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병 테리, "해병은 하나!"
에디터 : 이호선

펜실베니아 州에 들어서자, 마차 앞의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이들처럼 미국 전통복장을
하고 실제로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니는 많은 이들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자신들이 만든 가구들을 내다 팔고 있는 이들에게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얼굴을 가리기 위해 얼굴을 땅에 묻는다.

동네에 하나 뿐인 가게로 '식료품 가게(General store)'라고 불리는 가게 앞에서.
시골의 마을에 있는 이런 가게는 식품에서부터 모든 물건을 가진, 한 마디로 백화점이다.

사람 먼저의 문화

오하이오주에 들어 온 후부터는 운전자들과 신경전을 벌일 필요 없이 나의 공간을 확보한 채 주행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을 달리면서 절실하게 느끼는 문화차이는 바로 '사람 먼저'의 그것이다.
아직도 심각하게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차 먼저'의 이상야릇한 문화는 그 어떤 '빨리 빨리'의 미학과 '급하다'는 대의명분으로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는 정신 나간 것이다. 미국은 캐나다보다 한 단계 위의 수준으로 그대로 감동이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확실하게 이것을 실천하고 있다.


펑크는 나고, 펌프는 고장이 나고
빅 시티인 아크론(Akron)을 도저히 피해 지날 수 없는 도로상태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아크론을 향해 달린다. 작은 타운, 로디(Lodi)를 지나 타운우회도로(By-Pass)를 달리던 중, '엘파마'가 갑자기 춤을 춘다. 말이 필요 없는 펑크다.
땡볕 밑에서 땀을 뚝뚝 흘려가며 튜브를 교체한다. 튜브에 바람이 겨우 반 정도 들어간 상황에서 에어펌프가 그의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얼마 전부터 에어펌프가 갑자기 헐떡거리며 힘겨워 하면서도 그것의 몫을 다 해왔는데…
다행히도 앞 바퀴라 힘을 덜 받아 굴러가기는 하겠지만 나는 앞 바퀴용 짐에서 무거운 것을 뒤로 옮기고 살살 달리기 시작한다.
우회도로 지역이라 집도 없어 어떤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비틀거리면서 4,5km정도를 달려가니 한 민가가 눈에 들어온다. 무조건 들이 대며 도움을 구한다.
나는 에어펌프를 부탁했으나 그들은 그들의 창고에 에어탱크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농가는 한마디로 철공소이고 바디샾이며 목공소이다. 그들은 수 많은 종류의 기계를 사용하고 있고 기계에서 터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그들의 창고는 농가의 심장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월마트(Wal-mart)가 있다는 워드워쓰(Wardworth) 시티를 향해 박차를 가한다. 대도시인 아크론이 가까워 옮에 따라 길이 복잡해지고 교통량이 많아지며 혼이 난다. 힘겹게 월마트를 찾아 20불짜리 에어펌프를 사고 너무 지체한 나머지 이미 어두워진 숲 속의 도로를 달리다가 어둠 속에 당당하게 서 있는 교회를 발견하고 다가간다.

갑자기 가로등이 강력하게 밝아지며
교회의 출입 문은 철벽으로 잠겨있고 현관 앞의 불이 너무 밝아 교회건물의 뒤쪽으로 돌아 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잠시 몸을 뉘였다.  갑자기 교회 주변에 있던 몇 개의 가로등에 강력한 밝기의 등이 켜지면서 교회 주변은 날아가는 모기 한 마리까지 보일 정도로 환하게 밝혀졌다.
교회주변으로 집들이 있어 순식간에 나는 독 안에 든 쥐가 되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움직여도 희망이 없다. 나는 건물모퉁이에 생긴 한 움큼의 건물 그림자 속에서 비닐을 깐 채 이슬을 먹으며 잤다. 다행스럽게도 밤새 사이렌소리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펜실베니아주 입구에는 "Welcome to Pennsylvania"의 짝퉁 간판조차 없다.
난장판의 길과 이 흉물스런 다리가 펜실베니아 입구이다.

