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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비 면제는 당연한 댓가가 아니겠어?
2010-10-13   이호선

국경주위의 풍경이 어디서나 그렇듯이 집도 그 어느 것도 없이 그저 숲이 이어질 뿐이다. 하지만 그다지 길지 않았다. 곧 마치 조그만 주유소만한 건물이 나타난다. '캐나다 세관'이란 간판과 함께 캐나다 깃발이 가끔씩 퍼덕인다. 캐나다에서 나가는 출구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자전거를 세울 필요도 없이 그저 타고 지나가면 된다.
캐나다에서 만났던 많은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나를 불러 잠깐 뒤를 돌아다 본다. 가슴이 터지고 목이 매여 몸을 다시 돌려 보니 힘차게 펄럭이는 성조기 아래 국경초소가 나를 막는다.

캐나다의 국경초소

미국의 국경초소

차량들이 줄을 서 있으나 나는 그대로 달려 초소 경찰 앞에 선다. 머리가 짧아 남자로 알았으나 여자 경찰이다. 상당한 경력의 경찰로 보인다. 예리한 눈빛 하나로 더 이상의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녀는 나에게 자전거를 밖에 세워 두게 하고 사무실 안으로 인도한다. 나는 밴쿠버에서 받은 새 여권과 함께 구 여권을 보여줘야 한다. 밴쿠버에 입국한 흔적이 구 여권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의 여권 위에 남아 있는 수 많은 나라의 비자와 스탬프를 체크하면서 컴퓨터를 두드린다. 자못 심각한 표정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자신의 상관에게 나의 여권을 건넨다. 상당한 경력의 경찰로 보이는데 문득 문득 그의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진다. 그는 나의 여권을 조심스레 체크한다.
"허어, 꽤나 많은 나라들을 방문하셨군!"(2년 전에 끝낸 북반구 세계일주 때의 흔적들이다.)
"으-잉! 파키스탄과 이란까지 가셨어??!!"
잘 알다시피 파키스탄은 미국뿐 아니라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여행을 꺼려하는 나라이고, 이란은 미국의 적성국이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카메라 지문을 찍고 나자, 90일 체류기간의 명세표와 함께 나의 여권을 돌려주며 자전거와 짐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Have a good trip!".

아이다호의 포트힐(Port-hill) 국경을 넘자 나를 반기는 파란 하늘색의 간판

나는 마침내, 오랫 동안 방안 구석에서 두터운 먼지 속의 종이 박스 속에 쳐 박혀 있던 색 바랜 일기장을 꺼낸다.
"내가 타고 있는 델타에어의 비행기는 그 이름처럼 크고 넓은 태평양의 하늘을 거칠 것 없이 치솟아 올라 미지의 대륙, 미지의 나라인 미국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길고 긴 시간의 비행 끝에 비행기는 목적지인 시애틀에 도착한다. 나는 '돌아올 수 없는 바다(Sea of no return)'을 건너 버렸다. 이제는 아무리 돌아다보아도 부질없는 짓이야! 이제부터는 앞만 보고 걸어갈 뿐이야! 곧 나는 20인승의 소형비행기로 갈아타고 나의 종착역인 워싱턴 주(州)의 동쪽의 도시인 스포캔(Spokane)을 향해 또 다른 작은 비행을 시작한다. 역시 대륙의 바람은 언제나 위협적이야. 조종사와 부조종사, 그리고 승객이 10여명뿐인 이 비행기는 보잘 것 없는 낙엽이 되어 하늘의 심술과 변덕에 그저 순진하게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다. 쉴 새 없는 흔들림과 긴장의 시간도 그리 길지는 않았다. 나의 길고 긴 공중에서의 방랑이 드디어 끝이 나고 비행기의 문이 열린다. 황량하고 텅 빈 활주로를 휩쓸며 몰아치는 매서운 대륙의 바람이 나의 온몸을 덮치듯 달려든다. 비행기에 실렸던 무겁고 큰 바퀴가 달린 이주(移住)용 가방이 땅으로 떨어지고, 내가 그것을 끌며 공항을 나왔을 때 나를 반긴 것은 매서운 북서 대륙풍과 몸서리치는 외로움뿐이었다. 1989년 여름, 일본에서 5년여의 미술수업을 끝내고 나의 나라, 나의 서울에 돌아온 후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겉돌다가 결국 나는 또 다시 멀고도 긴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스포캔(Spokane)에 있는 '이스트 워싱턴 주립대학(East Washington Univ.)'의 미술학부(Fine Arts)생으로서의 유학비자를 얻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유학비자로 이 땅에 왔지만 대학을 마칠 경제적 여유도 없으며 나 자신 학업에의 욕구도 없는 상태로 이곳에 온 것이며 거의 도피성이다. 나의 방랑끼(放浪氣)도 일조를 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요? 
희망을 찾는 것이 내 바람이지요.
나 혼자가 되어버린 거지요, 나 혼자가,......
사막을 떠도는 도망자처럼 난 가고 있어요.

멕시칸 노래, "Donde Voy"가 나를 위한 노래처럼 가슴을 후빈다.
내가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은 날이 정확히 1990년, 9월16일이고 바로 옆 동네인 워싱턴(Washington)州의 스포켄(Spoken)이다.


