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 막을 내린 6대륙 횡단
2012-09-06   이호선

또 하루가 시작되었으나 몸 상태에 전혀 진전이 없어 그저 뭉그적대던 중, 거리를 어슬렁대고 있던 그 마사이 청년, 이칼라를 다시 만났는데 그는 나에게 또 다른 옵션을 제시한다. 오후 4시 경에 이 곳에서 모얄레를 향해 떠나는 소형트럭이 있다고 하는데 1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나는 자꾸 주저앉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을 확 끌어 잡아당겨 이 트럭에 타기로 한다.
오후 3시경에 내가 탈 트럭의 조수가 여관방으로 찾아와 나는 그와 함께 트럭으로 향한다. 차량은 픽업트럭으로 짐칸에 바람막이 포장을 쳤고 이미 7명의 다른 승객들이 승차해서 저마다의 자리를 만들어 쭈그리고 앉아있다. 차량의 조수가 나의 자전거를 짐칸 뒤편에 굵은 노끈으로 인정사정 없이 단단하게 붙들어 맨다. 그는 자전거에 대한 나의 염려를 냉정하게 일축하며 그의 작업을 계속한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묶는 이유를 당신은 곧 알게 될 것이요!"

그 동안 계속되었던 14개월 동안의 긴 여행의 종착지가 된 케냐와 이디오피아와의 국경,
모얄레의 케냐 측 국경 사무소 앞에서.


5시 가까이 되어, 마침내 트럭은 아수라장의 거리를 유유히 지나 모얄레를 향한 힘찬 질주를 시작한다. 도로는 최근에 포장이 끝난 듯 반짝반짝 빛날 정도로 완벽하고 깨끗한데 분명 중국인 건설회사의 작품일 것이다.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7명의 승객들은 바람막이 포장의 요란한 소음에도 불구하고 한시도 쉬지 않고 수다를 떨어댄다. 이칼라(Ikalla)의 예언대로 100km쯤을 달려가자 그 동안 계속 되었던 빛나는 아스팔트는, 수도 없는 왕돌이 지뢰처럼 박혀있는 황토 빛 도로로 졸지에 안면을 바꾼다. 도로상태는 예상대로 심각해 트럭은 격한 상하, 좌우운동을 거듭하고 종종 죽음 같은 비행도 불사한다.

나를 포함해 짐칸에 있는 8명의 승객들이 종종 예기치 않게 감행하게 되는 공중부양은 요철(凹凸)처리된 철판위로의 뼈아픈 추락으로 끝난다. 나는 필사적으로 자전거에 달려있는 가방을 끌어내려 가방을 깔고 앉으며 발악을 해보지만 역시 역부족으로 나의 허리와 엉덩이의 뼈마디에는 이미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예기치 않은 공포의 공중부양이 두려워 쪼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천막지지용 철봉을 잔뜩 움켜쥐고 버티다 보니 두 무릎과 두 어깨의 근육이 뭉쳐 뻐근하다. 트럭이 비상을 감행할 때마다 승객들은 천막지지용 철봉에 대롱대롱 매달려 몸을 비틀며 "폴리 폴리(천천히)!"를 울부짖으나 승객의 눈물 어린 간청대로 마냥 서행을 하다간 언제 목적지, 모얄레에 도착할 지 모를 일이라 운전사, 자말(Jamal)은 냉정하게 그의 길을 간다.

마사이족출신인 자말은 14세부터 이제껏 15년 동안을 트럭운전사로 아프리카의 전역을 누빈 베터랑 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운전실력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곧잘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곤 한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안전벨트가 아예 없다. 비록 앞 좌석에 탄, 운전자 포함한 세 명의 승객들은 쿠션의 의자에 앉아 있지만 우리와 변함없이 상하 좌우운동을 계속한다.
12시 방향에 고정되어 있어야 할 자말의 머리는 2시, 10시, 그리고 종종 3시, 9시 방향까지 하강하기 일쑤이고, 비닐좌석 위에서 좌우로 상당거리의 미끄럼운동을 거듭하는데 종종 차폭의 중앙선을 넘어 운전대의 반대방향까지 미끄러져 내려가 조수석 사람들과 범벅이 되곤 한다.
운전자의 머리가 3시와 9시 방향까지 하강한다면 명백히 그의 시야는 없다. 상당한 스피드로 달리고 있던 차량의 운전자가 순간적으로 운전대를 놓친다면 상당한 굴곡의 도로 위에서 운전대가 돌아가버리며 그대로 도로변에 쳐 박히거나 전복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배터리에 문제가 있는지 헤드라이트조차 심심찮게 소등이 되 버리곤 한다.

