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아도르, 예방접종카드를 보여줘!
에디터 : 이호선

산악도로변의 곳곳에는 마치 한국의 침침한 성황당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예수님 천주님의 당(堂)이 서 있다.

콜롬비아의 국경도시, 이피알레스(Ipiales)

콜롬비아 측 국경

에쿠아도르 측 국경

결코 길지 않은 내리막 길을 달려 내려가자마자 그것은 국경이었다. 콜롬비아의 출구를 지나 에쿠아도르 입국관리소 직원에게 여권을 제출하자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자꾸 손을 내민다.
그가 내미는 손의 의미를 전혀 알 길이 없는 나는 그저 황당한 표정만을 짓고 서 있을 뿐이다.
결국 그는 힘겹게 입을 띄며,
"너는 왜 예방접종카드를 제출하지 않는 것이냐?!!"
그러고 보니 다른 이들은 모두 뭔지 모를 카드를 제시하고 있다. 예방 접종하는 곳이 이곳에 없냐고 그에게 물으니 "여기에 있을 리가 있냐!"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문한다.
나는 내 여권 위에 촘촘히 찍혀진 많은 중남미 나라들의 출 입국 스탬프를 그에게 확인시키며 내가 지나온 많은 나라들 중, 그 어떤 나라도 나에게 예방접종카드를 요구한 곳이 없었기에 그런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뜸을 들이며 서 있으니 아무 말 없이 스탬프를 꾸욱 눌러 준다.

국경을 뒤로 하고 돌아서자마자 또 다른 직벽의 오르막 길이 나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또 하나의 국경을 넘었다는 안도 감과 또 다른 나라에 들어 왔다는 신선한 긴장감을 꼭꼭 씹고 음미하며 삼킬 새 없이 나의 앞으로 오르막과 내리막의 길이 숨 가쁘게 달려온다.
콜롬비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도로는 눈부시게 좋은 편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인적이나 집들도 거의 없는 고요한 길을 달려 가는 동안 적지 않은 수의 사이클리스트들이 몇 보따리의 짐을 자전거에 매달고 힘겹게 오르막을 기어 올라가고 있는 나를 향해 "Vamos, vamos(가자, 가자)!!"를 외치며 스쳐 지나가고, 또 엇갈린다. 그들 중엔 60, 70대의 젊은 노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들이 타고 있는 자전거가 모두 예사롭지 않은 것들이다.

콜롬비아에 이어 에쿠아도르에도 제대로 격식 갖추어
체력단련과 여가를 즐기는 사이클 매니어 들이 많다.

중 남미의 공통언어, 중남미의 상식은 역시 축구

국경에서부터 에쿠아도르(Ecuador)의 수도, 키토(Quito)까지는 240km에 불과하지만 그저 아득하다. 2,3일 전부터는 설사까지 겹쳐 정말 기다시피 가고 있다.
에쿠아도르에 들어서자마자 만난 큰 도시, 툴칸(Tulcan)을 지나 두 번째로 만나는 큰 도시인 이바르라(Ibarra)를 지나가다가 한 큰 빵집 앞에 멈추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빵 집 종업원들이 "안뇽하세요?!"를 무차별 난사해 나를 기절초풍시키더니 그 중 한 사내는 나에게 "야쿠자"같다고 하며 나를 파안대소(破顔大笑)까지 시키고 만다. 이 정도면 이들은 대단한 '아시아 통(通)'이다.

이바르라(Ibarra)를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난 또 다른 시, 오타발로(Otavalo)는 전통복장을 한 수많은 인디오들이 온 도시를 장악하고 있어 멕시코에서부터 중남미 지역의 여행을 시작한 지 2달 반 만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이국(異國)의 정취에 푹 빠지게 하며 스페인의 끝자락이 아닌 잉카제국의 한 나라에 와 있다는 느낌을 비로소 들게 하며 페달질을 계속하려는 나의 의지에 심각한 구멍을 내며 나를 주저 앉힌다.
묻고 물어 찾아간 여관의 방 삯이 5$!
아, 참! 에쿠아도르의 화폐는 바로 미국의 달러이다.
아직도 설사가 계속되고 있어 몸의 컨디션이 말이 아니니 여기서 좀 쉬었다가 가자꾸나!

이바르라(Ibarra)시(市)

이바르라(Ibarra)시(市)에 있는 한 파나데리아(Panaderia-빵집)의 종업원들.
그들은 내가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안뇽하세요!"의 일제사격을 가해
나를 놀라움과 기쁨으로 숨을 멎게 했다.

