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모호한 나라, 모로코
에디터 : 이호선

유럽 땅에서의 마지막 포즈. 그동안 자주 이용했던 부관(釜關)페리나 천진행(行) 페리는 높고도 긴 2단, 3단의철제 계단을 짐이 실린 무거운 자전거를 등에 업다시피 하며 끌고 올라간다. 하지만 유럽의 모든 페리는 차량입구인 뒤 부분으로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바로 손쉽게 선실로 오를 수 있다.(물론 자전거는 주차장에 세워놓고 오른다.)


타리파(Tarifa)항에서 지브랄타르 해협을 건너 모로코의 탕헤르(Tanger)항까지 페리로 35분 걸린다. 요금이 31유로인데 자전거에도 27유로 요금을 붙여서 총 58유로이다. 이게 무슨 미친 경우냐고 따져보지만, 그것이 회사의 규정이기에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단다. 여태껏 그 어떤 페리에서도 자전거에 별도의 요금을 붙인 적이 없었다. 거의 두 사람 분의 요금을 치룬 것이다.

배는 아침 9시부터 2시간마다 있다. 배 안에 있는 관광객들, 거의 모두가 유럽인이고, 그 중에서도 스페인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쓸쓸하게도 동양인은 없다. 객실의 프런트데스크 앞에서 모로코의 이민국 직원이 입국 스탬프를 인심 좋게 꾸-욱 눌러준다.(모로코는 비자가 필요 없다.)

화장실에 느긋하게 앉아있을 여유도 없이 또 다른 대륙, 아프리카에 도착했다. 항구의 왼쪽으로 길게 펼쳐진 해변이 시원하지만 아직은 쌀쌀한 듯 해변에는 단 한 명의 산책객도 없이 텅 비어 있다. 항구에서 100여m를 걷자 언덕이 시작되며 상가, 여관, 식당, 그리고 마을이 시작된다. 어느 나라건 버스터미널이나 항구 근처에는 싸구려 여관들이 겹겹이 모여 진을 친다.

5유로의 싸구려 여관방 내부 천정은 높고, 벽의 높은 곳에는, 창틀이 있는 창이 아닌 마치 감옥의 그것처럼 쇠창살이 있는 창문이 있다. 그저 콘크리트의 벽에 구멍을 내고 그곳에 쇠창살을 박아놓았다. 바깥의 소음이 어떤 여과장치 없이 적나라하게 넘어 들어온다. 안에는 싸구려 침대 한 개와 두껍지 않은 담요 한 장이 있을 뿐이고 수도꼭지 한 개와 조그만 세면기 하나가 모두이다.(공동화장실) 벽은 대강 칠해놓은 도료가 여기저기 벗겨지며 방바닥으로 떨어진다. 여관방이라기보다는 감옥이다.

감옥처럼 처절한 여관방. 높은 천정 위로 뚫려있는 쇠창살 너머로 시끄러운 골목길의 소음과 '알라신(神)'에의 절규가, 그리고 옆방 벽 위의 쇠창살 너머로는 코고는 소리와 이빨 가는 소리가 나의 신경을 유린한다.


수감(受監) 첫날 밤을 보내고 벼락처럼 나의 귀와 눈을 뜨게 한 것이 바로 꼭두새벽의 괴성이다. 놀란 나는 용수철처럼 로비로 튀어나간다. 로비의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킨다. 5시경 지축을 흔드는 또 한방의 포성이 새벽의 고요를 갈기갈기 찢으며 마을전체를 뒤흔든다.
수 차례에 걸친 '대공포(對空砲)'의 정체는 분명 '알라흐 아크바르(Allah Akbar)-알라는 위대합니다!'이다. 전혀, 녹음이 아닌 육성의 '라이브'로(물론 확성기의 마이크로폰을 이용) 알라신(神)을 찬송한다.
그는 감기에 걸려있는 듯 기침과 훌쩍거림을 계속하며 무시무시한 고성으로 그의 절규를 계속한다. 내가 지나온 이슬람 국가에선 하루 두세 번씩 확성기를 이용해 조용히 알라신을 부르고, 또 기도를 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정확히, 원칙대로 하루 5번씩, 그리고 마치 바다건너의 유럽대륙에, 그리고 전 세계를 향해 선전포고라도 하듯이 엄청난 포성을 울리며 포격을 해댄다.

