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리스트의 나라 콜롬비아
에디터 : 이호선

칼리(Cali)시(市)를 떠나 포파얀(Popayan)시(市)를 향해 달리는 동안 제 2의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을 꿈꾸며 도로주행을 하고 있는 많은 소년 사이클리스트들이 나의 주행을 잠시 멈추게 한다.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그들 옆에는 한결같이 스쿠터나 엔진이 달린 자전거를 탄 그들의 부모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따라 붙으며 그 소년들의 페달 질을 주시한다. 콜롬비아에는 세계적인 사이클리스트들이 상당수 있고 콜롬비아 인들에게 자전거는 단순한 삶의 수단 뿐 아니고 꿈의 두 바퀴이고 두 페달인 것이다.

콜롬비아에는 세계적인 사이클리스트들이 많다.
일요일을 맞아 아버지는 아들의 사이클 훈련교관이 되었다. 아버지가 타고 있는 이 빨간 자전거에는 엔진이 달려 있어 그의 아들이 기운이 빠져 허덕이자 자신의 엔진 달린 자전거에 아들의 자전거를 끈으로 연결해 아들을 도로변에 있는 과일 노점상에 끌고 와 피로회복을 위해 과일을 먹이고 있다.


유명 제과회사의 엔지니어인 마누엘(Manuel)은 사이클 매니어로 일요일을 맞아 MP3를 귀에 꽂고 도로 위에서 주행(走行)의 도(道)를 닦으며 자유와 평화를 만끽하고 있다.
그는 나의 자유로운 영혼, 자유로운 삶을 부러워하고 나는 그의 행복에 겨운 가정을 부러워했다.
인생은 결국 공평한 거야. Life is fair!


또 따른 사이클 훈련 팀. 아버지는 스쿠터를 타고 좇으며 헉헉대고 있는 아들을 독려한다.

결코 생각지도 않은 평지가 당분간 계속되어 평화스런 주행을 계속하고 있는데 한 사이클리스트가 소리 없이 다가와 나를 놀라게 한다. 이름이 마누엘(Manuel)로 자이언트(Giant)를 타고 있는 그는 상당한 경력의 자전거 매니어로 보인다. 유명 제과회사의 엔지니어로 삶의 여유가 있어 보이고 많은 외국을 여행 하기도 했다는 그는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그 속에 내장되어 있는 그의 10세 된 예쁜 딸을 나에게 보이며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어깨에 뿌드득 힘을 준다.
그가 꾸욱 찌른 바늘에 나의 질투 샘은 터져 버려 속이 쓰리고 아프다. 자신은 38세라며 나의 나이를 갑작스레 묻는 그에게 내 나이가 51세라고 했더니, 그는 이제껏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50대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본 적도 들은 적도 결코 없다며 휴대폰 카메라를 나에게 들이댄다.
그는 내가 상당히 부러운 듯 한 동안 말을 잃고 있었고, 나는 자신의 목과 어깨에 무리한 힘을 주어 근육통이 생기는 것도 괘념치 않고 나에게 자신의 예쁜 딸을 자랑하는 그가 부러워 말을 잃고 있었다.
Es la vida (그게 바로 인생)! 우리는 10km를 함께 달린 후, 각자 자신의 길로 냉정하게 갈라 섰다.

평화스럽기만 했던 평지도 결코 길지 않게 끝나고, 오르막과 내리막의 길이 시작되는데 도로의 굴곡 또한 살인적이다. 산등성이를 그대로 넘고 넘어 달리는 산악도로의 커브가 ∠90 전후가 아니라 ∠180로 팽팽 돌아간다. 지도상으론 언제나 명쾌한 직선으로 표현되고 있는 길인데 말이다.
이곳의 도로는 상당량의 tan θ값이 반드시 붙어 다니는 심각한 오르막길이다. 내리막길이 한 번 시작되면 10,20km씩 계속되는데 두 손과 두 발은 과도한 긴장으로 감각이 없어 질 지경이 된다. 오르막 아니면 내리막뿐으로 평지의 구간은 없다.
이곳은 사이클리스트를 위한 최고 최적의 전지훈련장임에 틀림이 없고 콜롬비아의 사이클리스트들은 강할 수 밖에 없다. 이곳의 도로는 우리나라의 그것처럼 낮고 편평함의 원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굽이굽이의 산등성이를 그대로 타고 올라가며 도로가 만들어진다.


콜롬비아의 지반은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로 진흙내지 토사다.
시도 때도 없이 도로 위로 무너지고 흘러 내린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삽을 메고 달리는 수 많은 오토바이 족들을 자주 목격하는 데, 그들이 바로 도로보수 노무자들로 도로 위에 무너져 내린 흙을 걷어 낸다.
답답해 보일지 모르나 더 이상 흘러내릴 흙이 없을 때까지 걷어내고 걷어 낼 뿐 별 다른 대책이 없다.


