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도 여행, 잔소리 아주머니
2010-10-25   안상은

인도에 발을 딛는다. 론니 플래닛을 보면 이곳 인도 국경사무소에선 최소 20분 이상이 걸리니 화내지 말고 차 한 잔 마시며 느긋하게 기다리라는 글이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여기저기에서 느긋하게 여권검사하고 확인하는 절차에만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 인도에 온 것이다. 7년 전 인도여행 때도 이걸 적응하는데 2주의 시간이 넘게 걸렸었다.

입국 절차가 완료되고 우리의 목적지인 잘빠이구리(Jalpaiguri)를 향해 달린다. 알다시피 엄청난 인구의 나라지만 최고의 인구밀도를 가진 나라를 거쳐오니 오히려 한가한 느낌이다. 목적지까지 거리가 멀지 않아 느긋하게 달린다.

첫 휴식 타임. 25루피(약 530원)하는 음료 두 개와 2루피 하는 군것질거리 8개를 먹는다. 방글라데시만큼 사람이 몰려들지 않아 좋다. 기분 좋게 휴식을 마치고 계산을 하기 위해 100루피를 내니 잔돈은 커녕 20루피를 더 내라 한다. 무슨 소리냐 따졌더니 음료가 하나에 50루피 라고 한다. 분명 옆 가게에서 25루피 하는 걸 의자가 있는 곳으로 와서 먹은 건데 두 배 값이란다. 그렇다. 잠시 인도라는 사실을 잊었었다. 무조건 값을 물은 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물러설 수는 없는 일. 34루피를 받아내기 위한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다행히 근처에 경찰이 있어 자초지정을 말해도 경찰이 적극적이지 않다. 그래 너도 인디안이다. 슬슬 인상을 쓰며 34루피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경찰의 소극적인 동참에 힘입어 10루피를 받는다. 34루피를 내놔. 10분간 실랑이 후에 10루피 추가. 34루피 내놔. 또 10분간 실랑이 후 5루피 추가. 34루피 내놔. 이 놈은 사람들에게 세상에 이렇게 억울한 일이 없다는 듯이 하소연하며 우리 돈을 토해낸다. 난 니들을 알어. 당하고만 있진 않을 테다.


호된 인도 입국 신고식을 마치고 다시 출발. 잘빠이구리에 도착한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미리 연락해둔 카우치서핑 친구인 라자쉬 집에 도착한다.
라자쉬는 널찍한 방으로 우릴 안내해 준다.

이렇게 또 쉴 곳을 마련한다. 근사한 저녁을 대접해주며 내일 바로 네팔로 가지 말고 시킴(인도 북동부지역)에 가라고 추천한다. 우린 내일 떠날 생각도 없거니와 시킴은 해발고도 3,000m가 넘는 고지대에 비싼 퍼밋이 필요해서 사양하고 싶은데, 이미 처음부터 내일 떠날 걸로 알고 있어 난감하다. 슬쩍 며칠 더 머물 거라는 운을 띄우지만 우리 속은 모르고 이 동넨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며 무조건 시킴으로 가라 한다. 모든 상황을 대비해 이곳에서 45km 정도 떨어진 실리구리(Siliguri)에도 카우치서핑 연락을 해 놔서 몰래 빠져 나와 그 쪽에 전화를 건다. 내일쯤 실리구리에 도착할 거라고 하자 실리구리 호스트인 아룹 아저씨가 오케이 한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차려준 저녁을 먹는다.




인도는 술이 금지된 나라가 아니다. 새 나라에 도착했으니 한 잔 해야지. 라자쉬와 함께 식당에 간다.

