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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라도르를 지나 페루에 들어서다.
2011-06-17   이호선

새벽이 되어 예상했던 기온의 급락으로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잠을 설쳤지만 설친 잠이 대수냐?! 분위기 좋은 곳에서 하루 밤을 보낸 것, 그것도 무전(無錢)으로, 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약 10여 km에 달하는 절정의 오르막길을 내 몸의 경사각도 60도를 유지 한 채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 기어 올라 마침내 오르막의 최후 점에 도달한다.
"사모라(Zamora)와 로하(Loja)의 경계 점"이라는 표지판이 선명하다. 만일 이 지독한 오르막 길이 3km만 더 계속되었다면 나는 길바닥에 그대로 주저 앉을 뻔 했다.
이미 물과 예비식량의 잔고가 바닥을 쳤다. 잠시 정상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비행준비를 한다. 재킷을 꺼내 입고 장갑을 낀다. 어제 밤을 보낸 산장의 고도가 2,280m였는데 오늘아침 또 세 시간 동안 죽을 둥 살 둥 기어 올라 왔으니 상당한 고도일 것이고 바람이 이미 아주 차다.
"자, 이제 우리 내려 갑니다!"
두 손과 두 어깨에 또 다시 내 의도 없이 자꾸 힘이 들어가고, 분당 호흡 수가 줄어 들고 있다.

지역최대의 도시, 로하(Loja).

로하 시내

나의 두 손과 두 어깨가 스트레스 프리(Stress free)를 느끼는 순간, 나는 이미 로하(Loja)시(市)의 중심가를 달리고 있었다. 13km의 비행이었다. 시내의 한 식당으로 직행해 밥을 먹고 비상식량으로 빵을 사고 물을 꽉꽉 눌러 채우고 다시 움직인다.

중남미 나라들의 상인들은 지폐의 진위를 감지하기 위해 필사적이지만 위폐감별 법이란 거의 비슷해서 지폐를 빛에 비추어 본다거나 손가락으로 비벼본다거나 하는 정도로 끝난다.
미국달러를 사용하고 있는 에쿠아도르는 에쿠아도르만의 특별하고 무지막지한 위폐감별 법을 사용한다. 지폐를 받으면 손바닥에 움켜쥐고 죽을 힘을 가한 후, 떡이 되어버린 지폐를 다시 36.5˚C의 손바닥으로 다림질을 반복해 감쪽같고 예쁘게 펴지면 진짜, 그렇지 않다면 가짜!
어쨌거나 에쿠아도르에서 사용되고 있는 미국달러들은 그야말로 누리끼리 손때에 절고 절은 걸레 돈이다. 마치 에쿠아도르의 전역을 달리고 있는 썩을 대로 썩은 미국산 구형 중고 승용차들처럼 미국에서 쓸 대로 쓴 중고 달러지폐들을 수입해 다시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카타마요(Catamayo)시

로하 시(市)의 외곽에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억벽같은 오르막 길 앞에서 나의 어금니엔 어느 새 힘이 들어간다.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반복되고 수 km에 달하는 내리막 길의 끝에 카타마요(Catamayo)시(市)가 나타난다.
시내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니 꼼짝도 하기 싫어 식당 종업원과 농담 따먹기를 하며 뭉그적대다가 식당을 나선다. 시내가 끝나는 지점부터 또 다시 오르막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또 비포장이다! 그래도 이번엔 가는 모래 길이라 그렁저렁 견딜만해서 묵묵히 기어오른다.
도로 중간에 흙더미가 무너져 내려 불도저가 그것들을 밀어 낼 때까지 차량들이 장사진을 치며 기다리고 있으나 자전거여행자인 나에겐 거의 상관이 없는 일이라 당연히 무시하고 그들을 지나쳐간다.
약 5km의 비포장이 끝나며 아스팔트로 바뀌지만 오르막은 그 강도를 더한다. 5km를 더 가자 작은 마을, 산 페드로(San Pedro de Bendito)가 나타나 미련 없이 주저 앉는다. 어제가 71km, 그리고 오늘이 67km네! 말 그대로 구중심처(九重深處)에 있는 이 작은 산골마을에 놀랍게도 여관(1.5불을 기필코 깎아 5불)이 있다.
오늘은 여태껏 전혀 안 했던 일을 한다. 맥주 2캔을 산 것이다.
한참 전에 멕시코의 한 마을식당에서 수십 통의 맥주를 마신 후 처음이다. 조금은 다른 기분이 되고 싶기에 맥주를 마셔본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나의 인내력과 체력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며 일순에 침수되어 태평양의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 같아.
나와 엘파마는 이미 골병이 들대로 들어 있고 믿을 것이라곤 오로지 뚝심뿐인데 그것마저……

국경을 향해 달리면 달릴수록 집도 사람도 없는 삭막한 도로변에 식당으로 상징되는 것을
단 한 개도 발견할 수 없었던 식당 같지 않은 식당에 내가 이제껏 결코 만나지 못한,
가장 주방장다운 주방장이 있었다.




