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따라 캠핑 여행, 가금~금사
에디터 : 쇠말패



한강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준설로 퍼 올린 모래가 어느 모퉁이에 산처럼 쌓여있었다. 대형 덤프트럭이 강바닥에서 모래를 실어 나르고, 중장비들이 뭔가 모를 움직임에 부산하다. "잘 한다, 못 한다."는 판단을 놓고 정치적인 편 가르기가 무성하지만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한강은 무심히 흐른다. 나도 무심히 흘렀다.
국가의 대형 인프라 구축 때마다 우리는 의식과 개념을 혼돈하며 정치판에 흔들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보존과 개발이 대치하고, 실용과 관념이 부딪치며 말싸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 과정을 겪으며 슬기로운 선택을 했었다. 이번에도 착한 선택을 할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지금 여주에서 양평으로 가고 있어야하는 시간이다.
약 반나절이 늦어지고 있었다. 가금에서부터는 길이 좋았다. 고개도 없고 포장은 시원하였다. 길은 강을 끼고 나란히 달렸다. 남한강을 따라 모여드는 크고 작은 하천이 늘어나면서 강폭도 점점 넓어졌다.
어제 자갈길에서 힘들었던 때문인지 오늘의 포장도로는 기분이 그만이었다. 기온도 알맞아 낮에는 반팔 져지를 입기도 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캠핑에서는 남여 구별 없이 취사에 참여한다.
밥물을 가늠하거나 양념을 보는 것은 그래도 여자의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하비님이 주방장이 되었다. 물론 바람개비와 인디고님이 잔 심부름을 하면서 도우미를 했다. 그 덕에 이번 여행의 식사는 일품이었다. 반찬을 준비하여 온 것도 하비님이 손이 컷다. 갖고 온 김치로 찌개를 끓이고도 여유가 있었다. 바람개비님이 준비한 김치볶음도 그만이었고. 끼니마다 누룽지를 끓여 내놓는 인디고님의 별식은 구수할 뿐 아니라 캠핑의 진수를 느끼게 해 주었다.
술 좋아하는 산장지기님의 신선주 제조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고, 말없는 보라매는 그 술을 다 받아 마셨다. 오이쨈님의 주력도 상당하였다. 별밤을 하늘에 이고 나누는 우리들의 만찬은 부러울 게 없었다.

부론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침 보신탕집이었다. 거절하는 사람이 없었다. 특으로 하나 씩 하고나니 든든하여 끝없이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주, 문막에서 흘러드는 섬강이 남한강과 합쳐지는 섬강교를 건너 여주 신륵사를 향했다. 신륵사 경내를 둘러보고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었다. 시원한게 맛이 있다. 아이들처럼 길거리에서 깔깔거리며 먹었다. 보통 때에는 어림도 없는 행실들이다.
무엇이 우리를 아이처럼 철없게 만드는걸까?


여주에서 333번 지방도로를 타고 북서쪽으로 달렸다.
세종대왕능 앞을 지났다. 세종은 손자 단종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장자승계를 그리도 고집하였지만 두 대를 잇지 못하고 세조는 선대의 소망을 뒤집어 버렸다. 조선의 초기부터 일었던 왕자들의 형제의 난은 가족끼리 피를 불렀다. 권력투쟁이란 이렇게도 모진 것인가?
청룡포에서 단종이 흘린 피가 여기까지 따라 흘렀다.

금사면 이포리에 닿았다. 양평이 가깝다는 길 안내표지를 보고는 집에 다 온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금사면에서 조성한 근린공원에서 캠핑을 하기로 하였다.
가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저녁거리를 고르고 있었다.
그 때 50대로 보이는 등산배낭을 멘 남자가 나에게로 다가와 말을 건넨다.

"형, 경기고 나왔지? 몇 회야? 교수지? 머리가 허연걸 보니 총장이네!"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하였지만 이내 눈치를 챌 수 있었다.
"형, 명박이 꼬봉이지? 지도를 갖고있네! 지도를 보고 다니는 사람들 천재라며? 자전거 타고 어딜 가는거야?" 질문에 형식이 없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
나는 지금 어딜 가고 있는걸까?
나는 누구일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위의 기사는 개인적인 용도 및 비상업적인 용도의 '퍼가기'를 허용하며, 상업적인 용도의 발췌 및 사진 사용은 저작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