인도 맥주는 호프향이 원초적인 건 좋은데 전체적인 맛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다.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변호사인 라자쉬는 인도와 한국을 넘나드는 박학다식함을 선보이며 꽤나 훌륭한 열변을 토해내는데 난 도저히 그의 영어 발음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얘기가 나왔지만 대부분은 못 알아들었다. 포인트는 서양에 맞서 아시아인들도 힘을 합쳐야 한다. 유럽처럼 아시아도 한 통화를 사용하면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한국과 북한이 서로 대치하면서 쓰는 비용을 나라 발전에 쓰면 엄청난 효율이 생길 것이다.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도 지식인 층에서는 다시 예전처럼 한 나라가 되길 원한다. 바보 같은 정부와 미국과 유럽의 정부가 그걸 방해한다. 등등…
대화가 원활했으면 좀 더 즐거운 시간이 됐을 텐데 인도인의 영어발음은 내게 너무 어렵다. 가게 문 닫을 시간이 돼서 집으로 돌아온다.

여유 있게 며칠 있다 가려고 빨래를 담가놨는데 내일 떠나야 해서 빨려고 하니 물이 나오지 않는다. 정전만큼이나 단수도 잘 된다. 이빨만 대충 닦고 눕는다. 오랜만에 시원한 맥주를 마셨으니 잠이 잘 오겠다.

우리가 잠을 잔 방은 창이 없어 불을 끄면 완전 암흑이다. 모기나 다른 벌레들도 없었는지 간만에 푹 잘 잤다. 나가보니 아무도 없길래 나가서 밥을 먹고 들어온다. 라자쉬의 아버지가 어디 갔다 왔냐며 모든 게 그대론데 사람만 없어져서 깜짝 놀랐다며 호들갑을 떠신다. 잠시 후 라자쉬가 온다. 변호사라 하더니 그리 바쁘진 않은가 보다. 전화를 하지 왜 밖에서 밥을 먹었냐며 미안해한다. 손님에 대한 대단한 애정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꼭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누고 우린 다시 실리구리로 향해 달린다.


네팔과 방글라데시 두 국경과 가까운 지역이라 그런지 화물차가 많아 먼지가 심하다. 과적차량 때문에 도로는 엉망진창.
평지 길인데도 속도를 낼 수가 없다. 한번 쉬고 42km를 달려 실리구리에 도착한다.

미리 연락해둔 카우치서핑 아룹 아저씨를 만나 그의 집으로 이동한다.


3층 건물 옥상에 있는 방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잘 나온다. 아룹 아저씨는 우리의 여행에 꽤나 흥미를 보이며 많은 질문을 하신다. 역시 간식거리와 저녁을 대접해주고 자신이 여행한 사진을 보며 수다를 떠시는데 연세 지긋하신 아저씨가 즐거운 추억에 빠져 얘기하는 모습이 귀여워 보인다.
이곳 벵갈 지역은 힌디어가 아닌 벵갈어가 주 언어이기 때문에 방글라데시에서 발행된 우리가 나온 신문을 보며 하나씩 해석해 준다. 신문에는 잡스러운 인적 사항까지 거론돼 있었는데, 아룹 아저씨는 그게 이곳 문화라 한다.
그 동안 우리가 받았던 수많은 같은 질문들 "어느 나라냐?", "이름이 뭐냐?", "결혼 했냐?", "가족이 어떻게 되냐?" 등은 우리가 "몇 살이냐?", "밥은 먹었냐?" 라고 자주 묻는 것처럼 이곳 사람들이 상대방에 대한 호의를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
의사인 아룹아저씨는 이런 저런 의학 상식도 알려주며 오랜만에 만난 말동무가 마냥 즐거운 듯 하다. .