국경마을인 마카라(Macara)를 100km정도 남기고부터는 풍경까지 삭막해져 간다. 물 구경을 전혀 못 할 정도로 급격하게 메말라 붙는다.
그저 염소, 당나귀, 심지어 돼지들까지 떼를 지어 닥치는 대로 헤집고 다닐 뿐이다. 마카라를 50km 남겨 놓은 지점에서 도로변 낭떠러지 위에 있는, 잎이 전혀 없는 가시나무 아래 텐트를 친다. 오늘의 주행점수는 98km.
아침에 일어나 두 다리를 비롯해 내 몸의 여기저기를 체크해 본 후에야 비로소 간밤에 잠을 설친 이유가 백일하에 들어난다. 나는 그 흉측한 놈들의 존재를 거의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것들은 밤새 나의 다리를 집중적으로 공략해 쑥밭으로 만들어 놓고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미 그 눔 스키들의 출현을 대비해 바람이 센 낭떠러지 위, 그리고 수풀이 전혀 없는 가시나무 아래로 좌표를 찍고 텐트를 쳤으나 모두가 부질없는 짓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좌우지간 지긋지긋한 놈들이다.

도로의 중간 중간 비포장구간이 속출하는 가운데 50km를 달려 낮 2시경 에쿠아도르 최후의 도시, 마카라에 도착한다. 결코 크지 않고 엉성하기 짝이 없는 도시다. 나는 잠시 이곳에서 쉬었다 가기로 하고 호스텔을 찾는다.
여관(7불)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80여km의 자갈 길을 지나는 동안 다 까져버린 뒤 타이어를 갈아 버린다. 뉴욕에서 멕시코를 향해 출발하기 전 갈아 끼고, 또 하나의 스페어 타이어를 가방에 넣어 가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타이어가 상당히 질기다. 약 6,000, 7,000km 마다 교체하고 있는 듯하다.
멕시코에서 시작해 오늘까지 달린 거리가 5,817km이다. 이미 14,000km이상을 달려 온 이 시점에서 왼 쪽, 오른 쪽 모두 다 부러져 버린 짐받이도 문제이지만 이젠 두 개의 작은 기어톱니가 칼끝처럼 예리하다.

"도대체 언제 누가 우리 돼지들을 돼지우리에 쳐 넣고 오줌 똥 속에 뒹굴게 하며 똥 같은 삶을 살게 한 거야?!
우리 돼지들이 원하는 삶이 바로 이거야, 이거라고!
끌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똥 오줌 물이 아닌 산속의 맑은 물로 냉수마찰을 하며 심신을 단련하고 대지를 누비고 다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거야.
우리들도 말 스키들이랑 개 눔 스키들과 똑같이 질주본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는 없어, 아니 우리들을 맛있게 쳐 먹고 있는 인간들은 안 죽나?!
지들도 누군가에게 끌려가 죽는다던데."
브라보, 브라보, 돼지들!


"아, 배고프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굴러갈 때까지 굴리는 거고, 더 이상 안 굴러가면 그 때 가서 생각해도 결코 늦지 않아. 아직 굴러가고 있잖아?!!"
오늘이 12월 23일이다. 도시는 작지만 작은 대로 성탄 명절로 북적댄다. 어쨌거나 이들에게 최고의 기쁨은 연일 이어지는 성당의 미사에 참가하는 것과 맥주 마시기이다. 20전 후의 커플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어린 애 손 바닥만한 도시 중심가의 골목 골목을 요란 떨며 뺑뺑이 치는 것이 고작이고 중 장년, 그리고 노년의 분들은 실내건 실외건 자리잡고 앉아 그저 줄기차게 빨아댄다.
변함없는 이곳 식당의 메뉴가 지겨워 한 빵집에 들러 설탕이 충분히 들어 간 빵을 찾다가 주인에게 우유가 있냐고 물으니, 지긋한 나이의 빵집 아줌마가 나에게 아주 현명하고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이런 명절에는 우유를 마시는 것이 아니고 맥주를 마시는 거야요!"
"아이고~~~, 똑똑하신(인텔리헨테:Inteligente)아줌마! 여관 방에서 어젯밤부터 줄기차게 그걸 빨다 보니 속이 너무 아파서 우유에 부드러운 빵이 먹고 싶을 뿐인데 어쩌지?!"
"…………………………………"
"우쨌거나, 아줌마! 페리스 나비다드(Feliz Navidad)하기요!"

