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승부계곡 넛재 오르기
에디터 : 박규동

2010년 8월 2일 승부-강시골

꽃은 마음을 나비로 물들인다.

자전거 앞 가방에 칡꽃을 꺽어 꽂았다.
승부계곡에 핀 칡꽃 향기가 나그네의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강원도 오지에서 만날 수 있는 적막한 기쁨이다. 그 기쁨의 원초를 찾아 떠나는 상상여행이 그리움을 자극하였다. 누구와 이 꽃을 이야기 하였던가?
앞에서 칡향이 났다. 향을 쫓아 페달을 밟다보면 어느새 자전거는 신들린 듯이 나비가 되었다.

아침을 맞은 승부역

기차를 타려든 욕심을 비웠다.
대신에 넛재 꼭대기 해발 896m까지 20km가 넘는 오르막을 올라가는 것이다. 청옥산1276m를 넘어 현동으로 가는 길이 이 고개말고는 없다.
승부계곡을 거꾸로 오르자니 계곡의 아름다움에 눈이 부신다. 구비마다 학이 날았다. 수 억년을 흐르는 강물에 마모되어 이미 조각이 됀 강바위 위에 꽃이 자라나는 데도 있었다. 강 가로 흐르는 기찻길,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뛰어들 수 있는 웅덩이,  길 가에 핀 잡초꽃이랑 칡꽃......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자전거는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육송정 삼거리에서 35번 국도를 갈아 타고 넛재를 오르기 시작했다.
폭염은 고갯길을 더 뜨겁게 데웠다. 육송정부터 오르막 2km 즈음에서 발견한 계곡 웅덩이가 쉬어가라고 유혹을 했다. 마침 점심 때이기도 하였다. 끓여 먹을 라면과 스토브를 챙겨 강으로 내려갔다. 웃옷만 벗고 물 속에 빠졌다. 물의 정기가 온 몸을 통해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게 여행이다. 어제, 황지에서 띄어 보낸 내 영혼은 낙동강의 속도로 가고 있을 것이다. 을숙도까지 내 영혼의 속도를 따라가자면 내가 서두르지 말아야할 것이다.
느긋하게 물놀이를 하다가 물가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체온을 식히고 난 다음 자전거를 타면 근육에 새로운 힘이 난다. 그 기세로 대궐의 목재로 쓰였다는 춘양목이 우거진 청옥산을 올랐다.


승부에서 빠져 나오는 길

마치 마추픽추를 오르는 산악열차처럼 낙동강을 건너는 교량



넛재를 반쯤 오르다 소나기를 만났다.
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시원하였다. 그러나,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내린 비는 증기가 되어 피어 오르며 습기로 숨을 막히게 하였다.
넛재 꼭대기 휴게소에서 옥수수를 사 먹었다. 꿀맛이었다.

여행 며칠 전에 강시골에 사는 조영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내 블로그를 들락거리던 그가 내 여정을 보고나서 전화를 한 것이다. 넛재 바로 아래 강시골에 내가 살고 있는데 그냥 지나갈 수 없으니 꼭 들렸다 가라는 전갈이었다. 그가 알려준대로 넛재 꼭대기에서 200m를 내려오다가 왼쪽으로난 임도로 접어 들었다. 트레일러를 달고 임도를 가는 것은 포장도로만큼 쉽지않다. 군데군데 빗물에 흙은 씻기고 남은 바위들이 즐비했다. 약 8km의 내리막이다. 짐이 없이 맨 자전거로 다운힐을 한다면 야호! 소리가 절로 날 그런 길이다. 아내가 손목이 저리다고 하여 두 번을 쉬었다. 비에 젖은 임도에 갑자기 차 소리가 나더니 하얗게 모시옷을 입은 영래님이 마중을 나왔다.


길 옆에 있는 폐가, 명패가 걸렸던 자리에 풀이 자란다.

춘양목이 우거진 넛재를 오르다 쉬고 있다.

강시골이란 낙동강의 서쪽에 난 골짜기라는 뜻의 강서골이 변해서 생긴 이름이란다.
조영래님의 집은 강시골 중턱, 주거 한계지점에 자리잡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몇 동의 텐트가 지어져 있었다. 그의 손님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명상을 지도하는 그의 또다른 손님이었다.
환하게 맞아주는 부인 한희숙님의 맑은 웃음은 골을 빛나게 했다. 아버님과 어머님께 인사를 올리고 우리는 회포를 풀었다.
조영래님은 산악스키를 하면서 만난 후배 지기이다. 한마디로 선비같은 사람이다. 아직도 휴대폰이 없는 채식주의자다. 남에게 그의 좋은 생각을 강요하는 일 없이 평생을 자신의 신념으로 사는 그를 보면 그가 자랑스럽다. 아직도 암벽등반을 놓지 않고 살고있다.

여정에 하루가 남게 되었다.
하루 더 쉬어 가라는 주인 내외의 환대가 고마워 내일은 쉬기로 하였다. 동행하고 있는 나그네님은 고향친구를 만나서 놀다가 모래 아침에 만나기로 하고 친구의 차를 타고 떠났다.


명상가들이 친 텐트 옆에 우리도 텐트를 지었다.
솜씨 좋은 한희숙님의 저녁식사는 채식으로는 최고의 요리였다. 식후에는 아껴두었던 보이차가 나왔다. 차향만으로도 우정의 두께가 느껴져 마시기를 거푸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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