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밴쿠버 아일랜드 일주 3편
에디터 : 이호선


오늘 바다낚시를 주도했던 밴쿠버시티에서 온 제프(왼쪽)라는 거인아저씨가
나에게 내일 바다낚시를 같이 가자는 흥분되는 제안을 했다.
나와 짐(Jim), 빌(Bill), 주디(Judy) 모두는 일제히 환호성을 올린다. 상당한 재력가인 빅맨, 제프는 35피트의 대형 바다낚시용 선박을 예약한 것 같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경험하게 될 바다낚시에 대한 긴장과 기쁨으로 정신이 없다. 

새벽 일찍 눈을 떴는데 분위기가 야릇하다. 이층에 있는 제프가 수 차례에 걸쳐 화장실을 드나들며 모두를 긴장시킨다. 이윽고 아래층에 내려 온 그가 초 죽음이 된 채 전화를 걸어 보트예약을 취소시킨다. 60대 후반인 그가 어제 낚시 때 무리를 한 듯 몇 번에 걸쳐 구토를 한 것 같다. 그는 나에게 정중하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후 이층의 침대에 몸져 누워 버렸다.
나는 내가 얼마든지 이 곳에 머물러도 괜찮다는 그들의 호의에 그저 감사하며 정말 떠나기 싫은 이곳을, 정말 떠나기 싫은 그들을 뒤로 한다.
주디는 나의 여행 자금에 조금이라도 일조를 하고 싶다며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 나에게 주겠다고 난리를 친다. 나는 그들과 정말 힘든 작별을 하고 내가 달려 왔던 길(밴쿠버시티에서부터 이 곳까지 450km)을 되돌아 달리기 시작한다.

주디가 손수 나를 위해 만들어 준 연어찜



식당에서 먹는 주식은 역시 햄버거, 아니면 샌드위치

세이워드(Sayward)의 주유소에 들어가자 난데없이 멕시코 팀의 열렬 팬이 되어
멕시코 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프랑스계 캐나다인 캐셔 아가씨.

그녀는 월드컵 모든 게임의 스코어를 완벽하게 기억하고 각 팀의 평가도 마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물경 4달러의 기부를 했고 한 여자 손님은 1불 50센트를 기부했다.

Sue's Place 800m 전 간판


도중에 나는 Sue's Place의 도어를 다시 밀고 들어간다. 그녀는 마치 내가 돌아 올 것을 예상이나 하고 있었던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짜고짜 나의 앞에 결코 눈에 띄기 어려운 나무 젓가락을 내 놓는다. 몇 일 전 내가 처음 이 곳을 들렀을 때, 그녀는 여전히 편치 않은 나의 칼과 포크 질을 목격했다. 
"꼭, 네가 다시 돌아올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집안의 여기저기를 뒤져 준비한 것이야."
"아, 참 나 머리도 잘랐는데,…………"
그녀는 천사같이 눈부신 미소와 함께 나를 꼭 안는다.
선택의 여지없이 죽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이지만 삶처럼 사느냐, 죽음처럼 사느냐는 우리자신의 선택인 것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이 늙어가는 우리의 운명 앞에서 어떻게 늙어가느냐(추하게, 혹은 '멋져부러!!')는 분명 우리 자신의 선택이다.
나는 그저 하늘을 우러러 이 세상 모든 것에, 그리고 가는 곳마다 천사를 만나는 나의 행운에 감사하며 단호하게 페달을 밟는다.


"Don't forget me! (No ti scor da di me.<물망초)>의 캐나디언 버전)"
그녀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수 없이 겹쳐지며 나의 귀를 혼란 시킨다. 주위의 풍경들이 다시 나의 눈에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였다.
내가 포트하디(Port Hardy)를 향해 올라간 것이 불과 몇 일 전으로 가을의 날씨가 계속되며 곳곳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들을 인상 깊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지금 달리고 있는 불과 수 백km 아래 지역은 이미 여름처럼 기온이 상당히 높다. 지금쯤 한국은 푹푹 찔 것이다.
내가 처음 도착한 디파처베이(Departure Bay)가 있는 나나이모(Nanaimo) 시티를 약 50km정도를 남기고 가게를 찾기 위해 자전거를 멈춘 곳이, 해변을 바로 코 앞에 둔 퀄리컴비치(Qualicum Beach). 해안을 따라 줄을 잇고 있는 예쁜 주택들은 두 말 필요 없이 이곳이 부자 동네임을 말해준다.