"Welcome to Montana"
거의 무인지경의 숲 속을 계속 달리다보니 어느 새 옆 동네, 몬타나 주.
이미 나는 그 동안 달리고 있던 3번 하이웨이에서 2번 하이웨이로 갈아 타고 달리고 있다.

도로는 뜨겁게 달아 오르고 나는 이미 숨이 가쁘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나의 심각한 목표인 뉴-욕에 갈 수 있다. 그 동안 달리고 있던 3번 하이웨이에서 2번 하이웨이로 갈아타고 달린 지 얼마 안 되어 바로 나타나는 또 다른 파란색의 간판이 나를 반긴다.
"Welcome to Montana"

바로 주 경계 위에 있는 Bar에 들어가 차디찬 캔 콜라를 단숨에 들이키고 엘파마에 박차를 가한다. 지도를 보니 몬타나(Montana)는 상당히 넓다. 아이다호(Idaho)와 몬타나(Montana)의 서부는 로키 산맥이 달리고 있어 울창한 숲, 개울, 그리고 강이 계속된다. 국경을 넘은 지 오래이나 여름의 악마들은 변함없이 나를 집요하게 따라 붙으며 피를 말린다.
낮에는 수십 마리의 쇠파리들이 수십 km를 쫓아오며 나를 괴롭히더니 어둠의 도래와 함께 드디어 공포의 모기군단이 나를 전격 공격하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달리다 멈추는 순간, 수십 수백 마리의 모기들이 나의 팔과 다리에 몇열 종대로 내려 앉아 강력한 흡혈빨대를 꽂는다. 심신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으나 그대로 서 있다간 죽음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아침 식사


쇠파리들과 모기들의 추격을 간신히 따돌리고 밤 10시를 넘어 만든 도로 바로 옆의 나의 집

어둠 속을 계속 달리다 10시경, 산발적인 모기의 공격이 느껴지는 곳에서 힘겨웠던 도주전(逃走戰)의 막이 내린다. 잠을 청하지만 잠자기가 쉽지 않다. 모기 물린 자국이 가려워 긁다 보니 어느 새 새벽이다.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2 하이웨이 주변은 미국의 북부로 주민들이 많지 않은 미국의 깡촌이다.
처음으로 만나는 도시, 칼리스펠(kalispell)이 반갑기만 하다.(도시라 해도 주민은 수천 명이 고작이다.) 무엇보다도 대형슈퍼마켓이 있어 적은 돈으로 푸짐하게 한두 끼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슈퍼의 델리 코너에서 프라이드 치킨과 샐러드를 사서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달리다 도시를 막 빠져 나오려는데, 도로의 반대 편을 달려 오는 바이커. 자전거에 짐들이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동네 바이커가 아니고 크로스 컨트리 바이커이다. 그는 많은 차량들이 달리고 있는 도로를 가로 질러 나에게 달려온다. 가까이서 보니 그는 백인 할아버지인데 캐나다인, 브라이언이다.
그는 74세로 자전거 하나로 세계를 달리고 있었다. 물론 나처럼 한 번에 세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고 매년 세계 각지로 날아가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자신의 집이 있는 빅토리아 시티에서 동쪽 끝, St. Johns까지 7,200KM를 혼자 달렸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 내가 달렸던 밴쿠버 아일랜드의 빅토리아 시티에서 산다고 한다. 사진에서도 금방 알 수 있듯이 그는 참 엉뚱하고 대담한 것 같다. 그는 여행 중, 유료 캠프장을 자주 이용했는데 한 번도 돈을 내고 캠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담치기를 하거나 다른 캠프 객들과 슬쩍 묻어 들어갔다고 한다. 캠핑금지지역에서 캠핑하다가 경찰에 끌려 나오기도 하고 밤 12시경까지(밤11시까지로 법률로 규정되어 있음) 하이웨이를 야간 주행하다가 경찰에 잡혀 모텔로 직송되기도 하는 등, 그는 깔깔대고 웃으면서 자신의 매일 매일은 사건의 연속이라고 외친다. 나는 '들이 댐'과 '막무가내'의 도인 앞에서 순순히 무릎을 끓었다.

'들이 댐'과 막무가내의 달인 브라이언(Brian)
"내 나이 70을 넘기고 74가 되었지만 나의 도전 의지는 결코 두 동강이 나지 않는다"
Life is short. Just do it, and play hard!

"나는 말이야, 어느 상품의 선전문구 'life is short, just do it!'을 참 좋아하지. 더 이상의 긴 설명이 불 필요하지 않아?!"
"여부가 있겠습니까, 싸부님!"
어떤 자들은 평생 동안 링 위가 아닌 링 사이드의 벤치에 앉아 링에 올라 혈투를 벌이고 있는 두 선수에 대해 거품을 흘리고 피 튀기는 맹렬한 설전만을 일삼으며 인생을 방관한다. 또 어떤 자들은 머리에 핏빛 "투혼(鬪魂)"을 야무지게 두른 채, 심호흡에 심호흡을 거듭하고 스트레칭 만을 일삼으며 도전의 링을 맴돌기만 한다. 이윽고 넝마조각처럼 흔들어 대며 요란을 떨던, 그리고 비장하게 심호흡을 일관하던 그들의 입에 무거운 침묵이 왔을 때, 눈앞의 조명은 하나 둘 어둠이 되고 은은한 장송곡의 서곡을 듣는다.
영원히 죽지 않을 듯, 시간의 방관자로 유유자적 살다가 정작 살아보지도 못한 유령처럼 죽어간다.
시간의 방관자, 삶의 방관자가 누릴 수 있는 삶이란 차디찬 백골, 흔적 없는 유령의 그것뿐.