나는 조그만 상시등(常時燈)조차 없는 어둠의 짐칸 위에 매달린 채 죽음을 응시하고 있다. 시한폭탄, 그것도 자폭(自爆)에 부착되어있는 시계의 초침소리가 숨가쁘고 선명하게 나의 심장을 두드린다. 도로주변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어 인적이나 집은 커녕 달리는 차량조차 시간 당 1, 2대 정도 뿐이다.
차량이 심하게 흔들리다 보니 자전거를 단단하게 묶어 놓았던 두터운 노끈이 끊어지며 자전거가 우리들을 덮친다. 결국 승객들의 아우성으로 자말은 차를 세우고, 자전거를 새로 묶은 후 다시 달리지만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편의 끈이 끊어지며 자전거는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려 심각한 소음을 내며 흔들린다.

가끔 정차하는 작은 마을들은 비록 어둠 속이지만 삭막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비닐조각으로 누더기처럼 덮고 두른 작은 움막집의 마을이 나타날 뿐으로 결코 많지 않은 마을사람들은 승객이 나까지 8명에 불과한 우리차량에 줄줄이 달려들어 그들이 직접 만든 조잡하기 짝이 없는 빗자루, 장식품들을 막무가내로 들이댄다.

오후 5시에 출발한 죽음의 레이스는 새벽 3시 반경 끝이 났다. 장장 10시간 반이다. 오랜 시간 동안 접혀 있던 두 다리를 간신히 펴기는 했는데 발걸음을 옮기는 대로 바람에 날리며 겉돈다. 허리는 펼 수가 없고 두 어깨와 두 팔은 장시간 동안 과도한 힘을 주고 있다 보니 뻣뻣하게 굳어있다.
"허리에 금이 가거나 부서지지는 않은 것 같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 것만으로 그저 감사 또 감사다!"
씩 웃으며 나를 향해 "Are you O.K?!"를 날리는 자말을 향해, 나는 "I think so!, 아 산테(A-Sante: Thank U)!"를 외친다.

국경이 열리는 시간이 아침 6시 반이라 하니 여관을 찾을 필요도 없이 버스정류장에 이대로 앉아 있다가 걸어가면 되겠군!
차가운 바람이 도로의 흙먼지를 이리저리 휩쓸고 다닐 뿐인, 고요하기 짝이 없는 새벽에 시계의 숫자만을 카운트하며 한 건물의 계단에 앉아있다.

6시경, 고요한 거리를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필요조차 없이 50여m를 걸어가자 케냐의 깃발이 하늘 드높이 펄럭이고 있는 국경 사무소가 나를 맞는다. 또 다른 50여m 전방이 바로 이디오피아다.
긴 나무작대기의 바리케이트가 가로질러 있지만 아직은 이른 시각이라 왕래하는 차량도 없다. 이 나무작대기 사이로 적지 않은 수의 초등학생들이 이디오피아 측에서 케냐 쪽으로 넘어오고 있다. 소총을 들고 경비를 서고 있는 두 명의 케냐 병사들에게 물으니 나무작대기 건너 편의 이디오피아에는 제대로 된 학교조차 없어 이디오피아의 아이들이 케냐 측의 학교를 다닌다며 두 병사는 의기양양 케냐의 우월함을 힘주어 피로(披露)한다.

