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베트남 산간 지형과 삼겹살 파티
에디터 : 글 안효일, 동영상 안상은




사파(Sapa)에서의 즐거운 시간들을 뒤로 한 채 우린 다시 베트남과 라오스의 국경 도시인 디엔 비엔 푸(Dien Bien Phu)를 향해 출발한다.
이 곳 사파(Sapa)가 길이 있는 베트남 북서부 산간 지역 중 가장 고도가 높은 도시인 줄 알았는데 출발하자 마자 '어서옵쇼~!!' 하고 더 높은 오르막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1700m에서 출발한 우리는 오늘도 역시 결국 해발 2000m를 넘겨버리고..

진짜 힘들어 죽겠다.
이 놈의 베트남 산 길들.. ㅡㅡ;
그리고 이 놈의 길 들은 포장도 안되어 있는 지라 제대로 속력이 나올 리가 없다.



'디엔 비엔 푸(Dien Bien Phu)에 이르는 길은 상당히 스릴이 넘친다!!
보다 더 흥미진진한 곳은 12번 국도(디엔 비엔 푸와 라이쩌우 사이 구간..)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위험한 곳이다.
정기적으로 산사태에 뒤 덮이는 이 도로는 대부분의 구간이 포장되어 있지만 너무나 험해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이가 흔들릴 지경이다.
이어지는 사파(Sapa)에서 라이쩌우(Lai Chau) 들어가는 길 역시 군데 군데 울퉁불퉁한 곳이 있지만, 동남 아시아에서 최고의 산악 풍경을 제공한다.'
'디엔 비엔 푸(Dien Bien Phu)를 지나고 북쪽으로 라이쩌우(Lai Chau), 사파(Sapa), 라오까이(Lao Cai)까지의 루트는 4륜 구동 차나 오토바이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데 길이 끊어져서 수풀을 헤치고 가야 할 경우를 대비해서 이다.
이 코스를 제대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일주일, 그리고 만약 시내 버스로 도전한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잡아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 길을 힘겹게 오르 내리는 용감한 사이클리스트들을 위한 응원도 준비하라!!'
론리 플래닛 '베트남' 편 북서부 산악 지역 설명 中..

2주일 정도 후에 도착한 라오스 농키아우(Nong Kiaw)의 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을 때 책장에 꽂혀 있는 론리 플래닛 베트남 편을 읽다가 이 구절을 읽고 헛웃음이 나왔다.
참 내..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지나는 이 길이 이런 길인 줄 진작에 알았다면 우린 아마 이 길을 지나지 않고 바로 하노이로 넘어갔을 거다. ㅡㅡ;
아무튼 이 때는 '아따,, 이 놈의 길 진짜 힘들기도 하구나.. 그래도 산 풍경 하나는 죽이네..' 하면서 뭣 모르고 달렸으니 진정 모르는 게 약이 된다는 경우는 이런 경우를 뜻하나 보다.. ^^;

책에 쓰여진 대로 동남아 최고의 산악 풍경을 자랑한다니 (당시에는 그런 거 몰랐지만.. ^^;) 풍경이 기가 막히게 멋지기는 한지라 상은이 형이랑 나랑 서로 카메라 꺼내 들고 푸른 산들과 안개 사이로 비춰 드는 햇살의 장관을 담느라 정신 없기는 했었다.

어느 곳이든 멋지고 기막힌 풍경으로 소개된 곳은 기막히게 사람들의 발 길이 안 닿는 곳이란 뜻이기도 하고, 사이클리스트들에게는 그만큼 기막히게 지옥의 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기막힌 풍경으로 소개되어 있는 곳은 책에 쓰여지기 무섭게 여행자들의 주요 이동 경로가 되거나 관광지가 되면서 여행 책자 지면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면서 여행책자의 필자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 곳은 멋지다. 하지만 멋지다고 소개되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그 본래의 모습을 잃고 있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이 아이러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봐야 할런지 같은 여행자이자 사람들에게 읽히는 여행기를 남기고 있는 한 사람으로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지 곱씹어 본다.

