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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고난의 파나마 국경 넘기
2011-04-09   이호선

새벽 종이 울리고 새 아침이 밝았다. 어제는 인터넷 카페에서 6시간에 걸쳐 중미 편의 사진과 스토리를 서울로 보냈다. 이 여행을 시작한 후, 주행 중에는 노트에 짧은 메모만 하고 한 개의 큰 지역이 끝남과 동시에 여관에 눌러앉아 며칠이고 몰아서 긴 스토리를 써 왔다. 미국을 횡단했을 때는 큰 비에 잡혀 있지도 않았고 별다른 사고도 없었기에 일사천리 주행을 계속한 후 뉴욕에 도착해 3주간 머물면서 그 동안의 긴 이야기를 두 번, 때로는 세 번 쉴 숨을 한 번으로 생략해 가며 바쁘게 썼다.
그러나, 멕시코에서는 사고를 겪으며 많은 날들을 여관에 머물러야 했고 코스타리카와 파나마에서는 태풍과 상습적인 폭우로 여관에 잡혀 있곤 하면서 여관 방에서 스토리를 전개시킬 수가 있어 이 번, 중미 편은 주행의 끝남과 동시에 바로 서울로 전송이 가능하게 되었다.

파나마시티의 북쪽에 있는 항구, 콜론(Colon)을 향해서

어쨌거나 홀가분한 기분으로 5일간 파묻혀 있던 개미굴의 방을 뛰쳐나와 남미의 시발 점인 북부 콜롬비아 행 배를 타기 위해 70여km 떨어져 있는 파나마 시티의 북쪽 항구, 코론(Colon)으로 방향을 잡고 달린다.
잔뜩 인상 쓰고 있는 하늘이 또 어느 순간 인내심을 잃고 수문(水門)의 빗장을 빼 집어 버릴지 모르기에 페달 질의 수위(水位)를 높인다. 파나마의 상징, 파나마 운하를 따라 이어지는 좁은 길을 달리다가 반갑게도 나의 살던 고향, 대한민국에서 출항해 태평양을 건너 달려 온 한진 해운의 대형 컨테이너 선이 파이럿(Pilot)보트의 길 안내를 받으며 반대 편의 걸프 만을 향해 위풍당당 항해를 계속한다.

갓길도 없는 빽빽한 수목의 좁은 도로를 간신히 빠져 나와 여유 있는 국도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의 수문이 기어코 열리면서 대지는 졸지에 물바다가 되어 버린다. 이곳의 비는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 만다.
'아, 오늘도 "비의 나그네"가 되어 비 속의 항해를 계속 하게 되겠군! 이곳의 하늘은 도대체 하루 몇 톤의 구름을 모으길래, 하루 종일 쏟아 붓고도 다음 날에 또 태연하게 이 세상을 물바다로 만드는가?!'

콜론시의 모습. 많은 나라에서 온 민족들이 모여 또 하나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이루고 있다.


저녁 4시 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코론(Colon)'시의 중심가로 들어 와 항구를 찾는다. 어느 나라이건 다 마찬가지로 항구 주변은 치열하고 적나라한 삶의 현장으로 거리 곳곳, 골목의 곳곳은 바다의 짠 소금내음만큼이나 사람들의 진한 땀냄새로 절어있다.
행인들에게 묻고 물어 도착한 항구는 손바닥만한 선착장에 불과한 곳으로 수십 톤에 불과한 배들이 서너 척 정박해 있었는데 모두가 생필품의 보따리무역을 하고 있는 배들로 뜨내기 승객들을 태워 부 수입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배마다 부르는 배 삵이 천차만별로 일정한 가격표와 운항스케줄이 전혀 없다. 운 좋으면 싼 값에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며 많은 돈을 뜯길 수 있는 도박성의 승선이지만 그저 믿고 타보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안전한 방법은 정기 여객선을 타는 것이지만, 그것은 가격이 상당히 비싸고 항상 있지 않다. 정박해 있는 배가 단지 세 척뿐인데, 두 척은 언제 떠날 지 모르고 한 척은 물경 1,000$을 부른다. 실제로 이곳에 와서 물어보니 배로 콜롬비아까지 가는 것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 단 한 번의 승선으로 북부 콜롬비아까지 가는 것이 없고 세 번 정도 릴레이로 배를 갈아타야만 가능한 것이다.
코스타리카에서 만난 스페인의 대륙횡단 바이커, 후앙(Juan)이 자신도 소형 배를 타고 콜롬비아에서 파나마로 건너 왔지만 승선한 배의 선장으로부터 상당한 돈을 뜯겼다고 토로하지 않았던가. 혼란한 마음으로 부두주위사람들에게 물으니, 그들은 배편은 위험천만한 일이니 차라리 소형비행기편으로 가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안전하다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소형비행기도 최소한 두 번을 갈아 타야 한다.

