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달러 지폐로 건너받은 따뜻함
에디터 : 이호선

그저 호수 위의 다리를 건너 가니 미네소타다. 미네소타도 역시 허허벌판이지만 여태껏의 풍경과 아주 많이 다르다.
긴 설명이 필요 없이 '옥수수와 콩밭' 한 낱말로 너무 충분한 州가 미네소타이다. 달리면 달릴 수록 끝이 안 보이게 펼쳐진 옥수수 밭, 그리고 콩밭이 나를 하품 나게 만든다.

웰컴투 미네소타

군더더기 없이 '옥수수와 콩밭'으로 요약되는 전형적인 미네소타의 풍경

100% 완벽하게 기계화된 미국의 철도공사 현장.
자갈을 푸고 철로 변에 떨구어진 침목을 집어 침목의 자리에 끼우고 그 위 고정 못을 박고
다시 자갈을 덮고 철로 위의 흙을 쓸어 내리며 끝이 나는 모든 과정이 기계들만의
팀플레이로 마무리 지어진다.

5불짜리 지폐 한 장, "샌드위치라도 사 드시오"
나는 주도(州都)인 미네아폴리스(Minneapolis)를 피해 지나가기 위해 212번 하이웨이로 갈아 타고 달린다.
그래니트 폭포(Granite Falls)를 향해 달려가다가 '엘파마'가 갑자기 휘청거린다. 펑크의 불길한 징조이다. 밴쿠버에서 테이프를 타이어 안쪽에 감고 난 후부터는 펑크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 졌지만 튜브자체의 불량으로 펑크가 가끔씩 난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연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빵빵해진 튜브자체의 취약한 곳에 균열이 생기면서 펑크가 나는 것이다.
급히 한 농가 앞에서 벌여 놓고 스페어 튜브로 튜브교체를 하고 있는 데 한 50대 농가부부가 다가와 도울 일이 없겠는가 하며 나를 거든다.
도울 일이 뭐가 있겠나.
말만으로도 눈물 나게 고맙지.
나의 여행에 감동했다는 그들은 그저 미적미적 어쩔 줄을 모른다. 허어, 그냥 지나가면 되는데,………
가까스로 몸을 돌려 걸어가던 그 남자가 나에게 다시 달려 오더니 그의 주머니 어디엔가 쑤셔 박혀 있던 듯한 잔뜩 구겨지고 말린 5불짜리 지폐 한 장을 나에게 건네주며 "샌드위치라도 사 드시요!"
그들의 미소가 너무 아름답다. 나는 주저 없이 그것을 받아 들고 감사의 답례를 한다. 비로소 그들은 아주 씩씩하게 그들의 길은 간다.
그가 나에게 준 것은 5불짜리 지폐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따스한 마음이고 뜨거운 포옹이었다.
그래니트 폭포(Granite Falls)의 주유소에 가서 나는 정말 그 5불로 샌드위치를 사서 먹고 그래니티 폭토 메모리얼 파크(Granite Falls Memorial Park)에서 나의 지친 몸을 누인다. 묘하게도 오늘 밤, 단 한 마리의 불청객도 나를 방문하지 않는다.

바이커, 특히 대륙횡단 바이커는 적나라하다.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먹고 마시고 소변보고 옷도 갈아 입는다.
바이커는 솔직담백하다.

시골을 달리다 보면 별의별 타운 이름이 많은데
"세이크리드하트(Sacred Heart)"는 더욱 유별났다.

212번 하이웨이 선상에 있는 미네소타의 작은 마을, 올리비아(Olivia)는
콘헤드쿼터(Corn Headquater), 미국의 옥수수 농사 사령부이다.
이는 결국 세계 옥수수 사령부를 뜻한다.

갓길 없는 아이오와, 이런 알량한 도로포장이...
주도인 미네아폴리스가 다가 옴에 따라 상당규모의 도시가 이어지고 길이 넓어지며 교통량이 늘어난다. 차들이 많아지면 바이커들에겐 지옥이 된다. 또 다시 나는 남쪽으로 달려 14번 하이웨이로 갈아 타 버린다.
원래 도시는 매력이 없는 곳이지만, 그 동안 줄 곳 '깡촌'만을 달리다 보니 도시를 더욱 꺼리게 된다. 14번 하이웨이를 타고 달리다가 218번 하이웨이로 갈아타며 남동 방향으로 달려 내려간다. 미네소타의 아랫 동네가 아이오와(Iowa)인데, 미네소타와 전혀 다름이 없는 풍경이다.
'옥수수와 콩밭'이 한 치의 변함도 없이 이어진다. 문제는 도로다. 이제껏 달려 왔던 아이다호(Idaho), 노스다코타(North Dakota),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 미네소타(Minnesota)와는 완전히 다르게 포장된 갓길이 없다. 갓길은 굵은 모래내지 자갈이다. 심각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미국은 끔찍하게 넓은 땅이지만 엄청나게 많은 길이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져 있음에도 한가한 도로가 거의 없다. 그 만큼 미국땅에는 굴러 다니는 차량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포장된 갓길이 없다면 치명적이다.
결국 곡예를 하는 수 밖에. 도로가 한가할 때는 흰색라인 위를 타고 달리고, 차량이 밀리면 갓길로 점프를 하는 수 밖에 길이 없다.
정말 스트레스 쌓인다.
우째 이렇게 알량하게 도로포장을 했단 말이냐!