오르막의 끝에는 언제나 내리막이 있지만 길이 워낙 안 좋아 브레이크 밟아대며 울퉁불퉁 자갈들과 움푹 패인 홈들 피하느라 내리막길에서도 도저히 속력이 안 나온다.
진정 책에 나온 거처럼 버스를 타도 이가 흔들린다는데 자전거는 오죽하겠는가.. ^^;


그냥 길도 힘들어 죽겠는데 200~300m 간격으로 먼지 듬뿍 휘날려주시며 당당히 바리케이트 치고 친절하게 우리의 앞 길을 떡 하니 가로막아 쉴 시간을 주는 도로 공사 현장들까지 등장해 주시니 내리막도 나름 고역이다.
그래도 이 길을 계속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게 어디인가.. 브레이크 힘껏 쥐고 뇌 속까지 진동케 하는 울퉁불퉁한 길들을 피해 조심스레 내려와야 하지만 내려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결 라이딩이 수월하다. ^^

내려오다 보니 드디어 산 들이 사라지고 평지가 나온다.
지금 고도가 700m 정도이니 1300m를 내려왔다. 언제나 오르기는 무진장 힘들고, 내려오는 건 한 순간이다.
내려올 때는 '그래,, 이 맛에 자전거 타는 구나. 오르막도 오를만해..' 하다가 다시 업힐에 접어들면 '젠장할,, 이 놈의 얼어 죽을 오르막..' 하고 툴툴대기 시작한다.
뭐, 사람이란 게 워낙 간사하니 시시각각 변하는 이런 변덕을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




그래도 지나갈 때 마다 순박한 웃음과 함께 '할로'를 외치는 아이들에게 나도 일일이 할로를 외쳐주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 본다.
오르막과 브레이크 잡으며 거북이 속도로 내려온 내리막에서 시간을 다 빼앗겨 50km 정도 밖에 달리지 못했다. 거기다가 일몰 시간은 오후 5시 반..
5시가 되니 금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달리는 길에 보이는 잔뜩 펼쳐진 국수 면발들을 보고 혹시나 식당이 아닌가 잠시 멈춰서 아주머니께 물어보는데 저 밑에서 다른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향해 손 짓을 하신다.
손 짓 하신 아주머니께 가보니 작은 구멍 가게인 듯.. 아무튼 '쌀 국수 먹을 수 있어요?'하니 나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셔서 음료수 하나 사먹고 기다리니 우리가 주문했던 쌀국수 두 그릇이 그릇에 푸짐하게 담겨 나왔다.
허겁지겁 먹고 나서 가게 옆 공사 중인 것 같은 공터에 텐트를 쳐도 되는지 여쭸더니 아저씨께서 내 손을 잡고 집 안으로 이끄신다. 그리고 침대가 놓여 있는 방을 가리키시며 이 곳에서 자라고 하신다.




'아저씨,, 호의는 감사 드리지만 저희 그냥 편하게 밖에 텐트 치고 자겠습니다..^^'하고 그냥 밖에 텐트를 쳤다. 편하게 아저씨께서 내주신 방에서 자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땀범벅에 지저분한 몰골로 깔끔한 방 안에서 자는 것도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텐트치고 밖에 있는 수돗가에서 씻으려는데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부르신다.
가게 쪽으로 가보니 두 분이 저녁식사를 하려고 하시는 듯, 그리고 아주머니께서 방금 쌀 국수를 먹은 우리를 막무가내로 앉히시고 밥을 듬뿍 떠 주신다.