나는 그 집의 빵 냄새에 심각한 이상을 느끼고 그 집을 나와 보니 빵집은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다음 날인 24일에도 여관 방에서 병을 빠는 대신 물과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4세 때, 말술의 외 할아버지로부터 술을 배웠어.
나는 그 때 '술 맛은 참 좋은 것이다'를 온 몸으로 깨닫고 어른들의 술 상이 차려지는 곳에는 어김없는 쇠파리가 되어 달라 붙었지.
강화도에 있었을 때는 '진로'조차 귀했던 시절로 '경월(鏡月)' 막소주 됫병을 두 손으로 받혀 들고 위 속에 들어붓기가 일쑤였고, 도쿄의 초밥 집을 전전하던 2년 6개월 간 하루도 빠짐없이 정종과 '아사히(朝日)' 맥주에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어.
뉴욕에 있었던 10년 간, 하루 평균 1.5L짜리 맥주병 하나, 둘을 어김없이 재활용으로 내 보냈고 말이야.
그렇게 좋았던 술이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시큰둥해지기 시작하고, 안 마시다 보니 또 별 것도 아닌 것이 술이야!
"이게 뭐 별거라고 사람들은 못 마셔 안달일까?! 이것 안 마셔도 우리는 죽을 만큼 심각해질 수 있고, 이미 충분히 심각해. 나는 이제 맹물 마시며 심각해질 거야!"

국경마을, 마카라를 47km 남겨놓은 지점에 검문소가 있고, 우리의 레인저(Ranger)부대에 해당하는 셀바(Selva: 스페인어로 '정글': 한 마디로 정글을 누비는 부대이다.)의 티그레(Tigre:호랑이)부대원들.
그들은 타이거 부대원답게 한국과 한국군, 그리고 나의 여행에 대해 정말 끈질기게 나를 물고 흔들었다.


좌측으로 장난끼가 얼굴에 덕지덕지 한 채, 안경을 끼고 서 있는 이가 초소장인 '김 중사!'


에쿠아도르 측 국경

페루 측 국경. 팬 아메리카나(Pan Americana)선 상에 있는 공식적인 루트가 아닌,
주로 양측의 현지인들이 드나드는 작은 통로로 가게도 없고 환전소도 없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고요한 12월 25일의 아침을 가로 질러 국경으로 달린다. 국경초소까지 단지 2km. 여태껏 수 없이 넘고 넘었던 국경의 모습과는 완전 딴판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이곳은 비공식 국경으로 주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한 이동루트다.
환전소가 안 보여 국경관리에게 물으니 내가 방금 전 떠나 온 마카라 시(市)에 환전상들이 있다는 것인데, 나는 어렵지 않게 그들을 생각해 냈다. 작은 공원 주변에 십여 명의 중년남성들이 작은 가방을 든 채 앉아 있는 것을 무심히 지나쳤는데 그들이 바로 환전상이다.
페루는 솔(Sol; 스페인어로 '하늘'을 뜻한다)이라는 화폐를 사용하고 있다. 나는 달려 왔던 2km를 무효처리하며 다시 시내로 돌아 와 50불을 바꾸니 137.5 Soles가 된다.(10불≒27.5 Sol)
정말 을씨년스러운 국경통과를 기록하며 페루 땅을 밟는다.

에쿠아도르 후반부터 시작된 건조지대가 페루에서도 계속 이어지는데 완전히 말라 붙어있다. 모래와 음울한 회갈색의 숲이 대세이고 민가나 인적이 거의 없는 삭막하기 짝이 없는 땅이다. 가끔 나타나는 단지 몇 채에 불과한 마을에서도 결코 많지 않은 주민들이 강력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라틴음악을 안주 삼아 여기저기 되는 대로 앉아 연신 맥주를 삼키고 있다. 작은 시(市)인 탐보 그란데(Tambo grande)를 10여km남겨 놓은 지점에서 바로 도로변의 집 앞에서 온 가족들이 사이 좋게 뱅그르르 둘러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내가 지나가자 노소 남녀 불문하고 멈추라고 아우성이다.
나는 이미 그들을 30여m 지나쳐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을 무시할 수 없어 되돌아 그들을 향한다. 할머니와 아들 손자 며느리가 다 모여 있는데 보기 드물게 예쁜 가족이다. 그들은 나에게 맥주를 권하지만 나는 단지 예의 상 두 모금만 삼키고 사양한다.
이미 지쳐있는 내가 맥주 한 잔으로 여기서 주저 않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더 달려야 한다. 이미 한 꼬맹이는 집안으로 총알처럼 튀어 들어 가 카메라를 집어 들고 나와 갖은 사격자세를 취하며 나를 조준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 중의 한 명이 갑자기 "망고, 망고?!!"를 나를 향해 외친다.
"아, 이제서야 우리는 하나가 되었어(Nosotros somos Uno)!"
또 다른 꼬맹이가 눈 깜짝할 새에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애기 머리통만한 망고 3개를 가지고 나와 나에게 안긴다. 나는 그 중 2 개를 숨쉬기운동조차 잠시 잊은 채 껍질 째 먹어 치웠다.
"글쎄, 바로 이거라니까, 바로 이 맛이라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나의 모습에 그들 또한 행복한 표정으로 "Salud(건배)!"를 연발한다.
그들은 상당한 인텔리들로 한국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망고 3개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나 이제껏 세계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도로 변에서 얻어 먹어 본 기억이 단 한 건도 없을 정도로 결코 만만치 않은 경험이다. 한국에서 전국일주를 했을 때는 과수원 주위를 지나다가 종종 엄청 얻어 먹기도 했지만…