6시 반이 되자, 케냐 측 국경사무소의 자물쇠가 벗겨지며 한 중년 아저씨가 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맞는다. 그는 내가 그에게 건네 준 여권을 뒤적이며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당신 분명 이디오피아로 넘어 간다고 했잖소?!"
"그렇소만…"
"도대체 당신 여권에서 이디오피아 비자를 찾을 수가 없구만!"
"아니, 이디오피아 비자는 저 나무작대기 건너 편에 있는 이디오피아 측 국경사무소에 가서 받는 것이잖소?!"
"허-어, 여기 또 한 명의 멍청한 인사가 나타나셨군! 하지만 나의 말에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말아요. 당신 같은 사람들이 결코 한 두 명이 아니니까. 어쨌거나 내가 더 이상 긴 말 하고 싶지는 않으니 자전거를 사무소 앞에 세워두고 당신이 직접 저쪽 땅으로 건너가서 확인을 해 본 뒤에 다시 이 곳에 돌아오면, 그때 내가 케냐 출국스탬프를 얼마든지 찍어 줄 수 있소. 아직은 시간이 너무 일러요. 저쪽 친구들은 8시 반이나 되야 출근을 한다오. 저쪽 동네는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어요!"

도대체 뭐가 뭔지 혼란한 마음으로 서성대다가 시간이 되어, 나는 그의 말대로 자전거를 국경 경비병사에게 부탁을 하고 여권 하나만을 달랑 손에 쥔 채, 긴 나무작대기를 넘어 이디오피아 땅을 밟는다.
"아니, 여긴 뭐가 이래?!"
당연히 번듯하게 서 있어야 할 국경 사무소 건물은 없고 짱돌들 만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횡 하니 텅 빈 공터에 그저 일그러진 벤치 하나 달랑 있을 뿐인 작은 초막이 있고, 벤치에는 우리나라의 아파트나 상가의 경비원 아저씨들을 정확히 연상시키는 중년의 두 국경직원이 마주앉아 노닥거리고 있다.

"아저씨, 나는 자전거 여행 중인 한국인으로 지금 이 곳을 통과해서 아디스 아바바를 거쳐 수단, 그리고 이집트까지 가야 하는데………"
"그럼, 당연히 우리나라 비자가 있어야지!"
"아저씨들 지금 무슨 소리 하고 있는 거예요?! 비자야, 내가 돈 내면 아저씨들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허참, 이 양반 말귀 못 알아 듣네! 당신이 지금 두 눈으로 보고 있다시피 이 곳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 잘난 책상 하나 없잖소?! 우리가 이 곳에 앉아, 일년 365일 하고 있는 일이란 그저 여권에 비자가 제대로 붙어있는 여행객을 향해 '통과!'를 힘차게 외쳐대는 일뿐이요! 허허, 당신은 분명 비자를 안 받아 왔겠군! 많은 여행객들이 당신처럼 이 곳을 만만하게 보고 대책 없이 덜레덜레 들어오지만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하다오. 당신도 잘 알다시피, 당신이 이미 달려 온 험악하고 결코 짧지 않은 비포장의 도로를 포함해 800여km를 버스로 24시간 가까이 달려 나이로비(Nairobi)로 돌아 가, 이디오피아 대사관에 가서 며칠을 기다려 비자를 받아 다시 똑같은 길을 되돌아 와야 한단 말이지. 쯧쯧쯧!"

그 동안 나에게 '인간혐오'까지 느끼게 했던 무지와 몰상식, 그리고 상대(相對)박살의 암흑의 바다 위를 힘겹고 힘겹게 노 저어 왔던 나의 의지력, 그리고 인내력은 이 두 아저씨들의 차갑기 짝이 없는 한 마디에 천 갈래 만 갈래로 금이 가며 졸지에 무너져 내린다.

아, 이디오피아! 결국 네가……
인터넷검색결과 이디오피아는 분명 도착비자이고 내가 나이로비의 한국대사관에서 만난, 이 곳에서 수 십 년간 살아 온 한인여행사 사장님도 비록 그 자신은 결코 이 곳의 긴 나무작대기를 넘어  본 적은 없으나 "아무 문제 없이 '모얄레' 국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라며 확신했다.
나는 비로소 케냐 측 국경직원아저씨가 내게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고 나무작대기를 뒤로하고 케냐 측 국경사무소로 되돌아 온다.

