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자전거여행에서 돌아온 최혜진씨
에디터 : 박창민 기자

인도 자전거여행에 여자는 안 된다는 말에 오기가 생겨, 이번 여행에 동참했다는 최혜진씨

한국외국어대학교 해외자전거여행 동아리인 '만리행'은 지난 12월 말부터 2월초까지 인도 자전거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인도는 자전거여행의 불모지로 불릴만큼 여행자가 많지 않은 곳으로 세계적인 여행 자료를 찾는 것도 그렇게 쉽지 않았는데, 5명의 만리행 인도여행팀 중 유일한 여성 최혜진(22)씨를 만나 여성으로 느끼는 인도와 자전거여행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인도는 먼지가 많아서 항상 마스크를 하고 다녀야 했다.

이번 여행을 위해 새로 구매한 스페셜라이즈드 마이카.
한번의 펑크도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왜 자전거 여행을 선택했지요?
딱히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자전거를 잘 알거나 전부터 자전거를 탄 것도 아니었는데, 22살 대학교 2학년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었고 인도에 대한 신비로운 끌림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가 속한 동아리인 '만리행'에서 인도 여행을 떠나는데 여자는 어렵다고 말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불쑥 오기가 생긴거죠.
그리고 자전거로 여행하는 것이 다른 여행에 비해 조금 더 힘든 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역시 20대 나이에 한번 하고 싶은 여행이기도 했지요. 왠지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할 것같은 기분도 들고요.
대학생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는데, 인도 자전거여행이라는 기회도 왔고, 해 보니까 정말 좋았습니다.

자전거여행을 처음 해 보는 건데 좋은 점은?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속도, 느리게 가고 싶으면 좀 느리게 가다가 쉬고 싶으면 바로 쉴 수도 있고, 걷는 것처럼 너무 느리지도 않으면서 사람들도 더 많이 볼 수 있고, 그곳 사람들을 직접 옆에서 피부로 느끼게 되니까 그 사람들의 호흡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같이 갔던 대원들이 인도어 전공이라 인도어를 하니까 그곳 사람들도 훨씬 더 살갑게 다가와 주었고, 그 사람들의 따뜻하고 인간다움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죠.

인도에서 위험한 상황도 많았지만, 함께 했던 대원들때문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떠나기 전에 걱정되었던 것은?
사실 성폭행같은 것이나 큰 사고를 당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어요. 인도 여행 관련 자료들을 보면 인도에서 여자들이 위험한 상황을 당한 경우도 대단히 많더라고요. 운동을 좀 했지만 그렇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사실 같이 여행을 했던 대원들이 없었다면 정말 위험했었을 것 같아요. 혼자 돌아다닐 때는 주위 사람들의 눈길도 그렇고, 손으로 만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대원들 옆으로 가면 도망가더군요.
동양 여자들에게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누가 제 자전거를 뒤에서 어떻게 하려는 사람도 있었다는데 쫓아오던 대원들이 물리쳐 준 적도 있었지요.
그래서 남자처럼 보이려고 옷도 남자처럼 입고, 목소리도 변조하고 여러가지 노력을 해 보았는데, 다들 여자인지 알아 보더라고요.^^

자전거여행을 통해 만난 인도는 어떤가요?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면 정말 그곳 사람들을 더욱 가깝게 만나는 것 같아요. 특히 작은 마을에 가면 대접을 받기도 하고, 사람들이 몰려와서 도움을 주기도 하고, 우리에 대한 경계심이 훨씬 적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남자들이 사진을 찍거나 다가가면 경계를 하는데, 여자인 제가 다가가면 훨씬 경계심이 풀리고 좋아지더라고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인도 여자들과 바디랭기지로 이야기를 하면서 재밌게 지내기도 했어요.
인도의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여자들이 운전하는 경우도 거의 없는데, 제가 자전거를 타고 가니까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대단히 자유로워 보인다"고 부러운 듯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리고, 우리와 가장 다른 점은 항상 "문제 없어"라고 말은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항상 "빨리 빨리"를 외치며 무엇인가 하려고 하면, 그들은 항상 "문제 없어"라며 아무일 아니란 듯이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에는 참 답답했는데 갈 수록 적응이 되더라고요.

이방인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자그바티' 덕분에 많은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담배 피우는 것까지 배웠다.

가장 기억에 남은 사람들은?
어느 마을에서 작은 여자 아이가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그 아이는 집으로 도망가는 거예요. 그런데 그 집 앞에서 그 아이 엄마가 나와서 친절하게 대해 주셨어요.
그 집에 들어와 사진도 찍게 하고, 요리를 하는 중인데 같이 하자고 하기도 하고, 다들 여자분들만 있었는데 저에게만 경계심을 풀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어요. 다른 곳과 달리 남자 대원들에게도 경계를 풀며 다가갈 수 있게 해 주셨죠.
갑작스럽게 찾아 온 이방인에게 너무 편하게 대해 주시고, 쉬면서 잠시나 인도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서 기억이 납니다. 그 아이의 엄마 이름(자그바티)과 주소도 적어왔어요. 나중에 무슨 선물이라도 보내주고 싶어서요.