나의 눈에 들어 온 이곳의 지형은 단단한 암반의 우리나라와는 완전 딴 판으로 붉거나 검붉은 진흙토사다. 우리나라에서는 암반의 산이 무너져 내릴 걱정 없이 산등성이의 측면을 일사천리로 밀어 부쳐 길을 낸다. 이 곳에서는 어설프게 산등성이를 깎다가는 산 전체가 무너져 내릴 판이다.
비가 조금만 많이 오면 도로 양 옆의 결코 높지도 않은 산등성이가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니고 물과 함께 흘러 내린다. 비가 많이 내리면 도로 위로 흘러 내리는 토사만 문제가 아니라, 아스팔트를 이고 있는 땅 자체가 물에 녹아 내리며 가라앉아 아스팔트가 끊어지고 무너져 내려 않는다.
이런 연약한 진흙토사의 지형은 코스타리카와 파나마, 그리고 콜롬비아에서 제일 심한 것 같다. 내가 태풍에 잡혀 있던 코스타리카에서 산과 집들은 모두 진흙 물과 함께 흘러 내렸다. 강우량 또한 제일 많은 이 지역은 모든 강물이 붉은 황토 물이지만 물 맛은 희한하게 좋다. 코스타리카에서부터 나는 화장실 물이건 목욕탕 물이건 괘념치 않고 마셨다. 물맛이 달면 좋은 물이다.
이곳의 집들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 아니고 '니상누각(泥上樓閣)'이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셀 수 없이 많은 도로보수노동자들이 삽 한 자루씩 어깨에 메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간다. 무너져 내린 곳이 결코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무너져 내리면 긁어내고, 또 긁어내며 더 이상 무너져 내릴 것이 없을 때까지 열심히 긁어 내 버릴 뿐 다른 방도가 없다.
콜롬비아를 달리면서 멕시코에서 경험했던, 선인장들까지 합세한 장대한 지형이 또 다시 나의 눈 앞에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하지만 비는 여전히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며 나를 진저리 치게 만든다.

콜롬비아 땅에 들어 와 나를 즐겁게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콜롬비아 커피! 이곳 콜롬비아에서 커피는 물이고 숭늉이고 차이며 음료수이다. 우리나라의 자판기 커피값 300원에 향기로운 콜롬비아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한 잔 500페소) 나는 아침부터 잘 때까지 오로지 커피만 마시고 커피 힘으로 달리고 있다. 콜롬비아를 떠나게 되면 맛있는 콜롬비아커피를 이렇게 싼 값으로 마실 수 있는 곳이 지구상에 다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마을, 로하스(Rojas)에서 하룻밤을 보낸 호스텔.(5,5$)

나리니오(Nariño)의 이름 모를 작은 마을의 호스텔(5.5$)에서 하룻밤을 지샌 후, 새벽의 상쾌한 산중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며 일찌감치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9시 반 경, 배고픔과 오르막길에 헐떡이며 도로변의 한 식당에 들어가 식탁에 앉자마자, 정말 대단한 볼륨의 젊은 여인이 "치노(Chino)!"를 온 세상을 향해 힘차게 부르짖음과 동시에 얄궂은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의 초대형 엉덩이를 찬란하게 흔들어 댄다.
'도대체 치노(Chino)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이기에 단 한 명의 유사(類似)"치노"의 출현에 그녀가 저토록 인생 최고의 환희를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걸까?!!'
그녀뿐만 아니고 식당 안에서 일하고 있던 적지 않은 수의 종업원들조차 지칠 줄 모르게 출렁이며 돌아가고 있는 그녀의 엉덩이의 율동에 맞추어 즐거움과 만족감 속에 몸을 뒤틀고 있다. 초대형 엉덩이의 장본인은 식당주인의 딸인 듯하다.
"그대들, 미안하기 짝이 없으나 나는 중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인데…"
일순, 태엽이 끊긴 곰 인형처럼 그녀의 엉덩이의 움직임이 정지하고 잔뜩 벌어졌던 모든 이들의 입들을 무거운 침묵이 틀어막으며 시간의 흐름조차 멎은 듯 고요해진다. 그녀 엉덩이의 율동에 박자와 리듬을 제공하고 있던 오디오의 강력한 라틴음악만이 죽음같이 고요한 공간을 넘나들며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아우성치고 있을 따름이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 내가 그냥 어금니 질끈 악물고 입술 깨물며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으로 그냥 앉아 있을 걸…… 그녀의 위대한 엉덩이가 환희의 절정, 엑스터시(Ecstasy)까지 돌아가 버리게 놔둘걸…… 나 자신의 경솔함이 원망스럽다.'
중국인을 뒷전이 아닌 면전에서 박살내고 있는 그들을 탓해야 하나, 아니면 중국인들 때문에 중국 주위에 살고 있는 수 많은 동양인들이 한 다발로 싸 잡혀 중국인이 되고 있으니 중국인을 원망해야 할지 정말 종잡을 수 없이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웬일인지 식탁 위에 배달된 접시 위의 고기가 나무뿌리처럼 질기고 밍밍할 뿐 아니라 향기롭기만 하던 커피 맛이 시고 떫기조차 하다. 그러고 보니 파나마에서 그렇게 많던 중국인들이 콜롬비아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자취를 감추었다. 도시를 지날 때 간혹 중국식당을 목격할 뿐이다.