변함없이 계속되는 땡볓 아래 나와 '엘파마'는 완벽한 피난처를 발견했다.

아슬아슬한 공원 화장실에서의 샤워
힘겨운 주행 끝에 나타난 지도상에도 없는 작은 타운, 라포르테(La Porte)의 타운 공원 앞에서 하루의 긴 페달 질이 끝났다. 여태껏 내가 거쳐 온 모든 마을 공원은 마을근처이거나 마을 한 복판에 있다. 하지만 어둠의 방문과 함께 주민들은 집 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별 신경 쓸 필요 없이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단지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을 끝내기까지 최소 30분은 긴장감의 연속이다.
거의 모든 마을 공원은 단체로 모여 고기를 굽고 그것을 앉아 먹는, 지붕이 있고 지붕아래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구조물이 있다. 그리고 공중화장실이 있다. 결국 나는 지붕이 있는 구조물 아래에서 잠을 자게 된다.
하지만 나에게 정말 중요한 곳이 바로 공중화장실이다. 그곳은 나에게 단지 용변의 해결소로만 중요한 곳이 아니다. 아무리 피곤하다고 한들 하루 종일 땀으로 온 몸이 떡이 된 채, 그대로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반드시 몸에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는 땀의 응고체를 최소한 60-70%정도는 걷어 내고 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샤워를 하는데, 숲 속에서 샤워를 할 때는 무인지경이기에 주저 없이 일을 끝낼 수 있다. 하지만 모기들이 날 뛰기 시작해 마을 공원으로 나의 잠자리를 옮긴 후부터는 나의 샤워장이 공원화장실로 바뀌었다. 문제는 공원화장실이 모든 타운과 시당국에 의해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원화장실은 어느 나라에서나 갖은 범죄의 온상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더욱 더 심각하다. 그래서 대 다수의 공원화장실은 주기적으로 경찰의 순찰을 받고 있으며 공원지기에 의해서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개폐된다.
밤에 화장실 앞은 대 낮처럼 밝고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곳도 상당수이다. 이런 상황아래 나는 화장실 안에서 발가벗고 퀵 샤워를 마쳐야 한다. 샤워시간은 불과 5분 정도이지만 사전과정과 사후과정까지 계산하면 최소 10분이 걸린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문제는 어디까지나 타이밍이다.
주민, 공원지기, 경찰 중 누구 한 명이 언제 들어올지 결코 알 수 없다. 그 동안 나는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타이밍이 좋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감쪽같이 해 치웠다. 그리고 세면대에서 빨래까지 끝내면 대략 30분은 소요된다.
빨래를 할 때쯤 되면 콧노래 몇 장단은 이미 끝난다. 퀵 샤워 하는데도 여러 변수가 생긴다. 퀵 샤워를 하기 위해 바이커용 물통(마개에 물 조절기능이 있다) 2통(비누질을 안 할 때는 한 통으로 가능)이 필요하다.
보통 화장실의 바닥에 배수구가 있어서 그곳에서 하면 되는데 종종 배수구가 없다. 그럴 경우에는 변기 위에서 할 수밖에 방도가 없다.
어쨌거나 '흔적 없이 해 치우는 것이 상책이다.'
우리들의 대부분은 이미 짧지 않은 군대생활을 통해 충분히 숙지하고 숙달시켜 온 삶의 지혜, 생존의 원칙이 아니었던가?!!

라포르테(La porte)의 공원 화장실에도 배수구가 없다. 변기 위에서 급히 일을 마친 후 빨래까지 마치고 테이블 주위에 빨래를 걸어 놓자마자 조용히 나를 향해 다가오는 순찰차. 셰리프(Sheriff)! 마을 보안관이다.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신이 직접 화장실 문을 자물쇠로 잠근 후,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나의 소속과 나의 미션에 대해 간단한 보고를 했다.
"이곳에서의 캠핑은 원칙적으로 불가다. 하지만 오늘 밤 특별히 허가 하겠다."
이 타운은 정말 유별나다. 보안관이 화장실 키를 가지고 직접 관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그 동안 '흔적 없이 해 치웠던 나의 신화'가 하마터면,…………

쏟아지고 있는 비를 그저 바라 보며...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지, 이렇게 완벽한 지붕 아래 있으니 말이다.

