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5인조 가족 자전거 여행자
에디터 : 이호선

노스다코타의 일상적인 풍경


또 다시 쇠파리와 모기들의 횡포에 대책 없이 시달리며 힘겨운 주행이 계속된다. 낮에는 땡볕과 쇠파리, 그리고 밤에는 모기. 변함없는 패턴의 삶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태양이 서서히 서쪽 벌판으로 가라 앉기 시작할 즈음엔 정확하게 계산을 해서 달려야 한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다음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여부를 확실하게 정한 후에 달려야 하고 벅찰 경우엔 아쉽더라도 그전 마을에서 멈추어 서는 것이 상책이다. 가는 도중에 허허벌판에서 멈추게 되면 야영지도 없지만 엄청난 수의 모기군단의 맹폭에 살아남기 힘들다.

어둠을 뚫고 가까스로 도착한 캐링턴(Carrington)의 공원 내의 구조물 아래서 하루를 맺는다. 이 지역은 유난히 모기가 많은 것 같다. 밤새도록 모기장 밖에서 사이렌소리가 끊기질 않는다.
아침에 공원화장실을 가다가 나의 반대편에서 야영 중인 대단한 바이크 여행자들을 만난다. 40대 초반의 부부(Rick& Tiana)와 그들의 3명의 아들들(Samson, Markos, Tan-10, 8, 6)이 그 주인공인데 이 부부는 원래 미국인이지만 캐나다의 캘거리(Calgary)로 이주한 이들로 이 장대한 여행을 위해 자신들의 직장을 그만 두었고 아이들조차 그들의 학교를 휴학시키고 그 동안 1년간 북미, 멕시코 등 7,800km를 달리고 캘거리로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나는 자녀들에게 참교육, 참깨달음, 인생 일대의 교훈을 주기 위해 정말 대단한 결단을 내린 이 위대한 부부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다. 거의 나에겐 메가톤급 충격이었고 전율이었다.
부모란?! 자식이란?! 가족이란?! 교육이란?! 그리고 삶이란?!!

캐링턴에서 만난 캐나다 출신 5인조 바이커, 위대한 가족

그들의 자전거 또한 대단한 것으로 아주 절묘하게 자신들이 개조를 했다.

쨍쨍한 태양 아래 물도 없고 나무 한 그루 없는 변함없는 풍경 속에서 마치 오래된 나의 습관처럼, 거절할 수 없는 나의 운명처럼 나의 페달 질은 계속된다. 이 넓은 대지 위에 그늘이라곤 나와 엘파마가 만드는 그것이 고작이다.
밀라톤(Millarton)을 무시하고 지나쳐 버렸다. 어둠은 이미 페달질하고 있는 나의 발목을 휘감을 정도로 깊어 졌다. 좁은 도로에 질주하고 있는 많은 대형트럭들이 나를 두렵게 한다. 밀라톤(Millarton)에서 정지 했어야 했는데………
도로변은 목초지이나 불행하게도 습지대이다. 인정 사정없이 어둠을 밟으며 달려가다가 어스름한 가로등이 켜져 있는 작은 숲을 발견하고 급정거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작은 숲 안에는 대형 암모니아가스통이 놓여 있었다. 나는 두 통의 물로 퀵 샤워를 하고 부리나케 텐트를 치고 텐트 안으로 뛰어든다. 그 동안 모기들이 달겨 들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다.
텐트 안에 들어가, '내가 모기제국에 내발로 걸어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수 분 후의 일이었다. 텐트의 모기장 밖으로 수 백 마리의 모기들이 달라 붙어 있고 텐트 주위를 맴도는 수 많은 모기들의 사이렌 소리는 악마들의 울부짖음이 되어 나를 떨게 한다.

나는 곧 텐트 안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몸서리를 친다. 모기들이 텐트를 여닫는 여러 개의 지퍼들 사이의 정말 작은 공간을 비집고 안으로 안으로 밀고 들어 오고 있다. 한 치의 여유가 없는 1인용 텐트 안에 들어 온 모기들을 소탕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작업이다. 만일 내가 텐트를 열고 밖으로 나갔다가는 나가는 순간, 바로 죽음이다.
소변의 욕구마저 발로 콱콱 밟고 밤을 하얗게 새우며 검은 악마들과의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재앙이 나를 방문한다.
'지붕을 두드리는 묵직하고 불길한 이 소리는,……'
'그것은 바로 비!'

