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중인 자운,트리스탄을 만나다.
2012-06-11   박규동

2011년 08월 03일   水   맑음 오후에 흐림.
36.4km 운행.        싱해(Xinghe)에서 빈관에 숙박. 40도53'10,55+113도49'19,38

길을 잘못 찾아온 것 때문에 머물게 됀 마을.
하룻밤 사이에 고향처럼 정이 들었다. 마을을 떠나는데 소녀와 동생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가 고샅에 나와 먼눈으로 배웅을 한다. 정이란 이런건가 보다.

배웅을 하는 어머니와 소녀들

110번도로가 멀지않아 나타났다.
석탄트럭이 줄지어 다닌다. 교통지옥에 들어선 것이다.
110번도로는 베이징을 중심으로하는 중국의 도로 체계에서 보면 내이멍구와 하베이성을 이어주는 중요 간선도로이다.
역사와 통상과 정치적으로 중국의 북서쪽을 이어주는 오래 됀 길이다 . 요즘에는 내이멍구의 석탄을 베이징과 인근의 화력발전소로 나르는 석탄길이 돼 버렸지만 그 흔적만으로도 의미있는 길이다. 110번도로의 옆에는 최신식 고속도로가 나 있고, 어제 우리가 잘못 길을 들었던 비포장 신작로도 같은 맥락으로 동서를 이어주는 도로이다. 그만큼 이 길이 중요한 지리적 루트인 셈이다.
이틀이나 헤매던 화려한 시골을 벗어나 110도로에 들어서니 운행에 대한 안심이 되면서 길을 재촉하게 된다.

메밀꽃이 한창이다.


왼쪽은 새로 만드는 길이다. 대형트럭을 피해 우리는 이 길을 달렸다.

송신탑 아래서 자운팀과 문자교신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오르고 있는 큰 산맥을 반대편에서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내이멍구와 하베이를 나누는 큰 산맥이다. 오르막을 여러 번 넘고 넘었다. 오래된 왕복2차선도로는 15톤의 석탄을 싣고 오가는 대형 트럭들만으로도 꽉차는 길이다. 도로의 곳곳이 패여져 있어 트럭도 속도를 내지 못하지만 그 웅장한 트럭들 틈 사이로 길을 얻어 가야하는 우리도 용기와 재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게다가 트럭에서 흘러내리거나 바람에 날리는 석탄가루로 하늘은 온퉁 시커멓다. 그 공기를 마시는 기분도 언짢지만 그 언짢은 기분을 압도하는 트럭의 굉음에 어쩔줄 몰라 한참을 어리버리했다. 다행스럽게도 110번도로를 확장하려고 만들어 놓은 새 도로가 중간 중간 준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길은 자동차가 다니지 못 하도록 차량통행을 금지시켜놓은 상태였지만 우리는 그 길을 이용하여 편의를 보기로 하였다. 아스팔트가 쩍쩍 달라붙는 새 길을 아내와 둘이서 즐겼다.

밥을 물에 말아서 절인 오리알을 반찬으로 점심을 먹었다.

대형 트럭을 위한 대형 주유소,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

낮 2시반에 중간 도시 싱해에 닿았다.
날이 흐려지더니 우리 뒤에서 비가 따라오고 있었다. 싱해에서 묵기로 하였다. 간판을 따라 빈관을 찾아갔다. 골목 뒤에 있는 빈관을 어렵사리 찾아가는데 영어를 유창하게하는 여대생이 나타났다. 3층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는데 길을 찾는 것 같아 통역으로 도움을 주려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당당하고 친절하다. 빈관의 데스크까지 따라와서 방을 잡아주고 갔다.
낮잠을 잤다.

욕실을 거울을 보면 나를 찍은 사진

샤워를 하려고 욕실에 들어가 내 몰골을 보았다. 내가 나를 보는 게 한참만이다. 자란 수염에 검게 탄 얼굴이며 패인 주름이 할말없이 노인이다. 나도 늙었나보다.
저녁은 식당에서 사먹었다.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나돌았다. 빈관집 딸이 대학생인데 방학 중이라 우리를 영어로 안내해 주었다. 시내 광장도 보고 길거리에서 꼬치도 사 먹었다.

"코리안"이라는 한글 간판이 반가워 찾아갔더니.. 무늬만...

우리를 안내해 준 빈관집 딸 여대생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




2011년 08월 04   木   맑음, 저녁에 소나기.
24.7km 운행.       야영지 40도46'44,66+114도04'23,20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사람이 많다는 걸 눈으로 바로 느낀다.
중국은 땅도 넓다. 그리고, 세계인구의 5분의 1 이 중국인이다. 110번도로 이후부터는 마을과 도시가 자주 나타났고 가는 데마다 사람을 많이 만난다. 모두 착한 사람들이다. 천사도 곳곳에서 나타났다.

