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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2주간의 끔찍한 비를 뚫고
2011-04-01   이호선

정말 오랜만에 도로에서 만난 2명의 대륙횡단 바이커.
두 명 모두 스페인 인들로 스페인을 떠나 아프리카를 거쳐 남미를 여행하고 코스타리카로 들어 온 큰 덩치의 사나이.
후앙(Juan)은 이미 집 떠난 지 1년 이상이 되었고, 다른 한 명, 라파엘(Rafael)은 중간에 합류했는데 4 개월째라고 한다.
나는 북에서 남쪽을 향하고, 그들은 남쪽에서 북으로 향하던 중 교차한 것이다. 그들은 상당히 먼 거리였는데도 불구하고 단 박에 그들과 동족(同族)인 나를 알아 보고 날듯이 도로를 가로 질러 나에게 달려 왔다.
이미 비와 땀에 절고, 힘겨움과 외로움에 절어 있는 그들 중, 후앙은 다짜고짜 나에게 말보로 담배를 권하고 자신도 숨가쁘게 담배를 피워 물며 가슴이 터지도록 냅다 들이 마시더니 허공을 응시하고 시시각각 희비가 엇갈리는 심각한 표정과 함께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담배연기를 내 뱉는다.
그의 입과 코를 통해 조심스럽게 흘러 나오고 있는 담배 연기의 입자 하나 하나에는 그가 달려 온 지난 1년 여 동안의 모든 순간들이 속속들이 진하게 배어 있음에 틀림이 없다.


저 바다는 무엇인가? 저 바다가 바로 Pacific Ocean(태평양)이다.
태평양의 아주 멀리, 반대 쪽 끝에 나의 살던 고향, 대한민국이 있다.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더욱 알 수 없는 것이 하늘의 조화이고, 무력하기만 한 것이 인간으로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나의 몸과 마음은 연일 쏟아지고 있는 비에 젖고, 땀에 젖고, 그리고 외로움에 흠뻑 젖어 이미 천근만근으로 하염없이 가라 앉고 있다.
나의 힘겨운 빗속의 주행을 안타깝게 생각한 한 사마리탄이 그의 픽업트럭을 세운다. 솔깃하여 마른 침을 넘기며 입맛을 다지고 있는 나에게, 또 다른 편에 서 있던 또 다른 내가 두 손을 가로 저으며 두 발로 강력한 태클을 건다.
또 다시 터진 '융통성의 철학'과 '원칙의 철학'사이의 논쟁. 결국 '원칙의 나'가 승리하며 페달 질을 택한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배라도 천천히 고팠으면 좋겠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요구하는 나의 위장에 야속함을 느끼며 식당을 찾는다.
식당 앞 마당에 완벽하게 방수된 지붕 아래 하늘이 무너져 내리거나 말거나, 빗물이 강물 되고 바다 되어 쏟아져 내리거나 말거나 평화롭게 오수를 즐기고 있는 '개 스키', 아니 '개 사마'가 얄밉도록 부럽다.

멕시코를 떠나 중미지역의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옥수수인 토르틸랴(Tortilla)보다 아르로스(Arroz), 즉 쌀밥을 많이 먹는다. 이것이 특히 코스타리카와 파나마의 대표적인 식사이다.

일반적으로 Hotel은 조금은 더 비싸고 더 큰 집이다.
한 푼이라도 더 저렴한 호텔이 바로 Hospedaje(Hostel), Cabina(Cabin), Pension(펜션)등이다. 코스타리카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유치하고 있으며 도로변에는 마을의 유무와 관계없이 주기적으로 여행자들을 위한 다양한 숙박시설이 존재한다.
코스타리카를 제외한 다른 중미 권 나라들은 보통 마을이 있어야만 숙박시설이 있다.


