부터 자전거 선수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현재의 선배들을 봐라, 10년 후를 생각해라,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 게 어떠냐' 등이었죠.
마침 모 중견 이상의 기업에서 면접을 보라는 제안이 들어왔고 당시 집안 사정이 회복되지 않았기에 큰 유혹이었던 건 사실입니다.
입사를 결정했을 때, 자전거를 그만두고 현실에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혼자 자전거를 타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죠. 그러나 면접 자리에서 자전거 타는 것에 대한 내 자부심이 면접관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됐을 때, 내 자리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듯이 얼마 후 주변의 추천과 권유로 전주시청팀에 속할 수 있게 됐습니다. 체계적인 환경에서 돈도 벌고 자전거도 실컷 타는 실업팀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전국체육대회에서의 첫 우승, 소감은?

보통은 군복무 하기 전에 우승하고 제대 후 승률이 낮아지는데 재활과 훈련을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당장은 우승으로 기분이 좋지만 앞으로는 상위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죠. 한 마디로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생겼습니다.
주위에서의 기대가 커지고, 내년에 팀을 이적하게 되니 더욱 챙겨주시는 게 조금 부담스럽긴 하나 즐기면서 타려고 합니다. 그리고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도 내 페이스를 잃지 않고 슬럼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즐기면, 좋은 성적도 따라오리라 믿습니다.

잘 타서 멋있는 선수보다는, 즐기면서 타는 멋있는 선수로 남고 싶다.

앞으로의 목표

내년에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중국에서 열립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올해보다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고, 포디엄까지 오르지 않더라도 한국 선수로서 큰 획을 그을 수 있게 당당히 실력을 보여주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아시안게임과 같은 아시아권 큰 대회에서 한국 대표 선수로서 포디엄에 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것은 UCI 월드컵 대회에 참가하고 한국 선수 최초로 완주하는 것입니다. 순위 욕심 보다 완주가 첫 번째 목표인 것이죠.
10년 전쯤 일본은 첫 월드컵 완주 선수가 나온 후 도전자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그 후로 꾸준히 월드컵에서 성적을 내는 선수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도 한국에서의 선구자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이죠.
이어 제가 지도하고 있는 선수가 월드챔피언이 되길 희망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잘 타서 멋있는 선수보다 즐기면서 타는 멋있는 선수로 후배들에게 이미지를 남기고 싶습니다.


항상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권진욱 선수의 2017년 시즌은 새로운 팀과 전국체육대회 1위라는 타이틀로 비교적 무겁게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찾는 시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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