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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을 지나, 중국 속으로...
2012-02-17   박규동

2011년 07월 24일   日   흐리고 가끔 비
43km 운행.    빈관 숙소.

에렌하우터는 중국과 몽골을 연결하는 중국쪽 국경도시이다.
보통 에렌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몽골의 국경도시 자밍우드에 비하면 20배도 더 큰 도시이다. 건물과 도로의 모습은 거의 국제수준이며 인구도 몇 십 만은 되는 것 같다.
일찌기 철도가 중국의 중심지와 연결이 돼 있었던 덕에 무역 중계지로 성장한 곳이다. 북경과 울란바타르의 교역에 중요한 역 역할을 한 곳이다. 최근들어 고속도로가 놓이며 물류의 증대로 도시는 더 성장한 것이다. 몽골에서 쓰이는 공산품의 대개는 중국에서 수입을 하는데 그 물품의 교역이 이곳을 통과하며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 한자와 몽골어 그리고 몽골고어가 나란히 적힌 간판



인력거도 전기로 움직인다. 쉬고 있는 페달이 나무로 만들어졌다.

학교의 정문, 선생님을 존중하고 교육을 중히 여긴다는 사자성어

나이든 부부, 이런 모습을 자주 만난다.


3일 간 단골이 된 식당에서,
주방장 오빠와 서빙 누이가 내 카메라에서 지나온 고비 사진을 보고 놀라워 한다.

백화점 컴퓨터 상점에서, 주인이 나에게 인터넷을 잠시 쓰게 해 주었다.

고비사막을 지나오면서 망가진 아내의 트레일러 앞판

에렌은 현대식 건물에 포장도로를 갖추고 사막을 덮어쒸울만큼 조림사업을 한 신도시로 탈바꿈해 있었다. 무엇보다 사막에 나무를 심어 가꾸는 정책은 도시의 이미지를 깔끔하게 보여주었다.
고비사막은 고원지대이다. 평균고도가 해발 1200m이다. 에렌은 고비의 가운데에 있지만 지난 세기에 중국으로 편입되면서 내이멍구에 속하게 된 곳이다. 중국 편에서는 몽골을 외몽고, 그리고 국경의 남쪽을 내몽고 즉 내이멍구라 부르는 것이다.
사막은 같은 사막이지만 도로가 놓이고 전기를 생산하여 물을 끌어올리는 기술이 좋아지면서 결국에는 사람이 살만한 도시로 발전을 한 것이다.

나무를 심고 물을 주면서 조림에 적극적인 풍경

어제와 오늘, 이틀을 쉬었다.
어제는 인력거를 타고 시내의 백화점을 구경하였고,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공룡공원에 다녀왔다. 오전에는 비가 내려서 늦잠을 잤다.
에렌의 명소 중에 하나가 공룡공원이다. 고비사막이 초원이었던 수백 만 년전 옛날에는 이곳이 공룡이 살기에 좋았던 모양이다. 시내에서 약 20km 쯤 떨어진 공룡공원은 사막의 벌판에 만들어져 있었다. 공룡의 무덤같은 곳을 파헤쳐 뼈를 발굴하는 장면을 그대로 지붕을 쒸어  보관해 둔 대형 창고같은 건물도 있었다. 여러 종류의 공룡 모형을 만들어 벌판에 넓게 넓게 전시해 둔 장면도 좋았다.
공룡 구경을 하고나선 1.5km 더 멀리 있는 역참(驛站, station)의 옛 모습을 복원해 놓은 박물관을 구경하였다. 사막을 오고가며 물건과 문화를 실어날랐던 옛 상인들의 행색과 용기를 만나볼 수 있었다.
낙타에 물건을 싣고 고비사막을 건너다녔던 그들의 영혼을 읽으며 나는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을 먹고 마시며 어떻게 잠을 잤는지......

몽골에서 중국을 오가는 짚차, 사람과 짐을 날라준다.

시원한 벌판에 세워진 공룡공원






역참 박물관


오래된 사진, 낙타로 짐을 나르는 상인

고비사막을 오고간 역마차

울란바타르에서 자밍우드까지 몽골고비 800km를 어렵사리 건너왔지만 우리의 여행이 여기서 끝이 난 건 아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예정한 여행의 절반을 지났을 뿐이다. 내일부터 중국의 내몽고와 하북-북경-천진으로 잇는 중국여행 1,000km가 고스란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길은 포장이 되어서 편해지겠지만 습도 높은 더위와의 싸움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중국인들의 인심은 어떨 것이며 갈아 마셔야할 물과 음식들이 궁금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설레이기도 하다.

중국에서의 자전거여행은 이번까지 세 번째이다.
1996년에 자전거로 백두산, 그러니까 중국의 장백산을 오르기 위해 다녀왔던 게 첫 번째이다. 백두산의 천문봉과 백운봉 두 곳을 자전거로 올랐었다. 두 번째는 2004년도 여름에 단동을 통하여 압록강 줄기를 따라 수풍댐과 주변 도시를 자전거로 다녀오는 여행을 했었다.

나의 중국여행은 1980년대 말부터였다. 중국과의 정식 수교가 되기 이전이다. 작은 기업을 경영하던 시절이다. 노태우대통령 때에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중국에 투자를 하러간 셈이다. 그 후 나는 등산으로, 산악스키로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백두산을 세 번이나 올랐는데 그때마다 날씨가 화창하였었다. 정말 운이 좋은 행운아이다. 그때의 중국에 비하면 지금은 천지개벽 수준으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빠른 속도로 발전을 했으니까!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이 우리의 자전거여행을 기다리고 있다.
인민을 만나는 설레임이 크다. 그렇게 재미난 일이 날마다 일어날 것이다.

