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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의 공짜 라이딩은 라이더의 질주본능이다.
2008-10-07   박규동

2008년 8월 17일. 06:30
 여관 방 안에서 밥을 짖고 넷이서 아침을 먹었다.
 우리 부부 소꿉놀이에 처제네가 끼어들어 더 맛난 아침이 되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동서 내외를 환송하고 우리는 감포를 향해 출발하였다. 31번 국도를 타고 무룡산 정자고개를 넘어야 한다. 10여 년 전에 혼자서 트레일러를 끌고 이 고개를 힘겹게 넘었던 기억 때문에 아내에게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귀뜸을 했다. 그러나, 운 좋게도 새로난 길에 터널이 뚫여 있었다. 한 짐은 덜고 가는 것이다.
 고개를 오르기 전에 울산에서 활동하는 자전거 팀 네 명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길을 물었다. 웃어 주고 말을 나눠 주는 것 만으로도 그들이 고마웠다. 오르막이 한결 가벼웠다. 기어 1X2단을 쓰면서 쉬지 않고 터널 입구까지 올랐다. 처음으로 아내를 칭찬해 주었다.
 "당신 정말로 대단해요!"


 물을 한 모금씩 마시고 터널에 들어 갈 준비를 하였다. 자전거 테일 라이트를 켜고 뒤 따르는 아내의 트레일러에 장착한 테일 라이트도 깜빡 모드로 켰다. 나는 앞에 헤드라이트도 켜고 터널에 진입한다. 터널의 벽에 부딪치며 증폭에 증폭을 거듭한 차량 소음은 마치 항공기 백 대가 한꺼번에 이륙하는 굉음과 같은 크기로 변해 귀에 들린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지만 해결하는 방법은 터널을 빠져 나가는 길 밖에 없다.


 터널을 통과하고 동해 바다가 출렁이는 정자까지 내리막을 탔다.
 자전거여행에서 내리막 타기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자전거를 탈까? 라고 할 마큼 내리막은 재미가 짱이다. 내리막에서는 안장에서 일어날 수 있다. 배겨서 아프던 엉덩이 근육도 긴장을 풀어주고, 땀으로 습한 사타구니도 말릴 수 있다. 일어서면 키가 커진다. 커진만큼 시야도 넓어지고 바람도 더 만들기 때문에 기분이 째진다. 페달을 밟지 않아서 좋다. 페달을 밟지 않고 달릴 때의 공짜 라이딩은 억만금을 받고도 바꾸지 않을 라이더의 질주본능이다. 트레일러가 뒤에서 밀어주기 때문에 내리막은 더 길고 가파르다.
 트레일러 운전 경험이 부족한 아내의 다운힐 속도도 많이 빨라졌다. 모든 게 순조롭다.




 점심을 해 먹을 냥으로 나아해수욕장 솔밭에 자전거를 세웠다. 해변도 깨끗하고 공원의 시설도 좋았다. 점심을 해 먹고 낮잠도 잤다. 비에 젖었던 텐트와 장비를 볕에 널어 말리고 짐을 정리하면서 두 시간을 보냈다.

 월성원자력 발전소 때문에 나아에서 해안을 따라 가던 도로가 막혀 버렸다.
 해안도로를 발전소에 빼앗기고 새로 난 도로는 산으로 올라 가고 있었다. 이름도 모를 그 고개를 뙤약볕에 넘으면서 속으로 욕을 얼마나 했던지 내 입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넘어서 내려오니 대왕암이다.

 문무대왕능이 있는 대왕암 앞에서 잠시 쉬었다.
 바다는 동풍에 시달리면서 올찬 파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바다에 묻어 다오. 내가 신이 되어 동쪽 미개인들을 막고 나라를 지킬 것이다!"
 언제, 누군가 또 그런 얘기를 나에게 해 줬다.
 "이 곳이 한반도에서 기가 제일 쎈 곳입니다!"
 가슴을 크게 열고 대왕암의 정기를 힘껏 들여 마셨다. 여기서 기를 얻어야 고개가 많은 동해안 도로를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다.

해안도로를 발전소에 빼앗기고 새로 난 도로는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감포를 지나 두원리에서 막영지를 찾았다. 아내가 알맞은 정자를 발견한 것이다.
 낚시가게가 있었고 농가도 몇 채 있었다. 양어를 한다는 50대의 남자가 바람을 쏘이러 나왔다가 우리를 만나 한 동안 얘기를 나누고 돌아갔다.
 "나도 평생 소원이 이렇게 여행하는 겁니다. 캠핑카를 하나 사서 전국 여기 저기를 둘이서 돌아 다니는 게 소원이라고요."  
 그 50대 남자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아내의 눈치 보느라 참고 말았다. 오늘 저녁에 올림픽 배드민턴 남여혼복 결승전이라서 TV를 꼭 보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은 큰 고개 두 개를 넘는 바람에 49km 밖에 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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