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비줄기 속에 아내가 길 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에디터 : 박규동

2008년 8월 14일

제주도 일원에 호우주의보기 내렸다.
성산포를 떠나면서 비 맞을 준비를 단단히 했다. 갑문다리를 건너면서 바라보이는 성산포 항에는 벌써부터 갈치 배가 들어와 하역을 준비하느라 부산하다. 번쩍 거리는 갈치들이 어부들의 손으로 하나 하나 상자에 옮겨지는 광경은 참 숭고해 보였다.


12번 국도를 들어서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카메라와 수첩을 얼른 우비 밑에 감추고 계속해서 달렸다. 앞 뒤로 간간이 보이던 자전거여행 행렬도 모두 비를 피하느라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빗줄기가 억세다. 오히려 비를 맞아서 즐거웠다.
비를 맞으며 한 시간쯤 달렸을까, 뒤에서 따라오던 아내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튀어 오르더니 길바닥에 나가 떨어진다.
아내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튀어 오르더니 길바닥에 나가 떨어진다.

아뿔사! 순간적으로 대형 사고라는 생각에 머리가 하얗다. 아내를 일으켜 세우고 넘어진 쪽 엉덩이를 살펴보면서
 "어때 많이 아프지? 움직여 봐! 괜찮아?"
아내는 일어나면서 몸을 움직여 본다.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 같다.
 "뛰어 봐!"
아내가 줄넘기 하듯이 잘게 뛴다.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비는 계속 내리는 데 경계석에 걸터앉아 아내는 충격을 갈아 앉히고 있다. 숨을 크게 몇 번 마시더니 괜찮을 것 같다 고 한다.
 
자전거여행에서 도로를 따라가는 혼합교통 지대의 여행은 선두에서 달리는 리더의 역할이 막중하다. 도로의 사정을 살피면서 오르막과 내리막에서의 속도를 조정하고 노면의 형편을 보고 코스를 선택한다. 뒤에 따라오는 사람의 자전거 타는 능력을 감안하여 앞과 뒤의 거리유지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교통신호가 어디쯤에서 바뀔까 계산하여 뒤따라 오는 사람들이 다 함께 교차로를 통과할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정해야 하고 불필요한 동작을 삼가야 한다. 도로 우측의 자전거 갓길이 갑자기 좁아지거나 없어질 경우에는 언제 차선으로 진입할 것인지도 자동차의 흐름을 파악한 다음 결정해야 한다.
특히 도중에 멈출 때에 추돌사고가 많기 때문에 리더는 사전에 신호를 하여 멈출 때 일어나는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 교차로나 길이 나눠지는 부분에서는 후미에서 오는 사람이 도착했는지를 그 때마다 확인한 다음 다시 운행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전거 행렬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앞사람과 자전거 한 대 정도의 간격을 두고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앞사람이 간 코스를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
타이어 펑크가 났거나 멈추어야 할 상황이 생겼을 때에는 소리를 질러서 리더가 멈추도록 해야 한다. 개별 행동이 자제되어야 한다.
이런 규칙은 팀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운행의 안전을 위해서는 꼭 지켜져야 할 상식이다.


여행을 떠나면서 아내에게 부탁한 게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내 뒤를 바싹 따라오라는 것이다. 내가 빨간불에 교차로를 건너도 파란불이 바뀔 때까지 뒤에서 기다리지 말고 따라 오라는 거였다. 길을 선택하여도 내 자전거바퀴가 굴러갔던 곳을 그대로 따라 오라고도 했다. 

사고지점은 약간 내리막이었다.
속도가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전거전용도로에서 나와 차로 2차선을 달리고 있었다. 자전거도로는 쓰레기가 많아서 속도가 나면 미쳐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나는 내리막에서는 대체로 차도를 이용했다.
그런 중에 아내는 갑자기 자전거도로로 진입한 것이다. 제주 일주도로의 자전거도로는 높이 40cm에 길이가 2m나 되는 경계석이 2m마다 한 개씩 놓여 있다. 아내는 자전거도로로 진입하면서 뒤따르는 트레일러의 왼쪽 바퀴가 경계석에 걸린 것이다. 트레일러와 자전거는 한꺼번에 튕겨 오르고 아내는 자전거로부터 날아갔던 것이다. 커브를 돌기에 속도가 빨랐던 것이다.

잠시 쉰 다음 다시 자전거를 굴렸다. 1km 가량은 내가 아내 뒤를 따라가면서 상태를 살펴 보았다. 뼈나 인대는 손상이 없어 보였다. 빗줄기가 너무 강해져서 잠시 버스정류장 칸막이로 피신하여 "원 플러스 원" 토마토주스를 마셨다. 미안해서인지 아내는 자꾸 괜찮다고 만 한다.

돌 비석에 쓰인 "순이삼촌"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한 시간 반이 지나서 비가 멈췄다. 구름이 제주 북쪽으로 밀려 갔다.
함덕해수욕장 못 미쳐 북촌리에 있는 "4.3사건 위령탑" 공원에서 쉬었다. 아내는 벤치에 들어 누워 쉬고 싶다고 하였다. 시간이 넉넉하여 그러자 고 하였다. 햇살도 조금씩 살아났다. 비에 젖어 빼앗겼던 체온도 회복이 되고 있었다.
아내가 쉬고 있는 동안 나는 공원을 둘러 보았다. 돌 비석에 쓰인 "순이삼촌"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전쟁이 몰고 온 비참함 중에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자전거로 제주도 투어를 끝내고 우리처럼 항구로 돌아가는 젊은이들을 여럿 만났다. 어느 팀은 빌린 자전거의 뒤 디레일러가 망가져 꼼짝 못하고 서 있었다.
다행이도 지나가는 트럭이 제주까지 실어다 주었다. 목이 말라 조그만 병의 물을 나눠 마시는 팀을 만났을 때에는 민박집에서 얻어 온 시원한 물을 선물하기도 하였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끼리 나눌 수 있는 우정인 것이다.

제주 시내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외과, 내과를 겸하고 있는 개인 병원이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몰려 나와 우리를 반긴다. 진료할 생각은 아니하고 질문이 쏟아진다.
 "어디서 어디까지 가느냐? 트레일러는 무겁지 않느냐? 노인네가 힘 들지 않느냐?"
다행히도 뼈나 인대의 손상은 없다고 하여 안심을 하였다. 타박상 관련 약을 열흘치 처방 받았다.

올림픽에서 여자양궁 단체전이 벌어져 결승에 오르고

낮 두 시경에 여객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선사 사무실에 찾아가 2인용 1등실로 예매를 하고 대합실 앞 공터에서 아침에 남긴 밥을 먹었다. 다섯 시간을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올림픽에서 여자양궁 단체전이 벌어져 결승에 오르고 나중에는 금메달까지 따는 것을 TV로 볼 수 있었다.
낮에 봤던 자전거 여행자들을 여럿 만났다. 더러는 우리가 지나는 것을 먼 발치에서 보았다고 하면서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트레일러를 직접 만들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부부의 특이한 행색 때문에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녁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탁을 하여 우리는 자전거를 다시 자동차운반 데크에 실을 수 있었다.
승선을 한 후 선실을 확인하고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2인용 선실이 편히 쉬기에는 좋았다. 아내의 기분도 훨씬 낳아진 것 같았다. 샤워 부스와 침대, 작은 책상이 있었다. 에어컨은 추웠다.
아내는 거위털 이불을 덮고 일찍 잠이 들었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여행기를 쓸려고 했으나 워낙 신통치 않아 그만두고 말았다.

배가 가끔씩 흔들리는 게 꼭 요람이나 해먹에서 잠을 자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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