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8~09/01
아시아의 또 하나의 대국 인도
2008-12-11   이호선

네팔의 서쪽 국경인 바나사(Banassa)를 넘어 인도의 수도, 델리로 향하는 길은 한마디로 아비규환!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도로변의 끔찍한 인파, 그리고 2차로 도로 위에 3대의 차량이 같은 방향으로 달려온다. 거기에 마차, 인력거, 오토바이, 삼륜 소형버스까지 끼어든다. 나 또한 식은 땀을 흘리며, 그 틈 속에서 몸부림, 생존에의 행진을 계속한다.


인도의 국경이 가까워오며, 세상은 밝아지기 시작한다. 인도로부터 전기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국경을 넘자마자, 산더미처럼 물건들로 가득 찬 인도의 상가를 보며 두 나라의 끔찍한 빈부격차를 절감한다.
인도 또한 중국이나 네팔 못지않게 정신 없는 나라로 도로부터 모두가 엉망이다. 국경에서 델리(Delhi)까지 300km정도 되는 듯하다.

첫 번째 큰 도시, 람푸르(Rampur)는 끔찍한 인파, 더럽고 정신 없고 먼지투성이의 거리다.
역시 많은 남자들이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간다. 간간히 내 눈에 들어오는, 앉아서 소변을 보는 사나이들의 모습에 나는 기겁을 한다.
"지구상에 이 정도로 남녀평등이 이루어진 곳이 있었구나?!?"
평지지만 깨어진 아스팔트와 드러나고 페인 흙구덩이가 계속되는 전혀 갓길이 없는 도로가 계속되고 50, 60cm의 자갈과 흙의 갓길은 아스팔트도로와 계단 하나 높이로 뚝 떨어진다.  트럭들은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주행자나 보행자를 가차 없이 도로 밖으로 밀어낸다.
소름 끼치는 것은 뒤에서 오는 차량보다 앞에서 달려오며 무차별로 추월을 하는 차량들이다. 차선도 없는 2차선 정도의 도로를 3대가 동시에 반대편에서 달려온다. 살기 위해선 수도 없이 한 단 아래의 갓길로 곤두박질쳐야 한다. 나보다는 자전거가 더욱 걱정이다.
그들의 거의 모든 자전거의 바퀴는 휘어져 있다. 나는 이 길을 달리며 몇 번씩이나 바퀴살을 부러뜨리는 아픔을 겪는다.

설상가상, 도로 곳곳엔 도로확장공사가 한창으로 나는 흙구덩이 속을 달려야 한다. 내 온 몸은 자전거와 함께 흙 먼지투성이다. 입 속에서 모래가 어적어적하고 눈이 아프다.
이것은 분명 생지옥이다. 도로변의 수많은 크고 작은 식당에 들어가면 할일 없는 친구들로 가득해서 내 자전거주위로 벌 떼처럼 몰려와 만지고 타고 난리를 친다. 내자전거를 쓰러트리기 일쑤이다.
중국에선 모두들 내 자전거를 그저 쳐다만 볼 뿐 그 누구도 만지거나 타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네팔과 인도에서는 모두 이렇게 난리들을 친다.

파키스탄과의 접경지대인 펀자브(Punjab) 지방엔 시크(Sikh) 교도들의 본산지이다. 머리엔 터번과 긴 수염, 오른 손목엔 팔찌를 하고 허리엔 조그만 칼을 찬다. 그들은 인도 총 인구의 2%에 불구하지만 중상류층을 이루고 있다. 이 분도 지방의 대지주로 보인다. 키가 2m도 넘는 하인이 그를 보좌하고 있다.


인도인들은 굉장히 소심하고 시샘이 많은 종족들 같다. 또한 '예스'를 나타내는 제스처가 아주 거만하고 불손하다. 고개를 외로 젖힌다. 대국인, 인도인들 또한 중국인들처럼 제 나라 이외의 사람들을 잘 모르고 무시하는 듯하다.
중국에서 네팔로 그리고 인도로, 더러움의 강도는 점점 세어지어 인도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그 어떤 고민이 필요 없이, 그저 눈앞에 당연하게 집어 던지면 된다.

인도의 음식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맛이 있다. 음식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척도임에 틀림없다. 인도 역시 중국처럼 오랜 역사와 큰 나라에서 나오는 다양함으로 축척된 문화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인도에선 잘 곳이 만만치 않다. 인구가 많아서 마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네팔처럼 도로변에 숲이 없다. 도로주위는 벌판으로 논과 밭 투성이다. 민가가 적은 곳의 나무 밑에서 잠을 자는 수밖에 없다. 숲 속이 아닌 '어둠 속에서의 야영'이다.
민가주변에서 잠자는 것은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다.

델리 시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도로의 대혼란은 생지옥의 현장이다. 오토바이, 삼륜소형버스, 우마차, 인력거, 자전거, 일반차량, 트럭이 좁은 2차선 도로에서 한데 엉켜 아귀다툼을 하며 델리 시내로의 진입을 시도한다. 나도 죽기 살기로 끼어들어 시내로 들어간다.
어둠 속에서 겨우 뉴델리 철도역(New Delhi Railway Station)을 발견한다. 보통 역이나 버스터미널 주변에는 여관과 식당 등 많은 상점들이 모여 있다.

