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어둠 속에 자전거를 찾을 수 없다.
에디터 : 이호선

쿨가디(Coolgardie)는 작지만 옛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꽤나 멋이 있어 보인다. 호주에서 도시가 형성된 배경에는 '골드러쉬(Gold Rush)'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지금도 여전히 광산이 있다.
지나는 도시마다 "Gold Rush"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걸리고 많은 타운에서 "Mine Tour(광산투어)"라는 관광상품을 선 보이며 성업 중이다. 호텔이나 타운 홀(Town Hall)등 건물들의 대부분은 한결같이 '골드 러쉬'가 있었던 1800년대 후반에 세워진 것들이다. 비록 많은 곳이 폐쇄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호텔과 바(Bar)로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이 종종 눈에 띄어 세월의 흐름을 무색하게 한다.


이제 퍼스(Perth)로 가기 위해 200km에 달하는 마지막 긴 허들을 넘어야 한다.
130km를 달리자 태양이 지평선 가까이까지 접근하며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항상 6시경부터 해가 지는 6시 반경까지가 긴장되는 순간이다. 아스팔트의 갓길이 3,40cm만이라도 있다면 다행인데 거의 없고, 넓게 펼쳐진 붉은 진흙 땅의 갓길에는 잘게 분쇄된 자갈이나 돌들을 뿌려놓았기 때문에 갓길로 밀려나 급 브레이크를 잡으면 여지없이 미끄러지며 도로변으로 쳐 박힌다.
결국 도로의 흰색 경계선 위를 아슬아슬하게 달리게 되는데 석양이 서쪽하늘을 잔뜩 물들이고 있는 이 시간이 되면 태양이 정확하게 나나 운전자들의 두 눈을 교란시키고 있고, 더구나 나는 얼굴에 파리접근방지를 위해 모기 망을 쓰고 있는데 이 모기 망에 석양이 반사되어 종종 내 눈앞이 전혀 안 보이며 갓길로 떨어지거나 도로의 안쪽으로 달리곤 하게 된다.
한 번 모래의 갓길로 떨어져 몇 바퀴가 굴러가면 종이 조각 같이 얇아진 타이어가 순식간에 벗겨져 버리는 심각한 상황을 맞이한다. 공교롭게도 이 시간에는 로드트레인을 비롯해 적지 않은 차량들이 몰려 달리고 있어 흰색라인 위를 곡예 주행하는 나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저녁 6시경에 적당한 야영지가 눈에 걸려 페달 질을 멈추는 것이 제일 이상적이지만 미적거리며 달리다 보면 순식간에 어두워져 무시무시한 로드트레인들의 살인 위협을 받게 된다.
그제 밤도 둥근 달 빛을 믿고 아무 생각 없이 7시경까지 달리던 중, 연 이은 로드트레인들의 대 공세에 식은 땀을 흘리다가 끝내는 픽업트럭을 타고 나에게 출동한 한 지역민의 "너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냐?!"는 격노한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어 그대로 자전거를 세워 숲 속으로 향했다.
석양의 침몰 직전에 난데없이 작은 주유소가 발에 걸리며 나의 페달 질은 끝이 난다. 주유소 옆에는 운전자를 위한 작은 쉼터가 있는데 공중화장실까지 있다. 적지 않은 나무들과 키가 작은 마른 풀들로 덮여 있는 이 곳에서 공간이 있는 곳을 찾다 보니 본의 아니게 도로에서 상당히 깊숙하게 들어가 두 나무 사이에 해먹을 친다.
나는 어둠 속에서 운동을 하고 퀵 샤워까지 끝내고는 빨래를 하기 위해 어슬렁대며 숲을 걸어 나와 공중화장실로 향한다. 퀵샤워를 할 때 머리까지는 감지 못하기에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빨래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보니 바깥의 조명이 완벽하게 달라져 있다. 밝게 빛나고 있던 주유소 대형 간판의 네온이 꺼지자 주위는 암흑의 그것이 되어 있다. 비록 주유소 입구의 측면에 보안용 등이 켜져 있지만 조명의 반경이 작아 불빛이 멀리까지 가지 않는다.
내가 화장실로 들어가기 전까지 주유소 간판의. 밝은 네온은 숲 속으로 길게 빛을 뻗으며 정확하게 흰색인 '엘파마'의 몸체를 반사하고 있었지만 네온이 사라진 지금, '엘파마'가 있고 해먹이 쳐 진 나의 공간은 어둠 속에 완벽하게 묻혀 버렸다.
나는 후래쉬까지 얼마 전에 잃어버려 그저 나의 두 눈과 두 손으로 어둠을 헤치고 더듬으며 필사의 내 집과 내 재산 찾기에 돌입하지만 어둠 속의 보물찾기란 결코 간단한 게임이 아니다. 결국 나는 서둘러 숲 속을 기어 나와 주유소로 향한다. 상점 문을 두들겨 보나 굳게 닫혀진 상점 안의 칠흙같은 어둠 속으로 어떤 움직임도 감지 되고 있지 않지만 다른 길이 없어 상점 문을 계속 두드리고 흔들어본다.
갑자기 어둠 속에 번개가 치는가 싶더니 실내의 작은 등이 켜지고 주인인 듯한 아저씨가 유리로 된 상점 문을 향해 걸어 나온다. 불빛이 충분하지 않아 그도 나도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식별하기에는 역부족으로 서로는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 두 눈을 잔뜩 찡그려야 한다.
공교롭게도 나는 바이커용 검은 긴 바지에 긴 검은 셔츠를 입고 얼굴까지 햇볕에 새카맣게 그을려 있어 그가 놀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내가 문틈으로 나의 사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설명을 하니, 그가 비로소 살짝 문을 열어주어 나는 그에게 5분만 간판의 네온에 스위치를 넣어달라고 간청을 한다.