아~ 30분 전에 먹은 쌀 국수가 아직도 목까지 차있는데..
그래도 두 분의 호의가 감사해 밥 한 그릇 말끔히 비웠는데.. 다시 밥 공기를 가득 채워주는 아주머니..
아무리 웃으며 배부르단 표정과 몸짓을 보여드려도 별 수가 없다.. ^^;






내가 기념으로 함께 사진 한 장 찍고 뽑아드리려고, 두 분과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여쭤보니 흔쾌히 승낙하신다.
그리고 갑자기 분주해지시는 두 분..
아저씨께서는 양복에 머리 손질까지 말끔히 하시고, 아주머니께서는 옷장 속 깊숙히 고이 보관하고 있던 두터운 코트까지 꺼내 입으시고 카메라 앞에 서신다. ^^;

따뜻한 두 내외분의 호의 덕분에 사파(Sapa)에서 출발하자마자 첫 날을 기분 좋게 보냈다. ^^
두 분께 작별 인사 드리고 출발하니 바로 오르막 길이 또 등장한다.
1시간 조금 넘게 8km.. 으아~ 무지막지하구나.. 오르막 길..
어떻게 평지나 내리막 한 번 없이 이렇게 계속 오르막만 펼쳐질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거기다가 아침 술까지 한 잔 해서인지 정말 무지막지하게 힘들다. ㅡㅡ;


고도 500m 정도를 올라와 잠시 쉬는데 출발할 때 보니 상은이 형 뒷 바퀴 스포크 2개가 부러져 있다. 이제는 스포크 부러졌다는 말 하는 것도 지겹다. 얼른 하노이(Hanoi) 가서 제논스포츠에서 보내 준 새 휠로 교체 해야 되는데..
제발 그 때 까지만 버텨다오~~!!
아무튼 이 날은 별로 달리지도 못했지만 힘들게 자전거를 끌고 다음 도시인 라이쩌우(Lai Chao)까지 도착하기는 했다. 달린 거리가 고작 30km 정도라 좀 더 달릴까 했지만 큰 길로 진입하면서 보니 더 가면 다시 구불구불 오르막 산길을 타야 하기에 별 수 없이 더 이상의 라이딩은 포기..
길 옆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에 들어가 손짓, 발짓 써가며 근처 공터에 텐트를 쳐도 되는지 물었다.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그간 베트남 사람들의 호의적인 모습들을 많이 봐서인지 굉장히 실례가 될 수도 있는 부탁임에도 불구하고 거부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OK~~!!
건물 옆 오토바이 정차장에 텐트를 쳤다.
저녁 밥을 먹어야 하는데 지금 시간이 6시 10분 전.. 어두워지면서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져 씻지도 않고 텐트 안에 잠시 몸을 뉘였는데..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배고픈 라이딩 둘째 날 밤이 그렇게 꼬르륵 지나가고 있다.


am 7:00 기상..
일어나서 배가 고파서 주변을 둘러보니 식당을 찾을 수가 없다.
결국은 바로 옆 가게에서 2만동이라는 거금을 주고 초코파이 한 박스를 구입..
정말 오죽 배가 고팠으면 쌀 국수 한 그릇 보다 비싼 초코파이를 구입했으랴.. ㅜㅜ
확실히 어제 저녁 식사를 못하고 잔 게 아침이 되니 확실한 반응으로 돌아온다.
아무튼 비싼 아침 식사(?)도 했고, 이거 먹고 힘내서 오늘은 좀 달려 볼까나.. 하는데 역시 시작은 오르막 길.. 그래도 한 시간 정도 달리니 이번에는 꽤나 매끄러운 내리막 길이 상쾌하게 이어진다.


한 낮의 뜨거운 햇살 속에 꾸역꾸역 한 걸음씩 전진하다 보니 슬슬 길 옆으로 강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강을 옆에 끼고 달려서 그런지 그렇게 무지막지한 오르막 길은 등장하지 않는다.
적당한 높낮이의 반복.. 뜨거운 햇살 속에 나름 수려한 경치의 강가를 보니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다.

'형, 날도 더운데 물놀이나 한바탕 하고 갈까?'
안상은씨 왈..
'안 그래도 강가 옆에서 텐트치고 하루 편히 쉬다가 갈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후훗~~!! 역시 둘 다 노는 데는 일가견들이 있는지라 이 경치를 보고 그냥 지나칠 사람들은 아니었나 보다. ㅎㅎ
좋다구나~~!! 서로 합의 보고 다음 마을을 향해 돌진~~!!
놀다가 갈 생각을 하니 절로 페달이 밟힌다. ^^;
노는데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법..
다음에 도착한 작은 마을에서 가게와 상점들을 둘러보며 둘 다 열심히 장을 보기 시작한다.