"이대로 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운데, 오늘은 자네에게 한 턱 내고 싶다. 유료캠프장에 가서 뜨거운 샤워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걱정 말게, 오늘은 돈을 정확하게 지불하고 캠프장에 입장할 걸세."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 들이고 싶으나 하루의 주행을 마감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는 2시다. 
"나도 언젠가 한국에도 가보고 싶네, 언제일지는 모르나 또 다시 자네가 캐나다를 방문할 때는 반드시 나에게 알리게. 내 집에서의 무기한의 무료숙식을 보장하지! 조금 전에 찍은 사진은 나에게 이-메일로 잽싸게 보내 줘야 하네! 아 참, 한가지 말해둘 것이 있어. 미국의 경찰들은 원칙대로 확실하게 예외 없이 법 집행을 하지. 그것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게나."

제발 부탁이다. 그 누구든 나를 방해하지마!
결코 나가고 싶지 않다고, 설사 내 머리 위의 다리가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말이야...

로키 산맥의 자락답게 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산길이 이어진다. 사람이 살 것 같지도 않은 황폐한 블랙피트(Blackfeet) 인디언보호구역을 지나 국립공원인 이스트 글래시어(East Glacier)에서 멈춘다. 작지만 예쁘장한 마을에는 많은 여행객들로 붐빈다. 거의 모두가 미국인들로 등산객들이다. 첫눈에 들어오는 세라노 여관(Serrano's Inn & Restaurant). 놀라운 것은 하룻밤 오직 12$이다.
나는 주저 없이 문을 두드렸다. 주인여자인 레니(Renee)는 자신도 오래 전 호주를 자전거로 횡단한 적이 있다면서 나를 반긴다. 그녀는 숙박비를 거절한다. 4명이 한 방을 쓰고 화장실과 샤워 실이 있다. 나와 함께 한 여행객들은 모두가 미국인들로 등산객들인데 대학생들을 비롯해 다양하다.

세라노 여관의 기인들. 왼쪽 긑은 대학생 커트, 가운데는 막무가내 히치하이커 존

오른쪽은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스티브

세라노 여관&식당

존(John)이라는 전직 전화회사 직원이었던 60초반의 아저씨는 북미전역을 히치하이크로만 여행하는 기인이고, 버지니아 테크(Virginia Tech)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커티스(Kurtis)는 자신의 차를 운전하며 캠핑을 하며 여행을 하고 있는데 그의 짐을 보고 나는 소스라 쳤다. 가지런히 정돈된 주방세트에 정확하게 갖은 주방용 물품들이 나열되어 있다.
또 한 명의 기인이 있는데, 그는 스티브(Steve)로 미국의 자부심, 할리데이비스(Harley & Davidson)을 몰고 미국 전역을 방랑하고 있는데 그의 전직이 화려하다.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생이었으나 그 길로 가지 못하고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전전하다 산림 소방대원을 하기도하고...,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 상태로 전국을 떠도는 그저 할리를 탄 노숙자이다. 그의 유일한 재산이란 자신이 지금 타고 있는 할리와 할리의 뒷좌석에 싣고 다니는 잡동사니 보따리들뿐이다. 수 많은 비닐봉지에 싸여 있는 그의 짐에는 그의 주식이며 간식인 홍당무와 셀러리까지 들어있다. 그런 그의 거지 보따리 속에 미국의 법조문이 소중하게 들어있어 나를 놀라게 한다. 이미 60을 넘긴 그는 하루 종일 술만 마시며 한 순간도 쉼 없이 중얼거린다.
그가 술과 중얼거림의 하루 일과를 끝내고 침대에 눕자 우리에게 고요와 평화가 찾아 온 듯해서 비로소 안도의 긴 숨을 내 쉬는 순간, 난데없이 할리의 엔진에 시동이 걸린다. 스티브(Steve)의 코골이는 유난스런 할리(Harley)의 엔진소리만큼이나 대단한 것으로 결코 끊김 없이 계속되고 겨우 할리의 시동이 꺼졌을 때는 이미 그의 중얼거림이 다시 시작된다.
나는 이곳에서 이틀을 더 머물렀는데 레니(Renee)는 숙박비에 대해 묻는 나의 입을 막으며 "우리는 이미 너와 너의 대단한 여행으로부터 엄청난 감동을 받았어. 숙박비 면제는 지극히 당연한 댓가가 아니겠어?! 너는 얼마든지 여기에 더 머물러도 돼."

고맙고 사랑스런 레니


여행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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