어둠 속에서 찾지 못해 헤매였던 나의 해먹과 엘파마

단호하게 거절을 하는 그에게 후래쉬 좀 빌려달라고 하니 후래쉬가 없다고 한다. 결국 나는 다시 숲 속으로 돌아 와 어둠 속의 보물찾기게임을 다시 시작한다. 달만 나와 준다면 이 게임은 산뜻하게 끝나는데…
아직 보름달에 가까운 둥근 달을 검은 구름들이 몇 겹으로 에워싸고 있다.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먼 기적소리처럼 들려 돌아다 보니 멀리 주유소에서 그 양반이 결코 대단치 않은 빛 줄기의 랜턴을 숲 속을 향해 여기저기 비추고 있으나 나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시 그가 나를 그대로 보내고 미안했던 모양이다.
결국 둥근 달이 달려드는 검은 구름 떼들을 떨쳐내고 둥실 떠오르며 나의 상황에 구두점을 찍는다.
세상 살다 보니 별에 별 어처구니 없는 일로 숨이 가빠지네.
암흑을 헤맸던 짧지 않았던 시간은 순간이 되고 나는 해먹 위에 흔들리며 달빛에 흠뻑 취한다.

어제 밤 어둠을 더듬으며 애타게 헤매며 돌았던 숲 속을 천천히 걸어 나와 도로로 향하려다가 주유소에 발길을 멈춰 상점 안으로 들어가니 아직 손님은 없고 주인 부부가 아침 장사준비로 부산하다. 어제 밤 어처구니 없는 일로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쳐 미안하다고 하니 그들 부부들 또한 멋 적고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서던크로스(Southern Cross)를 지나고 또 한참을 달려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작은 마을인 보달린(Bodallin)의 주유소에 들려 우유 한 병을 사 마시고 늦은 오후의 도로를 달린다.
500m정도를 달렸을까?! 갑자기 '엘파마'가 비틀거리다 순식간에 뒤로 나자빠진다. 뒤 바퀴에 펑크가 났는데 찢어진 타이어의 틈 사이로 못이 들어가 꽂혀있다. 어제 그제 연속해서 앞 바퀴에 펑크가 있었다. 나는 '엘파마'를 끌고 내가 이미 지나쳐 온 주유소로 걸음을 재촉한다.
주유소 화장실 앞의 작은 공간에서 나는 갖은 잡동사니를 벌여놓고 한 바탕 난리를 친다.
'아참, 그러고 보니 스페어 튜브가 없네?!' 어제 그제 연속으로 일어난 펑크로 가지고 있던 스페어 튜브 2 개로 교체하고는 펑크 난 튜브를 때우지 않았다. 비록 타이어와 튜브 사이에 펑크 방지 테이프를 감아 놓았지만 닳고 닳아 종이조각처럼 얇아져 있는 앞 뒤 타이어가 맥을 못 추고 뚫리고 있다.
뒤 바퀴의 튜브를 교체하려면 찢겨져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는 타이어 위에 감아 놓은 덕트 테이프를 다 걷어내야 한다. 구멍 난 튜브를 2개 때우고 튜브를 교체하고 다시 테이핑을 하다 보니 해는 이미 지평선과 접점을 이루고 있다.
나는 도로 주행에의 꿈을 미련 없이 접고 주유소 옆의 숲 속으로 순순히 걸어 들어간다.

