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에서 나를 구한 천국의 화원
에디터 : 이호선


몬타나의 전형적인 풍경

이스트 글래시어 파크(East Glacier Park)를 지나자마자 갑자기 풍경이 급변한다. 로키 산맥의 산줄기가 끝이 난듯하다. 밴쿠버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동안 지나왔던 수 많은 오르막 내리막의 길들이 먼 옛날얘기가 되어 버린다.
이미 넓은 몬타나(Montana)주의 가운데 부분을 달리고 있다. 나무 한 그루 없이 끝도 없이 밀밭이 펼쳐지고 말과 소들만이 이 넓은 대지의 주인들이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녹을 듯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엘파마'와 나는 숨이 멎을 듯 헐떡이며 달려간다.
나의 앞에 나타나는 마을, 그리고 작은 도시들마다 단 한 명의 다른 빛깔의 인간들을 경험할 수가 없다. 유일한 유색인종이란 그저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날 때 마다 슈퍼나 길에서 나를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극소수의 인디언들뿐이다. 정말 이곳은 미국의 깡촌이면서 진짜 미국인 것이다.
연일 쇠파리와 모기들과의 전쟁이 계속되며 나의 몸의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한 번 물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밤새 수도 없이 긁어 대느라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다. 그래도 달려야 하기에 땡볓 아래의 길을 하루 평균 130-140km를 달린다. 모기에 시달리면서 연일 심각한 졸음운전이 계속된다. 갓길 밖의 자갈길이나 풀밭에 쳐 박히는가 하면 도로의 하얀 선 안으로 들어가 달리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운전자들은 캐나다 인들보다 한술 더 떠 자전거주행자 근처에도 오지 않고 반대편 차선으로 달려 버리기에 나는 여전히 별 사고 없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시카고에서 시애틀까지 달려가는 60대 중반의 대륙횡단 바이커들.
랜스 암스트롱의 신화는 전 세계적으로 노란 셔츠의 유행을 만들었다.

미국 대륙횡단 여객열차 Amtrak



어느덧 나를 위한 최고의 야영지는 공원의 지붕이 있는 구조물 아래의 테이블이 되었다.
지분이 있어 텐트를 펼칠 필요도 없으나 더위와 모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모기장을
치기 위해 텐트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

나는 최소한 한 개의 주유소가 있는 타운에는 거의 예외 없이 작은 주민용 공원이 있고 그 공원에는 몇 개의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작은 지붕이 있는 구조물과 공중화장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주민 공원은 주기적으로 풀 깎는 기계로 짧게 깎아 놓아 다른 숲보다 모기들이 훨씬 적다는 대단한 사실을 또한 알게 된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숲 속에서 구덩이 팔 필요 없이 우아하게 일을 치룰 수 있고 샤워와 빨래까지 가능하니 나에겐 천혜의 장소이다. 이제 나는 새로운 타운에 들어서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공원이 어디 있느냐?"가 인사말이 되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모기들 때문에 해가 지면 모두들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도로에서 만난 두 바이커, 존(John) & 마리(Mary) 부부는 디트로이트에서 시애틀까지 자전거 여행 중인데 해마다 휴가를 같이 얻어 전국을 여행한다고 한다. 그의 지도에는 모기로 악명 높은 타운까지 체크되어 있다. 그는 모기에 대항하기 위해 많은 장비를 구비하고 있는데 "Bug-out"이란 강력한 모기 망 옷을 나에게 선 보인다.


너무나 익숙한 미국인 이름 존 & 마리 부부

도로를 달리다 보면 도로변에 "Historic Site(유적지)"사인이 있고 그 사연들이 적혀있다.

 "Early day outlaws"라는 이 사연은 세계 명작 영화로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인공, Butch & Sundance(폴 뉴먼 & 로버트 레드포드 분)가
실제 인물이며 실제 사건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2번 하이웨이가 그들이 열차강도를 했던 그 철로를 따라 달리고 있다.
 이 철로는 아주 중요한 미 대륙횡단 철도인 듯 하루 종일 100량 이상의 화물열차가
쉴 새 없이 왕복한다.
주제가인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가 나의 귓전을 두드린다.

몬태나州는 버팔로 소와 카우보이로 요약된다. 상점이나 거리에서 카우보이 모자, 카우보이 버클과 부츠를 신은 이들을 종종 목격한다.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도 오로지 포크음악뿐이다.
다음 州인 노스 다코타(North Dakota)를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상당히 큰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난다. 포트팩 인디언보호구역(Fort Peck Indian Reservation)인데 조그만 2년제 커뮤니티 대학(community college)까지 있다.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건실해 보이는 보호구역이다. 울프포인트(Wolf Point) 타운에 있는 대형슈퍼에서는 상당수의 인디언들이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으나 공원 여기저기에는 끼리끼리 모여 앉아 겉돌고 있는 인디언들이 눈에 보인다.
큰 도시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일이 이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흑인들이 쓰는 격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는 멀쩡하게 생긴 인디언 청년이 나에게 다가와 구걸을 한다. 나는 현금을 안 가지고 다닌다고 하니 "카드가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한다. 도시의 걸인들보다 더 뻔뻔스럽다. 내가 슈퍼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인디언을 목격 했다고 하니, 자신도 취직했다가 잘렸다며 무차별로 욕을 난사한다. 건너 편 벤치에 캐나다에서 온 듯한 할리 한 대가 선다. 순간, 그의 눈이 반짝이며 잽싸게 그를 향한다.
아이다호 州부터 시작해서 몬태나를 지나오면서 많은 미국의 할리(Harley)들이 나를 스쳐 지나 갔는데 단 한 명도 헬멧을 쓴 자가 없었다. 여름이라 더워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간간히 지나치는 BMW 모터사이클리스트들은 한 명도 어김없이 헬멧을 쓰고 있다. 할리가 그 만큼 안전하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는 것 같다.