무엇보다도 배의 운항예정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어 나는 이미 파나마 시티에서 비에 흠뻑 젖어 달려 온 70여 km의 길을 이번엔 5$을 지불해 버스를 타고 다시 파나마시티로 달려간다.
파나마 시티에 도착하자마자, 텅 빈 위의 절박한 아우성도 무시해 버린 채 소형비행기 비행장으로 맹렬한 페달 질을 거듭하며 달려간다. 티켓 오피스에 들어가서 비행기삯을 물으니, 가격은 분명 싸지만 파나마국경까지만 운행하고 파나마국경에서 콜롬비아 국경까지는 소형 배로 가서, 또 다시 콜롬비아의 소형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 타야 한다.
파나마와 콜롬비아의 국경지대는 전혀 길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 이 지경이다.
국경지대는 상당히 높은 산악지대로 정글이며 많은 마약관계자들이 우글대는 곳으로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지대에 이어 중 남미 최악의 위험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거나 조금이라도 경비를 절약할 방법이란 이 길 뿐이라 티켓을 구입하려 하니 이젠 또 티켓이 없다며 9일을 기다리라고 한다.
정말 파나마는 나에게 완벽한 함정이다. 이제서야 파나마가 세계적으로 많은 선박을 보유한 나라 중에 하나가 된 이유를 알 것 같다. 파나마에서 미주 최대시장인 북미로 가려면 육로로는 멕시코를 비롯한 많은 작은 중미제국(齊國)을 거쳐야 하고 남미로 가려면 길이 없다. 결국은 거칠 것 없는 바다뿐이다.

파나마에서 중국인들은 식당, 슈퍼, 생필품가게, 야채, 고기 시장 등,
거의 모든 상권의 주역이다.


'나는 과연 이 수렁에서 기어나갈 수 있을까?!'
숨이 콱콱 막히지만 가만히 앉자 있기보다는 움직이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또 다시 페달을 밟는다. 왔던 길을 되 돌아 공허한 페달 질을 계속하다가 왼쪽 모퉁이에 꿈같은 대한항공여행사 간판이 나의 눈을 완강하게 잡아 당긴다.
난데없는 곳에 생각지도 않은 대한항공!
그래, 이제 길은 하나뿐으로 아무리 비싸도 직항비행기로 가는 수 밖에. 내가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파나마인 인듯한 두 남녀 직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반긴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그들은 무척이나 즐거운 표정이다. 나는 그들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여행사에 부탁해서 콜롬비아 행 비행기 표를 싸게 살 수 있는가를 묻자 그들은 몇 군데 전화를 하더니 근처에 중국인과 파나마 인이 하는 여행사를 나에게 소개하고 나는 곧 그 곳으로 향한다.
나는 그 여행사에서 1시간 이상이나 그들을 조여 겨우 찾아 낸 것이 코파 항공사(COPA Airline)의 티켓으로 468$에 콜롬비아의 칼리(Cali)행인데, 몇 군데 다른 목적지 중 제일 빠른 것으로 내일 아침 11시이다. 나는 한 참 동안 의자에 앉아 468$의 의미를 씹고 되씹은 끝에 티켓을 사고 이미 5 일간 머물렀던 파나마 시티의 개미굴 여관으로 달려간다.

내가 콜롬비아 행 비행기표를 구입할 수 있게 여행사를 소개해 준 대한 항공사 직원들.
왼쪽부터 압둘 바세트(Abdul Baset), 그래디스(Gladys), 포사다(Posada).
그들은 나를 돕기 위해 분주히 휴대폰의 숫자판을 두들겨 댔다.

