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제주도, 야영장은 실황 콘서트가 열리고...
에디터 : 박규동

치적 치적 비가 내렸다. 제주 항에 닿은 시간은 오후 7시 40분이었다.
제주도를 여러 번 다녀갔지만 배를 타고 오기는 처음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곧바로 지정된 차량을 이용하여 다음 목적지로 안내하던 그런 여행에서 아무도 반겨 주지 않는 항구에 내린 것이다. 그 것도 비가 내리는 저녁에 말이다.
목포-부산을 오가는 퀸메리호의 차량운반 데크는 아랫층에 있었다. 기름 떼에 절은 어두컴컴한 데크에서 차량들 틈에 섞여 배에서 자전거를 끌고 내리는 기분은 유쾌하지 않았다. 내리기 전에 방수포로 트레일러의 짐을 잘 덮었다. 배 안에서 지도를 보고 생각해 둔 야영 터는 항구에서 약 1km 거리에 있는 야외 콘서트 공원이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우산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비를 만나면 몸을 사리는 것이 보통 여자들의 행동인데 아내는 불평하는 말 한 마디 없이 비를 그대로 맞으며 나를 따라 나선다.
예순의 할머니치고는 참 용감하다. 터미널에서 한 300m 쯤 왔을 때 어떤 남자가 명함을 하나 내미는데 "친절민박"이다. 그 길로 야외콘서트 공원까지 왔으나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서는 실황으로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가 내리는데도 많은 관객이 모여 있었다.

야영을 포기하고 친절민박으로 향했다.

우선 저녁식사를 해야 했다.
횟집은 여럿인데 식당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빗줄기는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이리저리 골목을 누비다가 식당을 찾았다. 열댓 명의 단체손님들이 미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 가만히 보니 외국인이다. 한국음식을 먹으면서도 아주 즐거워 한다. 우리도 해물찌개를 주문하였다. 아내와 잠을 어디서 잘 것인가를 의논하였다. 비가 계속 내리면 "친절민박"이라도 가서 자자고 하였다.
유쾌하게 식사를 하던 외국인 중에서 40대 로 보이는 한 남자가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들은 독일인이었는데 나에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조금 한다고 하니 자기 팀을 소개해 주었다. 제주도에서 열리고 있는 음악축제에 참석하러 온 거란다. 우리는 자전거로 여행 중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한국음식이 맛있느냐고 물었다. 엄지를 들어 보인다. 맥주를 마시며 저녁을 즐기는 그들보다 우리가 먼저 식당을 떠났다.
"Enjoy Korea!"로 인사말을 남기고서.

비를 흠뻑 맞으며 결국에는 "친절민박"을 택하였다. 주인으로 보이는 60대 부부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빨래 감이 있으면 내놓으라는 등 친절이 넘친다. 담도 없는 민박집 앞 마당에 자전거를 묶어 놓고 2층 방에 들었다.
욕조에서 빨래하기, 머리감기, 각종 배터리 충전하기, 일기와 메모쓰기...... 등, 문화시설이 갖춰진 곳에서 해야 하는 밀린 일을 일사분란하게 마무리하고 TV 시청을 한다. 올림픽이다.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이제는 버릇이 되었다.
집을 떠나 온지 아흐레째, 비가 개이고 날은 청명하다. 침대에서 옆에 누워 있는 아내를 보니 사랑스럽다. 갑자기 기운이 불끈 솟는다. 지금쯤이면 피곤하다 할만도 한데 아내는 내 몸을 반갑게 받아 준다. 한라산을 단번에 올라갔다가 아주 아주 천천히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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