싱해 시가지를 빠져나오며

그렇게 크고 넓은 땅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것도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다. 자운님과 트리스탄님은 네이버 카페 "설륜악"에서 활동을 함께하는 지기들이 아닌가! 울란바타르에서 고비사막을 넘어 먼길을 오는 우리를 마중삼아 티엔진-베이징-장지아커우를 거쳐 110번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아니 반가울 수가 없다.

도로의 통행료를 받는 곳, 자전거는 아니지만 차량은 일반도로에서도 수시로 통행료를 받는다.

왼쪽에는 고속도로가 보인다. G110번 도로의 모습

트럭에 물을 파는 곳, 엔진차의 구동바퀴를 식히기 위한 물을 탱크에 보충한다.

비단길(silk road)이 아닌 석탄길(coal road)이다.
비단을 나귀나 낙타에 싣고 다녔었던 그 길이 이제는 주로 석탄을 동쪽으로 나르는 길이 된 것이다. 싱해를 떠나 G110도로 276K까지 오르막을 올랐다. 문자교신으로 확인한 바, 자운팀과 우리는 낮 2~3시 경에 만나게 될 것이다. 큰 고개를 마주보며 우리는 동쪽으로, 자운팀은 서쪽으로 오르고 있는 것이다. 낮 2시 즈음에 우리는 꼭대기를 2km가량 남겨둔 곳에서 멈추었다. 캠핑을 하기에 좋은 장소를 찾은 것이다. 주변에 가옥이 몇 채 있었다. 길 뒤쪽으로 마을이 보였다.
자운팀이 도착하면 먹을 점심밥도 짓고 단촐하나마 식단을 꾸려보았다.


야영지로 잡은 곳 주변 풍경들

머리에 꽃을 꽂은 아내 불근늑대

넓은 공터를 찾아 야영 준비를 하며 자운팀을 기다렸다.


16시가 넘어서 그들은 나타났다.
트레일러 깃발을 펄럭이며 바쁜 속도로 비탈길을 내려왔다. 트리스탄을 껴안았다. 뭔가 뭉쿨한 감정이 가슴을 타고 흐른다. 자운님과도 껴안았다. 보고싶었던 사람! 일행이 한 사람 더 있었다. 박희득님이다. 자운팀이 인천-천진 배에서 만난 사람이란다. 중국으로 자전거여행을 떠난 사람들끼리 만나서 함께 온 것이다. 모두 반가웠다.
자운님이 서울에서 가져온 밑반찬이 나왔다. 우리를 위해 구입한 과일에서부터 고기, 맥주까지......




좌로부터 흰늑대, 불근늑대, 트리스탄, 자운 그리고 박희주님

날이 수상하여 텐트를 먼저 치기로 하였다.
저녁식단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다섯이 우리 텐트의 천막 아래 옹기종기 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지금만큼은 여기가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언어영토와 음식영토가 내이멍구 어느 하늘 아래에 펼쳐진 것이다.
나눌 이야기는 끝이 없다. 입으로, 눈으로, 가슴으로 ...... 영혼으로.


2011년 08월 05일   金   맑았다 오후에 흐리고 저녁에 소나기.
56.8km 운행.  농가 창고에서 야영.  40도43'50,50+114도36'58,21

아침부터 우리가 야영한 언덕배기는 마을사람들의 구경터가 되었다.
노인들이 많았다. 그 중에 나이가 제법들어보이는 한 노인은 쪼그리고 앉아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바라본다. 두 시간째다. 그러던 차에 그가 나에게 나이를 물었다. 예순일곱이라고 대답을 하자 그의 눈이 이마의 주름을 보태며 더 커진다. 자기는 예순둘이란다.

우리를 구경 온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나이를 물었던 노인

헤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회포를 풀었지만 헤어지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길에서 만나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나서 서로의 길을 가자고 나서지만 우리는 서로 나그네가 아닌가! 서럽고 외로운 나그네 길이 남쪽이든 북쪽이든 펼쳐질 것이다. 석탄가루를 1리터는 마셨을 거라는 트리스탄의 110번도로를 따라  우리 늑대들은 동쪽으로 갈 것이고, 점점 인적이 드믈어지는 사막을 향해 자운팀은 갈 것이다.
부디 무사하길!


고개 꼭대기

내이멍구(內蒙古)와 하베이(河北)를 가르는 마지막 고개를 넘자 내리막이 12km나 이어진다.
길은 좁아지더니 급기야 자전거차선이 없어진다. 중국도로에서 자전거차선이 없다는 것은 아주 오래됀 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무거운 석탄트럭이 다니면서 움푹움푹 패인 곳이 여러 군데이다. 그래서 그런지 석탄트럭들도 속도를 내지 못하거나 앞 차량이 고장이 나면 길이 막혀버리는 것이다.

