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끊임없이 내리는 비와의 사투
에디터 : 이호선

멕시코의 색깔은 그들의 국기를 상징하는 빨강과 녹색,
코카콜라의 빨강과 찰떡궁합을 이루는 작은 시골 식당


소개받은 작은 집, 바닥을 보니 다름아닌 똥밭
억세게 쏟아지는 빗소리에 눈을 뜬다. 지긋지긋한 비에, 또 하루를 시작하려는 나의 마음은 이미 천근만근이다. 비로 인해 미적거리다가 9시경 도로를 달린다.
인적이 없는 숲의 벌판을 달리지만 85번 국도는 국도답게 달리는 차량이 적지 않다. 계속되는 비와의 숨바꼭질 속에 집들이 띄엄 띄엄 있어 결국 내가 일방적으로 당한다. 가방 위에 펼쳐 놓은 빨래는 마를 새 없이 젖고 또 젖는다.
나의 주행이 잦은 비에 지체되며 맥이 빠진다. 두 번째 도시인 (시우다드빅토리아)Ciudad Victoria를 30km남기고 도로변에 있는 폐허 같은 집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집안으로 들이 대 본다.
이미 어둠이 주위를 뒤덮기 시작한 시각에 밀어 닫친 나를 보고 상당히 놀란 듯한 주인아저씨지만 나의 설명에 금방 평화를 되찾은 그는 흔쾌히 나에게 자신의 집 옆에 있는 블록 집에서 자라고 한다. 나는 감사의 말과 함께 서둘러 블록 집으로 향한다.
사면의 블록 집, 하지만 모두 뚫려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붕만은 강건하게 유지되어 있어 쏟아지는 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후래쉬를 비추어 바닥을 보니 다름아닌 똥 밭이다. 다행히도 똥들은 상당한 시간이 경과되어 나의 코를 결코 자극하지는 않지만 결코 유쾌한 상황이 아니다. 결국 이곳은 가축의 축사였다.
내 자신이 선택한 장소라면 결코 어떤 불평 없이 하룻밤을 보내겠지만, 적어도 외국인 나그네에게 추천해 준 곳이 이런 곳이라니……
그래도 "그래요?! 그래서요!!"의 비정함이 아니고 이런 똥 밭의 장소라도 추천해 준 그에게 감사해야지.
"뭐가 어쨌던 고맙지?!"
"그런데 말이야, 기분이 정말 그렇네 그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최소한 사람 우리에 넣어야지 가축 우리가 왠 말이야?!"
"거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이 더럽네!"
"어이 정말 개 자슥이네!!"

괘씸한 중년의 사나이가 하룻밤을 위해 나에게 추천해 준 전(前) '소우리'

바닥은 똥밭이다.

물에 불어 죽는 것보다 차라리 태양에 타 죽는다
정말 오늘 밤은 잠을 못 잘 것 같다. 어둠 속에선 이미 수많은 악마 같은 놈들이 노래하고 춤추기 시작했다. 그저 쏟아짐과 멈춤을 계속하고 있는 비를 안 맞는 것으로 만족할 따름으로.
결국 나는 한 잠도 못 잔 채, 쏟아지는 비와 함께 또 하루를 시작한다. 비가 쏟아지고 있는 한참을 물끄러미 서 있어야 했다. 이곳의 비는 장시간 오는 것이 아니다. 30분-1시간 맹렬하게 내리고 또 다시 해가 나오기도 하다가 또 다시 쏟아진다. 당체 종잡을 수가 없다.
또 달리기 시작한다. 어제 한 잠도 못 잤기에 몸의 한계가 빨리 올 것이니 이른 시간에 바짝 달려놔야 한다. 시우다드빅토리아(Ciudad Victoria)의 시내가 아닌 우회도로로 지나치며 다음 시인 시우다드만테(Ciudad Mante)를 향해 엘파마를 다그친다.
오늘은 태양이 두터운 구름을 필사적으로 뚫고 나와 아스팔트를 달군다. 작열하는 태양으로 땀 범벅이 되어 달리지만, 물에 불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태양에 타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아!


멕시코의 가장 일반적인 식단의 핵심은 역시, 고기(주로 소고기와 닭고기)와 콩,
그리고 토르띨랴Tortilla(얇은 옥수수 빈대떡)이다.


멕시코의 자연은 내가 이제껏 세계여행을 해 오면서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광경을 연출한다. 촘촘한 푸른 숲의 바다이지만 지형자체가 광대하다.
나의 작은 '디카'로는 그것들을 담아 내기가 버겁기만 하다.