페루에 들어 서 주행 중, 작은 시(市)인 탐보그란데(Tambo grande)를 얼마 안 남긴 지점의 도로변에 있는 그들의 집 앞에서 성탄명절을 즐기고 있는 오헤다(Ojeda)가(家)의 가족들.
주행을 위해 맥주를 사양하는 나에게 상당히 큰 망고 3개를 안겨 준 그들.
밥까지 주겠다는 그들의 호의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순식간에 2개의 망고를 먹어 치운 후(나머지 한 개는 내 가방 안에 확실하게 집어 넣었음),
달콤한 포만감과 함께 페달 질은 계속된다.


페루를 달리면서 그 동안 보지 못했던 노란 세발 택시가 정말 어지럽기 짝이 없다. 125cc오토바이를 개조해 뒤 부분에 손님용 좌석을 붙여 놓은 것으로 원래 인도의 주 수송 수단인 이것을 복사한 것이다. 이것 이외에 거리를 달리고 있는 차들도 썩을 대로 썩은 중고 소형차 들뿐이다.
시골지역에서는 수 많은 당나귀가 전천후로 곳곳을 누비며 짐꾼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연만큼이나 처절하게 메말라 보이는 작은 탐보그란데 시(市)의 한 호스텔(7불)에서 땀과 모래먼지로 범벅이 된 하루의 찌꺼기를 떨어지는 샤워 물에 상쾌하게 씻어 흘려 보낸다.

여관 앞에는 망고, 파파야, 파인애플, 길쭉한 수박… 많은 종류의 과일을 팔고 있는 리어카 노점상이 있는데 서너 명의 60대 아저씨들이 둘러 앉아 한가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인이라는 나의 말에 별 반응이 없다. 한국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 동안 중남미를 여행해 오면서 이들이 줄곧 일방적인 '나'의 중국인 화(化)를 억지 쓰는 와중에서도 "나는 한국인!" 한 마디에, 그들 모두는 입을 다물며 알아들었다. 그들은 최소한 한국의 소문내지는 명성을 들어 잘 알고 있음이다.
헌데 페루에 들어서자 이곳 사람들에게 '코레아노'는 없고 그저 만만한 '치노'와 '하폰(Japon-일본)'뿐이다. 역시 일본의 영향력이 상당한 페루에서는 도로를 달리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승용차와 대형차들이 일본차이다.

삭막, 황량,………거칠기 짝이 없는 사막 위의 작은 시, 탐보그란데(Tambogrande).

페루에 들어서자 내 눈앞에 제일 많이 어른거리는 것이 바로 당나귀들로 페루의 시골을 책임지는 전천후 짐차인 것이다.
메마른 건조지대에서 가장 중요한 물 배달의 기수로서 모래 길 아스팔트를 불문하고 달린다. 오래 전 여행했던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를 정확하게 연상시킨다.


"당신 나라에서 만들고 있는 제품이 뭐야?!"
"…………………….잠깐, 아저씨들 휴대폰 있지요?!"
나의 제시요구에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증을 까듯 내 앞에 각자 자신들의 휴대폰을 내 보인다.
모토롤라 하나, 노키아 하나, Samsung이 하나, 그리고 LG가 둘!
나는 Samsung과 LG를 나의 두 손으로 가리키며 "이것들이 바로 한국이고, 휴대폰뿐만 아니라 이 Samsung과 LG가 붙어있는 모든 기계들이 다 한국 이예요!"
그들은 이제서야 감을 잡은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한 나라의 평가는 종종 이렇게 유치할 정도로 단순한 평가잣대로 이루어지곤 한다. 결코 예쁜 표현이 아닐지 모르지만, 한 나라는 그 나라가 생산한 유형 무형의 상품들의 종합적인 세계 점유율에 의해 평가 된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아저씨, 그런데 우리는 저렇게 맛있는 과일들을 생산하지 못해요!"
"쯪쯪쯪, 참으로 딱하기도 하지! 우리는 1년 365일 저 달고 맛있는 과일을 진저리가 나도록 먹으며 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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