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는 물이 자유의 신이다.
에디터 : 박규동

2011년 07월 19일   火   맑음
33.4km 운행.     야영지 44도02'45,81+111도21'18,07

사막에서는 물이 자유의 신이다.
자유를 저장하는 통장이 물이다. 물이 있어야 사고할 수 있고, 물이 있어야 야영할 수 있고, 물이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고, 물이 있어야 갈 길을 택할 수 있다. 하루쯤 더 쉬고 싶어도 물이 부족하였다. 같은 자리에서 두 밤을 자면서 벌써 물을 여섯 통이나 소비하였다. 자유가 조금씩 고갈되어 가는 것이다.

아침식단

늙어서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고비독수리를 만났다. 그는 외롭게 죽어갈 것이다.

잠을 많이 잔 덕인지, 아니면 불안이라는 공포가 나를 채찍질한 긴장 때문인지 정신은 반짝거렸다.
텐트를 철수하는 아내를 도왔다. 왼팔 하나를 쓰지 못한다는 게 이렇게 불편할 줄이야!

아내의 권유로 진통제 두 알을 먹었다.
압박붕대로 손목을 단단히 조이고 나니 왠지 잘 해낼 것 같았다. 그렇게 길을 나섰다. 도중에 만난 공사 중인 도로가 그래도 도움이 되었다. 모래길이나 빨래판으로 투덜거리며 가는 길보다 훨씬 충격이 덜했다.
손목은 참 복잡한 곳이다. 팔에 가해지는 여러가지의 충격을 흡수하는 것에서부터 손가락을 섬세하게 움직이는 데까지 손목은 관여하지 않은 게 없어 보인다. 왼손으로 조정하는 앞 기어는 아예 1단으로 고정이다. 오른손으로 뒤 기어를 조정하며 속도를 조절해 간다. 워낙에 속도가 느린 길이라 그래도 다행이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사막이 나의 빈 배를 채워주지 않을 것이고, 아픈 내 팔목을 고쳐주지 못할 것이다.




3형제가 말을 타고 양떼를 몰아가는 걸 보았다.
말타는 솜씨나 양떼를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아이들의 몸놀림이 경지에 이르른 것 같았다.
양떼를 몰아 놓고는 우리에게 3형제가 찾아왔다.
중학생이나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였다.
서로 바라보다가 그저 빙그레 웃어주었다. 아이들도 웃었다.
아내가 볼펜을 선물하였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먹다 남은 건조요거트를 한 주먹 내밀었다.
유목민으로 태어나 사막에서 자라며 끝없이 넓은 대지를 말달리는 그들의 꿈은 무엇일까?


스텝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된 위장 피부, 도마뱀



게르의 아이들이 아내의 자전거를 타고서는 즐거워 했다.

지나는 길가에서 가까운 게르를 만났다.
게르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에게 적잖은 위안이 되었다. 종찬이, 은서, 승찬이, 의찬이 네 명의 손자들 이름을 가만히 외어본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나에게 위안이 되었던 이름들이다.
게르의 아이들이 우리를 반긴다. 나도 손자들 생각에 아이들을 만나는 게 반가웠다. 게르의 남자는 수테차를 대접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아내와 나의 자전거를 타고 게르 주변을 돌면서 까르르 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나에게 병원의 주사 몇 대보다 더 큰 치유의 약이 되었다. 내 안으로 안식의 평온이 주르르 스며들며 팔목 상처의 아픔을 조금씩 줄여주는 느낌을 갖는다.
아이들에게 작으나마 용돈을 쥐어 주었다.
종찬아! 은서야! 승찬아! 의찬아!
할아버지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다오! 할머니가 지치지 않도록 응원을 해다오!


긴 하루였다.
도로공사의 흔적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다섯 채의 게르를 발견하고는 그리로 다가갔다. 게르의 주변에서 텐트를 칠 생각이었다. 게르 옆에는 도로 건설을 위한 중장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아마도 공사장 인부들을 위한 숙소인 것 같았다.
개 짖는 소리에 게르에서 청년 두 명이 뛰어 나왔다. 공사장 인부들은 보이지 않고 오직 젊은이 두 사람뿐이었다. 아내의 공용어가 젊은이들을 설득하는 명장면을 나는 두리번거리며 바라본다. 청년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전거를 끌고 게르촌 안으로 들어서자 선배로 보이는 젊은이가 개를 빈 게르 안으로 데려가 가둔다. 그러면서 비어있는 끄트머리 게르를 가르키며 우리에게 그 게르에서 자도 좋다는 시늉을 한다. 그 게르에는 쇠똥난로도 없었고 다만 침상이 하나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바닥도 풀이 자라는 맨땅이었다. 그래도 운이 좋은 것이다. 땅바닥에 깔개와 폼메트를 깔고 잠자리를 준비했다. 그리고 나는 잠시 낮잠을 잤다.