무척이나 오래 된 듯한 성당, '이글레시아 엘 호르단(Iglesia de Jordan)'을 중심으로 아기자기한 시가가 펼쳐지는데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대부분이 그들의 고유한 의상과 전통을 지키고 있는 잉카제국의 후예인 인디오들이라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키고 감동시킨다.
남자들은 자유로운 복장이고, 오직 여성들만이 고유의상을 입고 있는데 약간의 장식이 들어간 흰색 저고리에 검은 긴 치마를 입고 검은 색의 샌들을 신는다.
북미의 인디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머리카락에 유별난 집착을 보이는데 여자들은 한결같이 길게 땋고, 남자들 또한 그들의 머리카락에 산발(散髮)용 기계가 지나간 적이 결코 한 번도 없는 긴 머리를 땋거나 묶고 있다. 그런 머리 위에 그들은 중절모를 남녀 모두 즐겨 쓰며 아주 묘한 언밸런스(Unbalance)를 연출한다.
남자들은 긴 머리를 제외하면 여느 중남미의 남성들과 다름없이 청바지에 티-셔츠차림이다. 멕시코를 비롯한 모든 중남미 인들에게 노소 남녀, 농촌 도시를 막론하고 복장의 상식은 바로 청바지다. 이들 인디오들이 시간이 정지된 듯 현재와 과거와의 간격이 없는 삶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손에 모빌 폰이 쥐어지고 블루 진과 티 셔츠가 입혀지고 그들의 식탁 위에 코카콜라와 햄버거, 그리고 피자가 올려진다.
그들에게 그들 밖의 세상이란 없고, 있다 한 들 그들의 관심 밖에 있다. 어쨌거나 이들이 있어 의외로 많은 서양의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발 길을 멈추고 전통과 색다름의 가치를 즐긴다.

이바르라 시(市)를 지나고 얼마 안 되어 등장한 오타발로(Otavalo)시(市).
무척이나 오래 된 성당, '이글레시아 엘 호르단(Iglesia de Jordan)'을 중심으로 아기자기한 시가가 펼쳐지는데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대부분이 그들의 고유한 의상과 전통을 지키고 있는 잉카제국의 후예인 인디오들이라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키고 감동시킨다.
이들이 시를 장악하고 있는 덕에 적지 않은 서양의 관광객들이 이 곳에 머물고 있다.
나는 오타발로 시(市)의 유일한 동양인 여행객으로 5일 간 이곳의 골목을 배회했다.


금요일 밤의 열기가 뜨겁다. 화려한 불꽃들이 작은 산중 도시의 하늘을 수 놓고, 시청 앞의 단상에서는 작은 밴드의 반주에 맞추어 10여 명 성가대들의 캐롤이 울려 퍼진다. 오늘이 12월 10일, 크리스마스가 되기 2주 전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시청 앞에 모여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있는 동안 정작 주빈(主賓)인 전통 복장의 인디오들은 단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으니 도대체 그들은 어디로 갔나?!

꼼짝하기도 싫어 여관방에 처박혀 있다 보니 어느 새 5일이 지나 버렸어. 하늘엔 여전이 구름이 짙지만 간간이 파란 속살을 내 보인다. 지난 5일간 하루에 한 두 차례씩 줄 곳 비가 내렸지 않아. 오타발로( Otavalo)에서의 지난 5일간의 페이지를 용감하게 넘겨 버리고 나는 여관 문을 나선다.

성당 뒤편의 어두 컴컴한 길거리에서 닭고기와 닭 똥집을 구워 파는 한 여인.
그녀의 21, 23살 먹은 두 아들은 인디오들의 전통악기인 '펜 풀룻' 연주자로서 영국의 뉴-포트(New Port)에 상주하고 있다고 하며 자신 또한 인디오 민속가무단의 일원으로 매년 3개월간 뉴-포트에 가서 공연을 한다고 한다.


수도인 키토(Quito)를 향해 또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을 나는 아주 당연하고 태연하게 기어 오른다.
또 다른 길고 험난한 하루를 마감하려 할 즈음에 비의 그물망에 걸렸다. 키토(Quito) 외곽의 작은 시인 칼데론(Calderon)엔 여관이 전혀 안 보인다.
비에 젖고 물이 되어 발견한 유일한 여관은 15$. 비싸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생철지붕을 날카롭게 두들겨 대는 빗소리 속에 꿈 속을 헤맨다.

