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대원 매트와의 감동적인 만남
에디터 : 이호선


아이다호(Idaho)주의 포트힐게이트(Porthill gate)를 통과해서 미국 국경을 넘기 위해서 나는 크레스톤(Creston)까지 가야 한다. Creston을 90km정도 남기고 연어를 연상시키는 작은 마을, 샐모(Salmo)가 나의 눈에 밟힌다. 마을을 천천히 돌며 찾아 낸 슈퍼 마켓 안에서 카트 가득 식품을 싣고 진열대를 돌고 있는 조금은 어벙하게 보이는 한 중년의 미국인에게,
"너 혹시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
그는 그의 카트를 밀며 나를 직접 안내한다. 일을 마치고 나온 나에게 그는 나의 소속과 이력을 묻는다.
안경 속의 그의 눈이 투명하게 반짝이며
"내가 너를 위해 도울 일이 없느냐, 샤워하고 싶으냐, 빨래를 해야 하느냐?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에게 말을 해라!"
나는 그저 그의 성의에 감복을 한 나머지
"나는 샤워를 하고 싶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에게 말을 하라는 매트(Matt)

슈퍼를 나오자 그 또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는 자전거 뒤에 산 식품들을 가득 싣고 덜거덕 덜거덕거리며 나를 앞장서 달린다. 2분도 안되어 나타나는 그의 집은 비록 값비싼 집은 아니지만 창고에는 카누와 카약 그리고 많은 장비들로 가득하다. 그는 나의 출현에 아주 흥분해 있다. 그의 이름은 매트 라이스(Matt(Mattew) Reise)로서, 43세이다.
그의 이력은 어벙해 보이는 그의 외적인 느낌과는 아주 딴판으로 구급대원(Paramedic)일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 학과에서부터 여가,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카운셀러 교사이다. 그는 다년간 합기도, 가라테, 그리고 쿵후까지 섭렵한 무술의 고수로 자신의 학생들에게 셀프디펜스(Self-Defense) 강좌와 함께 카누와 카약 강좌까지 주도하는 무적 전천후 사나이이다.
지금은 학교가 여름방학기간으로 119구급대원의 일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그 또한 여행을 좋아해서 2,30대에 세계의 많은 곳을 떠 돌아 다녔다고 하는데 영어,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까지 말하고 있다. 그와 나는 약 1시간에 걸쳐 각자의 주특기 무술의 연출과 함께 젊은 날의 스트릿 파이트의 무용담까지 늘어 놓으며 의기투합한다.
거실로 옮기자마자 그는 나에게 캔 맥주를 권한다. 하지만 자신은 오늘저녁 6시부터 내일 아침 8시까지 앰뷸런스 비상대기를 해야 한다며 사양한다. 오늘 그가 아주 별나게 더욱 즐거운 이유는, 이혼 후 전처가 보호를 하고 있는 6살의 아들, Grady가 주말을 이용해 나흘 동안 그를 공식 방문하기 때문이다.
오늘 슈퍼에서 식품을 카트 가득 산 이유도 나흘 동안 자신의 아들과 함께 먹을 작정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맥주 2캔을 마시고 나자 그는 나에게 카누를 타러 가자고 한다. 차로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작은 호수가 있다. 우리는 약 30분 가량 카누를 탄 후에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종종 길가를 걷고 있던 Matt의 학생들이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집에 돌아 오자 나는 샤워를 하고 그 동안 그는 정원의 풀을 깎는다. 내가 샤워를 마치자, 그는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를 상세히 물어보며 나를 위해 요리를 한다.
샐러드가 나오고 토마토를 이용한 숲이, 그리고 결국 구운 베이글의 샌드위치가 등장하며 나를 넉다운 시킨다. 정말 맛있는 음식이었다.

매트와 카누를 즐겼다

식사를 끝내자마자 그는 구급대원의 제복을 입기 시작한다. 곧 6시가 되기 때문에 출동준비를 하는 것이다. 내가 설거지를 하자 그는 대단히 고마워 한다. 그의 고마움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그것뿐 임에 나의 가슴이 안타깝기만 한데도 불구하고,…
빡빡한 일정에 나그네인 나까지 돌보려는 그의 치열한 삶의 모습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저 쉴 새 없이 감동하는 것뿐이다. 내가 만일 Matt였다면 나도 그처럼 할 수 있었을까?!

