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4~09/15
잠비아, 숲속의 덫에 걸릴뻔
2012-04-27   이호선

도로를 달리고 있는 자전거들은 기어가 아예 없는 중국산 쇠 자전거로 평지에서는 잘 달리나 조금만 가파른 언덕이 나타나면 맥을 못 추어 모두 자전거에서 내려 언덕 길을 걸어 올라간다. 비록 원시적인 쇠 자전거를 타고 있는 이들이지만, 이곳 바이커들의 자존심만큼은 세계수준으로 나를 훌쩍 앞선다. 자신들의 앞을 달리고 있는 나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며 삐걱거리고 덜거덕대는 그들의 자전거를 사정없이 다그치며 페달을 밟아 기어코 나를 앞질러 달려간다. 이들은 분명, 이 세계와 싸워 승리하고 싶은 것이다.

하루 종일 사람에 시달리다가 어둠과 함께 숲 속으로 들어오면 나는 비로소 긴 안도의 숨과 함께 자유인이 된다. 하지만 둥글게 차 오른 밝은 달빛으로 나와 엘파마는 몸을 숨길 완벽한 은신처를 찾기 위해 진땀을 흘려야 한다. 그래도 이 곳의 도로변에는 사람 키의 두 세배나 되는 높고 두터운 억새풀밭이 있어 나를 안심시킨다. 오늘이 5월 14일로 토요일이다.

"Spoon village Clinic(스푼마을 의원)"이란 간판에 발걸음을 멈춘다.

숲 속에 있는 몇 채의 초가집이 동네의원으로 의사선생님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출퇴근 하며
진료를 한다는데 이들은 의사선생님을 보좌하며 살아가고 있는 가족이다.

일요일 아침은 이 곳 시골에서도 역시 고요하고 느긋하게 시작된다. 조금은 더 깨끗하고 때깔나는 옷으로 갈아 입은 말쑥한 모습으로 삼삼오오 교회를 향하고 시내로 향한다. 일요일엔 그나마 달리던 대중교통수단인 밴 조차도 운행을 안 하는지 모두들 도로를 가득 메우며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간다. 이 인파 속에서 무차별 난사(亂射)되고 있는 환영인사를 뚫고 달리는 동안 나의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 온 몸에 기력이 없다.
임피카(Mpika)시를 얼마 안 남긴 한 가게 앞에 정지해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한 숨을 돌리고 있는데 말끔하게 차려 입은 아줌마가 나의 옆에 앉는다. 행색으로 보아 교회에 같다가 오는 길임에 틀림이 없다. 그녀는 유창한 영어로 God과 Jesus를 목청 높여 부르더니 성서의 귀절까지 줄줄이 읊어댄다.
"너는 분명 예수 크리스토의 말씀을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렇다면 예수의 말씀대로 실천을 해야 되지 않겠니?!! 음료수를 사던 뭐를 사던 나에게 베풀 줄 알아야지 너 혼자만 그렇게 주스를 마시고 있느냐?!"
나는 근엄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나에게 협박 성 가르침을 주고 있는 그녀 앞에서 입을 떼기조차 할 수 없는 실로 막대한 감동을 받고 결코 주저 없는 빠른 동작으로 자전거를 움직여 그녀의 곁에서 사라진다. 그녀의 적지 않은 저주와 욕의 화살들이 날아 와 나의 등에 무참히 꽂힌다.
"나는 그대가 날리는 저주와 욕마저 즐기며 살아가고 싶구료!"

아직 이른 오후의 시간이지만 나를 스쳐 지나가는 이들은 한결같이 제 정신과 제 얼굴이 아니다.  모두들 혀는 꼬부라지고 코가 비틀어진 상태로 구름 위를 걸어간다.
"이 세상에 술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그래 그래! 술이 최고야↗"
"맞아 맞아! 술이 최고야↗"


임피카(Mpika)에 도착해서 한 식당에 들어가 또 다시 계란 10개를 삶게 하고 옆에 있는 구멍가게에 들어가 식빵과 우유를 산다. 열살 가량의 영악하게 생긴 소녀가 유일한 종업원이었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사장으로 그녀는 지금 7학년 학생이라고 한다. 7학년이면 중학교 1학년 정도인데 영어가 '똑똑'부러진다.
"도대체 네가 똑똑한 것이냐, 아니면 잠비아의 영어교육이 '똑'소리 나는 것이냐?! 이렇게 변변치 않은 시골구석의 7학년 학생의 영어회화 실력이 이 정도이면 우리는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아―, 정말 짜증난다!"

부쉬맨(Bushman)들의 전설이 생생한 현실로 살아있는 현장.

하마터면 대한민국의 부쉬맨인 내가 쪽 팔리게 공중에 꺼꾸로 매달려 잠비안 T.V를 장식할 뻔했다.
달빛이 밝아 덫의 줄이 달빛에 반사되었기에 망정이지....