다리에 붙은 파리떼들

펑크를 떼우고 해가 저 버린 주유소

태양이 뜨겁게 대지를 달구고 있는 정오, 머레딘(Merredin)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샐러드와 통닭 반 마리를 사서 슈퍼마켓 건너 편의 공원벤치에 퍼져 앉아 내 뱃속을 제대로 채우겠다는 야무진 꿈을 차근차근 현실로 옮기고 있다.
내가 갔던 슈퍼에서 '존 웨인(John Wayne)'과 꼭 닮은 강인한 인상과 덩치를 소유한 50 전후의 경관이 나와, 나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발걸음을 멈추고는 나에게 "Hi!"를 건넨다.
내가 닭을 뜯으며 주절주절 읊어대고 있는 나의 스토리를 결코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의 덩치만큼이나 묵직하고 넉넉한 미소를 머금으며 듣고 있던 그, 그랜트(Mr. Grant)는 끝내 작은 메모지를 나에게 건네주며 내 스토리가 연재되고 있는 바이크매거진의 웹사이트 주소를 적어달라고 한다. 내가 세계를 달리면서 그 동안 길거리에서 만났던 많은 나라의 세계인들이 이미 구글(Google)의 번역서비스를 통해 나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
그는 나에게 "Have a nice trip!"을 날리고 자신의 순찰차로 돌아간다. 시동을 걸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그에게 내가 활짝 웃으며 거수경례를 보내니 그는 흔들던 손을 멈추고 서둘러 자세 바꿔 거수경례를 하는데 그의 표정 또한 분주하게 움직인다.

배가 빵빵해지자, 비록 나의 두 다리는 풀릴 대로 풀려 '개 다리' 춤을 추고 있으나, 나의 마음은 구김살없이 부풀어 올라 온 세상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내가 공중화장실로 무대를 옮겨 이를 닦고 또 다시 뒤 타이어의 테이프를 갈아 붙이고 있는데 공중화장실을 담당하고 있는 거구(巨軀)의 미화원 아저씨가 얼마 남지 않은 나의 테이프를 보고 자신의 픽업트럭에서 한 뭉치의 강력한 덕트 테이프를 가져오더니 나에게 가지라며 건네준다.
이 테이프는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소유하고 싶은 품목이기에 그가 고맙기 그지 없어 고마움을 표하는 나에게 그는 그저 씨익 웃으며 결코 작지 않은 손을 내민다. 결코 길지 않은 머무름이었으나 긴 여운의 흐뭇함을 간직한 채, 나는 머레딘(Merredin)을 떠난다.


퍼스(Perth)를 140여km정도 남긴 지점을 달리고 있는데 이제껏 도로에서 만나지 않았던 경찰 순찰차가 나의 뒤로 다가와 나의 정지를 명령한다. 그들은 헬멧대신 모기 망 만을 뒤집어 쓰고 있는 나에게 헬멧의 미착용을 지적하며 나의 ID를 요구한다.
내가 여권을 꺼내어 그들에게 건네자 그들은 땡볕 밑에서 긴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빠른 손 놀림으로 뭔가를 작성하더니 나에게 '50불 벌금'이라는 한 마디와 함께 종이 2장을 나의 손에 건네주며 순식간에 지평선너머로 사라진다.
'헬멧 미착용: 50불 벌금!' 역시 물가 비싼 나라답게 벌금의 액수 또한 상당하다. 내가 달려 온 수 많은 나라에서 바이커가 헬멧 쓰는 것은 권유사항이었지만 호주에서는 명백하게 법 집행 사항이다.
나는 헬멧을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 오토바이를 탈 때는 벌금 때문에 할 수없이 쓰곤 했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나의 몸에 뭔가 쓰거나 감거나 걸거나 차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들이 사라진 뒤, 나는 자전거와 함께 도로에서 밀려나 진흙의 갓길에 쳐 박힌 듯 아주 참담한 기분이 되었다. 50불은 분명 막대한 돈이지만 하룻밤 모텔에서 잤다고 생각하면 속은 쓰려도 웃어 넘길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내일이면 퍼스에 도착해서 나는 더 이상 이 호주 땅에서 자전거를 탈 일이 없는데……..
자꾸 바다 밑으로 가라 앉는 나의 마음을 억지로 추스리며 페달 질을 계속한다.

호주 횡단 종료 하루 전, 퍼스를 40km도 채 안 남긴 지점의 한 주유소 구석에 있는
휴식공간에서 호주 완주 전야(前夜)를 보내면서.

노담(Northam)을 지나 퍼스를 40km정도 남겨 놓은 지점의 한 주유소 앞에서 페달 질을 멈춘다. 아직은 조금 이른 시간이고 아스팔트의 갓길도 넉넉하게 계속되고 있어 밤 늦게까지 밀어 부치면 퍼스에 도착할 수 있지만 어둡고 생소한 도시에 들어가 여관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이곳에서 밤을 보내고 내일 아침 밝은 태양 속에 입성하는 것이 현명하다.
다행스럽게도 이 주유소의 주위에는 캠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든지 있고 화장실에 트럭운전사들을 위한 샤워장까지 있어 나는 유유자적 여유를 부리며 호주 완주 전야를 즐긴다.
내일이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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