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길 라오스, 최상의 길 친구
에디터 : 글 안효일, 동영상 안상은

베트남 국경을 넘어 라오스 출입국관리소(Immigration)로 가는데 이게 시작부터가 불안하다.
엄청난 비포장에 산 길임은 물론이고 그리 넓지도 않은 길 오른편에는 가드레일 하나 없는 아찔한 낭떠러지가 보인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바로 황천 길로 가겠구나.. ㅡㅡ;
산 길을 타고 꽤 달렸는데도 출입국관리소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한 2-3km를 달리니 베트남 쪽 떠이 짱(Tuy Trang) 국경만큼이나 이쁘장한 하얀 벽과 빨간 지붕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근처에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서성이고 있다.

오른편에는 가드레일 하나 없는 아찔한 낭떠러지가 보인다.


라오스 출입국관리소


라오스 쪽 퐁살리(Phongsaly) 출입국관리소..
자전거를 세워두고 입국 스탬프를 찍으러 가는데 험상궂게 생긴 젊은 직원이 아직 절차도 안 밟았는데 우리 자전거를 라오스 쪽 국경 너머에 세워놨다고 막 뭐라고 한다.
라오스 들어오자마자 길이 까탈스럽더니 국경 직원도 까탈스럽게 구는구나..
역시 라오스.. 시작부터 뭔가 불안해.. ㅡㅡ;
한 사람당 3,000낍(Kip)씩 스탬프 값 내고 무사 통과..
출입국관리소를 들어서면서 갑자기 도로가 포장되어 있어서 혹시나 했지만 출발하고 보니 역시나 아까 그 까탈스러운 길이 계속 된다.

한시간에 10km도 내려가기 어려운 내리막길

베트남에서부터 1100m나 올라와서인지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 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말이 내리막 길이지 이건 길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거 같다. 진정 고비 사막을 능가하는 돌 길이다. 내려오는 내내 골이 울리고, 진동 때문에 허리가 아프고, 브레이크 잡고 시속 10km 미만으로 내려오느라 손목과 손바닥에 통증도 오고..
하지만 역시나 내 몸이 아픈 거 보다 자전거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먼저 걱정이 되니 그 또한 슬픈 현실이로다.
왜 우리는 이렇게 안 좋은 길들만 골라서 자전거 타고 다니는지..
뭐, 누구를 탓하랴.. 가야 할 길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게으름과 시시각각 변하는 일정 따라 루트를 변경하는 우리의 변덕 탓이지..

아무튼 라오스의 길은 시작부터 '웰컴 투 더 정글'이다.
결국 내리막 길인데도 10km 정도를 가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다운힐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정도 길도 꽤 스릴 있을 듯 하다.
우리도 꽤 스릴있는 라이딩을 계속한다.
오른편은 천길 낭떠러지에, 조금이라도 자갈이 덜 박혀있는 곳을 찾아 삐뚤 빼둘 핸들 꺾어가며, 50kg에 가까운 짐들의 육중한 비명소리도 들어가며, 한 번씩 쿵 하는 충격이라도 생기면 자전거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고민하며, 온 몸의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며..



오후 3시쯤 작은 마을을 지나치는데 뭔가가 떡 하니 길을 가로막고 있다.
뒤에 차들도 기다리고 있는 걸 보니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면 안 되는 상황인 거 같다. 가까이 다가가니 표지판에 영어와 라오스어로 뭔가가 써있는데 당연히 라오스어는 읽을 수는 없지만 영어와 숫자들로 대충 상황은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전 타임에 길을 열고 닫는 시간과 오후 타임에 길을 열고 닫는 시간이 적혀 있는 거 같다. 공사를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영문으로 통행 시간이 따로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마을 주민들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 같은데..
이 산중에서 해라도 지면 라오스 도착 첫 날부터 큰 낭패인지라 내 속은 타 들어만 간다.
결국 우리는 표지판에 쓰여진 4시까지 거의 한 시간 가까이를 발만 동동 구르며 저 막대기가 치워지길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4시가 되니 차들이 시동을 건다. 그리고 밑에서 한 남자가 올라와 막대기를 치워준다.