나는 비행기 탑승전야에 유난히 긴장한다. 내가 아주 오래 전 일본에 있을 때, 나는 매년 한 번씩 2-3주정도 한국에 돌아 오곤 했는데, 한 번은 일본에 있는 친구들과 송별회랍시고 밤 늦게까지 술을 푸곤 다음날 눈을 떠 보니 오후 1시가 넘어 버렸다. 비행기 이륙시간이 11시였는데 말이다.
내가 탔어야 할 비행기는 내가 결코 건널 수 없는 깊고도 험한 동해의 상공을 일찌감치 날아 이미 김포공항에서 손님과 짐을 풀고 있었다. 나는 그저 잔뜩 부은 두 눈을 연신 비벼대며 창문 밖의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해, 나는 한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눈을 감고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들어버렸는데 갑자기 나의 눈 앞을 가득 채운 아주 슬픈 표정의 어머니 모습에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앉았다. 이 곳은 개미굴이라 조그만 창문조차 없다.
시계를 보니 4시 반이다. 결코 좋은 모습의 어머니가 아니었기에 나의 가슴이 산산이 찢어지나 오랜만에 마주한 어머니였기에 기쁜 마음 또한 간직한 채, 나는 눈꼽만 툴툴 털어버리고 여관을 나와 새벽의 거리를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른 시각이건만 거리에는 벌써 노점상들이 그들이 취급하는 물건들의 진열을 모두 끝낸 뒤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고 있다. 새벽은 이미 그들에 의해 깨져버린 지 오래다.
국제공항까지는 27km 정도이지만 파나마 시티의 중심가를 관통해서 가야 하기 때문에 러시아워에 걸렸다가는 또 한 번 지옥 같은 함정에서 허우적대야 한다. 중심가를 간신히 빠져 나왔다 싶었는데, 중심가의 외곽에서부터 국제공항까지는 해안을 따라 달리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유일하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어둠이 도로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고 달리는 차량도 많지 않아 나는 숨 죽이고 페달에 무차별의 힘을 가하며 전력 질주한다.
중간 중간 톨게이트가 나타나고 차단기가 나를 가로 막지만 정작 톨게이트 직원은 어두운 도로의 구석을 따라 유령이 되어 소리 없이 달려 지나가는 나를 발견조차 하지 못한다.
20여km의 자동차 전용도로구간을 맹렬하게 달려 공항입구까지 약 3km정도를 남긴 마지막 톨게이트에서 나는 결국 톨게이트 직원의 강력한 태클에 걸리고 만다. 내가 더 이상 어둠 속에 몸을 숨길 수가 없는 시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그에게 나는 자전거여행자로서 공항까지 가기 위해서는 유일한 이 길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음을 강조하자, 그는 나에게 차량들이 살인적인 속도로 달리고 있는 이 길에서의 나의 안전을 심각하게 강조한다.
결국 그는 휴대전화로 도로공사의 직원을 부르고, 10여 분 후 젊은 직원이 한국의 '다마스'와 아주 똑 같은 시보레(Chevoret)차량을 타고 우리에게 달려온다.
그 젊은 친구는 투덜댐이나 싫은 표정도 없이 그의 차 안에 가득 차 있는 수 많은 자질구레한 도로정비장구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 도로 위에 내려 놓으며 나의 자전거가 들어 갈 공간을 만든다. 나는 비좁은 공간에 자전거를 힘겹게 구겨 쳐 넣고 앉아 공항입구까지 3km를 그가 있는 대로 볼륨을 올린 라디오 음악소리에 맞춰 콧노래 부르며 달려간다.
우리를 공항입구에 내려놓고 황급히 돌아가는 그를 불러 2$을 건네자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환호성을 지른다. 2$이면 한 끼 식사대이다. 그의 표정은 마치 막 떠 오르는 태양처럼 눈 부시게 밝다.

일찌감치 공항대합실에 들어가 어슬렁거리며 여유를 부리다 대합실 구석에서 자전거를 분해해 천막용 비닐로 자전거를 포장한 후, 체크인을 하기 위해 보딩 창구로 간다.
"뭐라고?! 자전거에 107$을 부과한다고?!! 이게 무슨 개 뼈다귀 같은 소리야?!"
"뭐?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또 있다고?!"
항공사 직원은 포장된 자전거를 자로 정확히 잰 후 크기와 용적까지 계산기로 정확하게 계산해 또 다시 '추가 부과'까지, 결국 더블 부과를 한다. 그 뿐만 아니고 공항대합실 구석에 있는 비닐 포장 대에 가서 자전거를 대형비닐로 수도 없이 감고 감아야 하는데 그 비용이 또 다시 20$로 세금까지 붙어 총 180$이다.
기가 막혀 매니저를 불러 따지지만 매니저는 직원보다 한 술 더 떠 탱자탱자하며 느믈거린다. 결국 나는 탑승을 포기하겠느냐는 그들의 협박에 무릎을 꿇고 나의 심장에 면도칼을 그어대는 심정으로 카드를 긁고 말았다. 비행기 티켓 값만으로도 이미 가슴이 터져 버렸는데 거기에 쌍 코피까지 터트린다. 중국에서도, 모로코에서도, 캐나다에서도, 일본에서도 자전거에 부과는 커녕 자전거에 대해 단 한 마디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고소해하고 환희에 찬 모습에 나의 귀중한 어금니가 닳아 없어질 지경이다.

