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캠핑 여행, 아내들의 위문
에디터 : 쇠말패

2011년 01월 15일  土  맑음
구산-오산리-쪽빛바다해안도로-근남-울진-부구리, 원자력전시관   46km

어제 저녁에 야영장을 찾아가다가 얼음판에서 내가 미끄러지는 사고가 있었다.
산장지기님이 알맞은 야영장을 찾아내고 팀을 그 쪽으로 인도하면서 빙판이 있으니 주의하라고 일렀었다. 바로 앞에 가던 인디고뱅크님이 벌러덩 넘어지는 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어대다가 덩달아 나도 넘어진 것이다. 넘어져서도 한 동안 웃음이 났었다. 내가 넘어진 것도 우습긴 마친가지였으니까.
넘어지면서 무릎에 충격이 가해진 것 같다. 페달링을 하면서 가끔 무릎에 통증을 느꼈다.


망양에서 간식을 먹으며

구산해수욕장을 출발하여 7번국도를 타고 약 20km 가다가 오산리에서 920번지방도 일명 "쪽빛바다해안도로"를 타고 달렸다.
어제보다 기온은 더 차가웠다. 무릎에 통증은 더 심해지는 듯 하였지만 참을만 하였다. 무릎을 살살 달래며 울진 못 미쳐 근남까지 와서 점심을 먹었다.
전체일정이 계획보다 약 반나절이 지체되고 있었다. 추위로 인하여 아침 출발시간이 30분에서 한시간씩 늦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쌓인게 반 나절이나 된 것이다. 처음부터 하루나 이틀을 여유있게 더 쓰자고 대원들에게 말은 해 두었지만 마음에 걸린다. 방송팀도 마음에 쓰이고 오늘 위문을 오기로 한 아내의 일정에도 마음이 쓰이긴 마찬가지다. 

울진을 지나면서 안내를 해 주기로 한 공공칠님이 죽변 부근에서 기다린다고 전화가 왔다.
울진을 지나면서 7번국도를 타고 간다. 무릎도 아프고 뭔가 캥기는 게 있어서 잠시 멈추었다. 후미를 보던 자작나무님이 보이질 않는다. 아무 말도 없이 일행에서 사라진 것이다.
15분 쯤 기다리니 자작나무님이 나타난다. 점심을 먹었던 식당에다 화첩을 두고 왔단다. 그래서 뒤따르던 방송팀 차량에게 식당에 가서 화첩을 받아다 주도록 부탁을 하는 동안 늦어진 것이다.

쪽빛바다해안도로로 갈라지는 삼거리

2008년에 아내와 전국일주여행했을 때 들렸던 식당겸 민박집, 그때에 도움을 받았었다.

쪽빛바다해안도로에서 만난 학생 2명,
전국을 걸어서 일주하는 파랑길을 답사 중이라고 했다.

다시 출발하여 2km 가량 가다가 내 자전거의 체인이 끊어졌다. 날이 추워지면서 체인 절단으로 인한 고장이 자주 일어난다. 산장지기님이 뒤돌아 와서 도와주었다.
체인을 수리하고 조금 더 가다보니 7번국도가 갑자기 자동차전용도로로 변한다. 전국에 몇 군데에 이런 길이 있는데, 여기서부터 자전거는 7번국도를 운행할 수 없단다. 구도로로 접어들면서 자전거로 마중을 나온 공공칠님을 만났다.
이 구도로는 고개를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길이다.
그가 앞장을 섰다. 우리의 속도에 맞추어 차근차근 길을 앞서가는 공공칠님의 겸손은 보는이로 하여금 신뢰와 감사를 느끼게 해 주었다. 쉴 때에는 따끈하게 준비한 영양제 마실것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비싼 음식보다 더 한 정이 담겨 있다. 블로그 이웃 공공칠님의 친절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사위가 어둑해질 때 도착한 원자력전시관

부구리에 있는 원자력전시관 관내로 찾아 들었다.
공공칠님의 의견에 따르면 전시관에는 열린 화장실과 텐트를 칠만 한 곳이 있다는 것이다. 공공칠님의 제안은 적중하였다. 이미 해는 지고 있었고 추위도 몰려왔다.

그 때 눈에 익숙한 차량이 보이더니 아내들이 나타났다.
오늘은 한파경보가 내려진 날이다. 올겨울에서도 가장 추운 날이라는데, 이 먼 곳까지 아내들이 찾아온 것이다.
아내, 불근늑대가 찾아온 것이다!

아내들과 함께 치뤄내는 야영으로 캠프는 들뜬 기분이다.

자전거를 탄체로 아내를 껴안았다. 뭔가 뜨거운 기운이 가슴에 닿는다.
산장지기님도 아내 마찌님을 안더니 서슴없이 입맞춤을 한다.
오이쨈님과 당근쨈님, 인디고뱅크님과 인디걸님 그리고 막내 자작남무와 바람개비님...... 뒤에는 자작나무님의 아들 선우까지.
다섯 가족이 서로서로 얼싸안고 사랑을 각인한다.
이만하면 이번 여행은 200% 성공이다.

엄동설한에 자전거여행을 떠난 남편들을 위해 아내들이 위문을 오다니! 반갑고 놀라울 뿐이다. 예상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다섯 대원의 아내 다섯 명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올 줄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원 중에서도 오이쨈님이 가장 기뻐한다. 기대 0%였다가 100% 반전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못 올 것이라던 바람개비님도 덤으로 선우까지 데리고 왔으니 자작나무님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바람을 막아줄 벽이 있고, 바닥에 눈이 녹은 것으로 보아  볕이 잘 들 것같은 곳을 골라 텐트를 쳤다.
아내와 함께 치는 텐트는 힘이 솟는다. 비록 언땅 위에 짓는 헝겊 집이지만 별다섯호텔이 부럽지 않다. 아내가 준비한 "외대감자탕" 그 진한 국물이 스토브에서 끓는다. 꿀맛이다.
양은냄비 쪼가리를 들고 밥을 퍼 먹는 모습이야 겨우 거지꼴이지만 세상에 이만한 만찬이 어디 있을까!