나의 뒤를 경적 한번 없이 따라 오는 차량들
아크론의 중심가를 뚫고 달리는 224번 하이웨이를 타고 계속 동쪽으로 달려 오하이오 최후의 도시인 보드맨(Boardman)을 주저 없이 지나치며 주경계로 향한다.
주경계의 도로는 난장판으로 아스팔트의 갓길 대부분은 터지거나 깨져 어쩔 수 없이 차로를 달린다. 펜실베니아 측도 사정은 마찬가지.
주경계를 넘자마자 이제까지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풍경이 나타난다. 울창한 숲의 산이다.  거의 직벽에 가까운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몇 개의 가파른 언덕길을 넘고 넘자 무시무시한 내리막 길이 나를 잡아 당긴다. 도로는 갓길이 거의 없는 좁은 길이고 어둠과 함께 비는 내리고 있으며 퇴근시간이 지나며 많은 차량이 몰리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설상가상 나의 타이어는 중국과 고비를 넘고 북미를 횡단하는 동안 완전히 닳아 버렸고 도로 한복판에는 군데군데 맨홀뚜껑까지 지뢰처럼 널려 있지 않은가!
활강을 앞에 두고 몇 번에 걸쳐 심호흡을 한 뒤 나는 나의 안전을 위해 도로의 한 복판을 장악하고 달려 내려간다. 줄을 이어 나의 뒤로 달려 내려오던 수 많은 차량들은 약속이나 한 듯 단 한 번의 경적을 눌러 댐 없이 아주 고요하고 천천히 나의 뒤를 따른다. 그 동안 미대륙을 달려 오며 이 우수한 '사람 먼저' 문화를 톡톡히 경험한 나이지만 나는 단지 감동이라는 단어로는 너무도 불충분한 '위대함'을 느꼈다.


쏜살같이 들어 서 버린 뉴캐슬(New Castle)시는 비록 작았지만 마치 사진으로 본 오래 된 영국의 도시 풍경처럼 고풍스럽다. 시내로 들어와 공원을 찾던 중, 하늘은 드디어 천지개벽하는 천둥 번개와 함께 억수 같은 비를 대지 위에 쏟아 붓는다.
나는 어느 작은 병원의 주차장에 들어가 하늘의 분이 풀리기를 기다린다. 한 시간 가량이 지나자 비로소 하늘의 노여움이 다한 듯 약한 빗방울로 바뀐다.
시외의 숲 속에 있는 공원을 찾기 위해선 크림색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가고 있던 아리따운 아가씨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녀는 나를 따라 오라며 자신의 승용차로 직접 안내해주곤 사라졌다. 비는 밤새도록 계속됐다.

트레일러 속에서 비를 피하고
아침에도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페달 질의 일과를 시작한다. 도로의 경사각이 9도나 되는 직벽의 길이 종종 나타나며 나를 기진맥진시킨다. 가파른 경사각만 문제가 아니고 시작된 가파른 언덕 길은 길이가 상당히 길다. 이 곳의 길은 결코 부드럽게 산등성이를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끝까지 똑 바로 치고 올라간다.
가파른 길은 2단 3단으로 한 번 올라가면 2,30M의 평지가 나타나 숨 한 번 고르고 나면 또 다른 직벽의 언덕이 이어진다. 이런 길을 반복하는 가운데 온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된다.
또 다시 갈아 탄 208번 하이웨이를 타고 달리다 임렌톤(Emlenton)에서 도로 변에 놓여진 빈 트레일러 속에 들어가 하루를 접는다. 밤과 새벽에 또 비가 퍼부었지만 완벽한 방수의 트레일러 속에서 여유만만하게 잠을 잤다.

버려진 트레일러

이 안에서 비오는 하루밤을 보냈다.

할리(Harley)를 타고 미 전역을 돌고 있는 로안과 쉐릴(Roan & Cheryle)

일출부터 일몰까지, 그 외는 출입엄금
땀에 젖고 비에 젖으며 힘겨운 산행을 계속한다. 펜실베니아의 길에는 평지가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오르고 내려갈 뿐이다. 여러 개의 도로를 갈아 탄 끝에 드디어 뉴욕으로 바로 이어지는 #6하이웨이에 올라탄다.
작은 타운, 마운트 지웨트(Mount Jewett)에서 정지해 공원을 찾으니 공원의 입구에 전대미문의 경고 판이 땀 범벅이 된 채 지칠 대로 지쳐있는 나에게 필살의 어퍼 컷을 날린다.
"Only from sunrise to sunset!(오직 일출부터 일몰까지) 그 밖의 시간의 출입을 엄금함."
화장실의 문을 흔들어 보니 이미 굳건히 잠겨있다. 한 산보객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나 아주 차가운 표정이다. 문득 오늘 낮, 도로를 달리다가 '하이!'라고 인사를 건네는 나를 쳐다 보지도 않고 고개를 외면한 채 스쳐지나 가는 수 명의 젊은이를 떠 올렸다.
그 동안 10개에 달하는 주를 지나오면서 처음으로 겪는 묘한 경험이다. 펜실베니아의 도로를 달리면서 나는 이제껏 다른 주에서 결코 목격하지 못했던, 마차를 탄 긴 머리에 전통복장을 한 미국인들을 상당수 목격했다. 결국 다른 주에 비해 펜실베니아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얘기가 된다.