석탄 트럭이 2km 가량 밀려 서 있다. 추월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1시간이나 왔을까, 석탄트럭이 2km나 늘어서서 옴싹달싹 못 한다. 트럭들은 길게 늘어 서 있고 반대 차선으로 추월을 하려고 하여도 워낙 차선이 좁아서 상대편에서 오는 트럭을 피할 공간이 없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용기를 낸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이 뜸할 때에 얼른 추월하는 것이다. 추월을 하다가 반대편에서 트럭이 나타나면 잽싸게 멈춰있는 트럭과 트럭 사이로 숨는 것이다. 한번에 100m 혹은 200m씩을 추월하며 간신히 좁을 길 구간 5km를 벗어났다. 트럭운전사들이 웃어 주거나 더러는 박수를 쳐 준다.

석탄 먼지로 하늘은 검다. 저녁에 아내와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는다. 숯검뎅이 얼굴이다.

중국 운전자들의 자전거에 대한 배려는 기대 이상이다.
그 큰 트럭을 몰면서도 자전거의 안전에 대한 배려는 우리나라의 트럭운전자들보다 훨씬 좋다. 교통문화의 바닥에 자전거에 대한 이해와 보호본능이 우리보다 월등하다는 뜻이다. 도로에 자전거차선을 만들어 놓은 정책에서부터 자동차운전자들의 자전거보호의무는 거의 생활화 되어있는 듯 하였다.
난리를 치던 길을 지나서 비교적 차분해진 도로를 달린다. 반갑게도, 아까 우리가 좁은 길을 헤쳐나올 때 그 곳에 멈춰 서서 우리를 바라보았던 트럭의 운전사들이 옆을 지나가며 뭐라고 큰 소리로 응원을 보낸다. 보기에는 형편없이 살벌한 검은 석탄길에서도 사람들의 정은 이렇게 나부낀다.


도로(道路)란 인생의 이치를 가는 길이 아니던가!
며칠째 기상의 변화가 비슷하다.
낮에는 더워지더니 저녁이 되면서 구름이 모이고 밤에는 소나기가 퍼붓는 것이다.



오늘도 해가 저물면서 바람이 일더니 구름이 낀다. 검다. 비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다. 60km 쯤 왔을 때이다. 오후 4시 반, G110번도로 224km 지점이다. 비가 내리기 전에 텐트를 쳐야할 것 같다. 그런데 텐트를 칠만한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다. 들판 잔체가 옥수수밭이다. 얼핏 보니 길가에 생철지붕에 벽이 없는 농가의 창고가 보인다. 마침 비워져 있었다. 그 안에 텐트를 친다면 좋겠다 싶다. 우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있는 집 주인을 찾아갔다. 20대로 보이는 아이엄마가 나의 공용어에 답한다. 그녀도 당황했을 것이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창고에 텐트를 쳐도 좋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일생에서 가장 착한 곳에 텐트를 쳤다.

저녁밥을 지으려 준비를 하는데 아이엄마가 고추와 오이를 따다 준다.
아내는 뭔가 공용어를 나누더니 안으로 들어가 물을 길어 온다. 얼마 후에 그녀의 신랑이 돌아 왔고, 들에 나갔던 모양새의 시어머니 시아버지까지 도착했다. 인사를 주고 받았다. 선한 얼굴이다. 잠시 후, 시어머니는 그릇에 찌개를 담아왔다. 토마토와 야채를 넣어 끓인 것인데 먹을만 하였다. 시아버지는 잘 익은 토마토를 따다 주었다. 謝謝!

구름은 점점 무거워졌다. 언제부터인가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우르릉 꽝!
어두워지면서 소나기까지 쏟아졌다.

생애 최고의 사랑을 나눈 농가 창고에서의 캠프

번개가 치고 하늘에 금이 가더니 지구만큼 큰 북소리가 귀를 찟는다. 생철지붕에 부딪치는 빗방울은 음악으로 통통거린다. 본능을 부추기는 생음악이다. 번개의 불꽃놀이와 생철지붕 빗소리의 오묘한 변주에 우리도 들판의 늑대로 변했다. 늑대처럼 본능적으로 사랑을 나누었다. 또 다른 번개가 석탄가루로 검게 물든 하늘을 날카롭게 금을 긋는다. 이어서 우뢰소리가 장단을 맞춘다. 천둥과 번개는 점점 빨라지고, 생철지붕을 뚫을 듯이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와 어울려 늑대는 노도와 질풍처럼 절정을 향해 달아 오른다. 아내는 두 번의 절정을 거치더니  세 번째에는 함께 올랐다. 아내 불근늑대의 교성은 번개로 금이 간 하늘을 둘로 갈라 놓았다.
우리 생애를 통틀어 최고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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