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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사막 횡단 1편, 철로 위의 희망
2010-06-11   이호선

자, 이제 모든 욕심과 집착을 모래밭 위에 솔직하게 내려놓고 걷는 것만이 없는 길 속에 유일한 길이다.
그래도 나에겐 확실한 나침반인 철로가 있다. 철로만 따라가면 어김없이 울란바타르에 도착할 것이다. 완벽한 무의 세계다. 나는 집도 지나는 사람도 차량도 완벽하게 '0'인 고비사막을 걷는 유일한 여행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바람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나를 들볶아댄다.

고비사막에서 첫 번째 '들이댐'의 현장에서 나의 위는 어느새 몽골인의 그것이 되어
있었다. '수데체'라는 마유차와 건조시킨 치즈를 채 썰어서 약간의 소금으로
간한 것으로(중간 중간 검은 것들은 건조한 소고기 왕건이)간식 겸 주식으로
시도 때도 없이 먹는다.

내가 만난 환대의 달인,몽골인 1호로 기록되는 철로 근로자, '냥따오'씨

그들의 취사용, 난방용 '소 말똥 난로'.
바스켓 속의 흉측해 보이는 덩어리들이 말린 소 말똥인데 아무 냄새도 없다.
파란불길이 보일 정도로 화력이 강력하다.

멀리 뾰족한 구조물인 게르(몽골인의 전통가옥) 한 채가 나를 흥분시킨다. 한 사나이가 게르 앞에서 이방인의 출현을 감지하고 나를 주시하고 있다. 해는 이미 서쪽 너머로 넘어가 버려 어둠이 주위를 시시각각 장악하고 있다. 50대로 보이는 그 사나이는 두 말 필요 없이 나를 안으로 안내한다. 의자에 앉자마자 그는 나에게 마유차와 치즈 말린 것(간간이 말린 말고기 조각도 섞여있는)을 가늘게 썰어놓은 것을 권한다.
하루 종일 물고픔과 배고픔으로 일관하던 나는 게걸스럽게 마시고 위 속에 쑤셔 넣는다. 졸지에 나는 몽골인이 되어 있었다. 나의 위는 무국적임에 틀림이 없어.
그의 이름은 '냥따오'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는데 철로 관리 노동자이다. 여느 몽골인처럼 소와 말을 길러 자급자족으로 살면서 수시로 철로를 점검하고 때론 보수도 하면서 살아간다.
게르의 난방과 취사는 보통 바싹 말라 그 어떤 냄새조차 없는 소나 말의 똥으로 하는데 파란 불길이 보일 정도로 화력이 막강하다. 게르에서의 삶은 한 점 의혹 없는 '심플 라이프(Simple Life)'로 완벽한 무소유의 삶, 자연인의 삶이다. 아침에도 마유 차를 마시고 약간의 쌀을 넣어 끓인 멀건 물 같은 죽과 마른 빵을 먹었다. 그저 담담하게 그와 헤어져 나는 모래와 바람의 대지 위를 기계처럼 걷는다. 도대체 몽골의 사전에 '로드 맵(Road Map)'이란 단어가 과연 있을까?!!

고비의 전모.
나의 백마 엘파마 또한 비참하기는 나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짐을 지고 운반하는
당나귀 신세로 전락했다.

2007년 북반구 세계 한 바퀴를 돌았을 때 나는 파키스탄과 이란의 사막지대를 통과했었지만 사막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아스팔트 포장, 비록 터지고 깨지기는 했어도, 아스팔트의 하이웨이가 확실하게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아스팔트는 고사하고 길다운 길이 없으니,………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들이 너무도 당연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번개처럼 질주하여 위풍당당 몽골의 수도에 입성하겠다던 나의 야욕은 초반부터 무참하게 박살이 나며 고비의 모래알이 되어 버렸다. 나의 백마, 엘파마 또한 비참하기는 나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짐을 지고 운반하는 당나귀 신세로 전락했다.