*** 공룡공원 입장료는 1인당 50위안이다. 외국인은 여권을 제시해야 한다.



2011년 07월 25일   月   맑음
62km 운행.    숙소(旅店) 43도13'36,08+112도20'42,03

자전거로 시간의 문을 열고  중국 속으로 들어간다.
자전거가 시간의 문을 열 수단이란 걸 나는 안다. 그걸 아는 사람만이 그 수단을 써서 시간의 문을 열고 들어가 세상과 소통하며 시간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 아주 즐겁게!
아내와 내가 문을 열고 함께 갈 수 있는 시간의 그 끄트머리가 멀잖아 보인다. 그것도 자전거로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않았다. 자전거가 시간의 문을 열 수는 있지만 자전거로 시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과 별리를 향해 늙어가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늙어간다는 것, 그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한국에 가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는 선물가게 처녀와

며칠간 단골이 되었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이웃하는 선물가게 처녀와 옆집 세탁소 아줌마도 헤어지는 게 섭섭하여 손을 잡고 놓지를 않는다. 코끝이 찡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큰길을 향해 달렸다. 선물가게 처녀는 한국에 가는 것이 일생의 꿈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줄 게 없었다. 아내와 정이 든 세탁소 아줌마까지.....
그런 게 여행이다.

큰길 G208번은 고속도로 수준이다.
왕복 4차선에 갓길이 따로 한 차선이 더 있다. 어깨차선은 자전거와 인력거 등등이 다니는 길이다. 자동차가 쉬는 길이기도 하다.
모래길에 비하면 타이어가 짝짝 달라붙는 아스팔트길은 비단같다. 우선 팔목에 충격이 줄어들어서 좋다. 속도도 모래길에서 보다 두 배 이상이다. 하루에 60km를 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 같다.
그러나, 낮 기온이 섭씨40도를 넘으면서 아스팔트는 용광로로 변한다. 도로 위에 지글지글 끓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 그리운 모래길!

아스팔트에 복사되는 열기




섭씨 41도까지 기온이 올랐다.
더위에 지친 타이어가 두 번이나 펑크를 낸다. 아내의 트레일러와 내 자전거 뒷 타이어이다. 가시나 철사에 찔려서 난 게 아니라 더위로 타이어 내부 온도가 높아지면서 마찰 열에 의한 상처가 펑크를 낸 것이다.
모든 타이어에 공기압을 올렸다. 타이어의 공기압이 높아지면 지면에 접촉하는 부위가 줄어들면서 만들어지는 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레일러는 45psi, 타이어는 65psi로 바람을 빵빵하게 넣었다.

중국 공산당이 마음을 크게 바꾸어서 사유재산제도와 계획경제를 동시에 실시하면서 중국은 엄청 변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막의 풍경도 바뀌어가고 있다. 게르를 대신하여 영구주택이 들어섰고, 고비시막의 바람을 이용하여 풍차발전기를 수를 모를만큼 여럿을 돌리고 있었다. 집집마다 전기가 끊기지 않고 들어오고, 물의 보급도 걱정이 없어 보인다.





입간판 그늘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잤다.

길은 덥고 지루해졌다.
에렌하우터의 공룡을 알리기 위한 인공 공룡이 길가에 여기저기 세워져 있고, 거대한 공룡 두 마리를 서로 마주보게한 아취형 조형물은 제법 소문이 난 구경거리가 돼 있지만 그게 전부였다. 모래길처럼 촌각을 다투며 길을 읽어야 하는 긴장이 없어진 것이다.
이런 길을 내내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답답하다. 사막에 건설한 현대식 포장도로이지만 그늘이 없기는 몽골에서와 마찬가지다. 기껏 입간판 아래에 난 좁은 그늘에서 점심을 먹었다. 낮잠도 잤다.

저녁 6시, G208, 60km쯤에서 마을을 만나 여점에서 묵기로 하였다.
한 사람에 15위안씩 계산하여 30위안을 냈다. 숙소 중에서도 가장 값싼 곳이다. 주인 아줌마는 "TV도 나오고 뒷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도 분다."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씻을 수 있는 물 한 항아리와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물이 위안이 되었다.
나는 교체만 하고 때우지 않았던 튜브를 모두 꺼내 펑크를 수리했다. 식당이 옆에 있었지만 우리는 밥을 해 먹기로 했다. 구수한 숭늉을 마시고 마당 가득한 별을 바라보는 것도 싫지 않았다.



우리가 묵었던 방


유라시아대륙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동그람이 부부.
30대의 젊은이다. 한국에서 몇 번을 만나서 여행에 관한 의견도 나누고 자전거캠핑도 같이 했었다.
동그람이 부부가 북경을 떠나 G110번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오다가 울란차부에서 G208 로 우회전하여 북쪽으로 오고 있다는 문자편지를 받았다. 그럼 우리도 S208도로를 타고 가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G208을 타고 남쪽으로 가다가 동그람이 부부와 또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김세식+김윤구 팀도 만나야겠다.

동그람이 부부는 인천-천진-북경-울란차부-에렌-몽골-러시아를 지나 유럽으로 자전거여행을 이어갈 팀이다. 김세식+김윤구 팀은 인천-천진-북경-울란차부-에렌하우터-울란차부-북경-천진-인천 2천km를 탈 계획이다. 두 팀 모두 가까운 사람들이라 만나면 무지하게 반가울 것이다.
심심하고 지루한 길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그게 희망이 되었다.
모두 안전운행 합시다!!!

중국여행에도 천사를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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