탕헤르(Tanger)에서 나는 캐나다 날씨의 호전을 기대하며 운동과 스페인어를 사용한 모로코인들과의 대화를 즐기고 '민트(Mint)'차-홍차에 '민트'잎을 넣은 강력한 향의 홍차-를 마셔대며 3주를 보낸다.
'알라신(神)'의 부르짖음과 함께 하루가 시작되고 감옥 안에서의 나의 무술수련(매일 총3시간)도 시작된다. 마치 옛날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 '스티브 맥퀸'이 감옥에서 하던 체력단련처럼,......

모로코의 도시들은 모두 정신이 없을 정도로 엉켜있다. 특히 탕헤르의 골목은 모든 이방인들의 혼을 빼려고 작정을 한 듯, 어둠 속의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이 미로(迷路)에 익숙해지는 순간, 이제와는 정반대로 아주 정겹고, 사랑스러운 곳이 된다.
이 미로 속은 모로코인(人)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에,.......


내가 넘어야 할 큰 산(山)인, 캐나다는 아직 깊은 겨울에 있다. 나는 캐나다에 꼭 가야 할 이유가 있다. 동부의 몬트리올(Montreal)에서 5,000km를 달려 서부의 끝, 밴쿠버(Vancouver)에 가면 20여 년 전, 이민을 와서 식당을 4개씩이나 하며 밴쿠버에서 성공적인 이민자의 길을 걷고 있는 내 친구가 있다. 나는 그를 꼭 보고 싶고, 또한 인생일대의 빅뉴스를 만들고 싶다.
지구 반대편에서 지구 한 바퀴를 돌아, 그것도 자전거를 타고 달려 20여년 만에 고향친구를 만난다. 그가 얼마나 놀라겠는가? 나는 그저 그가 심장관계 질환을 갖고 있지 않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탕헤르 시내의 하늘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미로는 처음 온 관광객들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내 정다운 곳이 된다. 관광객에 의해 생존하고 있는 듯한 이곳 사람들에게 외국어는-불어, 스페인어, 영어-거의 필수처럼 보인다. (물론 그들끼리는 아랍어나 토속어인, 베르베르어를 말한다.) 많은 외국어만큼이나 많은 문화가 혼재해있어 아주 헛갈리는 나라 같다.

이란에서는 거의 모든 여성이 히잡을 쓰고 있었으나 이곳에는 히잡을 전혀 하지 않은 여자들도 아주 많이 보이고 미니스커트까지 보인다. 여자들이 아주 대담하고, 개방적으로 보인다.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아가씨도 많고, 또한 이방인인 나를 보는 그녀들의 눈빛은 나의 온몸이 자지러 질만큼 아주 강렬하고 저돌적이다. 역시 이곳도 음주문화는 없다. 그저 담배, 물 담배, 민트 차, 그리고 초(草!!)가 주를 이룬다.

모슬렘 국가들의 공통점은 경찰들의 힘이 막강하다. 특히 이란에서의 경찰은 사회전반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한다. 이란의 사회는 우리나라의 유신체제하의 상황과 거의 똑 같다고 보면 설명이 쉽다.
내가 지나는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내가 중국인이 아니냐며 종종 비아냥거렸다. 왜 이렇게 중국인은 어디를 가나 멸시를 당하는지….., 아마도 중국의 인구가 워낙 많아 세계 어디에 가도 많이 보이기에 그럴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브루스 리', '재키 찬', '제트 리(이 연걸)'는 그들 모두에게 영웅이다. 나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이곳 가게들의 벽에 걸려있는 중국 쿵푸 '삼인방(三人幇)'의 초상화를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역시 '영웅이나 슈퍼스타는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다!'