몽골고비사막에서의 첫 펑크로 나는 이미 지뢰밭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고비의 바람은 정말 해도 너무 한다. 낮이나 밤이나 한결같이 무지막지하게 우리 둘을 흔들어 댄다. 수십m도 안 되는 짧은, 조금은 다져진 모래 위를 달려 보려다가 모래 속에 설치된 대 자전거 지뢰인 가시를 밟고 말았다. 순식간에 앞 바퀴의 바람이 빠지며 정지까지 불과 수 바퀴가 돌아 갔다.
바람과 땡볕의 모래밭 위에서 고문 같은 튜브 교체작업에 들어간다. 4개(2개는 길고 2개는 짧다)의 돌기가 각기 다른 각도로 교묘하게 박혀 있는 이 고비의 가시는 밟으면 밀리거나 부러짐 없이 그대로 깊숙이 타이어를 뚫는다. 비록 '엘파마'를 두 동강내지는 못하지만 완벽하게 앉은뱅이로 만든다.
이 가시뿐이 아니다. 타이어를 체크해보니 정말 가느다란 가시들임에도 불구하고 타이어에 직각으로 깊숙이 꽃혀있는 것이 9개로 손톱으로 뽑아내도 결코 빠지지 않고 칼로 파내야 한다. 이런 가는 가시는 결국 실 펑크를 유발하여 조금씩 조금씩 바람이 빠지면서 우리의 신경을 갉아댄다.

사막횡단을 하면서 제일 심각한 것이 물의 철저한 관리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몸 자체가 물 조절을 잘 해야 하는 것이다. 목이 마르다고 벌컥 벌컥 마시는 것이 아니고 정말 목이 말라 목젖이 달라 붙으려고 할 때 비로소 한 모금씩 마시는 그런 습관으로 자신의 몸을 길 드리며 걸어야 한다. 그리고 오아시스를 만나면 2리터건 3리터건 목구멍까지 마셔 채워 둔다.

나의 확실한 나침반이었던 철로 변에서 나에게 완벽한 오아시스가 되어주는
철로근로자들의 숙소.

20-30km마다 최소 한 채에서 서너 채의 집들이 철로 변에 있다.
그들은 나에게 물과 음식을 흔쾌히 제공했다.
최소한 70-80리 행군만 견디면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심각한 두려움 없이 하루 40여KM씩 고비사막을 걷고 있는 데에는 철로라는 확실한 나침반과 최소한 20-30KM마다 확실한 오아시스인 작은 간이역 내지 철로 근로자 숙소가 있다는 것이다. (게르는 보너스이다) 최소한 70-80리 걸을 동안 마실 물과 음식만 가지고 있다면 부질없는 두려움에 몸을 떨 필요가 전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집을 못 만나면 사막에서 잘 곳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철길이나 도로의 배수로 구멍뿐이다. 배수로 안에도 바람은 억세게 불어대나 비바람을 조금이나마 덜 맞을 곳은 그 곳 뿐이다.

모래에 빠지고 가시에 울고 바람에 휘둘리며 연일 100리 행군을 하는 동안 내가 스쳐 지나가는 많은 고비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국과 한국인에 아주 경이로울 정도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끝임 없이 "비 서동수공!"-서동수는 한국이고 서동수공은 한국인으로 "나는 한국인이다!"-을 읊어대고 읊어댄 만큼 기쁨과 뿌듯함으로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정반대이다.

철로 아래엔 주기적으로 반드시 배수로가 있어 노숙자에게 절실한 지붕을 제공한다.

텅 빈 나의 물통과 뱃속을 꽉 채워 준 또 다른 철로 노동자들.
황색의 형광 노란색조끼는 그들의 유니폼이다.

한 끼 때운 것은 고사하고 뻔뻔스럽게도 나는 도시락까지 챙겨 나오며
'걸식의 도(道)'를 완벽하게 수행한다.