술 냄새로 푹 절어 있는 임피카(Mpika)를 빠져 나와 10여 km를 달리자 어둠은 이미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억새풀밭을 헤집으며 숲 속으로 들어가다가 달빛에 반사된 가늘고 팽팽한 줄 앞에 급정거 한다.
"앗! 뭐야 이건?!"
"아뿔싸! 하마터면 명색이 한국의 부쉬 맨(Bushman)인 내가 원조(元祖)부쉬 맨의 나라에 와서 이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공중으로 날아가 꺼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달갑지 않게 잠비아 T.V를 장식할 뻔 했네 그려!"
무성한 억새풀밭 너머 깊지 않은 숲 속 골짜기에 10여 개의 크고 작은 덫이 촘촘하게 쳐져 있다. 역시 부쉬맨들답게 그들의 덫은 오로지 나무와 가는 노끈만으로 쳐져 있다. 덫으로 이어지는 눈 먼 행진을 멈추게 해준 밝은 달님에게 감사할 뿐으로…
하지만 나는 그 덫들 옆에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낸다.

좋았던 국도도 국경에 다가가면 갈수록 처참해진다. 갓길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도로변은 다 무너져 내리고 도로 위에도 수 없이 대형구멍이 생겨 기세 좋게 무차별 질주하던 차량들조차 자존심 내팽개치고 서행에 서행을 거듭한다. 이 곳 차량들의 대부분이 수입된 중고차들로 조금만 가파른 언덕길이 나타나면 엉기다시피 언덕을 오르고 있고, 적지 않은 차량들이 도로변에 그대로 서 버리고 쳐 박히고 뒤로 나자빠지고 끝내는 엔진과열로 불타며 그 최후를 맞이한다. 쳐 박히고 나자빠진 차량들을 일으켜 세우고 끌어 내어 줄 특수차량이 언제나 올 줄 모르는 상황에서 운전자 일행은 도로변에 아예 텐트를 치고 취사도구를 꺼내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한다.


험악한 도로의 제물이 되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차리고 달리고 있는 동안 주행은 자꾸 지체된다. 저녁이 되어 숲 속으로 들어가기 전 도로변의 한 가게에서 계란을 발견하고 열 개를 삶게 한 뒤, 뒤뜰의 우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뒤 늦은 세면을 한다. 가게의 카운터에는 나이든 여인이 위엄 있게 앉아 있고 뒤뜰에는 그녀보다 십 여세 젊어 보이는 여인이 빨래를 비롯한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데 두 여자 모두 상당히 세련된 영어에 행색이 깔끔하다.
집 뒤에서 빨래를 하고 내가 부탁한 달걀을 삶고 있는 여인은 바깥세상의 일이 무척이나 궁금한 듯, 나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것 저것을 묻는다. 결국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카운터에 우아하게 앉아 있는 여인이 첫째 부인이고 그녀는 둘째로 집 앞이 아닌 집 뒤에서 하루 종일 집안 일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나라들에선 일부다처제가 대세이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숲 속으로 들어가 텐트를 치고 나니 상황이 심상치 않다. 모기들이 들끓기 시작한다. 간간이 들리던 사이렌소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귀가 아플 정도로 어지럽다. 해야 할 것 잽싸게 해 치우곤 텐트 속으로 줄행랑을 친다. 오늘저녁은 웬일인지 불어야 할 차가운 구원의 바람이 잠잠하다. 하늘이 약속한대로 기온이 떨어져 주지 않으면 여지 없이 이지경이 되어 버린다.
텐트 안에서 모기장처리 된 텐트의 창밖에 까맣게 달라붙어 있는 모기들을 후래쉬(Flash)로 비추어 확인을 해보니 많은 숫자의 큰 위를 가진 말라리아 모기들이 달라붙어 있다. 가공할 흡혈귀들의 울부짖음에 잠을 못 잘 지경이다. 이른 새벽에 소변을 위해 눈을 떴지만 나는 결국 텐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단념한 채 몸을 잔뜩 웅크리고 비닐봉지에 소변을 본 후, 작은 틈새로 손만 밖으로 내밀어 숲 속으로 그 비닐봉지를 집어 던진다.

짐바브웨와 잠비아을 달리는 동안 나를 지탱해 준 음식은 삶은 달걀과 비스킷

강력한 태양의 등장과 함께 흡혈귀들은 앞다투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변함없는 도로, 변함없는 태양의 열기 속을 숨가쁘게 달려가다가 엘파마의 흔들림에 나도 모르게 한 숨이 터져 나온다. 앞 바퀴의 펑크다! 도로변에는 무성한 억새풀밭만 있을 뿐으로 그늘이 될만한 곳이 전혀 없다. 땡볕아래서 땀을 쏟으며 튜브를 교체하고 발길을 재촉한다.
어둠이 서서히 시작되는 저녁 5시 반경, 또 다시 불길함을 온몸에 감지한다. 펑크! 이 번엔 뒷바퀴다. 이젠 스페어튜브도 없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어느 집이던 쑤시고 들어가 튜브에 땜질을 해서 튜브를 교체할 수밖에 없다. 펑크 난 채, 50여m를 걸어가자 억새풀밭 사이로 작은 오솔길이 보이고 외딴 집 한 채가 서 있다. 무조건 들어가 보니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청년, 베피아스(Bepias)와 요한(Johan)이라는 작은 소년이 찢어진 억새풀의 돗자리 위에 앉아 있다.

