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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주인이 된 스쿠바 강사 홍사장
2008-10-09   박규동

2008년 8월 19일


 먹다 남은 건빵으로 요기를 하고 여섯 시에 모텔을 떠났다.
 강구 항에는 이른 아침에도 고깃배가 깃발을 펄럭이며 분주하다. 커다란 영덕대게의 모형이 자랑스럽게 걸려있는 강구 장터를 강 건너로 보며 바로 영덕으로 향해 달렸다.
아침을 영덕에서 사 먹고 가려던 계획이었으나 새로 난 도로가 시가지를 우회하는 바람에 아침을 굶고 영덕을 벗어나게 되었다. 차량 운행도 한가로웠다. 어딘지는 모르나 긴 오르막을 다 오르고 나니 바로 주유소가 나타났다. 물을 얻어서 밥을 지어야 했다. 외딴 곳에 섬처럼 주유소는 서 있었다. 50대로 보이는 주유소 직원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서 양해를 얻어 주유소 뒤 켠에서 밥을 지을 수 있었다.
밥을 하는 사이에 주유소 사장이 나타나서 안에 있는 부엌을 써도 좋다고 한다. 아내는 찌개 감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넓은 냄비에 찌개를 만들어 왔다. 배가 고프던 차라 늦은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주유소 사장은 얼마 전에 다녀 간 여성 자전거여행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젊은 여성이 단독으로 전국일주 여행을 하다가 주유소에 와서 잠깐 쉬어 갔다는 것이다. 겁 없이 여자 혼자서 대단하다고 칭찬을 한다. 이 길로 자전거여행자들이 많이 지나 다녔는데 이렇게 트레일러를 끌고 다니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면서 떠날 때에 얼린 물을 한 통 주어서 잘 마셨다. 주유소 이름이 "해맞이 주유소"이다.

 어제는 110km를 달렸다. 길도 쉽고 포항 인심이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기온도 좀 내린 덕분이었다. 어제 많이 달렸던 탓인지 오늘은 속도가 좀 쳐진다. 영해에 잠깐 들려 간식을 준비하고 나와서 다시 곧게 뻗은 7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달린다. 후포를 지나고 다름고개를 넘다가 길 옆 과수원에서 과일 파는 데를 만났다.
복숭아가 제 철이다. 크기가 참외 만한 복숭아 한 무덩이가 3만원이란다. 낱개로는 팔지 않는다고 하기에 아내가 조금씩 상해서 밀쳐 놓은 복숭아를 두 개만 팔라고 부탁했더니 그건 그냥 먹으라고 한다. 상한 부분을 깍아내고 먹어도 보통 복숭아보다 더 크다. 크기도 크기지만 맛이 또 그만이다. 평해 복숭아 짱이다.



 점심은 평해에서 추어탕을 사 먹었다.
 평해에서 5km 쯤 북쪽에 오래되고 이름이 알려진 정자 하나가 나타났다. 월송정(越松亭)이다.
 소나무 숲과 바다 사이에 지어진 정자다. 정자보다 소나무 숲이, 소나무 숲보다 바다 풍경이 아름답다.
 솔숲을 이루고 있는 적송은 해풍을 맞아 더 붉게 자란 것 같다. 네티즌이 뽑은 우리나라 제일의 소나무 숲이란다. 그런 소문이 날만하다. 소나무 숲 속으로 오솔길이 구불구불 포장되어 있었다. 월송정 바로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정자에 올랐다. 솔밭 너머로 바다가 호수처럼 떠 있다. 현판이 몇 개 걸려있다. 오래 전에 다녀 간 묵객의 시가 담겨있어 월송정의 향취를 느끼게 한다.
 뒤 따라 올라 온 50대 부부 여행자를 만나 바다 바람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3백 년을 거슬러 간 것 처럼 우리는 선비가 되어 길을 담론하였다.

월송정에서 뒤 따라 온 50대 부부 여행자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울진은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편입된 군이다.
 자전거여행자들은 강원도 7번과 경상도 7번을 고갯길의 어렵기로 나눈다. 강원도 7번 국도는 "고개가 죽음"이라고 소문이 난 것이다. 특히 울진에서 강릉까지가 그렇다.

 울진을 15km 남겨두고 덕신 삼거리에서 해안도로로 접어 들었다.
 바로 정자 하나를 발견하고 자전거를 멈췄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피곤함을 느꼈다. 내가 기운이 빠지면 아내는 긴장을 한다. 왜냐하면 내가 당뇨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다급해진다. 얼른 자전거에서 트레일러를 분리하더니 해안을 따라 조성된 마을을 달려간다. 식당이나 잘 만한 데가 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다녀 온 아내는 우선 막국수집을 찾았다고 하면서 일단 저녁을 먹고 나서 잠자리를 찾자고 한다.
 오늘은 먹은 게 좀 부실했었다.

홍 사장은 스쿠바보다 요리하는 게 훨씬 좋단다. 그래서 이제는 식당이 주가 되고...

 "Club Moor"라고 간판을 건 식당은 길 건너에 바다가 있었다.
 주인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인데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그의 아내가 음식 주문을 받았다. 주문한 막국수를 날라 온 건 남편이었다. 늘씬하고 몸매가 탄탄하다. 국수를 많이 넣었으니 맛있게 먹으라면서 우리가 바깥에 세워 둔 자전거를 힐끗 힐끗 훔쳐 본다. 수육을 내 놓으면서부터 그는 궁금한 걸 묻기 시작하였다.
 "저런 자전거는 비싸지요? 하루에 몇 km나 갈 수 있어요? 잠은 텐트에서 잡니까? 나도 자전거를 타고 울진까지 가 봤는데 궁디가 아파 죽겠더라고요."
 들마루에 있던 손님도 가고 우리 부부만 남았다. 주인은 동동주 한 통을 들고 우리 탁자로 왔다. 횡성에서 나는 인삼막걸리라며 잔을 권한다.
 주인 홍 사장은 스쿠바 강사란다. Club Moor라는 간판도 스쿠바 동호인들을 위한 것이다. 스쿠바 동호인들을 교육하고 물 속을 안내하며 숙식을 제공하는 펜션 같은 집이다. 그런데 홍 사장은 스쿠바보다 요리하는 게 훨씬 좋단다. 그래서 이제는 식당이 주가 되고 스쿠바는 부업이 된 것이다. 입담이 좋은 홍 사장은 스쿠바 손님들에서부터 처갓집 얘기까지 길게 늘어 놓았다. 막걸리 몇 잔으로 나도 흥이 났다. 저녁으로 막국수와 돼지 수육을 잔뜩 먹고 나니 기운이 살아났다.

 아내가 마당에 텐트를 쳤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홍 사장이 자기 집에 민박을 치던 빈 방이 있으니 거기서 자고 가란다. 밤 12시에 잠을 자러 갔다.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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