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헤이리마을, 문화합중국
에디터 : 쇠말패


겨울바람이 불었다.
2009년 12월 20일
한 주일 내내 얼어붙었던 겨울바람이 우리의 자전거여행을 힘들게 했다. 바퀴의 그리스는 굳어서 굴림이 느려졌고 손은 곱아서 여벌 장갑을 필요로 했다. 껴 입은 내복은 페달질에 거추장스러웠고, 코까지 뒤집어 쓴 버프는 아이웨어에 성애를 끼게 했다. 신발에 덧신까지 신었으나 간간이 발끝이 시려웠다.
동두천의 본조님이 추운데 자전거 타지 말라고 간곡한 쪽지를 보냈는데도 나는 겨울바람이 좋아서 아내를 졸랐던 것이다.


파주 신도시 교하에 사는 겨울바람님이 번개를 처서 쇠말패를 자유로휴게소로 불러 모았다.
10시까지 모인 사람이 산장지기와 마찌님 부부, 겨울바람님 부부, 오이쨈님과 우리 늑대 부부, 해서 일곱 명이다. 쇠말패 중에서도 고령 순서로 모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다.
자유로를 옆을 끼고 나 있는 작은 길을 타고 북쪽으로 달렸다.
곡릉천을 건너면서 두텁게 낀 얼음덩이를 보았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동쪽이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화도바람이 예사롭지 않을 터이지만 오늘은 제법 바람이 느렸다. 방한 준비를 톡톡히 한 때문인지 추위를 이기고도 남아 몸에서 열이 났다.

헤이리는 문화합중국이다.
책 공화국도 있고, 미술공화국도 있고, 음악공화국도 있고, 영어공화국도 있었다. 이 곳에서는 놀이마다 공화국이 하나 씩이다. 문화마다 국가로 변신 되는 공간이다. 공간을 거니는 자전거도 공화국이요, 바람벽에 휘갈긴 시어도 공화국이다. 문화에 지배되고, 문화를 지키며 문화를 팔아 문화를 국방하는 나라 헤이리는 공화국이 연합한 문화합중국이었다.









책의 공화국에 들었다. 책이 도시처럼 쌓여 있었다. 계단이 지하철처럼 흐르는 곳에서 책을 만나는 것은 외계인처럼 쑥스러웠다.
손바닥호수 공화국에서 자전거로 썰매를 탔다. 얼음이 꺼지기를 기도했지만 언어가 달라서 불발이었다. 자전거는 국경을 통과했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길을 잃고 헤맸다. 그 때마다 겨울바람이 불었다. 자전거 살이 주문같은 바람소리를 냈다. 버리고 갈까봐 나는 아내의 꽁무니를 물고 달렸다. 문화합중국에서 남자는 없었다.

점심은 장어매운탕을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메뉴인데 맛이 그만이다. 겨울바람님이 쐈다.
든든한 배를 밑천으로 곡릉천 갈대밭 길을 달렸다. 금천에서 되돌아 오며 작은 산을 올랐다가 논 밭 사이로 난 석양 길을 탔다.
겨울 석양은 왜이리 늘씬한지!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부부가 세 쌍인데 오직 홀로인 오이쨈님이 서럽도록 석양은 붉었다.

손바닥호수 공화국에서 자전거로 썰매를 탔다.
얼음이 꺼지기를 기도했지만 언어가 달라서 불발이었다.



자전거공화국에서,
우리는 신념에 중독된 겨울 나그네였다. 추워도 자전거는 타는 것이다! 추워도 나그네는 자전거를 타야 한다!
그러길 잘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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