"Matt, 나는 오랫동안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세계를 방랑해 왔어.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답을 찾은 것 같단 말이야. '나는 결국 Matt, 너와 같은 사람일 뿐이고, 너와 같이 열심히 살면 되는 거야.
I've got a question, and You've got the answer for that!(나는 질문을 갖고 있고, 너는 해답을 가지고 있어!)
심오한 삶의 진리와 철학은 교회당이나 절간, 그리고 그 어떤 특별한 곳에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니야.
나 자신의 거울인 또 다른 사람들과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고 삶의 순간을 심각하게 같이 하는 가운데 자연스레 얻어진다. 문제는 우리 각자가 마음을 열지 못하고 편견, 아집, 불신의 색안경을 벗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나 자신을 비추어 보지 않기 때문이다."

매트는 최고의 식사를 만들어 주었다.

앰뷸런스 요원으로 7년을 근무해 왔던 매트는 이미 주검과 죽음을 많이 목격했단다.

"Hosun, 나는 앰뷸런스요원으로 이미 7년을 근무해왔어. 나는 많은 주검과 죽음을 목격했지. 나의 삶, 나의 임무는 최선을 다해 꺼져가는 어떤 이의 숨을 잡고 늘어지는 일인데 숨을 죽이고 땀을 쏟으며 정신 없이 몸부림 치다가도 그의 숨이 멈추는 순간, 나는 나의 영혼까지 다 빠져 나가 '텅 빈 맥주 깡통'이 되어 무기력의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지, 아무것도…, 죽음이란 정말 순간적으로 우리에게 찾아와. 그 누구의 앞에도 앰뷸런스의 사이렌은 멈출 수 있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종종 죽음의 그림자를 밟아 식은땀을 흘리고, 가슴을 쓸어 내리며 순간순간을 살아가고 있어. 그 누구도 내일, 아니 10분 후의 자신의 일을 몰라. 그럼에도 사람들은 내일과 한 달 후, 그리고 1년 후의 일로 오늘을 열심히 고민을 하지. 가장 확실한 오늘의 지금에 대해서는 그저 맥 놓고 앉아 있으면서 말이지.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잡고 늘어져야 해."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그는 기타를 들고 나에게 다가와 나를 위해 Bob Seger의 "Against the Wind", 와 Johnny Nash의 "Bright sun shining day"를 부른다.
그는 감미로운 목소리를 갖고 있다. 이윽고 세 번 째 곡을 열심히 찾고 있던 그가 마침내 악보 더미 속에서 기쁨의 탄성과 함께 종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칠듯한 끔찍스런 Matt의 삐삐 소리가 천둥이 되고 벼락이 되어 우리를 흠뻑 감싸고 있던 평화를 산산조각을 내 버린다. 천진난만한 미소로 일관하던 그의 얼굴은 어금니를 굳게 다문 채 전장(戰場)에 점프를 앞 둔 비장한 '그린베레'병사의 그것이 되었다.
민첩한 그의 출동 준비는 습관처럼 기계처럼 이루어지는 듯 그는 곧 자신의 차량으로 뛰어나가 2분도 채 안 걸리는 소방서 구급대로 달려가 앰뷸런스로 갈아타고 현장에 급파되는데 모든 것이 5분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내가 강화도에서 군복무를 할 때, 3분대기, 5분대기 비상훈련과 흡사하다. 이 비상훈련 중에는 모든 병사는 무장한 채로 이동, 식사, 취침을 해야 했다.
오랜 기간 동안의 이런 긴박한 그의 직업은 그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한 것이 분명한데, 출동 대기를 하고 있는 동안 그는 거의 줄 담배를 피워댔다.
그가 출동한 후 텅 빈 그의 침대 위엔 고양이, 페니(Penny)가 온 몸을 길게 늘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 나는 소파에 누워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의 집의 모든 문을 열어 놓은 채로,…