감자탕을 끓이는 아내와 거드는 인디고뱅크와 오이쨈님

저녁을 먹고나서 모두의 찬성으로 덕구온천을 다녀왔다.
언몸이 녹았다. 이빨도 닦고 머리도 감았다. 아내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맘껏 먹고, 온천욕을 하고...... 얼마나 행복한지!
욕탕까지 찾아온 공공칠님과도 작은 이야기를 많이도 나누었다. 참 좋은 밤이었다.

야영지로 돌아와 아내가 준비해 온 속옷을 갈아입었다.
양말도 갈아 신고, 아래 내복은 좀 두꺼운 파일제품으로 입었다. 그저께부터 신발에는 덧신을 신는다. 상의 겉옷도 가벼운 다운자켓으로 갈아입는다. 추위에 대한 방한의류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

텐트마다 여기 저기서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2011년 01월 16일  日  맑음
부구리-원덕-임원-신남  

행복이 얼굴에 쓰인 막내 자작나무님


아내는 나보다 네 살이 작은 예순셋이다.
천진하고 난만하다. 예순이 넘어도 변하지 않는 아내의 미소는 내가 전생애를 통해서 받은 선물 중에도 가장 값진 선물이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영원한 그 미소를 안고 아내가 찾아 온 것이다.
그 미소로 나는 어려울 때마다 용기를 얻었었고, 나는 그 미소를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했었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은 아내의 작은 미소이다. 나의 신앙이다!

늦잠을 잤다.
누구 하나 서두르지 않는 아침이다. 고단한 겨울여행에서 얻은 아내와의 단꿈을 누구도 서둘러 깨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은 최고였다. 박언진의 아침이었다!
마찌님, 당근쨈님, 인디걸님, 바람개비님과 아내, 다섯 아내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신도 이런 아침은 만들지 못 할 것이다. 신도 만들지 못 하는 이런 아침을 만든 다섯 남자들의 가슴엔 얼마나 큰 자부심이 생겨 났을까!


양지바른 담벼락 앞에 모인 거지떼?

인디걸님이 준비해 온 육개장을 아침에 먹었다.
올 들어 가장 추웠던 밤을 보내고도 속이 이렇게 훈훈한 것을 보면 아내가 만들어 주는 음식이 최고이다.
텐트를 걷고 짐을 챙기는 데 야간근무를 하고 퇴근을 하던 공공칠님이 캠프로 찾아왔다. 작별인사다. 이런 남자가 많은 나라는 좋은 나라다. 직장과 취미를 같이 좋아하는 남자, 그러면서도 아들에게 꿈을 보여주는 젊은이 공공칠님. 울진원전에 근무하는 공공칠님과 가족의 꿈이 모두 이뤄지길 빈다. (어쩌다 보니, 아내들 때문이었을까? 공공칠님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없다.)

양은 밥그릇을 들고 양지바른 담벼락 앞에 모여서 옹기종기 식사하는 게 꼭 거지꼴이다.
천국이 따로 없다!

준비한 스토브 다섯 대 가운데 두 대가 고장이다.
18년이 된 나의 콜맨스토브와 오이쨈님이 새로 구입한 코베아의 혼합연료스토브이다. 여분의 휘발유도 다 쓰고 모자랄 판이다. 두 대의 가스스토브는 동계용 가스를 쓰는 데도 불꽃이 살아나지 않아 포기한 상태이다.
화이트개솔린을 구해야 한다. 공공칠님이 알아보겠다며 가까운 낚시점에 다녀오더니 삼척에 가야 살 수 있다는 정보를 주었다. 아이폰으로 검색을 한다. 삼척블랙야크점에서 구할 수 있단다. 랙스턴을 몰고 온 마찌님과 아내들이 장을 봐 주기로 하고 우리는 부구리를 떠났다. 아침 11시다.

선우를 트레일러에 태우고 장난을 하는 자작나무님

원덕에서 점심을 아내들과 함께 먹었다.
다행히도 휘발유를 구해 왔다. 아내들을 떠나보내고 다시 강원도길을 달렸다. 이제 강원도에 들어선 것이다.

길은 강원도길.
구불구불하고 구배가 만만치 않은 옛길을 간다.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다 내 무릎이 심상치 않다. 참을만 하던 통증이 때때로 참지 못 할만큼 충격을 준다.
혹시 뼈가 상한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인다. 대원들도 이제는 함께 걱정을 하는 처지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 한편이 불안해 진다. 대원들은 취재차량을 타고 병원엘 가란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자전거를 계속해서 타지 못 하게 할 것 같아 불안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루종일 30여 km밖에 운행하지 못 한 것이다. 아침에 늦게 출발한 탓도 있고.


어둡기 전에 신남에 있는 폐교에 캠프를 쳤다.
초등학교분교이던 곳인데 비워져 있었다. 열린 교실 안에 텐트를 쳤다. 바람을 막아줄 것이다.
저녁밥을 지을 준비를 한창 하고 있는데 인천에서 인디고뱅크님의 후배가 치킨을 사들고 찾아왔다. 사진찍기가 전문인 그는 선배 인디고뱅크님의 응원을 온 것이다. 이런 걸 남자들의 우정이라 했던가!

운동장 한켠에 모닥불을 피우고 양미리를 구워 먹으며 신선주를 한잔 하였다.
나는 무릎을 불에 쪼이며 내일에도 자전거를 탈 수 있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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