나는, 3층인 여관(빅토리아 호텔)의 옥상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남을 확인하며 3주 가까이 모로코인(人)이 되어 살았다.
멀리 건너편의 육지(유럽)를 바라보고 서있는 지금, 지난 7개월 간 서쪽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렸던 수 많은 날들의 기록은 이미 지난 신문지가 되어 나의 가방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여관 앞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자, 주인은 역시 스페인어로 나를 맞는다. 손님들이 오로지 모로코인들 뿐으로 아무리 둘러봐도 메뉴조차 없다. 나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먹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똑 같은 것을 주문한다.
정면의 높은 곳에 있는 조그만 TV에서는, 모로코 국영방송채널인 듯 주로 세계의 뉴스와 이슬람찬양의 방송이 반복된다. 파키스탄에서도, 그리고 이란에서도 보았던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정부선전용 방송이다. 이곳 역시 자국의 치부는 전혀 방영되지 않고, 그저 외국의 사건이나 스캔들이 중점적으로 반복된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음식의 이름을 물으니 '따징'이라고 한다. 모로코인의 대중적인 음식으로 고기의 '따징'과 생선의 '따징'이 있다. 콩과 닭고기, 혹은 콩과 소고기의 스튜로 보여 지는 음식으로 여느 이슬람음식과 마찬가지로 아주 담백하다. 콩과의 조화로 아주 부드러운 맛이 있다. 이것을 얇은 빵과 곁들여 먹는다.
이곳 남자들은 배가 나온 친구들이 거의 없고 모두 날씬하다. 담백한 음식과 이슬람의 절제습관이 주된 이유가 되겠지만, 또 한편으론 전혀 풍요롭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도 될 수 있다.

길고도 고단했던 하루가 끝나면, 식당이나 카페에는 수많은 모로코 청년들이 모여 앉아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위성채널을 통해 유럽축구를 본다. 비록 남의 나라, 남의 팀 경기이지만 그들은 함성과 함께 발을 구르고, 탁자를 두들겨대며 열광한다. 중계가 끝남과 동시에 주위는 고요해지고 탕헤르의 밤은 깊어간다.

'이슬람국가에는 정말(!) 대단한 것이 있다!' 이슬람국가엔 남자들을 위한 소변기가 없다. 화장실에는 그저 재래식변기 하나일 뿐으로, 이슬람 국가의 남자들은 여자와 똑같이 앉아서 소변을 본다.
내가 인도의 국경을 넘었을 때, 길가에서 남자들이 여자와 똑같이 쪼그리고 앉아 소변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인도의 모슬렘들이다.
나는 경악했다. "아니 세상에, 이곳의 '남녀평등'은 이 지경까지 진보했구나!!!"
이 '남녀평등'의 추세는 인도의 파키스탄 접경의 모슬렘지역, 파키스탄, 그리고 이란을 지나며 완벽의 경지에 다다른다. 하지만,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은 '알라신(神)에의 도전'이다.
나는 파키스탄의 시골에 있는 한 여인숙 뒤뜰에서 아무 생각 없이 '메카'가 있는 서쪽을 향해 뻗혀 서서 오줌을 누다가 그곳 노인에게 박살이 날 뻔했다. 하지만 여인숙 주인이 나를 감싸주어 위기를 모면했다. 주인장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는 하늘과 서쪽을 손으로 연신 가리키며 나를 납득시키려 했다. 하늘에는 유일신(神)인 '알라'가, 서쪽에는 그들의 성지(聖地)인 '메카'가 있다.
또한, 모슬렘 국가에선 큰일을 보고 난 후, 휴지가 아닌 물로 처리한다.(비데) 이란은 생활수준이 좋아 변기의 앞에 수도꼭지가 달려있고 수도꼭지 옆에 가는 관의 비데용 호스가 따로 달려있다. 하지만 생활수준이 전혀 안 되는 파키스탄이나, 모로코에서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큰 물통에서 플라스틱의 용기에 물을 채워 가지고 들어가, 처리를 한다.