또 다른 날이 분명 시작되었지만 밖의 풍경은 어제와 다름없이 축축한 공기가 대지를 무겁게 누르고 있다. 나는 몇 겹으로 나를 에워 싸고 있는 짙은 물안개 속을 헤엄치듯 힘겹게 오르막을 오른다. 상당한 고도 위에 있는 수도, 키토는 또 다시 산으로 뺑 둘러 쌓여 있다. 크지 않은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산등성이까지 빽빽하게 들어 차 있는 주택들이 마치 서울의 그것을 방불케 한다.
콜롬비아에서부터 시작된 도로, 즉 눌린 '갈 지(之)'자(字), 내지는 눌린 'Z'자(字)의 도로는 에쿠아도르(Ecuador)에 들어서면서 오르막의 강도가 더해진다. 하루 하루가 자전거 여행이 아닌 행군의 그것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지 않은가.

콜롬비아에 이어 에쿠아도르의 길 또한 가파르고 많은 급커브와 눌린 Z의 길이 속출하는
가운데 곳곳에는 운전자의 주의를 요하는 도로표지판들이….

두 번째로 교체한 자전거의 앞 뒤 바퀴가 이미 한계에 와 있는 것 만큼이나 내가 신고 있는 가죽샌들의 밑창에 구멍이 이미 났다. 하지만 한계에 와 있는 것은 자전거타이어와 샌들만이 아니다. 멕시코에서 시작해 중남미를 세달 가까이 달려오면서 나의 인내력은 연일 바닥을 치고 있다.
나의 입에서는 '지긋지긋 하다'와 '아이고, 죽겠다'가 절로 튀어나오고 온 몸은 휘청거린다.
나의 인생이 마치 이곳, 중남미에서 끝날 듯한 기분이 든다.

엘파마나 나나 우린 이미 상당한 골병에 들어 있다. 내가 숨 넘어가는 소리를 하듯 엘파마 또한 삐거덕 거리며 비명소리를 연발한다. 하지만 모질게도 아직은 굴러가고 있고, 아직은 걸을 수 있으니 또 앞을 향할 뿐.
"머나 먼 서쪽 하늘아래 그리운 고향,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
천리 타향 낯 설은 거리를 헤매-는 이 발길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마음은 고향하늘로 달려 갑니다."
"아줌마, 여기 쐬주 하나 더!"

잠시나마 동네꼬마들의 놀이를 보며 망중한(忙中閑)을 즐기고 있는
오타발로(Otavalo) 자전거 순찰경관.

시골 길을 달려 가는 동안 아침부터 저녁 때까지 도로변의 집에서 줄기차게 흘러 나오는 최대 볼륨의 '띵까 띵까' 라틴음악이 이젠 정말 신물이 난다. 대다수의 중남미 인들은 신나게 돌아가는 라틴음악과 함께 하루의 삶을 시작해 그저 하루 종일 돌리고 또 돌리는 가운데 하루의 삶이 끝난다. 그들에게는 "Sound of Silence(침묵의 소리)"란 새빨간 거짓말로 들릴지도 모를 일이야.
비록 문짝이나 창문조차 없이 다 무너져가는 집이라 할지라도 집집마다 대형 스피커가 달려 있는 오디오가 있다. 그들은 라디오의 기능을 완전히 무시한 채 개당 30센트, 50센트의 불법 복사CD를 하루 종일 돌리고 또 돌린다. 그들에게 고요와 고독은 차라리 죽음일지 모른다. 어디를 가나 CD와 DVD를 파는 가게가 성황이고 시골구석구석까지 CD와 DVD의 보따리 장수들이 다닌다.

나에게 아주 심각한, 이곳의 음식조차 너무 단조롭다. 중남미에서의 '요리한다(Cocinar)'의 의미는 우리나 일본, 그리고 중국이 생각하고 있는 '요리'의 의미와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중미의 후반부터 남미로 내려가며 옥수수전병이 끈기 없는 쌀로 대체되는 것을 빼고는 내용이 거의 같다. 그저 접시 위에 쌀밥 조금, 감자나 유카, 혹은 바나나의 튀김이나 삶은 것 조금, 콩 삶은 것 조금, 그리고 삶거나 구운 고기나 닭고기 조금 얹어 놓는 것이 고작이다. 이것이 가장 보편적인 이들의 식사다.
콜롬비아에서는 무조건 튀기는 것이 상식이고 이곳, '에쿠아도르'에서는 돼지고기를 많이 먹을 뿐 아니라 닭 다리, 똥집, 내장들을 많이 먹는다. 중남미에서는 우리처럼 발효식품이 안 보인다. 치즈가 있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숙성시킨 것이 아닌 즉석치즈라서 구수하고 깊은 맛이 전혀 없다. 꼭 날 두부 먹는 맛이다. 발효식품은 그 나라 음식문화의 깊이를 가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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