한개 차량에 컨테이너 2개(2층)인 화물차량 100여개 모두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대(Hyundai)

내가 이틀에 한번은 먹었던 프라이드 치킨,
대형 수퍼마켓의 델리 코너에서 샐러드와 함께 나를 즐겁게 했던 메뉴인데
식당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나의 배를 만족시켰다.

지도에도 없는 작은 마을,
프레이저(Fraser)에 있는 작은 주유소의 두 아줌마 직원의 배려로 주유소 뒤편에서 야영

도로변에는 종종 Bar가 나타나는데 대낮부터 차와 모터사이클의 운전자들이 맥주 한 두 병을 예사롭게 마시고는 다시 차량을 운전하며 간다. 이런 광경은 그저 일상의 한 컷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이웨이 상에서 단 한 대의 경찰 순찰차를 보지 못했다.
나는 미국에서의 음주운전이 심각하다고 들었다. #2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는 동안 모든 타운과 작은 시들은 모두 철로 변에 있어 철로 바로 옆에 주택들이 있다. 낮과 밤, 새벽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달리는 화물열차들은 역을 지날 때마다 정말 참기 어려울 정도의 고성으로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경적을 울리는데 비록 관례라고는 하나 무식한 관례임에 틀림이 없다.
뉴욕의 무지막지한 경찰차와 소방차의 경적이 무색할 정도다. 하지만 정작 철로 변의 주민들은 그 끔찍한 경적소리가 귀에 안 들어온다고 하니 나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지.

시카고에서 오레건 州의 유진(Eugene)으로 이사를 하는 린다 & 밥(Linda & Bob) 부부.
그들의 자녀들과 이삿짐에 앞서 그들이 새로운 정착지로 먼저 달려가고 있는 데 놀랍게도
자전거로 가고 있다. 린다는 대단한 미모와 몸매의 소유자답게 우리가 서로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줄곧 우리들을 지나치는 수 많은 차량의 운전자들에게 눈부신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든다.(그녀는 자신의 용모에 완벽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몬태나의 전형적인 시골 풍경

길지 않은 몬태나州 주행이 드디어 끝나고 옆 집인 노스 다코타(North Dakota)州로 넘어간다. 작은 도시인 윌리스톤(Williston)을 지나고 좁은 길에 마을은커녕 집 한 채 없는 70여km를 달려 가까스로 작은 타운인 래이(Ray)가 나타나 배고픈 나를 안심시킨다.
조그만 주유소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있는데 주유소 옆에 세워둔 픽업트럭을 향해 걸어가던 한 백인남자가 나에게 다가온다. 그는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 오는 것을 도로에서 이미 보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픽업트럭 쪽으로 나를 인도하면서 나에게 한 잔 하자고 한다. 그는 주유소에서 산 피자 한 판과 12개 캔이 들어있는 맥주 한 박스를 풀어 놓으며 나에게 권한다. 알고 보니 피자와 맥주는 자신의 와이프와 함께 먹기 위해 산 것이었다.
오랜만에 대하는 맥주라 나는 순식간에 4개를 비웠다. 그 또한 맥주통인 미국인답게 4개를 비웠다. 그는 1개를 더 비웠고 나도 한 개를 더 비우고 한 개를 손에 쥐었다.
미국땅에는 곳곳에 유전과 가스가 있는데 그, 브래들리(Bradley)는 새로운 유전과 가스를 발굴하고 그것을 파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인데 많은 곳을 떠돈다고 한다. 자신이 떠돌이라 또 다른 떠돌이의 심정을 잘 아는 듯하다. 그는 음주운전이라고 말하는 나를 보고 껄껄대며 웃으면서 차들도 별로 달리지 않는 이 시골길에서 그게 무슨 대수이며 순찰차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며 나를 어색하게 한다.
나는 뉴욕에 가고 있는데 뉴욕에 가 본적이 있느냐고 하니, 가본 적도 없지만 가고 싶지도 않다고 한다. 조용한 시골이 자신은 너무 좋다고 한다. 주유소 뒤편에 있는 풀이 말끔하게 깎인 작은 숲을 가리키며 저곳이 나를 위한 최고의 야영지라고 알려주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웰컴투 노스 다코타

노스 다코타를 달리기 시작후 얼마 안되어 만난 네덜란드에서 온 세 명의 50대 바이커들.