이 방은 원래 아저씨 내외분이 묵으시는 방인 것 같은데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다른 곳에 있는 집으로 이동하자 하신다. 또 좋은 분을 만나 흐뭇하다. 15일이 독립기념일이라 며칠간 국경이 닫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핑계로 며칠 좀 쉬다 네팔로 들어가야겠다. 정말 정말 오랜만에 쾌적한 기온에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주인 아주머니의 아침 먹으라는 성화에 못 이겨 잠에서 깬다. 밥을 먹고 올라오니 옷장의 옷이 다 나와있다. 어디 앉아 있을 곳이 없다. 신세지는 마당에 불평하긴 좀 그렇지만 내일 떠난다고 했는데 옷장 정리를 꼭 오늘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옷장 정리라는 게 주 단위도 아니고 달 단위로 하는 거 아닌가?  좀 너무 하신다.
옥상에 앉아 시간을 좀 때우다 밖으로 나간다. 뭐 좀 둘러볼 때가 있나 싶었는데 실리구리는 그냥 혼잡한 도시다. 만두가 보이길래 식당에 들어가 볶음면과 만두를 먹는다. 인도에서는 만두를 '모모'라 부르면서 티베트음식으로 분류한다. 오랜만에 먹는 만두가 맛있다. 별 구경할 게 없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주인 아주머니는 어디 갔다 왔냐며 점심 해 놓고 한참을 기다렸다고 또 잔소리를 하신다. 이 집 며느리는 정말 끝장이겠다. 배가 부른데도 거절할 수가 없어 또 밥을 먹는다. 7년 전 인도 여행 때는 고수 때문에 꽤나 고생을 했었는데 방글라데시도 그렇고 이쪽 지역에서는 고수를 먹지 않나 보다. 워낙 큰 나라고 많은 민족이 사니 음식문화도 다양할 수밖에. 고수 말고 특별히 가리는 거 없는 내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일 떠나기 위해 빨래를 하는데 화장실 오래 쓴다고 또 잔소리 작렬. 이제는 좀 웃기기까지 하다. 하루 종일 침대에 펼쳐져 있던 옷가지들은 저녁이 돼서야 다시 옷장 속에 들어간다.


메일을 확인하니 하루 만에 카트만두에 있는 카우치서핑 멤버 16명이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70여명에게 메세지를 보냈었다. 대부분이 여행 관련 트랙킹 가이드들이다. 여행자를 만나 좋은 인상을 남기면 인맥이 쌓여 도움이 될 테니 다른 지역보다 회신률이 좋은 것 같다. 하지만 나로서는 행복한 고민이라기 보다 미안한 고민이 됐다.
내가 칼자루를 쥐고 있을 입장이 아니니 말이다. 어찌됐던 카트만두에선 파키스탄 비자도 받아야 하고, 방글라데시부터 쌓인 영상 편집 작업 때문에 좀 오래 머물게 될 것 같은데, 잘 곳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부디 잔소리꾼 아주머니만 없길 바란다.

내일 점심에 국경이 닫힌다고 하니 일찍 일어나 출발해야겠다.

오늘 7시에 일어나겠다는 말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7시에 아주머니가 들어와 깨운다. 짐을 정리하는 동안 아침 토스트를 준비해줘서 간단히 먹고 아룹 아저씨와 인사를 하고 국경을 향해 달린다. 


가는 동안 효일이와 엇갈려서 기다리려 하다가 효일이가 앞서 갔고, 국경이 점심에 닫힌다 하여 효일이도 국경 쪽으로 갈 거라 생각하고 혼자 달린다. 30km 남짓한 지점이라 크게 벗어나진 않았을 거다. 국경에 도착하니 효일이가 없어서 기다린다. 30분쯤 지나가 효일이가 도착한다. 효일이는 나를 기다렸다 하던데 내가 앞서 있던 효일이를 못 보고 지나쳤나 보다. 다카에서 효일이의 무전기를 도둑맞아서 하나 남은 무전기는 무용지물이 된지 오래다. 어찌됐건 국경에서 만났으니 다행이다.

이번 인도 방문은 그냥 지나쳐가는 경유지여서 특별한 일이 없었다. 네팔 여행을 마치고 다시 찾을 때야말로 본격적인 인도 여행이 될 듯하다. 그럼 한달 뒤에 다시 봅시다.




** 더 많은 이야기는 리얼로드무비 블로그를 통해 볼 수 있다.
- 리얼로드무비 블로그 : http://realroadmovie.tistory.com/ 
- 안상은 블로그 : http://rrmbyinwh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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