오늘 밤에 묵을 게르, 아내는 공용어로 젊은들과 열심히 대화를 나눈다.

땅바닥에 메트를 깔고 낮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고나니 아내는 나에게 젊은이들이 우리에게 "저녁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고 일러 주었다.
그 사이에 아내와 젊은이들이 친해진 모양이다. 우리의 자전거를 타보고 최고라며 엄지를 세웠다는 등...... 아내의 젊은이 칭찬도 이어졌다.
젊은이들은 몽골만두를 넉넉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머무는 게르로 갖고 왔다. 반찬은 없다. 만두 한 가지뿐인데도 일품이었다. 만두 다섯 개에 배가 불렀다. 아내가 커피를 타 주었으나 그들은 싫다며 손사레를 쳤다.

젊은이 둘은 이 공사장에 주방 일을 하러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집이 울란바타르라고 했다. 딸이 두 명이 있다는 선배는 전화가 안된다며 전화기를 들고 왔다. 전화기는 충전이 필요했다. 나는 우리의 외장배터리를 이용하여 그들의 전화기에 충전을 해주었다. 충전을 한 그들은 기뻐하면서 뭐라고 나한테 또 다른 부탁을 하였다. 아내의 해석으로는 "자전거를 빌려주면 전화 통화가 가능한 지역으로 가서 집에 전화를 걸고 오겠다."라는 것이었다. 어둑해지는 서쪽으로 그들은 우리의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두 시간이 지난 후에 어둠 속에서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나타났다. 집으로의 통화가 성공한 모양이다. 기쁜 표정이 얼굴에 가득하였다.

우리의 자전거를 타 보는 젊은이

젊은 주방장은 우리에게 몽골만두를 저녁으로 대접해 주었다.

전화가 되는 곳으로 밤길을 떠나는 젊은이들

텐트에 비하면 그 넓이가 맨션같은 게르이다.
지붕 가운데로 뚫린 커다란 구멍으로 하늘이 보였다. 별이 반짝이고 바람이 일렁거렸다.
신은 인간들끼리 나누는 이런 정을 모른 체 하며 바람따라 일렁이고 있을 것이다.

팔목은 진통제 효과인지 아주 날카로운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잘 견뎌주었다.

게르의 천정에 난 커다란 환풍구를 통해 별을 보면서 잠을 청한다.
여긴 별들의 고향이다. 별바다에서 지구는 작은 우주선에 불과하다. 은하수가 화로의 잉검불처럼 명멸했다.




2011년 07월 20일   水   맑음
33.4km 운행.     야영지 43도52'41,88+111도37'41,57

남은 물이 아홉 통이다.
이틀 안으로 자밍우드에 들어가야 한다. 사고로 인해 하루가 더 소요되었기 때문에 물을 아껴 먹었는 데도 빠듯하다. 더 이상 나쁜 일이 없기를 바라며 게르를 떠났다.
며칠째 볕이 몹씨 뜨겁다. 체온이 높아지면 팔목의 상처가 염증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다. 선택이 폭이 좁다.



우리를 재워주고 저녁을 대접해 준 네르 간토마(좌)와 톰 도르지

숱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아내의 마음이 걱정스럽다.
초긴장으로 며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텐트를 치거나 철수하는 데에서부터 스토브를 피워 밥과 찌개를 끓이는 일까지 내 몫을 혼자 도맡아 하면서도 나를 간호해야 하는 것이다. 짐도 무거운 것들을 아내의 트레일러에 옮겨 실었다. 밥솥이랑 쌀자루에 물통까지. 아내는 빼앗다시피 내 짐을 옮겨갔다.
그래도 늘 웃음이다.





