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을 따라서, 발원지 황지천
에디터 : 박규동

2010년 8월 1일  황지-승부. 35km.

자전거로 강을 따라 여행하기는 이번까지 세 번이다.
5년 전에 푸른바퀴 이웃 몇 분들과 중국을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단동에서 수풍댐까지 갔던 것이 그 첫번째이다. 그리고 올 봄에 영월부터 시작하여 서울까지 쇠말패 친구들과 자전거 길을 달려 왔던 남한강여행이 그 두번째요, 이번 여름여행으로 선택한 낙동강이 그 세번째이다.

황지에서 기념 촬영
왼쪽부터 흰늑대, 나그네, 마찌, 붉은늑대, 트리스탄, 산장지기


낙동강 발원지 황지

강을 따라가는 자전거여행은 탐하는 마음을 내려놓은 하심의 공부가 되기도 한다.
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나는 좋다. 구비구비마다 만나는 강변의 풍광도 예사롭지 않고, 그 구비마다에서 피어난 어진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덕이다. 무엇보다도 강은 도시를 잉태한다. 도시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기웃거리며 가는 것은 나를 되돌아볼 좋은 공부가 되는 것이다.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 함백산(1573m)에서 발원하여 경상도 내륙을 남으로 흐르며 부산에 닿아 남해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압록강 다음으로 긴 강이다. 강의 길이는 506.17km이다.
태백 시내 한 가운데에 있는 황지(해발 700m)는 낙동강의 상징적인 발원지이다. 못 아래에서 맑고 착한 물이 용솟고 있다. 그 맑고 착한 성질이 낙동강을 따라 흐르며 기슭에 살고있는 만백성의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태백에서 떠난 강은 이름이 황지천이다. 황지천에 철암천이 보태면서 석포를 지나며 비로소 낙동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해발 700m에서 떠난 강은 봉화 청량산까지 고도를 600m나 급하게 낮춘다. 안동에 이르면 해발 100m의 낙차로 부산 을숙도까지 완만하게 흐른다.
낙동강(洛東江)이라는 이름은 상주의 옛마을 이름 낙양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낙양의 동쪽에 흐르는 강이라는 뜻이다. 상주는 옛부터 군사, 정치적으로 매우 주목받는 지역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때에 친구들과 어울려 수영을 배우고 사발묻이를 하며 놀았던 곳도 낙동강이다.


맑고 착한 물이 끝없이 용솟아 오르는 황지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7시 반 차를 타고 태백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1주일 전에 무림리를 출발한 트리스탄과 나그네님, 산장지기와 마찌님 내외가 댓재와 만항재를 넘어 오늘 아침에 태백에 도착한 것이다.
소문난 해장국 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우리를 따라 함께 낙동강을 완주하자던 트리스탄은 아들 은준이가 아프다고 산장지기, 마찌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 가고, 나그네님과 아내 붉은늑대와 흰늑대 셋이서 황지천을 따라 남쪽으로 31번 국도를 타고 낙동강여행을 출발하였다.

우리에게 석탄시대가 있었다.
태백이 석탄산지로 가장 컷던 곳이다. 심지어 강도 검게 흘렀으니깐! 그 강이 맑았다.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석포를 지나며 아쉬운 장면을 만난다. 아연재련소 하나가 강을 끼고 웅장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다. 뿜어나오는 증기에 메스꺼운 냄새가 섞여있다.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는 낙동강으로 곧장 유입이 돼 물에서 거품이 일었다. 이 게 낙동강 상류의 모습일리 없다고 우겼지만 강은 모른 체 흐르고 있었다. 계곡마다 피서객들이 넘쳐나던 때에 승부계곡만 이렇게 조용한다니 다 이유가 있었다.
1조가 넘게 투자됀 공장이라고 하니 당장 철폐는 어렵더라도 폐기되는 물과 공기 그 밖의 물질들을 더 맑게 정화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아름다운 승부계곡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길 빈다.

석탄으로 검게 물들었던 옛 강이 아니었다.


아연재련공장의 거대한 모습

강을 끼고 승부로 가는 길, 이 길은 승부에서 사라진다.

길이 사라지는 곳,
승부까지는 내리막이었다. 길은 강물 위로 사라지고 철로만 뻘쭘하게 서 있는 게 승부였다. 일본영화 "철도원"에 나올 것 같은 풍경에 하늘은 세 뼘밖에 되지 않았다.
겨울에는 눈꽃열차가 멈추는 곳이라는데 과연 볼만할 것 같다.

나그네님이 승부역에 찾아가 낙동강따라 기차를 타고 갈 수 없겠냐고 철도원에게 부탁을 해 본다.
철도원은 도와주고 싶지만 열차승무원들이 허락을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기차를 타지 못하면 길을 되돌아 나가서 넞재를 넘어 현동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더위를 식히려 피서를 왔던 지역 주민들이 떠나고 난 정자에 첫 야영으로 텐트 두 동을 어렵지 않게 칠 수가 있었다.
된장찌개로 첫 야영식을 하였다. 정자 옆에 설치된 물레방아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황지에서 을숙도까지!
아내와 하는 세번째 여름 자전거여행이 초록으로 색칠되어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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