하루 두 번의 펑크로 예비 튜브가 없는 가운데, 막무가내로 진입한,
베피아스(Bepias)가 홀로 살고있는 외딴 집.

주위는 온통 옥수수와 채소 밭으로 집안에는 살림도구조차 없는 시멘트바닥으로 베피아스의 침대 메트리스 하나만 덩그러니 깔려 있다. 그들의 부모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 살고 있고 베피아스 혼자서 밭 작물들을 관리하며 이곳에서 기거하고 있다고 한다. 역시 전기와 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건물로 어둠 속에 달 빛 하나만이 이 세상 유일의 빛이 된다.
바스켓에 들어 있는 약간의 물로 후래쉬를 비추어가며 펑크를 찾아내고 땜질을 하지만 결코 여의치 않아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하기로 마음먹고 베피아스에게 잠자리를 부탁하니 그는 흔쾌히 승낙하고 자신은 시멘트바닥에서 자도 상관없다며 자신의 메트리스를 들고 나와 나에게 건네며 나의 가슴을 사정없이 흔든다. 나는 텐트와 침낭이 있으니 필요 없다고 거절을 하고 나의 텐트를 펼친다.
잠시 후, 뒤뜰에 가 있던 그가 나를 부르는데 뒤뜰로 가보니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앞에는 음식을 담은 접시가 놓여 있다. 또 다른 접시로 덮여있는 접시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그들의 주식인 메이즈(옥수수가루 찐 것)와 약간의 멸치가 담겨 있다. 비록 쥐뿔도 없는 살림이지만 그는 손님접대를 제대로 하고 있다.

나는 감쪽같이 이 집으로 숨어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전혀 아니었다. 나는 이미 누군가의 눈에 포착되어 동네사람들의 입에 쉴새 없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약 40여m 떨어져 있는 이 집의 진입로에는 10여 명의 동네 조무래기들이 밝은 달빛 아래 나의 일거수(一擧手) 일투족(一投足)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고 바로 이웃의 아저씨가 끝내 우리에게 달려 와 나를 혼란 시킨다.
그는 잠비안 비어로 불리는 옥수수 막걸리를 얻어 마시고 싶어하는 자신의 욕구를 의젓하게 조용히 앉아 있는 베피아스의 그것으로 둔갑시켜 나를 종용한다. 결국 나는 그에게 3불에 상당하는 돈을 주고 그들은 동네 주막으로 술을 사러 가지만 그들이 돌아 온 시간은 상당시간이 흐른 뒤였다. 술집까지 10여 리는 됨직하니 왕복 20여 리 길이 된다. 결국 그는 자신들이 사온 2L 상당의 술을 다 마시고 나자 만족한 듯, 두 손으로 그의 입을 훔치며 두 말 않고 사라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 펑크 난 튜브를 때운다. 두 개 모두 어디에 찔린 것이 아니고 튜브자체의 결함으로 이음새부분이 순식간에 찢긴 것이다.
갑자기 그의 방문을 열고 튀어나 온 베피아스가 1.5L짜리 플라스틱 병을 한 손에 움켜쥔 채, 내 옆에 있는 포대자루 위에 털썩 주저 앉는가 싶더니 이내 병 마개를 열고 또 다른 손에 쥐고 있던 철제 컵에 그것을 따르더니 단 숨에 들이킨다.
그것은 다름아닌 옥수수 막걸리! 착하고 별 말없으며 속이 깊은 24세의 청년, 베피아스(Bepias)는 자신의 꿈이 없는 현실이 정말 싫어 자신을 잊고 세상을 잊고 꿈에 흠뻑 취해 살기 위해 또 들이킨다. 아직 잔뜩 충혈되어 있는 그의 두 눈을 시종일관 껌뻑이며 그는 또 어제 아침과 똑같이 옥수수 술을 연거푸 들이키더니 까닭 모를 미소를 지으며 바야흐로 힘차게 떠 오르고 있는 태양을 바라본다.
내가 살던 마포의 공덕동에서 아침조깅을 하는 도중 종종 만나게 되는 염천교시장의 리어카 과일장수 아저씨는 아침 7시경이면 이미 들이킨 해장술로 두 눈과 두 볼이 리어카 위의 잘 익은 사과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술을 맛있게 빚은 양조장에 문제가 있는 것이냐, 술을 좋아하는 베피아스에 문제가 있는 것이냐, 아니면 그를 이렇게 술 마시게 하는 이 세상에………?!
어쨌거나 술이 생략된, 말똥말똥한 제 정신으로 살기보다 몽롱한 상태로 항상 꿈을 꾸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그는 어젯밤 술을 마시며 잔뜩 꾸었던 꿈이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것을 진정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아, 꿈이여 다시 한 번!"

베피아스의 집에서 40m상당의 진입로를 걸어 나오는 동안, 그는 꼼짝도 안 한 채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그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연거푸 꿈을 들이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손을 흔드는 나에게, 그가 저 멀리서 나를 향해 아쉬움을 흔들고 있는 동안 뭔지 모를 아픔이 나의 가슴을 치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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