자전거를 끌고 터덜터덜 국경마을의 여인숙을 향해 걸어 오는데 멀쩡하게 생긴 한 청년이 활짝 웃으며 "Welcome to Kenya!"를 외치고 나를 반긴다.
"이 자슥이 불 난 집에 기름 끼얹고 있네!"

나는 그를 상대할 기력도 없어 그를 무시하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두 바퀴를 굴려가며 여인숙을 찾는다. 내가 묻지도 않았건만 그는 자신의 이름이 '알렉스(Alex)'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연방 미소를 지어가며 나를 돕겠다고 나의 뒤를 쫓는다.
"나는 너의 도움이 결코 필요 없으니 제발 가 줘!"
한마디를 그에게 건넨 뒤, 그를 무시하기로 한다. 우선 기력을 찾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니 그는 나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나의 뒤 자리에 앉아 있다. 여인숙의 계단을 올라 카운터의 직원에게 여관비를 지불하고 나의 방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줄 곳 나를 쫓더니, 여관 방 앞에서 드디어 그의 '미소라는 이름'의 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본심을 드러내며 나에게 두 손을 내밀고 헌금을 강요한다.

"도대체 내가 왜 너에게 돈을 줘야 하냐?!"
그는 대답 대신 자신의 바지주머니를 안팎으로 까 보이며 텅 비었다고 호소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네 놈의 텅 빈 주머니를 나에게 채워달라는지 나는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 나의 뇌를 굴려봐도 당체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시각이 아침 9시로 멀쩡한 용모에 명쾌한 영어까지 읊어대고 있는 이 놈이 술을 마셨을 리 만무하고, 멀쩡한 눈을 보니 약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놀라운 세상'에서나 나올 듯한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 있다. 두 손을 벌리고 연방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이 나의 오장육부를 비틀고 쥐어짠다. 차라리 칼을 흔들며 손을 내미는 것이 수 백 번 나을 성싶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흐, 이 X X놈!"을 외치며 방문을 닫아 버린다.

모얄레에서 국경 넘기가 좌절된 채, 나이로비 행 버스를 탄다.
나이로비까지는 총 803km로 이 중, 430km가 험악한 비포장도로인데 버스운행시간이 자그마치 21시간이다.
버스의 머리부분은 사진 속 트럭의 그것으로 갈색의 승객용 차량을 연결시켜 만든 케냐횡단버스.


불면에 극도의 피로로 나의 심신은 이미 걸레쪼가리처럼 너덜거리고 있지만 여인숙 방에서 극과 극을 왕래하는 나 자신과의 심각한 질의와 응답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어느덧 길고 긴 하루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즈음, 누군가가 나의 방문을 두드린다.
방문을 연 순간, 나는 "악!"하고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다름아닌 그 놈으로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내밀고 있다. '죄와 벌'에서는 가난에 찌들은 청년이 돈을 위해 한 노인을 도끼질했지만 지금 나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그를 도끼질하고 싶은 심각한 살기를 온 몸에 느끼고 있다. 나이로비에서부터 이 곳의 사람들에게 연타를 허용해 이미 사경을 헤매고 있는 나에게 그는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하지만 내가 설령 억만장자라 한들 너 같은 놈들에게 줄 돈은 단 한 푼도 없다. 또 한 번 욕을 내뱉고 문을 닫아버린다. 

저녁을 먹으러 어두침침한 거리로 나오자 조무래기부터 청년들까지 저돌적으로 나에게 달려들고 나는 냉혹하게 그들을 무시하며 거리를 걷는다. 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여관방으로 돌아 오는데 기어코 몇 놈이 나의 방까지 뒤 쫓아 오지만 이미 살기등등한 인간 시한폭탄이 되어있는 나에게 허점이 보이지 않자 결국은 나를 포기하고 사라진다.