페리를 타고, 반시간도 안 되어 도착한 항구도시, 탕헤르(Tanger)의 하늘은  더 이상 흉측한 유럽의 그것이 아니었다. 건조한 공기에 이름 그대로의 하늘색이었다. 맑고 푸른 지중해를 끼고 길게 뻗어있는 깨끗한 백사장이, 그동안 유럽 땅에서 비바람에 질려있던 나의 숨통을 터트린다.


탕헤르를 떠나, 유럽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거친 파도의 사나운 대서양을 바로 눈앞에 바라보며 카사블랑카를 향해 달린다.(400여Km) 대서양의 성난 파도가 쉼 없이 해안의 절벽으로 밀려왔다간, 이내 장렬하게 부서진다.
모로코의 경제력을 상징하듯 길이 형편없다. 고속도로, 국도, 그리고 지방도로가 있으나 고속도로와 국도는 거의 똑 같은 수준으로 보잘 것 없고, 지방도로는 소(牛) 마차, 말(馬) 마차, 그리고 당나귀 마차가 달리는 완전 흙 길이다. 고속도로와 국도는 여기저기 많이 깨져 있다.

대서양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를 달리는 동안, 유럽의 은퇴 노인들이 탄 캠핑카가 자주 목격 되고, 도로변에는 리조트 지대와 별장들이 줄을 잇는다. 거의 모두가 유럽인들을 위한 것일 것이다. 또한 모로코의 최정예, 그린베레의 용사(勇士)들이 지키고 있는 모로코 왕실의 왕가(王家)들도 보인다. 새로운 리조트 시설을 위한 공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모든 모로코인들이 말하고 있는 언어뿐 아니라, 도로표지판을 비롯한 모든 간판들은 완벽하게 불어다.
아주 오래 전의 영화,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카사블랑카"가 떠올라 가슴이 벅찼지만, 도착한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수도인 라바트(Rabat)보다도 더욱 크고, 매력 없는 메마른 항구도시일 뿐이다.

드디어 4월1일, 나는 카사블랑카 국제공항에서 몬트리올 행(行) 비행기를 탄다. 공항에서 한 바탕소동이 벌어진다. 비자 없이 캐나다 행(行) 비행기를 타려는 나를 공항직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동부의 캐나다인들처럼 불어를 말하고 있고, 더구나 조종사를 비롯, 모든 승무원들조차 비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분통이 터진다는 표정을 짓는다.
결국, 라바트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해서 이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통과할 수 있었다. 비행기 탑승을 위해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보딩게이트로 향하는 나를 그들은 아주 부러운 듯 지켜보고 있었다.

같은 여관에 투숙했던 독일인 자전거여행자. 두 명은 대학생으로 전공이 아주 특이한 '자연과 국제 환경'으로 세계의 자연과 환경보전 문제에 아주 심각한 친구들이다.


탕헤르를 떠나, 국제공항이 있는 카사블랑카(Casablanca)를 향해 달리던 중 만난 모로코 청년, 야세르(Yasser). 그는 자전거 수리공이다.
영어의 '땡큐(thank you)' 조차 모르고 오직 불어만 읊어대는 그와 불어의 '메르시(merci)'조차 모르는 나와의 대화는 끝없는 미궁으로만,.....
그와 헤어져 20여리 달린듯한데, 누군가의 심각한 외침이 나의 등을 찌른다. 야세르다! 그는 씩씩대며 달려오더니, 아무 말 없이 검은 비닐봉지를 나에게 건넨다.
그 안엔 과일주스 한 개와 카스텔라 빵 한개!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는 오던 길을 되돌아 달려간다. 이것을 위해 왕복 40리!!!


'카사블랑카 국제공항'을 수 km 남겨둔 숲 속에서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새벽에 난데없는 시커먼 산돼지의 소란으로 잠을 설쳐 어리벙벙한 가운데 북아프리카에서 보는 마지막 태양이 힘차게 떠오른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위의 기사는 개인적인 용도 및 비상업적인 용도의 '퍼가기'를 허용하며, 상업적인 용도의 발췌 및 사진 사용은 저작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