이곳의 경관은 내가 이제껏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결코 겪어보지 못한 것으로 나의 상상을 초월한다. 분명 내가 2년 전에 지났던 같은 위도의 네팔의 그것처럼 밀림이 계속되나 이곳의 지형은 그야말로 장대하다. 명쾌하게 표현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안타까울 정도다. 너무 장대해서 나의 작은 디카로 담아내기가 한참 벅차다.
시우다드만테(Ciudad Mante)를 50km정도 남긴 지점에서 여관을 발견하고 샤워가 끝나자마자 죽음같이 잠을 잤다.

어디에도 물 천지다. 내가 우찌 하늘을 이기겠노?
여관을 나와 보니 지난 밤에도 엄청 비가 쏟아진 듯 어디에도 물 천지다. 여전히 하늘은 첩첩이 구름이다.
"또 오늘은 어쩌려나?!"
비는 똑 같은 비이나 경우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의 것이 될 수 있다. 비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실내에서 빗소리의 리듬을 즐기며 바라다 보는 비는 한 잔의 향기 짙은 커피나 와인의 그것처럼 감미롭고 포근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보호막이나 차양도 없이 솔직 담백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자연에 적나라하게 내놓고 자연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수많은 두 바퀴의 '배달의 기수'들에게나 나와 같은 대륙횡단 바이커들에게 비는, 수 없이 내 뱉어지는 욕의 가래침과 함께 질겅질겅 씹어 삼키는 쓰디 쓴 '경월(鏡月)' 막소주가 된다.
인생만사가 그렇지 않겠어. 하다못해 음식도 그렇잖아?! 똑 같은 콜라지만 콜라를 물 마시듯, 숭늉 마시듯, 그리고 차 마시듯 마셔버려 끝내 자신의 몸을 부풀리고 자신의 이를 날려버리는 이에게는 콜라는 분명 독약이지만 하염없이 수고의 땀을 흘린 후 마시는 차디 찬 한 잔의 콜라는 피곤과 힘겨움을 일순에 날려 버리는 상쾌한 보약이 될 수도 있어.
그래서 일찍이 쥬디 콜린스(Judy Collins)가 "Both Sides Now"란 노래를 심각하게 부르지 않았겠어!
결국 나는 오늘 또 다시 쓰디 쓴 '경월' 막소주를 들이키며 달린다. 내가 우찌 하늘을 이기겠노?!

역시 콩의 수프(Frijoles), 소고기 볶음, 그리고 라이스나 옥수수의 토르띨랴

주방에서 두 고부(姑婦)의 까르륵 깔깔, 꼬르륵 꼴꼴대는 소리에 나를 포함한
식당의 손님들은 한결같이 입이 아닌 코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천국의 야외 야전 화장실. 파인애플나무인지 바나나 나무인지 알 수 없으나 촘촘한 나뭇잎의 천연 지붕아래 그 이파리로 촘촘히 엮어 진 울타리가 둘러 쳐져 있다.
그 뿐인가, 바로 앞에는 성모마리아까지 함께 해, 인간 최대의 기쁨 중 하나인
'배설의 기쁨'을 신의 가호 아래……

넓은 목장이 대부분인 멕시코의 시골에는 적지 않은 주민들이 말을 타고 이동하곤 한다.

완벽한 진흙의 함정에 걸려들고 만다
줘 박으면 줘 박힐 뿐이지. 어둠이 시시각각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하지만 주위는 완전한 무인지경의 숲의 벌판이다. 시우다드발레스(Ciudad Valles)를 40km 남긴 지점에서 나는 천금 같은 다리를 발견한다.
다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숙자들의 안식처가 아닌가?! 다리에 자전거를 세우고 내려다 보니 흐르는 물도 아주 깨끗하다. 분명 목욕과 더불어 빨래도 가능한 최고의 장소이지만 다리 밑으로 들어가는 길이 참 애매하다. 한 쪽은 가파른 비탈길이고 다른 한 쪽은 완만한 길이나 돌아가는 길이다.
완만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지나가는 차들이 없는 틈을 타서 부리나케 자전거를 밀고 들어가는 순간, 나는 완벽한 함정에 걸려들고 만다. 겉보기와는 딴판인 완벽한 진흙 땅으로 자전거를 밀면 밀수록 자전거는 헤어날 수 없는 진흙의 늪에 하염없이 빠져든다. 고비사막의 모래는 그야말로 워카 발에 피다. 진흙은 두텁고 강력한 찰떡이 되어 두 바퀴에 사정없이 달라붙어 있다.
결국 두 손 반짝 들어버리고 무거운 진흙무게까지 합해진 천근만근의 자전거를 낑낑대며 들어 올려 진흙 밭을 빠져 나왔지만 진흙을 제거할 길이 없다. 정말 어이없는 쇼를 벌이고 있는 동안 해는 완전히 서쪽의 산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야영을 위해 다리 밑으로 들어가다가 빠져버린 진흙의 함정.
두텁게 붙어버린 찰떡 같은 진흙을 제거하느라 나와 '엘파마'는
물속으로 동반 다이빙했고 잔뜩 물 먹은 '엘파마'는 물을 빼기 위해 물구나무 서있다.