다음 여행 국이 파키스탄이고 그 다음이 이란이다. 나는 이미 파키스탄비자를 소지하고 있어 이란비자만 확보하면 된다. 모슬렘국인 이란 비자를 위해선 한국영사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델리에 있는 한국영사관의 영사님이 '파키스탄은 여행금지구역은 아니지만 아주 위험한 지역이고, 더구나 계엄령까지 내려져 있기에 파키스탄을 건너뛰어 바로 이란으로 간다.'는 각서를 쓰면, 이란비자를 위한 추천서를 써주겠다며 나를 애태운다. 오늘이 11월 6일인데, 11월3일 파키스탄에 계엄령이 내려졌다 함. 내가 각서를 쓰고 서명을 하자 비로소 추천서를 주신다.

델리 시내엔 떠도는 개 투성이다. 때로 몰려다니는데 모두. 병들은 개이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상한 음식물을 먹고 다녀 모두 병들고 기력이 없어 차도, 인도의 구분도 못하고 곳곳에 쓰러져 잔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엔 어김없이 많은 경찰과 경비들이 24시간 지키고 있고 특히 상가가 밀집되어 있는 곳엔 출입구를 봉쇄하고 출입하는 사람들 모두를 금속탐지기로 체크를 하고 들여보낸다.
이곳의 공권력은 가공할만한 것으로 두 말이 필요 없다. 10대 후반의 자전거 인력거꾼이 시장 한복판에서 거치적거리자 한 경찰의 손이 여지없이 그 소년의 뺨을 강타한다. 그 소년은 아무 말도, 어떤 반박도 없이 작고 가냘픈 그의 볼을 비비며 사라진다.

적선을 간청하며 끈질기게 달라붙는 한 모녀의 간청을 뿌리치자, 그녀는 인상을 사납게 긁으며 욕까지 하고 간다. 마치 그들 자신의 빈곤이 '나'나 그 밖의 모든 외국인 관광객들의 책임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인도 사전(辭典)에 공중도덕의 낱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리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혼돈의 강'이지만 별 탈 없이 흘러가고 있는 듯해서 참으로 대견할 뿐이다.

국경마을 아타리(Atari)를 향하는 길 주위엔, 마을과 논밭보다는 숲이 전개되어 도로변을 따라 군부대가 줄을 이루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하지만 나는 아비규환의 삶의 현장을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숲 속의 고요함에 흠뻑 취해 오랜만에 하늘의 달을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이곳의 라디오에서도 이중 언어방송으로 하루 종일 팝송이 흘러나온다. 출근길 지하철역 앞엔 '힌두스탄(Hindustan)'이라는 두터운 영자신문이 공짜로 배포된다. 출근길의 샐러리맨들은 남녀구별 없이 그것을 집어간다. 우체국을 비롯해 관공서의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잘하고 있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는 영어구사의 능력에 따라 판단되는 듯하다.
많은 식당과 노점상인들이 보이고 네팔보다는 아주 많은 먹 거리로 가득하다.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많은 부유층과 출세한 젊은이들은 하나 같이, 성자 '간디'와 같은 대다수 서민들과 정반대의 체형을 가지고 있다. 하나같이 얼굴엔 기름이 줄줄 흘러 넘치고 볼록한 배를 가지고 있다.
인도의 빈부격차는 계급제도인 카스트제도와 맞물려 상상을 초월한다. 잘사는 이들은 못사는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못사는 이는 단 돈 5루피를 벌기 위해 거의 필사적인 호객행위를 하고, 덩치가 아주 거대한 서양의 관광객을 태우고 비지땀을 흘리며 자전거 인력거의 무거운 페달을 밟는다.
밀크티를 주전자 가득 만들어 와서 간이식 화기(火器)에 올려놓고 차를 팔고 있는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의 발길을 막기도 하고 20, 30m의 작은 골목길에 거의 한 집 건너 하나 꼴로 구멍가게가 이어지며 피 튀기는 경쟁이 계속된다. 손님 하나를 끌기 위해 모함, 속임수를 비롯한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된다.
중국도 지난 두 달간 내륙을 여행하며 "날으는 용(Flying Dragon)"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아주 빈곤한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중국인들은 최소한 먹는 것만큼은 잘 먹고 있다. 하지만 인도는 전혀 그러하지 못해 보인다. 지방으로 가면 갈수록 아주 심각하다.