전 날 저녁 도로변에 있는 주인 없는 과일 가판대의 꾀죄죄한 지붕아래서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2시간 가량 함께 했던 모터바이커, 이메르(Yimer)를 다음 날 아침 도로에서 다시 만난다.
대단한 인연이다.
그는 20대 초반의 청년인데 15년 전에 두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된 채, 거칠고 메마른 삶을 살고 있지만 정말 순수하고 맑다. 그는 자신은 아침을 이미 먹었다며 나에게 카스텔라와 커피를 산다.(결국 내가 지불했지만)
그의 오토바이의 기름 미터기를 보니 기름은 이미 바닥나 있다. 그는 상점 옆에 있는 동네 주유소(드럼통에서 깔때기로 기름을 팔고 있다)의 주인아저씨에게 길 바닥에서 주어 온 500ml 플라스틱 음료수통을 건네며 1,000페소(600원)만큼의 기름을 팔라고 애원한 끝에 겨우 500ml의 기름을 받아 들고 환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오토바이를 향해 달려온다.
그 청년의 삶의 스토리를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한 키가 아주 큰 기름집 아저씨는 가게 문 앞에 선 채, 그 청년을 지긋이 바라 보고만 있다.


언덕 위에서 나를 향해 "Buenas tardes(Good Afternoon)!"를 외치는 삼 남매.
숨을 헐떡이며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나를 시종일관 근심스럽게 내려다 보고 있던 그들은 내가 그들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 뒤편에 그들의 집이 있는 듯, "물, 물, 물 가져 와!"를 외쳐 댄다.
그들은 내가 목이 말라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다가온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야, 아니야, 난 괜찮아. 나는 그저 너희들을 기억하고 싶을 뿐이야!"


장대한 콜롬비아의 풍경 속에 첨벙 뛰어들어 구불구불하고 아슬아슬한 산악도로를 달리고 있는 동안 하늘은 쉴 새 없이 표정을 바꾸며 웃다간 인상을 쓰고 울기까지 하며 변덕만발이다. 하늘의 변덕을 그 누가 말리랴! 가는 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회색 빛 SUV인 투산(Tucson)이 경적을 울리며 나를 스쳐 지나 가는가 싶었는데 100m 전방에서 좁은 왕복 2차선의 산악도로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스레 U턴을 시도하더니 나를 향해 다시 달려 온다.
차가 내 앞에 정지하자마자 50대의 아저씨와 그의 딸과 아들로 보이는 소녀 소년이 차문을 박차고 나오며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이 아저씨는 그가 마치 그의 두 발로 먼 길을 달려 온 듯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아이들이 나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가던 길을 되돌려 왔다고 한다.
그가 타고 있는 차가 현대의 '투산(Tucson)'이라 그런지 그와 그의 딸 아들이 그들의 친근한 인상만큼이나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콜롬비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나를 향해 경적을 울리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격려하는 운전자들이 놀랍게도 많다.
세계적인 사이클리스트들이 많은 나라인 만큼 바이커 들에게 남다른 이해와 관심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딸과 아들의 조름에 못 이겨 좁은 산악도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U-턴하며 나에게 달려 온 투산(Tucson) 아저씨와 그의 딸 아들.
투산과 함께 한 그들의 모습은 친근하고 정겹기만하다.


계속되고 있는 오르막길에 지친 나머지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는 빈도가 잦아짐에 따라 하루 주행거리가 점점 줄어든다. 60km, 70km,…재수 좋아 20, 30km의 긴 내리막 길이라도 만나면 겨우 90km를 넘기곤 한다.
"지긋지긋하다!"가 입에서 저절로 튀어 나오고 이빨이 절로 갈릴 정도로 계속되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길에 나는 하염없이 지쳐만 간다.
"제발 나에게 평지를 다오!"


여행 후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위의 기사는 개인적인 용도 및 비상업적인 용도의 '퍼가기'를 허용하며, 상업적인 용도의 발췌 및 사진 사용은 저작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