"이호선! 너는 그 동안 도시나 관광지가 아닌, 오로지 시골의 도로를 달리며 진정한 현지인들과 소통하고 체험하며 이 여행을 일관해 왔어. 하지만 지금, 너는 인간에게 더 이상의 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 즉, 이 여행을 계속해야 할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이지. 네가 맞이 하는 순간 순간들이 절망뿐이라면 너의 삶, 너의 존재 의미조차도 없어. 삶 자체가 절망이라면 삶에 대한 그 어떤 찬란한 대의명분도 부질없는 짓이지. 이를 악물고 혀를 깨물며 이 여행을 계속한들 네가 앞으로 쓸 얘기는 욕설과 악담 이외에 달리 아무것도 없을 것임에 틀림이 없어.
솔직히 말해서, 네가 아무리 객기와 호기를 부려가며 발광을 친다 한들 너의 심신이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다는 사실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다!"

드디어 나는 가방 속의 세계지도를 꺼내 방바닥에 펼쳐 놓고 지난 번 북반구 세계 한 바퀴(2007-2008)와 이 번 지구 대행진(2010-2011)의 여정을 볼펜으로 금을 그어보니, 총 2 년 동안 48,655KM(25,000KM+23,655KM)를 달렸고 세계 6대 주의 땅을 모두 달린 것이 된다.
나는 가까스로 내 자신을 납득시키고 이틀간의 수면을 헌납해가며 벌였던 나 자신과의 치열한 난타전을 끝내며 결단을 내린다.

"자, 이 호선! 이제 그만 하자! 이미 지나간 바람도, 또 네 앞에 다가올 바람도 괘념치 말고 두 손 두 발 툭툭 털어 힘 빼고 안장에서 미련 없이 내려서는 거다! 하지만, 딱 한 가지만 묻자!
너는 그 동안 최선을 다했는가, 그리고 지금 내린 너의 결단을 결코 후회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그것은 내가 죽는 그 날까지 나 자신에게 계속 던져 질 심각한 질문임에 틀림이 없지만, 최소한 지금 이 순간, 나는 말 할 수 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후회는 없다!'"

7월10일, 일요일 아침이다. 8시 반 출발하는 나이로비 행 버스는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에 이미 버스정류장에 나타났다. 미츠비시(Mitsubishi)트럭의 앞부분에 승객용 차량을 연결시킨 것으로 승객용 차량엔 짐칸조차 없어 손님들의 짐들은 모두 지붕 위로 올라간다.
한치의 여유가 없는 제한된 공간이기에 손님들의 짐을 적재하는 일은 많은 시간을 걸려 용의주도하게 이루어진다. 모든 짐들은 한결같이 포대자루(40S)에 넣어져 노끈으로 묶인 뒤 지붕으로 올라간다.
도대체 왜 포대자루에 쳐 넣는 것일까?!
두 명의 작업 원이 진땀을 흘리며 2시간에 걸친 긴 작업 끝에 비로소 버스는 출발준비를 완료한다. 내가 내 자리에 앉자마자 나도 모르게 긴 한 숨이 절로 나온다. 마음의 저울눈금이 시시각각 오르내리며 상하운동을 반복하고 있는 가운데 전방을 응시하고 있으나 나의 두 눈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똑똑똑!"
갑자기 버스의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이 들어 밖을 내다보는 순간, 나는 질겁을 하며 몸을 움츠린다.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벌리고 있는 그는 다름아닌…….!!!


