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서원과 우포늪
2011-01-05   박규동

2010년 08월 12일  화원-옥포-현풍-도동서원-이방-우포늪   56km

덥고 습했다.
낯선 바람이 몰아쳤다. 태평양에 저장되었던 태양 에너지를 비바람에 가득 채우고 날아온 태풍 댄무는 날 선 홍수만 낙동강에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홍수는 낙동강의 또 다른 이름이 되어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있었다.
강은 맑은 물이 흐를 때가 있고 흙탕물이 흐를 때가 있을 것이다.
강이란 지구의 핏줄같은 것이 아닐까? 지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아침 강이 말하고 있었다.



세 사람으로 단촐해진 우리는 태풍이 떠나간 길을 나섰다.
촬영차량이 따랐다. 오늘까지 3일 간이란다. 화원에서 5번국도 남쪽을 택하고 달렸다. 내가 앞에 서고 다음이 아내, 후미는 하비님이다. 은근한 오르막을 한 5km 가량 올랐다가 또 한참을 은근히 내리 달렸다.
익숙한 바람이 불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낯익은 바람이다. 그럼 그렇지!
현풍에서 우회전하여 도동서원으로 길을 잡았다.
도동서원을 3km 앞에 두고 된 고개를 하나 만났다. 꼭대기까지 거리는 2km가 체 안되게 짧아도 경사도가 만만찮았다. 평균 20%는 되는 것 같다. 한낮 더위와 된 고개가 어울려 우리에게 고통을 주었고 나는 기를 다 쓰고도 모자랐다.
다람재라나!

다람재를 오르며

다람재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동서원

지도에는 강변을 따라가는 편안한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된 길만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도저히 못 오르겠다는 아내를 중간에 쉬게 하고 나는 내 자전거를 재 위에 올려놓은 다음 다시 걸어 내려가서 아내의 자전거를 타고 올랐다. 나도 모르게 숨이 거칠었다.
꼭대기에는 정자가 있었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고 한 숨을 돌린 후에 바라보니 저 아래에 도동서원이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도동서원(道東書院)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도동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없애지 않고 남겨둔 전국의 47개 서원 중에 하나인 곳이다. 본디 서원은 비슬산 기슭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지고 1605년에 이 자리에 다시 세운 후 선조40년(1607)에 도동서원(道東書院)을 하사 받아 사액서원이 됀 뼈대있는 학교다. 이름이 외부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찾는이가 드물지만 낙동강을 끼고 있는 도산, 병산서원에 버금하는 곳이다라는 걸 문화해설사님이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열심히 듣고나니 배가 고팠다.
식당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식당이 있었다. 해설사님의 소개로 찾아 간 곳은 4대강공사 인원들을 위해 임시로 개업하고 있는 그런 곳이었다.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도동서원 바로 200m 옆이었다.

도동서원


서원에서는 낙동강이 바라 보였다.

점심 후 낮잠은 우리의 일과가 되었다.
구지면 어느 마을에서 정자를 만나 낮잠을 잤다. 한참 자고 있는데 마을 노인들이 쉬러 정자를 찾아왔다. 낙동강 공사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는 걸 들었다. 강변의 하천부지에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고도 하고, 그래서 받은 보상금이 좀 작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준설한 모래가 강변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낙동강에서 직선으로 5km 쯤 떨어진 동쪽에 우포늪이 있다.
길을 조금만 돌아서 가면 우포를 들렸다가 갈 수 있겠다 싶어서 하비님의 의견을 물어보니 그러자고 하였다. 이방에서 우포로 좌회전 했다.
언제라도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우포늪이 거기에 있었다.
지구의 역사를 보통 46억 년이라고 한다. 지구가 자라면서 초록별이 되기까지 우주에는 별별 일이 많았을 것이다. 우포늪은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기 전인 1억4천만 년 전부터 생겨 있었던 곳이란다. 빙하가 흐르다 멈춰 선 곳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낙동강의 물이 우포늪을 드나들 만큼 우포늪은 낙동강과 수위가 비슷하다. 얕은 물이 억 년이 넘도록 차 있으면서 온갖 생명체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엄마같은 땅이다. 초록 땅이다.
초록세상이 얕은 물 위에 가즈런히 널려있었다.
고라니가 뛰고, 새들이 날았고, 물고기가 헤엄쳤다. 초록언어를 쓰는 날 것들이 다 모여 살고 있었다.
오! 땅이 쓰는 시간의 언어여!

우포늪





낙동강에 물이 불어나면서 우포늪에도 물이 많이 고였다.
목포제방을 지나 쪽지벌로 가는 길이 물에 잠겼다. 그 길을 따라 나가면 다시 낙동강 주변 도로를 따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날은 어두워졌고 구름도 잔뜩이었다.
따라 나가자던 길을 포기하고 소벌(우포)과 나무벌(목포) 사이에 있는 목포제방 위에 천막을 치기로 하였다. 제방 옆에 집이 한 채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찾아 와 참견을 한다. 집에 와서 물을 떠 가도 좋다느니, 이럴 때 여기서 한번 안 자면 언제 또 자겠느냐는 둥 하더니 얼른 가서 토종 오이를 다섯 개나 따 왔다. 목마른 김에 먹는 오이는 시원하였다.
물을 길어다 밥을 짓는 사이에 촬영팀은 돌아 갔다. 며칠 간 고생이 많았다. 내일은 무림리에 가서 집 안을 찍을 거라고 했다. 아들 영민이와 약속이 된 것 같다.

나뭇가지로 작살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는 원시인이 우포늪에 나타났다.
자전거를 탄 나를 보고는 그게 뭐냐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대답대신 몸놀림을 보여 주었다. 불근늑대와 하비를 보더니 나더러 아내가 둘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내가 일곱이라고도 했다. 밥을 끓이고 찌개를 만드는 냄비는 뭐냐고도 했다. 자기는 물고기를 꼬챙이에 끼워서 구워 먹는다고 했다. 그가 쓰는 초록언어가 자꾸만 꿈 꾸어졌다.
밤 새 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나는 백만 전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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