우리 모두는 그리운 "고향 역"을 향해 몸부림치며 필사적으로 달렸다.
오른쪽부터 장 용순씨, 박 재교씨, 이 은미씨, 이 석란씨

퀄리컴비치의 장 용순씨 스토어, Stop & shop 앞에서 두 분의 영재 아드님들과 함께

동네에서 가게다운 단 한 군데의 스토어, 스톱&샵(Stop&Shop). 그 곳에는 꼭 유승준처럼 잘 생기고 빡빡머리를 한 청년이 카운터에 서 있었는데 붉은 악마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잠시 후, 구수한 된장찌개를 먹은 후 커피로 입가심이 필요한, 약간은 찝질 텁텁한 김치로 압축되는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아저씨가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긴다.
짧지만 확실한 나의 내력을 끝낼 새 없이 그는 나를 안으로 잡아 끈다. 안채로 들어가자 네 분의 한국 분들이 그 동안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Beer, 맥주 캔을 사정없이 부딪치며 건배를 연발하고 계셨다. 갑자기 나의 온 몸의 신경이 잠을 깨며 날 뛰기 시작한다.
뉴욕에서의 12년 동안에도 결코 경험 해 보지 못했던 대영제국의 맥주, Bass(이 맥주는 1770년경부터 제조되어 Titanic 호에서도 서빙 되었다는 긴 내력의 맥주)를 숨도 안 쉬고 들이 붓는다.(내가 어젯밤 별 신통한 꿈도 꾸지 않았는데,………)
큰 사이즈의 캔이 서너 통 비어진 후에야 비로소 상호 통성명이 이루어진다. 나와 같은 나이에서부터 몇 살 위의 연배 분들이다. 캐나다에 오신지 7-8년 되었고 이미 밴쿠버에서 자릴 잡고 계신 분들로 자녀들은 모두 캐나다의 최우수 대학인 U.B.C와 S.F.U를 다니고 있는 영재들이다. Bass의 빈 깡통이 쌓여감과 비례해서 우리모두의 잊혀진 계절, 잊혀진 전설들이 낱낱이 발가벗겨진다.

네 분 모두 격동의 대한민국을 온 몸으로 대변하고 주도했던 산 증인들로, 이제는 조그만 반도의 땅이 아닌 거대한 대륙의 땅에서 새로운 꿈과 도전을 감행하고 있는 모험가가 되었다.
한 짝의 Bass가 밑살이 빠져 새어 버린 듯 순식간에 우리 눈에서 사라졌다. 우리 한국인에게 음주 후의 뒤풀이는 필연적인 것으로, 두 말의 여지없이 음주 다음엔 가무 아닌가?!(飮酒歌舞)
응접실에 마련된 노래방기기에는 가게 사장님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우리의 '나훈아'씨가 작지 않은 화면을 꽉 채우며 그리운 "고향 역"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그 동안 심해 속에 깊이 깊이 잠겨있던 창가(唱歌)에 대한 나의 욕구가 일순에 표면으로 떠 오르며 미쳐 날 뛴다. 세계를 떠도는 우리의 고독한 영혼들은 순식간에 우리의 조국, 우리의 고향으로 뒤도 안 돌아 보고 달려가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엄마의 따스한 품과 젖 냄새에 흠뻑 취해 온 몸은 이미 인사불성.


밴쿠버시티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암벽 위에 텐트를 친다.

오랜만에 몸 한 번 제대로 푼 덕택에 아주 맛있는 잠을 잤다. 구수한 콩나물이 들어간 북어 국의 등장에 나의 두 발은 어느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다이아몬드 스텝을,…… 세계를 떠 도는 나그네에게 '우리의 음식', '나의 음식'이란 바로 나의 어머니요, 나의 고향이다.
세계를 떠도는 사람으로서 어디에 가도 이렇게 우리의 동포를 만날 수 있음은 최고의 행복이다.
나는 또 그들을 떠나지만 홈 그라운드가 아닌 타국에서 외로움을 꿀꺽 꿀꺽 삼켜가며 자신의 새로운 꿈을 위해 도전하고 있는 그분들에게 경의와 행운을 빈다.

나나이모(Nanaimo)에서 내가 타고 왔던 배를 되돌려 타고 호스슈베이(Horseshoe Bay)로 향한다. 하선해서 얼마 안 달려 이미 어둠은 나의 온 몸을 휘감기 시작하다. 나는 도로변에 있는 라이트하우스 파크(Lighthouse Park)의 숲 속으로 들어가 밴쿠버시티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암벽 위에 텐트를 친다.
하늘의 달은 밝고, 그저 멍하니 한참 동안 암벽 위에 앉아 있다.

바이커들의 안전을 위해 경이롭게도 도로 복판에 만들어 놓은 자전거도로.
한국의 버스전용도로를 연상시키는,……

시커멓고 무지막지하게 큰 숲 속의 모기들이 일제히 나에게 달려들어 밤새 제대로 잠을 못 잤으나 푸른 하늘과 태양만 주신다면 나는 또 다시 달린다. 절벽의 해안을 따라 고급 주택이 이어지고 도로 또한 고불고불 높낮이를 반복하며 이어진다.
남 녀 불문한 많은 사이클리스트들이 줄을 잇는다. 마침 출근 시간대인데 정말 많은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있었다. 밴쿠버시내는 비록 넉넉하지 못한 도로이나 바이커들과 바이커들의 안전을 위해 용이 주도하게 자전거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자전거는 이미 캐나다 인들의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 있었다.

내가 9일 동안 왕복한 밴쿠버 아일랜드, 왕복 907km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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