비에 초 죽음이 되어 파나마의 국경을 30여KM 남긴 작은 시(市)인 리오 크라로(Rio Claro)의 한 여관 앞에 선다. 문 앞에 현대의 SUV인 '테라칸'이 서 있다. 여관의 여주인은 또 다짜고짜로 나에게 똥개 부르듯 "치노!"를 내 뱉는다. "어, 나 한국인인데 어쩌지?!"
순간, 그녀는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른다. 그래도 그녀처럼 미안함을 느끼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아무렴!
고요한 아침을 달려 9시 반경 국경에 도착한다. 출입국사무소의 의례적인 기념날인절차를 끝내고 파나마에 들어선다. 중미 7 개국 중 마지막 나라의 국경을 넘었다는 후련함과 안도감을 즐길 새 없이 하늘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물 대포를 나를 향해 발사하며 환영 식을 거행한다.
어제 밤새도록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 졌건만,……………

멕시코를 포함해 일곱 개인 중미의 나라들 중 마지막인 파나마의 국경.

비가 작정을 하고 쏟아 질 때는 순순히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하늘의 분노가 조금이라도 가라 앉을 때까지 손바닥만한 지붕에 나의 온 몸을 맡긴 채
그저 허공을 응시하며 기다릴 뿐으로…

파나마의 시골을 달리다 우렁찬 가스펠(Gospel)소리가
잠시 자전거바퀴의 회전을 정지시켰다.

이제는 자전거 타기가 괴롭다. 연일 쏟아지는 빗물과 땀으로 사타구니와 항문주위의 살이 무르고 쓸려 쓰라려서 페달 질 뿐 아니라 걷기에도 고통스럽다. 비는 거의 20, 30분 주기로 강약을 반복하며 결코 쉼 없이 계속된다. 빗줄기가 거셀 때마다 도로변을 따라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버스정류장의 초라한 구조물 아래 앉아 완벽한 방수의 지붕을 머리에 이고 달리는 4 바퀴의 차들을 꿈처럼 부러워하며 멍하니 앉아 있곤 한다.
비가 도리깨질 하듯 대지를 두드리고 있는 가운데 또 다시 구조물 아래 잠시 앉아 있다가 나는 바느질도구를 꺼내 낡아 여기저기 실밥이 터져버린 모자를 깁기 시작한다.
이 모자는 나의 조카 눔, '규상'이가 내가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잘 해, 삼촌!!"을 외치며 나에게 건네 준 귀중한 선물이다. 내가 가끔씩 정신을 잃고 혼란 속에 빠져 있을 때마다 그의 외침이 심각한 경각(警覺)의 종소리가 되고, 이내 수 없는 메아리가 되어 나의 전신에 파동 친다. 내가 날 건달이 되어 세상을 떠도는 동안 나는 어느 새 집안의 대소사에서 완전한 '열외(列 外)'가 되어버렸고 가족의 많은 기념 사진 속에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3년 전 큰 조카, 은경이가 결혼할 때, 나는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을 통과하고 있었고 부조금조차 꿀꺽 넘기고 입 닦고 말았다. 이 번엔 둘째, 은주의 결혼식이 내년 봄이라는데 그때 나는 또 어디를 달리고 있을 지 모르겠다.

