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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왼손 엄지가 아프다고 한다.
2008-10-13   박규동


2008년 8월 21일
 울진에서의 꿈 같은 한나절 휴식이 우리를 삼척으로 힘차게 나아가게 했다.
 24시간 하는 분식점에서 순두부백반을 먹고 7번을 올라 탔다. 페달이 가볍다. 아내의 몸짓도 상쾌하다. 이대로라면 세계일주도 자신만만이다.

 작은 고개를 하나 넘고 내리막을 신나게 내려왔다. 뒤를 돌아 보니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를 세우고 아내를 기다린다. 5분, 10분이 지나도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온 몸이 긴장이 된다. 15분이 지나서 아내는 자전거를 끌고 내리막을 걸어서 내려온다. 한숨이 놓인다.
 "언덕을 내려 갈려고 하는데 핸들이 막 흔들려서 정신이 아찔 하드라고요. 그래서 자전거에서 내려 살펴보니 앞 바퀴가 빵구예요. 그래서 끌고 내려왔어요"
 "잘 했어요. 그대로 내려 왔으면 사고가 났을 거예요."
 15분 간의 불안과 공포는 타이어 펑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타이어 펑크만으로 끝나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나곡을 지나면 경상북도를 지나 강원도로 접어든다.
 크고 작은 고개가 강릉까지 파도처럼 이어진다. 도계를 넘는 고개 꼭대기에서 쉬었다. 1X1단을 쓰고 올라온 아내가 왼손으로 기어 변속을 하려고 하는데 엄지가 무척 아프다고 한다. 여태까지 앞은 2단으로 충분했는데 강원도 7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앞 기어 1단을 쓰게 된 것이다.
기어를 1단으로 내릴 때에는 검지로 당기면 그만인데 2단으로 울릴 때에는 엄지를 눌러 써야한다. 왼쪽 엄지가 변속기 레버를 누룰 수 없을 만큼 아픈 것이다. 아내의 얘기로는 제주도에서 넘어졌을 때에 다친 것 같다는 것이다. 그때에는 넘어지면서 부디친 엉덩이와 다리만 확인 했지 손가락은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변속을 할 때마다 자전거에서 내려 오른 엄지로 왼쪽에 있는 앞 2단 변속 레버를 누른 다음 자전거 뒷 바퀴를 들고 크랭크를 회전 시켜서 변속을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고개 꼭대기에서는 매 번 같은 동작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엄지의 인대가 손상을 입은 것 같다.


 아내의 부상과 펑크는 나의 주행 스타일을 바뀌게 했다. 그 동안에는 고개 꼭대기에 오르면 아내가 따라오는 것을 힐끗 확인하고는 내리막을 즐긴답시고 혼자서 신나게 내뺐던 것이다. 그런 것을 그만 두기로 한 것이다. 아내가 꼭대기에 도착하여 기어를 바꿀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리막에서도 내 맘껏 달리던 속도도 줄여서 아내의 속도에 맞추어 달리는 것이다. 아내와 거리를 10m 이내로 잡았다.

 삼척까지 가는 7번 길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바다와 산과 사람이 만나면서 가는 길이다. 오른쪽 어깨 너머로 늘 파도가 출렁인다. 굽이굽이 길을 돌면서 만나는 바다의 풍광도 사람을 끌리게 하지만, 산 끝자락인 기암괴석과 바다의 첨병 파도가 충돌하면서 만들어 내는 활동사진은 나그네의 피로를 한꺼번에 날려 버린다. 그래서 7번을 찾는 것이다.
 고개 꼭대기에서 만난 옥수수 장사는 힘드는 데 쉬어가라며 시원한 물을 내놓는다. 그 바람에 옥수수를 사 먹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정선 옥수수를 먹는 맛이란!
 
 오르막을 즐기자는 것도 내가 자전거를 타는 이유 중에 하나다. 
 고개를 어느 정도 오르면 몸이 달아 오른다. 체온이 오르면서 숨이 가빠지고 입에서 단내가 난다. 단내가 소태처럼 쓴 맛이 되면 페달을 멈추고 자전거에서 내리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땀은 몸에서만 나는 게 아니라 머리 끝에서 솟아 이마를 타고 눈 안까지 스민다. 호흡과 맥박이 최대박동수 넘고 심지어 몸에 심장만 남아있는 것 같다. 심장의 펌핑 소리가 큰 북을 귀에다 대고 두드리는 것 같이 쿵쾅거린다. 그 경지를 넘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아늑하고 황홀하다.
 모든 의문이 사라진다. 무아지경이다.
 빠르지는 않아도 우리는 고개마다 끝까지 쉬지 않고 올랐다.

자전거 여행에 압력솥을 가져와 밥을 지었다. 밥 맛이 최고다.

 7번 도로를 달리다 보면 "아시안 하이웨이"란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1959년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에서 채택한 아시아 인들의 소통을 위한 도로망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도로의 한 구간인 것이다. 부산에서 북한을 거쳐 중국, 러시아로 이어져 아시아 각국 뿐 아니라 유럽으로 갈 수 있는 도로망이다. 아시아 각국 간에 경제와 문화가 이 길을 타고 흐를 날이 꼭 올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오래 살 수 있다면 그 어느날 이 길을 따라 아내와 유라시아로 떠나는 또 다른 여행을 할 것이다. 종일 그런 꿈을 그리며 오후 다섯 시에 삼척에 닿았다.

 삼척 항이 보이는 어느 가게에서 생수 두 통과 김치 한 봉지를 샀다. 옆에 있는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반 근도 샀다. 신기한 듯 우리를 바라보던 50대 남자가 가까이 와서 말을 건넨다. 많은 사람이 트레일러에 관심이 많다.
 "어디서 구입했느냐? 값이 얼마냐? 짐은 얼마나 실을 수 있느냐? 어디서 와서 어디까지 가느냐?"
 "포천에서 출발하여 서해, 제주도를 돌아 동해로 올라 가 고성에서 집으로 갈 겁니다"
 눈이 튀어 나오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그의 표정에 나도 놀란다.
 "삼척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나는 여기 우체국장인데요. 여기서부터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경치가 일품입니다. 소망탑에 가셔서 소원도 빌고요. 욘사마가 묵었던 호텔도 거기 있답니다."

 삼척 시가지를 비켜 가는, 우체국장이 추천해 준 해안도로는 자전거여행에 좋았다.
 해안공원의 소망탑에서 소망 하나를 빌었다.
 "이 여행이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비옵나이다!"


 어두워지면서 동풍이 거세졌다.
 수 많은 고개를 넘은 피로도 쌓였다. 삼척해수욕장까지 왔다. 텐트 칠 자리를 여기 저기 찾아 다니다가 민박을 잡았다. 피서객이 뜸해져서 2만원에 방을 빌려 줬다.
 아까 샀던 김치와 돼지고기로 찌개를 끓였다. 고개를 마다 않고 달려온 아내의 다리도 굳세지만 찌개를 만드는 아내의 솜씨도 그만이다.

 내일부터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다. 기온도 내려 갈 거란다.

 삼척까지 무사히 도착한 것에 감사하고, 올림픽에서 일본 야구 팀을 꺽고 결승전에 진출한 우리 야구 팀의 선전에 흡족해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국민타자 이승엽! 승엽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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