터져버린 가슴과 흐르는 코피를 간신히 추스리며 공항대합실의 의자에 고통스럽게 앉아 있는 동안 대합실의 넓은 홀에서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파나마 민속가무단의 공연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말 정신 없이 두들기고 흔들어대고 뺑뺑이 치며 돌아간다.
'제발 부탁이야, 이제 그만 좀하고 모두들 집에 돌아가 줘!! 나를 제발 조용히 있게 좀 해주라!'
파나마의 땅을 이륙한 지, 2 시간도 채 안되어 비행기는 그 웬수 같은 높은 산을 확 뛰어 넘어 착지한다.
'여기는 분명 남미의 시작, 콜롬비아?! 결국 나는 파나마를 탈출 한 건가?!!'

콜롬비아의 칼리(Cali)시 입구.

공항을 나서 칼리(Cali)시를 향해 어쨌거나 나의 일과인 페달 질을 시작한다. 페달 질을 계속하는동안, 어제부터 만 24시간 동안 계속되었던 불행의 연타로 만신창이가 되어 너덜거리는 온 몸 위로 부딪혀 오는 바람이 상쾌하다.
'그래 노트의 페이지는 이미 넘겨졌어. 이젠 또 다른 새로운 페이지 위에 글을 써야 되겠지.'
"나나 나나나, 나나 나나나…………두두 두두두,
젊음이여, 뜨거움이여!
젊음이여, 푸르름이여!
달려간다, 달~려~간다↗"

누군가 나에게 손을 흔드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려보니 수 많은 현대와 기아 승용차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나에게 '하이 파이브'를 보낸다.
중남미지역을 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지도도 필요 없이 행인들에게 그저 북미에서부터 중남미를 잇는 팬 아메리카나(Pan Americana)가 어느 것인지를 묻고 방향만 정하고 달리면 된다.
20여 km를 달려 칼리(Cali)시의 변두리지역에 이르자 태양은 어느덧 지평선아래로 묻혀 버리고 어둠이 대신 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흩어져 있던 구름들이 겹겹이 모여드는가 싶더니 이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물방울들을 뿌려댄다. 잽싸게 도로 변에 있는 여관에 들어가 방값을 물으니 16,000콜롬비아 페소(8-9$)란다.(100 $=18,000페소)
방에 자전거를 들여 놓고 식당을 찾아 오락가락하는 비를 맞아가며 도로 뒤편의 골목길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여관 주인은 이미 나에게,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은 목이 잘리는 제스처와 함께 나에게 골목 깊숙이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날렸다. 중남미지역의 모든 도시들마다 큰 도로에서 떨어져 있는 깊은 곳은 한결같이 치안부재지역으로 현지인들조차 들어가기를 꺼린다. 도시 시골을 불문하고 모든 여관들은 출입문부터 강력한 철창문으로 자동개폐장치가 설치되어있어 안에서 종업원이 창살너머로 상대를 확인한 후, 비로소 문을 열어 준다.

피엔다모(Piendamo)시(市)의 한 빵집에서 종업원들과 함께.
그들은 북한의 ‘연평’도발과 한반도의 정세에 대해 언성을 높여가며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동양무지(東洋無知)가 대세인 중남미에서 그들은 경이로운 존재였다.

동네의 많은 이들의 눈총에 정 조준 된 채, 잠시 어슬렁거린다. 골목길에 있는 가게 주인들은 생각지도 않은 아시아인, 더구나 한국인의 출현에 흥미진진한 표정이다. 그들은 나에게 북쪽의 한국인인가, 아니면 남쪽의 한국인인가를 묻고는 나 자신도 아직 그 자초지종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며칠 전 터진 북한의 '연평도' 도발에 대해 심각한 반응과 함께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나는 이곳의 T. V 화면 위에서 북한의 도발을 처음 알았다. 그들의 공허한 논쟁과는 상관없이 그들이 한국을 그 정도까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흑인계 콜롬비아 인이 하고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여관으로 돌아온다. 콜롬비아에 들어서자 흑인계 남미 인들이 상당히 많다. 멕시코를 제외하고, 중미제국(齊國)들은 남쪽으로 내려오면 올 수록 인종들이 많이 섞여지고, 남미의 시작인 콜롬비아부터는 흑인까지 가세해 아주 다양한 모습이다.
많은 섞임과 다양함으로 콜롬비아는 더욱 평등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멕시코에선 심각한 괴리감을 느낄 뿐이었다. 이곳 콜롬비아에서도 멕시코를 비롯한 모든 중미권 나라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수단이 충분치 않아 갖은 종류의 차량들, 심지어는 포장 친 픽업트럭과 천막 친 트럭들까지 대중교통수단으로 동원된다. 내가 거쳐 온 중남미 나라들의 어느 곳도 전철은 없었다.


여행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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