경기도평택자동차학원이 커다랗게 쓰인 1톤트럭을 만났다.
남자는 내리자마자 한국에서 왔다는 우리를 보더니 무척 반가워 했다. 한국으로부터 종고차를 사다가 파는 일을 한다고 했다. 생수를 두 통 주면서 "한국아줌마!"를 크게 외치며 엄지를 세워 보인다. 그래, 지금 이 한국아줌마는 세계 최고다!
자밍우드가 50km 남았단다. 내일이면 몽골고비도 끝나는 날이 될 것이다. 물을 두 통이나 얻었으니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한국아줌마!"라 큰 소리를 외치며 엄지를 세워주던 사람들

사막이 사막으로만 이뤄져 있다는 것은 진리처럼 아름답다.
진리는 먼 것도 아니고 가까운 것도 아닌 것처럼 사막에서는 먼 곳도 가까운 곳도 없다. 오직 길을 가는 것만이 우리의 길이다. 세상의 무상함을 누리면서 시간과 공간이 흐르는 땅 사막, 그것도 고비사막을 가는 것은 나의 내생에서나 이루어질 줄 짐작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금생에 무슨 복으로 고비사막을 가고 있단 말인가!
허무보다 더 위대한 공간이 있다면 그 또한 사막뿐이다. 세상의 모든 진리가 쌓이고 쌓이면 허무가 된다고 했던가!  진리와 진리가 살아서 바람따라 허무하게 나부끼는 곳이 사막이다. 그 곳에서 나도 나부끼고 싶었다.

샤잉산드 남쪽으로는 북동풍이 불었다.
북풍이거나 북동풍이다. 점점 동풍으로 기우는 것 같다.
낮 2시가 지나면 불타는 태양을 만난다. 정말 불타는 태양이다. 열기가 사막의 모든 곳을 덮어버린다. 땅이 뜨거워지면 북쪽에서 슬그머니 바람이 찾아온다. 미약하지만 뜨거운 바람 사이로 북쪽에서 날아온 차가운 바람이 읽혀진다. 바람과 바람 사이에서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북풍은 구름을 만들어 낸다. 고비 특유의 뭉게구름이다. 구름의 덩치가 크면 그 아래 그늘도 크다. 그늘이 생기는 틈에 우리는 잠시 휴식을 한다. 불과 몇 분 간이지만 꿀맛같다.

산악지대를 통과하였다.
크고 작은 언덕배기를 여러번 넘었다. 고개를 넘어가면 뭔가 있을 것 같아 넘고 또 넘었지만 모두 그게 그거다. 저녁 6시에 적당한 곳을 골라 텐트를 쳤다. 언덕을 중간쯤 올라온 곳이었다. 나는 팔목 때문에 계속 피곤한 몸이다.
아내의 힘으로 텐트가 세워지는 걸 본다. 대견스럽다. 60대 여인의 억척같은 모습을 아까 그 남자는 "한국아줌마!"라고 했었지.

우유를 잔뜩 싣고 가는 탱크로리를 만났다.
차를 세우더니 운전사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아내는 열심히 공용어를 구사하며 그에게 대답한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운전석에서 얼어있는 물통을 하나 건네준다. 아내의 얼굴이 웃음으로 가득찬다. 그는 얼음물을 담요에 싸서 보관하라며 운전석의 물통들을 가르킨다. 이게 왠 횡재란 말인가! 사막 한 가운데서 얼음물을 얻다니! 아마 아내를 위해 천사가 찾아온 것일 게다.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깜빡 잠이 들었었다. 그때 어디선가 두런두런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땅을 파는 것같은 소리도 들렸다. 거리를 짐작해 보면 50m도 안 돼 보이는 곳에서 남자 세 명이 내는 소리였다. 승용차도 서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곳에 차를 세우는 것은 고장이 아니면 무슨 나쁜 마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이 확 달아났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한 손에 켜지 않은 헤드라이트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뭔가를 잡아야 하는데 내 왼손을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공포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내는 라이트를 켜지 말라고 소곤소곤 신호를 한다.
여차하면 텐트에서 탈출이라도 해야할 텐데 어쩌나? 우리의 텐트는 후라이가 짙은 색이라 여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걸 조금은 믿어보자. 그들이 우리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긴장이 팽팽하다. 한 30분이 지났다.
남쪽에서 대형 트럭이 고개를 넘어왔다. 트럭에게 구조를 요청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러다가 우리의 위치만 상대에게 확인시켜주는 낭패를 당하는 건 아닐까? 트럭이 우리 옆으로 지나갔다. 그러자 그들도 승용차에 올라 타더니 그 트럭을 뒤따라 가는 게 아닌가!
휴! 그러면 그렇지! 괜히 그들을 의심했던 마음이 미안해졌다. 길을 잃은 승용차가 멈춰 섰다가 트럭이 나타나니 그 뒤를 따라 갈길을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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