나에게 밥 시거와 조니 내쉬의 노래를 불러주었던 매트

내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이미 집 안팎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근무시간이 끝나는 아침 8시까지 삐삐를 몸에 부착한 채 움직이고 있다. 8시가 돼서야 비로소 참고 있던 긴 한 숨을 내쉬며 삐삐의 스위치를 껐다. 그는 곧 나를 위해 커피를 만들고 전통적인 아침메뉴인 달걀 후라이와 토스트를 만든다. 그는 오늘 아침에 자신의 직업상 필요한 물품을 사러 가야 하고 점심때는 살모(Salmo)市에서 45km 떨어져 있는 넬슨(Nelson)市에 가서 자신의 아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
정말 숨가쁘게 살아가는 와중에서도 그는 나의 대접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그는 나에게 Salmo시의 지방신문에 나의 기사를 기고하기 위한 인터뷰를 청한다. 이곳의 주민은 1200-1300명 정도라고 하는데 모두 캐나다 현지인들이다. 그는 몇 장의 종이 위에 꼼꼼하게 나의 얘기를 받아 적고 몇 장의 사진도 찍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서둘러 그를 떠난다. 그와 악수를, 그리고 포옹을 하고 그의 집을 뒤로 하려는 순간, 나의 눈가에 눈물이 핑 솟구침을 느꼈다. 그와 함께 한 모든 순간 순간들이 감동 그 자체였다.

미국 입경 전 캐나다 최후의 시티 크레스톤을 가기 전 넘어야 했던 해발 1,774m 고지


미국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캐나다 크레스톤(Creston)市까지 가기 위해 긴 언덕길을 기어 오른다.
"지금쯤 Matt가 그의 사랑스런 아들, Grady를 만나 꿈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겠구나! 그의 말대로 Grady가 빨리 성인이 되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게 되면 좋겠어."
힘겨운 오르막길의 후편은 시속 60km에 상당하는 짜릿한 비행으로 이어지며 끝이 난다. 정지를 위해 브레이크를 잡을 새 없이 나는 이미 Creston시에 들어 와 있었다. 아직 태양은 지평선 위로 상당한 고도에 머물고 있지만 시간은 이미 저녁 먹을 시간이다. 나는 또 대형슈퍼마켓을 찾는다.
닭고기가 들어간 샐러드를 사서 슈퍼 앞에 철퍼덕 앉아 열나게 먹고 있는데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나와 엘파마를 보고 소리 높여 부르짖는다.
"You're Free Spirit, Free Spirit!"
그를 몇 걸음 앞서가던 그의 와이프인 듯한 여성이 얼굴을 있는대로 구기고 그의 셔츠를 잡아 끌며 그를 사정없이 재촉하지만 끌려가면서도 그는 그의 부르짖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의 부르짖음은 울부짖음이 되어 한 동안 나의 귓가를 맴돈다.

미국 입경 직전까지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캐나다 동포, 홍 기창 사장님

그 동안 내가 달려온 #3 하이웨이 선상에는 한국인들이 하는 주유소나 식품가게가 별로 없다. 바로 산 너머가 미국인 이 지역은 농업과 목축업이 주인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한국인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 #1하이웨이가 그립지만………
나는 정반대의 방향에 있는 두 주유소, 에소(Esso)와 허스키(Husky)를 놓고 50 %확률의 도박을 한다. 역시 Husky가 땡기는 군. 주유소로 진입하는 순간,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는 동양인이 나를 반긴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숨돌릴 새 없이 날아오는 아름다운 한국어에, 나는 입 밖으로 꽤져 나오려는 환희의 '아자!'를 꾹꾹 발로 누르며 차분해지려고 애를 썼다. 역시 나는 운이 좋았다. 반대편에 있는 Esso는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이 주인이라고 한다. 만일 내가 그곳을 찍었다면 이곳에는 한국인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어둠의 숲 속을 찾아 헤맸을 것이다.
이곳의 홍 기창 사장님은 캐나다 이민 15년 차로 이미 캐나다에 든든한 터전을 잡으신 분이지만 충청도 고향 분답게 시골이 좋아 이곳에서 넓은 공간의 주유소를 운영하시며 구석의 텃밭에 야채까지 재배하며 그 야채로 직접 김치까지 담근다고 하신다. 올해 60세 이신데 배도 안 나오고 몸은 날렵해 참 보기 좋았다. 미국으로 넘어가기 직전까지 캐나다는 나에게 정말 따스하고 고마운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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