워터루(Waterloo)에 이어 또 다른 큰 도시인 세다래피즈(Cedar Rapids)가 이어진다. 흑인들과 남미인들조차 상당 수 보일 정도로 도시다운 도시이다. 도시를 빠져 나와 다시 무인지경의 허허벌판을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줄 곳 잔뜩 인상을 쓰고 있던 하늘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인내심 있게 머리에 이고 두 손에 들고 있던 물로 가득한 양동이들을 내동댕이 쳐 버린다.
도로 위에 서서 단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인 채 확실하게 뒤집어 썼다. 하지만 하늘의 분노는 오래가지 않았다. 곧 구름들은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져 사라지고 본연의 파란색이 나타나며 대지에는 또 다시 평화가 돌아왔다.

웰컴투 아이오와

'꺼지라'는 총성이 나의 귀와 전신을...
포장된 갓길이 없는 이 아이오와(Iowa)의 도로가 정말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자갈의 갓길을 달려보지만 전혀 속도가 오르지 않을 뿐 아니라 거의 닳아 있는 타이어의 수명을 순식간에 단축시킬 것이다.
나는 미친척하며 도로의 경계선인 흰색라인을 따라 살살 달려가지만 종종 젊은 미국인들이 창을 열고 나를 향해 쏘아대는 '꺼지라!'는 총성이 나의 귀와 전신을 마비시키곤 한다. 다른 방도가 없다. 그 친구들의 염원대로 한시라도 빨리 이 아이오와 州를 빠져 나가는 것 뿐이다.

아이오와에서 미시시피강을 건너 일리노이로 떠나기 직전

링컨의 땅, 웰컴투 일리노이

아이오와의 마지막 시티인 무스카틴(Muskatine)을 지나 미시시피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일리노이(Illinois)주로 달음질친다. 무스카틴市의 도로에서 우연히 만난 50초반의 아줌마 바이커, 탄야(Tanya)가 나를 앞장서며 길을 안내했다. 그녀는 철인3종목에 해마다 출전하고 있는 말 그대로 철녀(鐵女)이다.
50대임에도 불구하고 부질없는 살이 단 한 점도 안 붙어있는 듯, 그녀의 근육은 한 단어로 철근(鐵筋)이다. 그녀의 남편 또한 철인으로서 함께 철인경기에 출전한다고 한다. 그녀는 회사원, 그녀의 남편은 고등학교 교사로 바쁜 일과 속에서도 매일 아침 1시간, 퇴근 후 1시간씩 반드시 운동을 한다고 한다. 그녀는 세계를 달리고 있는 나에게 경의를 표하지만 나는 이미 그녀에게 감동을 먹을 대로 먹고 있었다.

미시시피강은 내가 중학교 지리시간에 처음 들은 강 이름이다. 주변에 많은 공장들과 도시들로 인해 오염이 심각하다고 하는데 내려다 보니 정말 똥물이다. 미국의 아버지, 링컨의 나라, 일리노이라는 일리노이州 환영 입간판이 나를 잠시 멈추게 한다. 나는 일리노이州의 첫 번째 시인 일리노이시티(Illinois City)의 외곽에 있는 캠프 그라운드에서 야영을 한다.
주에서 운영하는 캠프장으로 샤워장까지 있어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빨래도 한다. 텅 빈 캠프장을 나 혼자 독차지하고 숲 속에서의 평화를 만끽한다. 아침에 뜨거운 샤워를 또 한 번 제대로 하고 서둘러 빠져 나온다.

캠핑크라운드에서의 야영, 텅 빈 캠프 그라운드를 혼자 독차지 하고 있다.

도로의 인터체인지(IC) 밑은 도로 주행 중 만날 수 있는,
비와 타오르는 태양의 열을 뿌리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걸 어쩌나?! 이곳의 길 또한 아이오와 주의 그것을 뺨 칠정도로 나쁘다. 20-30cm정도의 가느다란 아스팔트의 갓길이 있는가 싶지만 그 갓길아래는 10cm이상의 벼랑과 함께 자전거가 전혀 달릴 수 없는 대책 없는 땅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차와 함께 달릴 수밖에 없다.
차들이 나를 피해 달려간다. 상대편 차선의 차량이 밀릴 때에는 나의 뒤에서 달려오던 차량들은 천천히 나의 뒤를 따라오며 상대편 차선의 차량이 완전히 빠질 때까지 기다려 준다. 어쨌거나 피곤한 주행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일리노이 주의 풍경 또한 변함없이 '옥수수와 콩밭'으로 요약된다. 집의 구조가 약간 다르게 보이는 것이 하나 있는데, 대부분의 집 정면에 난간이 있는 발코니가 있다. 어느 집에선가 언제라도 링컨 할아버지가 뛰어나와 그 난간 앞에 서서 한 연설을 할 것만 같은 묘한 기대감 섞인 꿈을 꾸어본다.


여행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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