길은 열렸지만 포크레인은 여전히 작업 중...

200m쯤 내려가니 저 아래서 포크레인 두 대가 열심히 흙을 퍼 나르고 있다.
아.. 공사 중이었구나. ^^;
그건 그렇고 통행 금지 풀렸으면 공사도 멈추고 차들이나 우리도 지나가게 해줘야지, 우리의 포크레인님은 왜 아직도 저렇게 열심히 흙을 퍼다 나르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ㅡㅡ;
아무튼 포크레인님 퇴장하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려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본다.



결국은 또 한 30분을 허비해버렸다. 덕분에 시간은 오후 5시가 다 되어간다. 아까 잠깐 말을 건 운전 기사 아저씨의 말로는 약 20km 정도 더 가면 무엉라이라는 도시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엉라이에는 게스트 하우스도 있고 은행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 어떻게든 우리는 무엉라이까지는 가야만 한다.

길이 워낙 안 좋다 보니 한 시간에 5km 전진하는 것도 힘겹다. 게다가 아까 공사 현장을 지나친 이후로 마을이나 민가는 둘째치고 사람 한 명 마주치기 힘들 정도로 인적이 드물다.


하늘에서 해가 사라져버리면서 우리의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불안해지기만 한다.
마을에 진입을 못해도 텐트를 칠 수 있는 평평한 장소만 있다면야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지나친 길들과 지금 가고 있는 길을 봤을 때 한편은 낭떠러지에 한편은 깎아지는 산 뿐이니 마음이 다급해질 수 밖에 없다. 길 한가운데 텐트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민가를 찾든 산 중에 텐트 칠 수 있는 곳을 찾든 더 어두워지기 전에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아야만 한다.
골이 흔들릴 정도의 비포장 길이지만 조급한 마음에 속도를 조금 더 내본다. 더 이상 자전거를 걱정할 겨를이 없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흙탕물 길에 진흙 길, 중간에는 5m 정도 되는 폭의 냇가가 길 한가운데 떡 하니 놓여있는데 다리가 없다. 다행히 수심은 무릎 아래 정도여서 자전거 끌고 발 첨벙첨벙 담가가며 건너 간다.
라오스 들어온 지 몇 시간 만에 몸이고 자전거고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분도 마음도 덩달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다.


저녁 7시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한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이 아까 운전사 아저씨가 얘기했던 무엉라이라는 도시인가 했지만 마을 주민 분이 무엉라이까지는 4km정도를 더 가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다.
너무 힘들고 지쳐있는 상태라 왠만하면 이 작은 마을에서 잠자리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마을에 들어서니 어두컴컴해진 이 시간에 자전거를 끌고 나타난 낯선 두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치들이 역력하다. 이런 분위기라면 우리도 이 곳 근처에 텐트를 치는 것도 불안할 뿐더러 이 곳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주고 싶지도 않다.

무엉라이라는 도시까지 4km 정도면 자전거 끌고 걸어서 1시간 정도 거리..
마을과 강이 나오면서 약간 평탄한 길에 들어섰으니 시도해 볼 만하다.
그래.. 걸어가보자.
작은 자전거 프론트 라이트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라오스의 자갈 길을 걷기 시작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우리의 밤을 환하게 비춰주던 그 커다란 달덩이 조차 보이지가 않는다. 마을에서 출발하면서부터 지나다니는 차는 커녕 사람 한 명 못 마주쳤으니 사방은 완연한 암흑 그 자체..
발과 바퀴에 느껴지는 강렬한 진동..
주위에 가득한 풀벌레 울음 소리들..
가끔 흠칫 놀라게 만드는 반딧불들의 형광 흔적들..
고비 사막의 밤하늘 만큼이나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별들..
그렇게 이 암흑 속을 1시간 넘게 걸어 드디어 무엉라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도착해 보니 도시라기 보다는 마을이다. 베트남의 작은 마을보다도 규모가 작은 마을인 거 같다.
그래도 다행이건 정말로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는 것..
환율 갖고 장난치려는 주인의 흥정에 대꾸할 기운도 없다. 45,000낍(한화 5,000원 정도..)에 방을 잡았다.
몸도 마음도 피곤함에 찌든 오늘 하루, 그냥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져 버렸다.