우선 강가에서의 화려한 삼겹살 파티를 위해 5만동(한화 3천원 정도..)에 돼지 고기 1kg 구입하고..
아따~~ 웃는 거 보라지.. 그렇게 좋으셔~~?? ^^ㅋㅋ
그리고 맞은 편 가게에서 마늘과 양파, 쌀국수 봉지 4개, 빵 3개, 음료수 2개, 쌀 1kg 구입했다. 물은 충분하고.. 사파(Sapa)에서 출발할 때 버리기 아까워 챙겨온 베트남 전통주도 한 통 있으니 이만하면 준비 완료~~!!
이제 남은 건 강가 옆에 오늘 하루를 불태울 훌륭한 야영지를 찾는 일 뿐..


5km 정도 더 달리다가 나름 경치도 좋고 야영하기 적당한 장소를 발견했다.
경치도 경치지만 가파른 강가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없어 여러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나름 적합한 곳을 찾기가 힘들 줄 알았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빨리 좋은 장소를 발견했다. ^^
자~ 그럼, 놀~~자~~!! ^^


열심히 오늘 우리의 삼겹살 파티를 위해 쓰일 고기를 정성스레 다듬고 있는 상은이 형..
여행 시작하고 15kg이나 빠진 그의 앙상한 몸매..
나이는 서른 다섯, 특기는 고기 손질, 키 184cm, 몸무게 65kg의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특공부대 출신의 남성 데려가실 여성 분 어디 안 계시나요?? ㅋㅋ

참고로 그는 앞으로 5년이나 전 세계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닐 백수 여행자랍니다.. ^^; 여행 후에는 자전거 스포크 수리 전문점이나 정육점을 낼 건실한 중년 남성이죠.. ㅎㅎ

강가에 돌들 주워다가 정성스럽게 불판 만들고,
양파랑 마늘 손질하고,
밥까지 정성스레 뜸들여 놓고,
마지막으로 스토브에 기름 잔뜩 채워서 불 지핀 다음 고기 올린 후 소금과 후추까지 살짝 뿌려놓으니..


우리 상은이 형 목 빠지겠소~~!! ㅋㅋ
돌판이 달궈지는 동안 기다리는 시간은 배고픈 두 여행자에게 너무 잔혹할 정도로 길기만 합니다. 우리의 스토브는 최강 화력으로 풀타임을 소화하고 있지만 두꺼운 돌덩이는 쉽사리 달궈질 생각을 안 하네요..
하지만 잠시 후, 인고의 시간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으니..
조금씩 고기들 색이 변해가면서 하얀 연기가 피워 오르기 시작합니다.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가 들릴 때쯤 얼른 강가로 달려가 시원하게 재워놓은 베트남 술 한 통 떡 하니 갖다 놓으니..


보기만 해도 침이 꿀떡 넘어가는 베트남 강가 표 돌판 삼겹살 구이~~!! ^^
열대 식물들이 축축 늘어져 있는 맞은 편 계곡과 힘차게 흐르는 강물 소리가 분위기를 더하니 행복이라 함이 이 곳 말고 그 어느 곳에 있는 것인가.. ㅎㅎ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 한 점 집어 들어 입 안에 넣으니 세상이 다 내 것만 같다.
거기에 베트남 전통 술 한 잔씩 가볍게 입 속에 털어 넣으니.. 캬~~ 좋다~~!! ^^
날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우리의 고기도 조금씩 사라져 가고, 우리의 배도 불러오고..
기막히게 밝은 산 넘어 보름달에 우리와 자전거에 선명한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 더 많은 이야기는 리얼로드무비 블로그를 통해 볼 수 있다.
- 리얼로드무비 블로그 : http://realroadmovie.tistory.com/ 
- 안상은 블로그 : http://rrmbyinwho.tistory.com/
- 안효일 블로그 : http://rrmbytransplan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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