규상아, 무섭게 쏟아지는 비가 조금 약해질 동안 내가 얘기하나 할까?!
규상아, 우리들 모두는 별로 큰 차이 없이 견고한 저마다의 울타리 속에서 삶을 살아가지. 적지 않은 이들이 서로의 울타리들의 두께와 높이를 자로 재 보며 입에 개 거품 흘리며 어이없는 설전(舌戰)을 벌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삶이 어떤 울타리 속에서 이루어지든 그 울타리를 부수고 대지로 창공으로 튀어나가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자신이며 그 자신의 의지가 아니겠어. 염라대왕님 앞에 가서 아무리 울분을 터트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발을 구르며 기분 좋은 주안상을 뒤 엎어봐야, 그것은 정말 가련한 일이고 어이없는 일이지.
나 또한 '민 태원'님의 '청춘 예찬'을 밑줄을 쳐가며 읽고 또 읽었던 10대가 있었고, 혈기왕성과 좌충우돌의, 바로 지금의 너와 같은 20대도 있었어. 정말 힘겹고 캄캄하기만 했던 시절이었지만 내 인생 최고의 가치인 자유를 한 움큼이라도 더 소유하려는 나의 심각한 욕구를 위해 어떤 매뉴얼이나 구체적인 계획조차 없이 그저 온 몸으로 때우며 좌충우돌 이름 모를 길거리 위를 구르는 동안 '삶의 포인트는 울타리가 아니라 울타리를 부수고 기어 나오겠다는 의지요, 도전이란 것'을, 또한 우리들이 심각하게 물고 늘어지는 그 울타리조차도 '불행' '불운'의 심지를 뽑은 불특정(不特定)소수(小數)만이 짊어지고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닌, 이 세상에 태어나 숨을 쉬고 있는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삶의 종점까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운명적인 것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지.
비록 다이나마이트, 불도저, 그리고 착암기를 소유하지 못해 그 울타리를 근본적으로 뽀개 버리는 것이 힘겹다 한들, 부단한 망치질로 1m두께의 콘크리트 벽을 하다 못해 50cm만이라도 쪼아 내며 'π(r+50cm)²-πr²'만큼의 공간, 즉 더 많은 자유를 소유하고 즐기려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삶의 포인트가 아니겠어?!!
자랑스럽고 사랑스런 규상아!
너는 이미 이 세상 앞에 당당히 서 있지. 아버지와 나를 제외한 삼촌 세대의 사람들이 많은 노고와 인내의 땀방울을 감수하며 조그맣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을 박차고 튀어나가 세계 지도 위에 굵고도 선명한 선을 그으며 사막과 밀림에 길을 내고 Playground를 만들었지.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의 무대 위에서 사물놀이 풍물패의 통쾌하고 맹렬한 반주에 맞추어 '난타'를 연타하고 '점프'를 연발하고, 심지어는 고난도의 '트리플 러츠'와 '트리플 플립', '트리플 토루프'까지 감행하며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플라잉 코리아(Flying Korea)'가 되었다. 이제 세계는 단순한 꿈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되었지. 자, 가슴에 세계를 품고 꿈을 향해, 달겨 드는 바람을 부수는 또 한 줄기 광풍(狂風)이 되어 통쾌하게 대륙을 질주하는 거다. (하지만 너는 나처럼 페달 질로 달려 갈 필요가 전혀 없어!!)

또 다른 대륙횡단 바이커들.
아이리쉬(Irish) 청년인 쥬리안(Julian)과 영국인 아가씨인 엘리(Ellie).
두 명은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를 종단하고 칠레에서부터 북미를 향해 달리고 있는 중이다. 이들 역시 가출(家出)한 지 이미 1년이 넘었다고 한다.


파나마에 들어선 후, 이전 나라들과 별다른 변화 없는 풍경이 계속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코스타리카에서 시작해 파나마에 들어와 오늘까지 2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쏟아지고 있는 비속에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내가 물 속에 있는 지 땅 위에 서 있는 지 혼미한 가운데 그저 명백한 진실은 물, '물'뿐이다. 세상은 비로소 '물'로서 하나가 된 거지.
카메라는 그것 고유의 임무를 포기한 채, 몇 겹의 비닐봉지에 쌓여 가방 깊숙한 곳에 들어가 있다.
"어이, 거기 누구 없소?!"
"………………………………"
"제발 부탁이야, 나 좀 제발 이 물구덩이에서 건져 줘, 제발 나 좀 이 곳에서 나가게 해 줘! 벌써 2 주째야. 물속으로 가라 앉지 않으려고 두 손 두 발 모두 동원해 가위 젓기, 온갖 손 발버둥을 다 치면서 버티었지만 이젠 더 이상 기력이 없어. 꼴깍 꼴깍"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 시야의 끝에 작은 간판이 나의 두 눈을 확 잡아 당긴다.
"Bienvenidos  a Ciudad de Panama!(Welcome to Panama City!)"
드디어 멕시코를 비롯한 중미 7개국의 산악과 작열하는 태양, 그리고 물 구덩이조차 줄기차게 달려왔던 인간 기관차가 드디어 그 종착역에 도달했어.
자그만치 4,205km야!! 멕시코만 1,833km이고 다른 6 개국이 2,372km이지. 그렇다면 5월 7일 서울을 떠나 이제껏 6개월 10일 동안 달린 총 거리가 12,632km가 된다.
휴-우, 달리다 보니 일 만km를 훌쩍 넘어 버렸어!