내일(11월9일)이 디왈리(Diwali)라는 축제일로 길거리의 많은 상점엔 과자나 캔디가 수북이 쌓여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사려고 줄을 서있다. '디왈리'는 꽤 큰 명절인 듯하다.
집집마다 대청소를 한 후에 현관에 황색 카네이션을 꽨 줄을 걸어놓고 문 앞엔 촛불을 켜 놓은 채, 촛불 앞에서 기원을 한다. 복이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리라. 동네 한 복판에도 촛불을 켜놓고 기원을 한다.
저녁 때 시작되는 폭죽은 가히 살인적으로, 사람의 고막을 터트릴 정도의 엄청난 소리다. 중국의 폭죽은 다발성이지만 고막을 터트릴 정도의 소리는 결코 아니다.
인도의 폭죽은 단 발에 폭탄소리다. 노약자나 고막이 약한 사람은 이 폭죽 한 방이면 곧 바로 고막파열이다. 노약자가 있는 집의 사람들은 그저 '죽상'이다. 경찰들이 골목골목을 다니며 필사적으로 이 살인적인 폭죽투하를 저지 하려 하지만 속수무책이다. 수많은 집들의 지붕 곳곳에 악동들이 숨어, 길거리를 내려다보며 폭죽을 표적투하하고 있다. 너무 단순하고 무모한 폭죽이다. 하늘에서 펼치는 불꽃놀이도 전혀 없다.
집집마다 사과 한 쪼가리라도 서로 돌리는 모습도 보인다. 축제가 끝난 후엔 언제나 죽음 같은 고요와 쓰레기만 남을 뿐.

인도에서 공중도덕이란 너무 사치스러운 낱말이다. 공중질서도, 공중위생도, 신호등도 이름뿐이고, 공중변소는 그저 구멍만 뚫어놨을 뿐으로, 되는대로 마우데나 갈겨대어 지린내가 진동한다. 그저 던지면 쓰레기통이다.
한 나라의 수도인 델리가 이정도이니... 한결같이 병들은 수 많은 개들은 도로변에 맥없이 쓰러져 뻗어있다. 인도는 정말 찐득찐득한 삶의 현장이다.

새벽에 호텔을 나와 어둠 속을 달려, 로탁(Rohtak)을 지나 진드(Jind)까지 신나게 달린다.
지옥 같은 델리를 나와 조용한 시골길을 달리니 너무 좋다. 지나는 차도 거의 없고 고요하다. 어둠 속에서 수 백 년 됨직해 보이는 많은 나뭇가지와 잎으로 뒤덮여있는 큰 나무를 발견한다. 그 밑은 최고의 야영지가 될 듯하고, 옆에 물 펌프까지 있어 목욕도 가능하다!
나무 밑에 텐트를 치려는데 갑자기 나무위에서 야단법석이 일어난다. 이게 웬 난리?!
외부 침입자의 출현으로 휴식 중의 수많은 야생원숭이들에게 비상이 걸린 것이다. 이 나무는 야생원숭이들의 소굴인 것이다. 이놈들은 정신 없이 이리저리 뛰고 소리를 질러대며 생난리를 친다. 하지만 나도 물러설 수 없다. 펌프 물로 샤워를 하고 텐트 안에서 잠을 자려는데 텐트위로 난데없이 쏟아지는 물세례, 그것은 분명 그놈들의 오줌이리라.
 
드디어 인도의 마지막 주(州)인 펀자브(Punjab)의 경계를 넘는다. 펀자브는 시크(Sikh)교도들의 본산지이다. 자전거를 탄 젊은 '시크'가 나를 따라오며 시크교의 선전을 한다.
자기들의 종교가 최고의 것이라며 나에게 '시크'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지금 인도의 대통령인 '만모한 싱(Singh)' 또한 시크라며 어깨에 힘을 준다. '시크'는 자기 집에 자기만의 칼을 보관한다고 한다. 다른 교도들의 칼 소지는 불법이나 시크의 칼 소지는 합법이라고.

이미 건조지역으로 목화밭이 계속된다. 네팔에 이어 인도의 도로변엔 차에 치어 죽은 수많은 개들의 시체들로 가득하다. 많은 개들의 시체들을 분해해서, 결국은 한 줌의 털과 뼈로 만드는 파리의 존재에 대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자란다르(Jalandhar)를 지나면서부터 많은 군부대들이 보인다. 국경이 가까워오며, 끝없이 펼쳐졌던 논밭도 점점 줄어들고 숲이 많아진다. 나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도로와 철로 사이의 숲에 텐트를 치고 오랜만에 기적소리를 들으며 꿈의 나라로 향하는 열차를 탄다.
하늘엔 별과 달이 아주 밝다.

중국과 인도의 사람들은 대국의 그들답게 아주 건방지다. 바꿔 말하면 졸렬하다. 중국과 인도, 대 인구를 갖는 대국의 공통점은 의심이다. 중국의 상인들은 지폐를 받으면 반드시 손으로 비벼보고 밝은 빛에 비춰본다.
인도의 상인들은 헐은 돈, 터진 돈은 절대로 받지 않는다. 상인들뿐 아니고 일반 은행에서조차 받지 않는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대단히 타산적이고, 질투심이 많다. 특히 인도의 도로들 달리다 보면, 기어가 전혀 달려있지 않은 그들의 자전거를 타고 나를 앞서려고 애나 어른이나 발악을 한다. 그런 그들의 괴벽(?)은 인도의 국경을 넘을 때까지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인도의 가깝고도 먼 나라, 그리고 내 인생 첫 이슬람국(國) 방문지인 파키스탄을 향해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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