사막 위엔 소나 말, 그리고 양들의 시체와 뼈가 즐비하다.

길이라 불리는 모래 바닥의 상태는 극으로 치달으며 나의 의지를 테스트한다. 갑자기 시원치 않던 바퀴자국조차 사라져 버린다. 이제부터는 내가 만드는 것이 길이다. 살살살살 조금이라도 단단한 모래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본다. 마치 개울을 만나 물을 건너기 위해 동분서주 하듯 ,………
모래를 건너는 과정은 물 건너는 것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완벽한 모래에 걸리면 그나마 시속3.5-4.5km로 굴러가던 자전거가 0km로 꼼짝 안 한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에서 짐을 분리해서 짐은 짐대로 자전거는 자전거대로 이동시킨다. 재수없게 언덕을 만나면 사막에서의 등산이 시작된다.
목은 말라 목젖까지 달라 붙고 다리는 후들후들 입에서 나올 소리란 말할 필요도 없이 뻔하지. 그래도 그 판국에 배는 고프고 움직이기 위해선 또 먹어야 하니까 선채로 빵을 씹는다. 입에 빵이 들어가기도 전에 나는 이미 아페타이저로 모래를 씹고 모래를 반찬 삼아 빵을 먹으며 결국 후식까지 모래로 마무리를 짓는다. 갑자기 닭 생각이 나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했던가?! 헌데 말이야, 지금 여기선 만드는 게 길인걸 어쩌것어!? 이 넓은 천지에 나 혼자 이렇게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건가?!"
"헌데 말이야, 도대체 무엇을 위한 발버둥이야?!"
"나도 몰러! 그걸 알면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도 알게??!!"

고비의 진면목.
자전거를 타기는커녕 아무리 밀고 당겨도 자전거의 평균속도는 '0'을 기록한다.

덤덤한 사막 위의 휴식

저편에서 기차가 지나간다. 그는 이 무지막지하게 넓은 공간에서 유일한 나를 위하여 경적을 울리며 손을 흔들고 있다. 저건 분명 소음이 아닌 감동이며 축복이야!
결국 나는 철조망을 넘어 가 철 길따라 10여km를 덜커덩거린 끝에 모래구덩이를 건넜다.
연일 힘든 행군이 계속 되지만 천부적인 손님접대의 달인인 고비의 사람들은 피로한 기색 없이 주저 앉으려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미 구걸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무조건 들이대는 뻔뻔함과 무국적 위(胃)의 게걸함으로 요약되는 구걸의 도(道)를 나는 너무 빨리 터득한 것이다.

어렌호트를 출발해서 250여km 지점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내가 가지고 다니는 세계지도에도 등장하는 도시인 샤인샨드(Saynshand)가 꿈처럼 나타난다. 이곳의 시티란 한국이나 다른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들의 그것으로 생각했다간 아주 제대로 잘못된 용어풀이가 된다. 수도, 울란바타르를 제외하고 시티라면 아무리 커 보았자 우리나라의 한 마을 정도다. 물론 빌딩조차 없다. 그래도 시내에는 아스팔트로 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나는 무조건 여관을 찾는다. 여관은 총2개 뿐이다. 몽골 돈으로 3만원이다. 몽골의 물가는 경탄스럽게도 우리나라와 너무도 맞먹는다. 미국 달러와의 환율부터 마치 우리가 몽골과 짜고 하는 것처럼 같이 간다. 지하자원이 꽤 묻혀있다고는 하나 특별한 산업이 없고 생필품대의 대부분이 한국과 중국에서 수입된다. 수입되고 있는 물건들의 대부분이 내가 넘어 온 중국국경을 통해서이다. 몽골의 수도로 향하는 40-60개의 화물차량이 달린 길고 긴 화물열차는 생필품이 가득 찬 컨테이너와 많은 중장비 기계들을 가득 싣고 아주 힘겨운 운행을 반복하고 있는 반면 반대편 방향의 남행 화물열차에는 오로지 벌목 된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중국으로 통하는 이 철길이 몽골의 동맥이고 젖줄이고 밥줄인 셈이다. 두 말이 필요 없이 몽골은 목축업이 으뜸이다. 말과 소와 양,그리고 낙타들 아마도 이것들의 수가 몽골 전체 인구보다 몇 십 배 더 많을 것이다. 산등성이 전체가 양과 소인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가공할 숫자이다. 이곳의 목축업은 완벽한 방목으로 울타리조차 없다. 그냥 그대로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방목된다. 