내가 텐트 안으로 들어오기 전, 청천하늘에 수 많은 별들을 보았는데 웬 말도 안 되는 비가,…….
숨을 죽이며 하늘의 자비를 빌어보지만 부질없는 짓. 몇 번에 걸쳐 심호흡을 하고 텐트의 지퍼를 연다.
잽싼 동작으로 자전거 뒤가방에 있는 큰 비닐커버를 꺼내기도 전에 수 많은 모기들이 덩어리가 되어 나를 공격한다.
눈, 코, 귀, 입, 손, 팔, 다리, 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단 한 순간도 집중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가 없다. 나는 그저 모기들에게 카니발의 제물이 되어 죽기 전의 발광을 하고 있을 뿐이다. 비는 쏟아지고 있으나 내가 비닐커버를 꺼내 텐트 위에 씌울 만큼의 여유를 악마들은 결코 나에게 허용하지 않는다.
보통 비가 오면 모기들은 날지를 못하기에 맥을 쓰지 못함에도 말이다. 결국 나는 펼쳐진 텐트와 헝클어져 있는 자전거를 막무가내로 잡아 끌며 도로변으로 필사의 도주를 하고 비닐커버를 펼쳐 뒤집어 쓰고 도로변에 앉아 있으나 이 판국에서도 나를 놓지 않고 달라 붙어 온 10여 마리의 모기들이 나의 몸 위로 이착륙(離着陸)을 거듭한다.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이미 새벽 4시를 훌쩍 넘어 버렸다.
가자꾸나!  또 이렇게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하느님, 바쁘시겠지만 한가지 여쭈어 볼게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흉악무도한 놈들을 이 지구촌의 식구로 받아 들여 주셨나요?! 모기 발길질에 설마 코피 터지랴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봐 주셨겠지만 차라리 곰의 앞 발 후려치기 한 방, 말의 뒷 발차기 몇 대 맞고 끝내는 것이 차라리 나아요. 저 눔 스키들은 떼거지로 몰려 다니면서 지그들이 박살 나기 전까지는 지구의 끝까지라도 쫓아 다니면서 수 많은 지구촌의 식구들을 미쳐 날 뛰게 만들어요. 맞지요, 하느님?!"
"…………………………………"
"또 다른 '막가파' 스키들인 쇠파리들은 그래도 이 지구촌을 위해 단단히 한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만일 쇠파리 스키들이 없다면 이 지구촌 위에 쌓인 수 많은 시체들 때문에 자전거를 달리기는 커녕 걸어 다니지도 못하겠지요. 맞아요?!"
"……………………………………"
"하느님, 바쁘시겠지만 한 번 날 잡아서 모기 눔 스키들을 싹쓸이 해 버리면 어떻겠어요?!! 이것은 저뿐만 아니고 이 지구촌에 살고 있는 모든 식구들의 간절한 염원일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
"뭐라구요, 제가 얼빠진 놈이라구요??!!"
 
초 죽음의 상태로 나의 본업인 페달 질을 계속한다. 뜨거운 태양에 오늘은 맞바람까지 합세한다. 노스다코타(North Dakota) 최후의 마을인 엘렌데일(Ellendale)을 단호히 뿌리치고 내달아 달린지 얼마 안되어 만나는 작은 마을, 프레데릭(Frederick)에 들어서자마자 강변에 작은 동네공원이 있다.
아직 해는 많이 남아 있지만 나의 체력은 이미 해가 진지 오래다. 밤새 가느다란 사이렌이 나의 귀를 맴돌았을 뿐이었다.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의 풍경 또한 변함없이 허허벌판이다. 상당히 큰 도시인 에이버딘(Aberdeen)에서 몇 시간을 머물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생겼다. 오늘이 이미 7월 28일이다.
7월 2일 북미횡단을 위해 밴쿠버를 떠나기 전에 '바이크매거진'에 밴쿠버 스토리와 사진을 보냈는데 내가 보낸 스토리가 나의 실수로 링크파일로 보내져 알맹이가 보내지지 않은 관계로 연재가 끊겨진 상태가 되었다.
나는 휴대폰도 안 가지고 있고 그 동안 인터넷도 접하지 못하고 잡지사와 연락이 끊긴 채 그저 달려 온 것이다. 어제 우연히 공중전화로 잡지사에 안부전화를 한 순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오늘 상당히 큰 도시인 에이버딘(Aberdeen)을 지나게 되어 도서관에 갈 예정이다.
약 4시간에 걸쳐 밴쿠버에서 미국의 아이다호(Idaho) 국경을 넘을 때까지의 스토리와 사진까지 보내고 나니 태양은 이미 석양이 되어 있었다. 그 동안 달려 내려 왔던 281번 하이웨이와 결별을 하고 다시 동쪽으로 달리는 12번 하이웨이와 조우한다.

이 넓은 대지 위에 그늘이라곤 나와 엘파마가 만드는 그것이 고작이다.

태양이 지평선과 거의 같은 선상에서 아쉬움의 망설임을 하고 있을 즈음, 정말 보잘 것 없는 마을, 앤도버(Andover)가 나의 발에 걸렸으나 나는 망설인다. 마을은 도로에서 안으로 달려 들어가야 하는데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둘러보아도 공원이 있을 만한 마을이 아니다.
마을입구에 서서 '들어가느냐, 박차고 지나치느냐'의 두 갈래 길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조금 전 마을 안으로 들어 갔던 승용차가 다시 나를 향해 달려 나온다. 승용차는 내 앞에 서더니 물론 백인아줌마가 문을 열고 나에게 묻는다.

"너는 분명 야영지를 찾고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Sure, Mam!!(네, 맞아요)"
"이 마을 안쪽에 작지만 괜찮은 공원이 있어!!"
이 마을에 미안함과 함께 고마움은 몇 배가 되었다.

"이 마을 안쪽에 작지만 괜찮은 공원이 있어!!"

미네소타 州로 가는 길에는 정말 꾀죄죄한 마을이 계속된다. 그러고 보니 매미가 치열하게 울어댄다.
어느 새, 여름도 막차를 탄 것인가! 뭐, 벌써 7월 말이니 때가 되었어. 어쨌던 저 매미 놈들은 귀신 같단 말이야!!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의 마지막 타운인 빅스톤시티(Big stone city)의 작은 공원에서 하루를 끝낸다. 바로 눈 앞에 있는 빅스톤(Big stone) 호수 건너 편은 미네소타 州이다.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많은 불빛들이 정겹다.
작은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켜니 미국의 올드 팝송이 흘러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줄기차게 듣던 곡들이다. 레파토리들은 변함이 없으나 미국의 한 가운데에 앉아 듣고 있는 나의 마음은 아주 상당히 다르다. 기묘하기조차 한 기분이지만 모든 노래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리얼하게 나를 푹 절인다. 올드 팝을 들으며 호수 위에 흔들리는 불빛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나는 어느 새 꿈나라 행 보트 위에 승선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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