9시경,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한 버스는 내가 이미 달려왔던, 430km의 끔찍한 비포장도로를 포함해 나이로비까지 803km를 24시간 가까이 달릴 것이다.
트럭의 짐칸에 대롱대롱 매달려 10여 시간 동안 뼈저린 고통을 감수하며 달려왔던 이 돌밭 길을 이젠 쿠션이 있는 의자에 앉아 돌아가고 있다. 어느 폐차장에서 주어 온 듯한 승객용 차량의 차체가 엉성하기 짝이 없게 이음새 처리되어 있어 차체의 틈새 틈새로 비포장도로의 흙먼지가 마치 분사기로 먼지를 뿜어대듯 들어와, 차 안은 뿌연 흙먼지로 앞이 안 보일 정도다.
승객들과 그들이 들고 있는 작은 가방들, 그리고 버스 안의 구석구석에 흙먼지가 두텁게 덮여있고 사람들은 쉴 새 없이 기침을 해 댄다. 모든 짐들을 포대 처리한 이유가 바로 이 강력한 흙먼지 때문이었다.

430km에 달하는 비포장도로변은 사람이 살지 않는 반사막내지 사막지대인데 땅바닥이 진흙내지는 고운 흙이라 차량이 훑고 지나갈 때마다 발생되는 먼지 정도가 끔찍스러움을 넘어 살인적인 수준이지만 승객들은 한결같이 태연하고 초연하게 앉아 있다.
국경에서 이시올로 시(市)까지 500여km를 달려오는 동안 10여 차례에 이르는 검문이 이어지는데 소말리아와 이디오피아로부터의 불법이민자들을 색출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결국 430km의 비포장도로가 끝이 나고 비단결같이 고운 아스팔트가 다시 시작되자 승객들은 한결같이 환호성을 지른다. 버스가 잠시 서 있는 틈을 타, 많은 이들이 버스 밖으로 나가 자신의 온 몸을 뒤 덥고 있는 먼지를 털어내며 그 기쁨을 만끽한다.

"이 상쾌한 새 포장도로는 느그들이 인간취급 안 하는 중국인들이 건설 한 건데…"
나는 결국 버스를 타고 21시간을 달린 끝에 나이로비 시(市)로 돌아와 곧 바로 여행사로 향해 서울행 티켓을 산다.

가는 녹색 선이 지난 번, 그리고 파란 선이 이번 여행.
국경의 여인숙에서 나 자신과의 치열한 난투극 끝에 가방 속의 세계지도를 꺼내 방바닥에 펴 놓고 지난 번 북반구 세계 한 바퀴와 이 번 지구 대행진의 여정을 금 그어보니 총 2 년 동안 48,655KM(25,000KM+23,655KM)를 달렸고 세계 6대 주의 땅을 모두 달린 것이 된다.
가까스로 나 자신을 납득시키고 나의 고향, 인왕산을 향한 비상을 감행하기로 나 자신과 타협을 본다.


킬리만자로산(山)을 공유하고 있는 탄자니아와 케냐는 이제껏 나에게는 꿈과 자유로 상징되는 나라였다. 왜냐하면 킬리만자로에는 자유를 찾아, 존재의 의미를 찾아 눈 덮인 산봉우리를 기어오르는 표범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내려다보고 있는 대지와 대지 위의 사람들을 뚫고 달리는 바이커인 내가 이 땅에서 뼈저리게 경험한 것은 꿈과 자유가 아닌 절망과 숨막힘뿐이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조용필 선배님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이제 다른 대륙의 다른 산으로 이름이 바뀌지 않는 한, 내가 또 다시 이 명곡을 들을 것 같지는 않다. 나의 꿈은 결국 망상이 되고 개똥이 되었다.



"이제, 저는 결코 짧지 않았던 두 바퀴의 지구 대행진을 마치려 합니다. 지난 14 개월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괘념치 않고 저에게 많은 성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여러분들께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이란 그저 "고맙습니다!" 한마디 일뿐이지만 이 한마디를 하고 있는 저의 가슴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벅차기만 합니다. 
14개월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긴 시간이었지만 지금 되돌아 보니 모두가 순간에 지나지 않는군요.
꿈과 자유를 찾아 세계를 달렸던 제가 이제, 저의 고향 땅이고 저의 조국인 대한민국을 간절히 바라보며 또 다른 꿈과 자유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저를 후원해 주신 '엘파마(ELFAMA)'의 사장님과 임직원 여러분, 그리고 '바이크매거진'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귀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호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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