파나마 시티의 입구에 난데 없는 중국 개선문이?!
파나마에 중국인이 발을 디딘 지 150년이 되었다는 기념비이다.
어쨌거나 파나마는 중국인을 빼고 나면 스토리 전개가 전혀 안 되는 나라이다. 극단적인 만남으로 보이는 중국인과 히스패닉은 파나마운하로 맺어 져, '걸프(Gulf)만'의 물과 태평양의 물이 파나마 운하에 의해 어쩔 수 없는 똑 하나의 극단적인 만남으로 하나되어 흐르듯 운명적인 공존(共存)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파나마 중심가의 고층건물들.

자, 이제 시내에 들어 가 싸구려 여관을 찾아 내, 그 동안 나의 심신을 짓 눌렀던 모든 것을 마른 타월로 대강이나마 훔쳐내고 몇 일간 하늘의 어떠한 횡포에도 절대 뚫리지 않는 완벽 보안의 콘크리트 지붕아래서 커피 마셔가며 볼륨최대로 해서 굼베이 댄스 밴드(Goombay dance band)의 'Rain'과 '리듬 오브 레인'에 흠뻑 젖고 빠져 있을 테야.

200여 m에 달하는 대형 아취의 철제다리를 건너자마자 파나마 시티였다. 파나마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수 많은 중국인들의 존재다. 청과상과 식당들, 액세서리, 화장품, 철물점, 여관 등등 이곳의 서민들을 위한 거의 모든 상권의 주역들이 중국인들이지 않은가!
어쨌거나 지난 2달 동안 한국인이라곤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 나에게 그들은 마치 동포를 만난 듯이 기쁘다. 그들 또한 내가 반가운 모양으로 많은 관심을 보인다.
식당의 모든 메뉴의 식대가 1$ 50에서 2$ 정도인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 이들이란 그들 뿐이리라. 뉴욕의 중국인들도 그렇지만, 이곳의 중국인들 또한 억척스럽게 일한다. 파나마의 음식패턴은 중국음식의 그것이 가미되어 아주 다양하게 나타난다.
택시기사에게 혹시나 한국식당이 이 곳에 있느냐고 물으니 역시나 거의 없다고 한다. 내가 중국인에게 이곳에 중국인들이 이렇게 많은 연유를 물으니 바로 파나마운하에 그 정답이 있었다. 파나마운하를 건설할 때 영국인들에 의해 수 많은 중국인들이 건설현장에 동원되었다고 하며, 결국 현장에 동원되었던 중국인들과 그들의 자손들이 이곳에 정착을 하게 된 것이다.
운하건설 중 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파나마 시티의 입구인 철제다리가 시작되기 바로 전에 중국인들에 의해 세워진 기념비와 중국식 구조물이 서 있는데 그것은 "이 곳, 파나마에 중국인들이 그 모습을 보인지 150년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나에게 그 기념탑은 파나마운하를 위해 사망한 많은 중국인들을 위한 위령탑으로 보였다.
중국인들을 제외한다면 파나마의 스토리는 더 이상 전개가 안 될 판이다. 극단적인 만남으로 보이는 중국인과 히스패닉은 파나마운하로 맺어 져, '걸프(Gulf)만'의 물과 태평양의 물이 파나마 운하에 의해 어쩔 수 없는 똑 하나의 극단적인 만남으로 하나되어 흐르듯 운명적인 공존(共存)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싸구려 여관을 찾으려면 역시 번화가가 아닌, 많은 서민들이 몰려 사는 지저분하고 칙칙한 톤의 뒷골목으로 가야 한다. 잠시 갈 방향을 정하기 위해 어느 대형슈퍼의 구석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서 있는데, 허리춤에 권총을 찬 매장의 경비가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마치 기어가는 바퀴벌레를  발견한 듯한 표정으로 "Chino(치노)!"를 다짜고짜 나의 얼굴을 향해 내 뱉는다.
"이런 씨 X 눔이,…" 나도 모르게 내 본토의 욕이 꿰져 나옴과 동시에, "여, 메히카노(Mexicano!!: X는 H로 발음된다.)"를 그의 잘 난 면상에 주저 없이 내 뱉는다. 순간, 방자하고 희색이 만면하던 그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진다. 볼상 사납게 열려있던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장승처럼 서 있는 그의 코에 바짝 들이대며 "참, 미안하게 됐네만 나는 한국인일세!!"
그를 지나쳐 걷고 있는데, 이 헤프닝을 목격한 세 명의 사내들이 낄낄 껄껄 깔깔대며 배를 움켜 잡는다. 사소한 일 같지만 번번히 아주 불쾌하다. 괘씸하기 짝이 없는 스나이퍼(Sniper)들은 오인사격이었다고 둘러 댈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이미 그의 가래침에 명중되어 있는 상태가 아닌가?!! 죽여놓고 오인사격이었다고 한들 '죽음'이 '안 죽음'이 되는가?!!!