여자라서 좋았던 점은?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주로 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자들이에요. 그렇다보니 제가 여자인 것을 알면 웃어주면서 경계를 풀고 다정하게 대해 주십니다. 인도의 남자들은 대부분 차와 담배 등을 하며 찻집에 모여 노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들은 항상 일을 하고 있는 편이죠.
그리고 LG 공장에 무작정 찾아간 적이 있었어요. 그곳 한국 직원들을 만나 인도 이야기를 좀 듣고 싶었는데, 대장이 출입구에서 이야기를 하니까 안 된다고 거부를 당했죠. 그런데 제가 안쪽을 들어다 보니 여직원 하나가 저를 보고 웃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 여직원에게 제가 다가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부탁을 했더니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셨죠.
여자라서 어려운 점도 많지만 정작 현지에서는 남보다 더 가깝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잇점도 있더라고요.

자전거여행이 처음인데 어려웠나요?
혼자 여자였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좀 어렵기는 했어요. 처음에 출발하자 다른 대원들은 앞으로 가고 제가 뒤로 쳐지게 되었죠. 대원 중에 오빠 한 분이 10일 정도 제 페이스에 맞추어 달려주셔서 체력적으로는 적응이 되었습니다.
계속 저 혼자만 중간 중간에 탈이 좀 자주 나서 같이 간 대원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죠.
이번 여행에서는 자전거를 버리고 싶을 만큼 힘든 적은 없어서 다행이었는데, 특히 비가 오지 않아서 날씨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여행 중에 감정적인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감정 컨트롤이 잘 안 되니까 자전거를 제대로 탈 수가 없더라고요. 날씨도 좋고 몸도 아픈데가 없는데 아무리 달려도 속도도 안 나고 자꾸 뒤쳐지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혼자서 감정 컨트롤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여행 후반부에는 탈이 나서 몸이 아픈데도 혼자 노래 부르고 기분 좋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쉽고 재미있게 자전거 타기가 되었습니다.

최혜진씨가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 다른 대원들이 마을에서 재료를 구해 비빔라면을
만들어 주었다. 그것을 먹고 또 힘이 났다고...

기억에 남는 순간은?
자전거를 타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중 빈민촌 애들이 많은 곳을 지난 적이 있었어요. 남자 애가 쌀포대같은 것을 하나 메고 가면서 저를 쳐다 보는데, 바라보는 그 눈빛이 저를 너무 동경하는 눈빛이더라고요.
'나는 무슨 복이 있어서 이런 여행을 하고, 저 애들은 무슨 죄를 지어서 저렇게 힘겹게 살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평생 이런 여행을 꿈조차 못 꿀 그 아이의 눈빛이 아직 잊혀지지가 않아요.

인도에서의 생활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주로 호텔에서 잠을 잤지만, 남자 대원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는데 오히려 남자 대원들이 저를 더 피하고(^^) 저보다 깔끔 떨고 하면서 제가 불편하지 않게 해 줬습니다.
제가 호텔 가격을 깎는 일을 정말 잘 해서 남자 대원들이 호텔 가격을 흥정하고 오면 제가 가서 확 깎아 버린 적도 많았죠.
처음에 가장 어려운 건 화장실 사용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깨끗한 편이어서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오픈토일렛'이라고 그냥 자연 속 아무곳에서나 볼일을 보는 것이 인도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데, 그것도 후반에는 익숙해지더라고요.
먹는 건 워낙 잘 먹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설사와 구토 등으로 초반에 고생을 많이 해서 여행을 그만 두고 싶을 때도 있기는 했습니다.
중간에 '빠니르'라는 발효 시키지 않은 치즈같은 음식을 찾아서 그걸 많이 먹었는데, 제가 워낙 치즈를 좋아하거든요. 또한 토마토와 감자가 대단히 흔한 채소여서 자주 먹다보니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채소가 되었네요.


이번 여행에서 느낀 인도의 매력은?
타지마할같은 관광지에서는 오히려 별로 감흥이 없었고, 넓은 들판을 달렸던 기억과 마지막 이틀은 정말 멋진 경관을 보면서 달렸는데, 그런 자연적인 모습과 작은 마을에서 만난 따뜻한 인도 사람들이 매력이었죠. 그래서 나중에 우리나라도 꼭 자전거로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내 자신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많이 했었어요.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한 내 자신에게 고마왔고, 처음에는 성격이 좀 까칠했었는데,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인도인들이 하는 이야기처럼 '문제 없어'가 되더군요.
여행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것이 또 하나 인도의 매력인 것 같고, 아니면 자전거여행의 매력이 될 수도 있겠죠.


자전거여행 중 쉴 수 있는 그늘 하나 만나면 너무 고맙고, 이 여행을 통해 작게 보였던 사소한 것 들이 고마와지게 되었다는 최혜진씨와의 이야기는 어느덧 3시간 가까이 흐르게 되었다. 인도라는 다가가기 어려운 문화와 여성이라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전거여행을 무사히 마친 최혜진씨의 이야기가 자전거여행을 시작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혜진씨는 "인도 자전거여행을 통해 생활 속 사소한 것들에도 많은 고마움을 느꼈고,
조금 더 성숙해진 것 같다"고 이야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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