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4~09/15
먼 곳의 희망, 가까운 곳의 진리
2010-10-20   박규동

2010년 08월 05일 청량산-도산서원-와룡초등학교 (44km)

먼 곳이 없다면 가까운 곳도 없다.
먼 곳이 없다면 희망이 없고, 가까운 곳이 없다면 진리가 없다. 먼 곳이 없다면 암담할 것이오, 가까운 데가 없다면 참담할 것이다. 멀고 가까운 데를 알아차리자는 게 나의 여행이다. 자전거여행은 느리지만 가까운 데를 먼 곳처럼 여행하는 공부다.

청량산에서 도산으로 가는 길. 퇴계는 어린 시절 청량산에서 공부하였다.

길 위에서 만난 할아버지, 가슴에 잠든 손녀를 안고 있다.

낙동강에서 어진 사람이 많이 나기로는 도산구곡을 친다.
안동의 도산에는 낙동강이 아홉구비로 돌아나간다고 하여 도산구곡이라 하였고, 그 구비마다 어진 사람이 나타나 나라에 큰 보탬이 될 거라는 소문이 났었다.
그 구비 중 한 곳에 퇴계 이황이 자리를 잡아 도산서당을 차리고 후학을 길렀다. 그 후학이 류성룡 등의 영남학파이며 많은 인재가 났다.

청량산을 떠난 일행은 도산면사무소 앞에서 좌회전하여 길을 더 가다가 먼저 퇴계종택에 들렸다.
탈상을 한지 얼마되지 않은 흔적이 고고하였다. 종손께서는 어두워진 귀로 인기척을 몰라하시며 한지에 글을 쓰고 계셨다. 秋月寒水亭 앞에 섰다. 1929년 퇴계의 13대 사손 하정공이 옛규모를 참작하여 새로 지었다는 종택에서도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가을달처럼, 얼음물처럼 감성과 이성에 충실히 살아달라는 부탁을 후손들에게 남겼을 것이다.

퇴계가 도산에서 내려와서 처음에 살던 집

퇴계종택에서

검정 비닐의 용오름

퇴계종택에서 나와 이육사문학관으로 갔다.
오늘도 폭염경보가 내린 날이다. 바람도 없다. 한가한 시골도로를 달렸다. 여행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에 탄성을 질렀다. 밭고랑에 접초제거용으로 덮어 두었던 검정 비닐 50여m가 분지에서 일으킨 고온 상승기류를 타고 하늘로 용오름하는 것이었다.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문학관은 작은 고개를 넘어서 있었다. 고개를 넘자니 더위에 열기가 더하여 몸은 불덩이가 되었다. 고맙게도 문학관을 관리하는 직원이 먼길을 자전거로 왔다고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냉방이 잘 됀 시설에서 귀한 문학여행을 하였다. 이육사는 퇴계의 14대 손으로 병술국치 6년 전(1904년)에 도산 원촌에서 태어났다. 문학활동을 하면서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일본 헌병에 피검되어 북경으로 압송 1944년 41세의 나이로 북경감옥에서 별세하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의 시 "청포도"를 좋아 하였다.

이육사 문학관에서


                    靑葡萄
                                      이육사

내 고장 7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점심을 해 먹었던 솔밭, 지상 최고의 레스토랑


점심은 퇴계묘소에서 북쪽에 지어진 솔밭 정자에서 밥을 지어 먹기로 하였다.
음식을 사 먹을 마땅한 식당이 없기도 하였다.
인디고뱅크와 하비님이 준비해 온 새로운 반찬은 입맛을 당기게 하고도 남았다. 자전거캠핑여행에서 얼음에 채워두었던 시원한 깍두기를 먹을 수 있다니.....
압력밥솥에서 익은 밥은 언제나 꿀맛이다. 식후에 끓여주는 인디고뱅크님의 누룽지는 야영에서 먹어야 제맛이 난다. 아예 중독이 돼 버렸다.

도산구곡에서도 으뜸은 역시 도산서원이다.
벼슬을 두고 도산에 내려온 퇴계는 낙동강이 시원하게 바라보이는 이 곳에 도산서당을 지었다. 몸소 4년에 걸쳐 지었다고 하니 문살 하나라도 착하지 않은 게 없다. 도산서당에 기거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서당이 후학들에 의해 지금처럼 서원으로 크게 지어지고(1574년) 수 많은 재사가 이 곳에서 배출되었다. 1575년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退溪 李滉(1501~1570)은 조선조의 문신이며 학자로 고려말에 유입된 성리학의 토착화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한다.
공부를 하여 나라를 위해 일한 다음 후학을 가르치는 게 어진사람인 것이다.

도산서원에서 강을 건너 보이는 풍경, 시험을 치뤘던 곳이다.

도산서원에서 안동을 향해 자전거를 달렸다.
작은 언덕을 몇 개 오르내리다 보니 날이 저물었다. 와룡초등학교에 들었다. 운동장 주위로 정자가 몇 개 있었다. 수도꼭지가 가까운 곳에 텐트를 치고 밥을 지었다. 직원을 만나 허락을 얻으려고 하였으나 만나지 못 하였다. 달리기를 하러온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물어 보나마나란다. 그냥 자는 게 이곳 인심이란다.
인디고뱅크님과 하비님이 싸온 넉넉한 반찬에 신선주를 곁들였다.
다섯 사람에 텐트는 네 동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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