하루에 한 두 차례씩 여관 방의 생철지붕(이 곳뿐 아니고 중미국가들의 빌딩지붕들은
생철이 대세이다)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태연하게 즐기며 여유작작하던 개미굴의 나의 방.

응원의 소린지, 아니면 경고인지 "잘 해, 삼촌!"을 날리며
나의 조카, 규상이가 나에게 건네 준 아주 값 비싼 모자.

내가 머물던 여관, 펜션 안콘(Pension Ancon).
2층은 에어컨과 T.V가 완비 된 25 $의 제대로 된 여관 방이고 내가 있던 3층에는 조그만 창문조차 없어 밤인지 낮인지, 땅 속인지 땅 위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개미굴 같은 방(12$)으로 야간업소에 적을 둔 묘령의 아가씨와 아줌마들이 장기투숙하고 있다.
그럴싸한 앞부분과는 딴 판으로 지붕이 엉성한 생철이어서 비가 올 때마다 꽤나 요란하다.
여관 바로 앞에 광동 출신 중국인의 식당이 있어 하루 두 번씩 출근부에 도장을 찍었다.


나는 아주 불편한 고층빌딩들의 중심가를 뒤로하고 달려 10분도 안 되어 또 하나의 인간시장 속을 걷는 동안 비로소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끼며 골목을 서너 바퀴 뒤진 끝에 12$의 펜션을 발견한다. 3층 건물에 창문도 없는 작은 방들이 빼곡히 들어 서 있고 복도의 유일한 작은 창문과 난간에는 여자들의 울긋불긋한 내의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투숙객들은 주로 장기숙박을 하는 이들로 아가씨들이 대세였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아침이 아닌 저녁에 출근을 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식당과 슈퍼가 한 집 건너 하나 일정도로 수 없이 많은데 정말 치열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거리의 곳곳에는 많은 경찰들이 상주하며 거리의 안전을 확실하게 책임지고 있는데, 여느 중미지역의 경찰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친절하고 성실하게 그들의 임무에 임하고 있다.

자, 이제 다음 행선지는 남미로 콜롬비아에서부터 여정이 시작되는데 파나마에서 콜롬비아로 가는 육로가 없다. 높은 산맥으로 가로 막혀 있어 비행기로 넘어 가던가 배로 돌아 가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파나마시티의 북쪽 끝에 있는 콜론(Colon)으로 가서 배를 타고 걸프 만을 항해하여 콜롬비아의 북쪽항구에 도착하는 길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어 나 또한 이 길을 택하기로 한다.

파나마시티의 입구이면서 서민들의 집합소인 이 곳엔 식당,
슈퍼 등 자질구레한 가게들이 줄을 잇는데 가게들의 대부분을 중국인이 틀어 잡고 있다.

드디어 멕시코를 비롯한 중미 7개국의 산악과 작열하는 태양, 그리고 물 구덩이조차 줄기차게 달려왔던 인간 기관차가 드디어 그 종착역에 도달했어.
자그만치 4,205km야!!
멕시코만 1,833km이고 다른 6 개국이 2,372km이지.
그렇다면 5월 7일 서울을 떠나 이제껏 6개월 10일 동안 달린 총 거리가 12,632km가 된다.
휴-우, 달리다 보니 일 만km를 훌쩍 넘어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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