차도 띄엄 띄엄한 무인지경의 어두운 숲 속의 길에서 얼쩡대고 있어 봐야 나에게 득이 될만한 일은 결코 없다. 어쨌거나 다리 밑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제 선택은 가파른 비탈길뿐이다. 방법은 하나, 짐을 모두 분리해서 한 개, 한 개 끌고 내려가는 수 밖에.
비탈의 경사가 워낙 심해 나는 구르듯 짐과 자전거를 옮겼다. 다리 밑에 앉아 비로소 안도의 긴 한 숨을 몰아 쉰 뒤, 자전거의 진흙을 물로 닦아 보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
결국 나와 '엘파마'는 알 몸이 되어 물속으로 다이빙을 한다. 물이 차지 않고 따뜻하기까지 해 결코 물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아 나는 한 동안 물 속을 욕조삼아 온 몸을 푹 담그고 있었다.

또다시 모기의 횡포
다리 밑에 앉자 또 비가 쏟아진다. 빗소리가 개울의 물소리에 합세해 주위가 요란스럽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천둥번개까지 끼어들며 법석을 떤다. 묘하게도 다리를 경계로 왼쪽의 하늘엔 동그란 보름달이 구름 사이를 뻔질나게 들락이고 오른쪽 하늘은 암흑으로 천둥번개만 요란하다. 달이 완벽한 보름달이야?! 참, 오늘이 9월 21일인데 추석이 언제더라?!
뭔가 신원미상의 놈들이 나의 전신을 들볶아 댄다.
뭐겠어?!
그눔 스키 들이겠지!!
이곳의 모기들은 짐짓 하루살이로 착각할 정도로 엄청 작지만 그눔들의 횡포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 나는 그저 개울물소리, 빗소리, 그리고 천둥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앉아 있고 보름달은 그렇게 수 없이 구름 속을 들락이며 나의 마음을 혼란 시킨다.

속절없이 밤은 지나고, 아직도 깊은 어둠과 안개 속에 잠겨있는 새벽의 도로로 다시 기어올라 또 하루를 시작한다. 그나마 보름달이 희미한 등불이 되어 우리의 앞길을 밝힌다. 북미를 횡단하고 있을 때는 저녁 9시 반-10시가 되야 비로소 어두워졌고 새벽 4시 반이면 이미 어둠이 깨졌다.
하지만 멕시코에 들어서고부터는 저녁 8시 경에 벌써 어둠이 들이닥치고 아침 7시 반경이 돼서야 비로소 어둠이 주춤거리며 물러간다. 정말 길고 긴 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 수 없이 내리는 비가 우리를 지체시키니 북미에 비해 주행가능시간이 훨씬 짧아진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북미에서는 연일 140~150km를 달렸으나 이곳에선 120~130km가 고작이다.


내가 2년 전 여행했던 같은 위도상의 네팔과 거의 흡사한 풍경이 연출된다.
많은 초가집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시골의 어느 초등학교

아침 11시경에 시우다드발레스(Ciudad Valles)의 중심가를 어쩔 수 없이 통과한다. 2년 전 내가 지났던 네팔, 인디아, 파키스탄의 여느 시를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만큼 엉성하고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한 시내를 두리번 댈 여유 없이 앞만 보고 빠져나간다.
곳곳에는 무장군인들이 즐비하다. 시내를 간신히 빠져나가자 대규모 무장 병력이 가로막고 있는 검문소까지 나타나며 나를 긴장시킨다.
발레스(Valles)시를 45km지난 지점에서 여관을 발견하고 나는 정지한다. 2시경으로 85km를 겨우 달렸을 뿐이지만 어젯밤 한숨도 못 잤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진흙이 엘파마의 구석구석 그대로 들러 붙어 있고 가방 4개가 진흙투성이라 빨지 않고서는 해결이 안 날 것 같다.
들어가자마자 엘파마를 목욕탕으로 끌고 들어가 칫솔로 구석구석까지 세밀하게 닦고 가방을 모두 빨았다. 5시경에 침대에 눕자마자 그대로 꿈의 나라로 굴러 떨어졌다. 9시경에 눈이 떠져 잠시 일어나 두리번거려보나 결국 나는 또 다시 그 곳으로 점프한다.

진흙의 함정에 빠진 후유증은 심각했다.
4개의 가방까지 심각하게 더럽혀졌고 물속에 쳐 넣었던 엘파마는 아직도 진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결국 여관에서 대대적인 세탁과 엘파마를 목욕탕에 끌고 들어가
칫솔로 정밀 세척하게 된다.


여행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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