am 9:30 기상.. 라오스 무비자 기간은 15일이니 그 기간 동안 루앙프라방까지 갔다가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오려면 하루도 지체할 수가 없다.
게다가 앞으로의 길들이 어제 우리가 지나친 최악의 길들로 이어진다면 15일안에 루앙프라방까지 갖다가 다시 베트남으로 들어가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
우리는 무비자 기간인 15일을 채우고 라오스에서 나와 22일에 약속된 플랜 베트남 한국인 후원자분의 후원 아동 방문을 동행 촬영해야만 하는 상황이니 약속 이행을 위해서는 뭔가 다른 대안책을 생각해 봐야만 할 거 같다.


출발하기 전에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게스트 하우스에서 나왔다.
여기저기 돌아보는 것도 귀찮고 해서 숙소 바로 옆에 있는 간이 식당에 들어가 보니 쌀국수만 팔고 있는 것 같다.


쌀국수 한 그릇에 10,000낍(한화 1,100원 정도..)..
어제 숙소를 잡고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만만치 않은 가격에 꽤 놀랬었는데 쌀국수가 이 정도 가격이면 베트남보다도 비싼 가격이다.
맛은 베트남과 그리 많은 차이가 없는 거 같다. 아무튼 이 쌀국수가 그나마 가장 저렴한 한 끼 식사임이 분명하니 라오스에서도 계속 쌀국수만 먹게 될 것 같다.
식사를 끝마치고 나오는데 어제 밤 식당에서 잠시 만났던 일본인 여행자 마이유(Maiyu)를 다시 만났다. 지금 어제 우리가 넘어온 베트남 떠이짱(Tay Trang) 국경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고 한다. 버스는 하루에 단 한대 밖에 없는데 언제 올지 몰라서 아침부터 나와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일본인 여행자 마이유.
하루에 한번 오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아침부터 기다리는 중이다.

어제 라오스 여행을 마치고 베트남으로 넘어간다는 마이유와 얘기하면서 루앙푸라방까지 길이 어떠냐고 물어봤었는데 대답은 예상대로 'Very bad~~!!(아주 안 좋아요)'였다.
마이유가 여행하면서 중간에 만난 프랑스, 독일인 자전거 여행자도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배를 타고 움직였다고 한다.
그녀가 알려준 팁에 의하면 루앙프라방은 너무 많은 여행자들로 붐벼 그다지 매력이 없고, 여기서 루앙프라방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농키아우(Nong Khiaw)라는 곳이 조용하고 경치도 훌륭한 꽤 멋진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50km 정도 가면 나오는 무앙쿠아(Muang Khuoa)라는 도시에 가면 은행도 있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배편들도 많다고 알려준다.
어찌보면 앞으로 갈 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했던 우리가 마이유(Maiyu)씨를 만났던 건 정말 다행이었지 싶다. 그녀 덕분에 앞으로의 라오스 일정에 대해서 나름 생각해 볼 여유를 갖게 됐으니 말이다.
그럼 그녀가 오늘 안에 무사히 베트남으로 넘어갈 수 있기를 기원하며..
Have a good trip~~!! Maiyu~~!! ^^



** 더 많은 이야기는 리얼로드무비 블로그를 통해 볼 수 있다.
- 리얼로드무비 블로그 : http://realroadmovie.tistory.com/ 
- 안상은 블로그 : http://rrmbyinwho.tistory.com/
- 안효일 블로그 : http://rrmbytransplan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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