작은 스웨덴 이민 마을, 마운트 지웨트(Mount Jewett)

다시 숲 속으로 돌아오다
해가 지면서 찬 바람이 불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오늘이 8월 16일로 아직 때가 이른데………
하기야 이곳의 날씨는 종잡을 수없이 변화무쌍하니까.
어둠 속을 달리다가 도로변에 있는 바리케이드 쳐진 주립공원의 등산로 입구에 멈춰 한 번 둘러본 뒤 바리케이드를 넘는다. 마을공원에 들어갈 수 없다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산 속에서 자는 수밖에. 문제는 모기인데,……
깊이 들어 갈 필요도 없이 지나가는 차량의 라이트의 불빛이 끊기는 지점에서 텐트를 치고 숲 속에서 퀵 샤워를 마치고 앉았다. 빨래는 내일 아침 주유소 화장실에서 하는 수 밖에 없겠군.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단 한 마리의 불청객도 없으니 말이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약발이 제대로 듣고 있는 것이다. 통쾌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니 수 많은 별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역시 다시 숲 속으로 돌아오니 정말 좋다!

여기저기서 실탄 사격이 한창이다.
어김없이 나의 앞길을 가로 막는 가파른 언덕이 나를 질리게 한다. 갤레톤(Galeton) 직전에서 2424피트 고지를 넘는다.
'어-허, 드디어 뒷바퀴의 닳고 닳은 타이어가 까지기 시작한다. 뉴욕이 바로 저긴데…'
스페어 타이어를 하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걱정은 안 되지만 조금만 더 가자!
여기저기서 많은 메아리를 만들며 실탄사격이 한창이다. 10월 달이 사냥철이라고 들었다.
허리에 권총을 차고 손에는 라이플을 든 채 집 옆에서 사격연습을 하고 있는 미국청년이 목격된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찟하다. 좌우지간 미국인들은 기계만 두 손에 쥐고 있다면 일당 백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갖은 기계에 만능이 된다. 우리가 그들을 상대로 한 게임을 벌이려 한다면 어떻게……??!!

2424피트 고도의 고지

미해병 예비역 '테리'와의 만남
비 속을 달리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갓길이 자갈길이 된다. 이미 까지기 시작한 타이어가 찢어지며 안에 있던 튜브가 삐져 나오기 시작한다. 이젠 한계다.
웰스보로 시티(Wellsboro City)의 입구에 있는 엑손(Exxon) 주유소 앞에서 섰다. 마침 주유소 옆에 널직한 빈 공간이 있다. 주유소 안에 들어가니 캐셔인 테리(Terry)와 그의 친구 태이(Tai)가 나를 반긴다.
두 명은 모두 22세 동갑인데 테리(Terry)는 어마어마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미소년처럼 순수하고 솔직했다. 그는 하이스쿨을 졸업하고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 왔지만 가을에 요리전문학교에 가서 요리사 공부를 한 후 자신의 식당을 차릴 예정이라며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는 나를 만나 정말 기쁘고 영광이라고 한다.
태이(Tai)는 2년 동안 미 해병으로 복무한 예비역 해병인데 "해병은 하나!"라고 부르짖으며 악수와 함께 나를 포옹한다. 그는 조기 제대한 듯한데 몸이 제대로 망가져 있다.
그의 몸을 만져보니 나와 있어야 할 부분은 들어가 있고 들어가 있어야 할 부분은 명색 없이 튀어 나와 있다. 가끔씩 일그러지는 그의 표정에서 그가 앓고 있다는 것이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LG휴대폰에 내장되어 있는 해병제복의 자신을 자랑스럽게 보여 준다. 미 해병들은 영국 로얄 해병들과 같이 훈련을 받는데 "그 친구들은 정말 지독해!"하며 태이(Tai)는 치를 떤다.
새로 산 듯한 태이(Tai)의 승용차는 크림색 현대 신형소나타였다. 나는 테리(Terry)의 배려로 화장실에서 여유 있게 뜨거운 물로 머리를 감고 빨래를 했다.
그 동안 가지고 다니던 스페어 타이어로 타이어 교체를 끝내고 나니 테리(Terry)는 자신이 산다며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온다. 나는 그에게 부탁해 주유소 뒤의 테이블 위에서 자기로 한다.
10시가 되어 그들은 주유소 문을 잠그고 나에게 다가와 나의 사진을 LG휴대폰카메라로 찍은 후 또 한 번의 포옹을 하고 사라진다. 테리(Terry)는 엄청난 덩치에 걸맞지 않게 어리광부리 듯 나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뉴욕을 바로 지척에 두고 있지만 뉴욕에 가 본적도 없고 가 보겠다는 마음도 없다고 한다.

하룻밤 신세를 졌던 엑손(Exxon) 주유소의 테리와 태이

주유소 뒤의 테이블에서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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