그들은 시카고에서 밴쿠버를 향해 달리고 있던 길이었는데 나를 만나 나의 모든 스토리를
듣고는 감격과 함께 경의를 보낸다. 그들은 이 장정을 위해 많은 시간을 벼려온 듯하다.
그들은 삐까번쩍하는 독일 제, 네덜란드 제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엘파마'의 여기저기 쓰다듬으며 "Nice Bike!"를 연발한다.

오른쪽에 서 있는 붉은 셔츠의 아저씨는 사진촬영이 끝나자마자 씩씩거리며
"모두들 빨리 자전거에 타!"
"우리들도 한 번 해보자구!!"

이름없는 작은 마을조차도 마을의 한 구석에는 세계대전, 한국전 등 참전용사들을 위한
기념비가 반드시 있다. 마을회관의 게시판에는 현재 군복무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근황이 소개되어 있을 정도이다.

밀밭과 목초지속에 종종 나타나는 조그만 유전과 가스 채굴소

노스 타코타州의 풍경 또한 몬타나와 전혀 다름없이 나무 한 그루 없는 그저 밀밭과 소와 말들의 터전인 초원이 계속될 뿐이다. 오로지 마을주변에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은 숲이 고작이다. 야영을 하기 위해서는 기필코 작은 마을이라도 발견해야 하고 조그마한 공원을 찾아야만 안심하고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비록 숲이 없더라도 초원의 풀 속에는 흉측한 모기군단이 호시탐탐 지치고 허기진 방랑자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캐나다에서도 그랬지만 지도상에 나온 타운일지라도 단지 10여 채에 불과한 타운도 있다. 가끔 주민들은 없고 곧 무너질 듯한 집들만 있는 유령마을을 지나기도 한다.

이미 노스 다코타의 한 가운데쯤을 지나는 작은 마을, 벨바(Velva)를 지나는데 날씨가 심상치 않다. 구름의 조화가 불길하고 바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어제부터 산발적으로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하지 않았던가! 나는 하늘이 노하지 않기만을 기원하며 살금살금 나의 길을 재촉한다.
캐나다에서도 경험해 보았지만 대륙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순식간에 돌변하기 일쑤다. 노스 다코타로 들어와 윌리스톤(Williston)을 지난 직후, 허허벌판 도로변에서 직경2.5-3cm가량의 우박세례를 받았지 않았던가. 맑은 하늘이 급변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지나가던 픽업트럭이 급정거했고, 운전하던 젊은 백인청년이 나를 자신의 차 안으로 급히 끌어 당겼다.

드레이크(Drake)를 8마일 남겨 놓은 지점에서 갓길에 세워진 흰색 밴을 발견한다. 밴 앞에는 한 백인 아줌마가 서 있다. 곧 밀어 닥칠 폭풍우를 예상하고 나를 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는 그녀는 캐이 버리(Kay Buri)로 아이슬란드계 미국인이다.
그녀는 드레이크(Drake)에 있는 자신의 집 주소와 상세한 약도를 건네주며 폭풍우가 끝나 다시 평화가 찾아 올 때까지 자신의 집에 머물 것을 권한 후 사라진다.

폭풍에서 나를 구해 준 캐이(Kay)와 그녀의 기관사구조차

그녀의 집을 찾기 위해 그 어떤 수고도 필요가 없었고, 그녀는 자신의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지었다는 작은 목조건물(그녀는 그것을 캐빈(Cabin)이라고 불렀다.)에 나를 안내한다.
겉보기엔 창고 같은 그 목조 건물 안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것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경이로움이다.
"아니 이렇게도 아늑하고 평화스럽고 예쁜 집이 이 세상에,……"
가까스로 나의 입에서 탄식처럼 흘러 나온다. 비록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치밀한 계산 속에 만들어진 것임에 틀림이 없으나 무엇보다도 엄마 품처럼 포근하고 아늑하다.
조그만 원탁 위에는 쿠키를 비롯 과일이 정성 들여 접시에 담겨 있다. 나란히 놓여 있는 두 개의 침대 또한 너무도 안락하다. 지붕에 작은 다락방까지 만들어 여러 개의 침낭까지 깔려 있는 완벽한 손님맞이용 주택이다.
다시 바깥으로 나와 그녀는 나에게 집 주위를 안내하는데 집 주위는 화원 겸 텃밭으로 자두나무, 딸기, 옥수수, 브로커리, 셀러리,………,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야채와 과일이 심어져 있다. 약을 안 뿌리기에 그저 그대로 지나가면서 따 먹는다. 마치 천국의 화원에 있는 기분이다.

그녀가 직접 지었다는 캐빈

캐빈 안, 이미 원탁 위에는 쿠키를 비롯 과일이 정성 들여 접시에 담겨 있다.



여행 후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위의 기사는 개인적인 용도 및 비상업적인 용도의 '퍼가기'를 허용하며, 상업적인 용도의 발췌 및 사진 사용은 저작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