계속되는 모래구덩이의 출현에, 결국 나는 철조망을 넘어 철길로 무단 침입.
비록 침목의 높이 때문에 덜커덩 댔지만 자전거 바퀴가 굴러 갈 수 있는 곳은
오직 이곳, 철길뿐.

어라, 차도 사람도, 그리고 집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 이런 길 표지판도 다 있네 그려!?

도대체 이걸 몇 차선 도로라고 불러야 하나?

우리는 사막이라는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며 우리의 생존을 세삼스레 확인한다.


이 바닥에서 활개치고 다니는 놈들은 제네들 뿐이라니까.

사막의 곳곳에는 무언가 염원의 돌무덤들이...

첫 번째로 만난 신원미상의 시티인데 우리의 시골마을만도 못하다.
그래도 중앙로에는 조잡한 콘크리트길이 있어 나를 감동 시킨다.

그들의 빨간 지붕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선 세 소녀 소년들.

뜨거운 태양과 초 강력바람의 고비사막 위에도 생명의 꽃은 찬란하게 피어난다.

나는 여관에서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우선 스페어 튜브가 없기 때문에 튜브를 때워야 한다. 물이 전혀 없는 사막 한 가운데 앉아서 펑크를 때운다는 것은 수월치 않은 일이다. 또한 지난 6일 동안 세수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빨래도 해야 한다.  
저녁 8시부터 튜브 땜질작업이 시작 되었는데 새벽 2시까지 5개 튜브에서 14개의 구멍을 때웠다. 한 개 튜브에서 3개의 구멍을 때우기도 했다. 이제 겨우 안도의 한 숨이 나온다.
"어이, 엘파마! 또 시작이다. 우리 한 번 고비의 전모를 낱낱이 파헤쳐 보자구!!"

앞으로 450km정도가 남았다. 3분의 1정도가 끝난 것이다.
똑 같은 상황 속에 사막의 행군이 계속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의 심신이 지쳐간다. 자전거에 펑크가 나면 때워 줌으로서 또 다시 태연하게 굴러가지만 사람의 의지에 펑크가 나버리면 그 순간으로 끝이다. 고비사막의 횡단 철학은 심오하고 특별한 그 무엇도 없이, 그저 걸을 수 있다는 것 만에 감사하고 그저 바퀴가 굴러가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담담하게 걷는 것 뿐이다.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핸들 위에 붙어 있는 미터기의 숫자가, 비록 느리지만, 자비스럽게도 늘어간다. 그것이 카운트의 미학인데, 숫자가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내가 추호의 의심도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 앞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 내가 확실히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것 이상의 생존의 확인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저 걷는 거야.

몽골인들이 즐겨먹는 도너츠 같은 빵. 난데없이 등장한 소고기 볶음밥이 나를 감동시킨다.

울타리나 철조망도 없이 자연의 아들딸답게 자연 그대로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을
살아가지만 사막에서 그들은 사람의 도움 없이는 절대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들은 주인이 파 놓은 물 웅덩이에 돌아 올 수 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들이다.

환대의 달인, 고비의 몽골인들은 진정한 고비의 오아시스.

처음으로 등장하는, 내가 가지고 다니는 세계지도 위에도 지명이 나와 있는,
시다운 시(市),샤인샨드(Sayns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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