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대회의 주역이 되다
에디터 : 이호선

수 십 년간, 변함없이 이 여관의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마리(Mary).
내가 떠나는 날, 그녀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못 이어 가슴이 찡했다.

나의 재활병원이 된 여관과 재활병실이 된 나의 방.



재활 기간 동안 나의 체력을 지탱해 준 거리의 음식들. 타코(Taco), 타마레스(Tamares),
에스키테스(Esqeuites), 퀘사딜리야(Quesadilla)등등. 모두가 옥수수를 기본으로 소고기나 닭고기가 첨가된다.


9일 동안 정이 들어 발걸음을 옮기기가 결코 쉽지 않은 곳이 되어버린 "라빌라(La Villa)"를 뒤에 두고 나는 프에블라(Puebla)를 향해 달려간다. 정확하게 아침출근시간이라 많은 차량들이 결코 넓지 않은 도로를 가득 메운 가운데 도시를 빠져 나가기란 정말 진땀 나고 숨 가뿐 과업이다.
도로는 여유가 없고 주요 대중교통수단이 버스, 밴이기 때문에 많은 작은 승용차들과 함께 엉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멕시코 시티의 중심가를 살짝 비껴 나가며 프에블라(Puebla)에 이어지는 국도 150번 도로의 입구까지 거의 2시간이 소요되었다. 역시 멕시코의 수도인 만큼, 많은 서민들이 살고 있는 변두리지역이 꽤나 넓고 길게 이어진다. 가느다란 철근 두 세 가닥이 들어간 기본 4기둥 위에 조잡한 블록들로 외장도 전혀 안 된 채 지어진 집들이 대부분이다. 블록들도 모두 곳곳에서 조그만 수동 기계로 찍고 있었는데 만일 지진이라도 일어난다면 순간에 무너질 집들이다.

나를 경악시켰던 일본계 멕시코 인들의 바실리카 구아달루페(Basilica Guadalupe)성당을 향한 행진.
멕시코에 살고 있는 순수 일본인들 뿐만 아니라 멕시코인과 피가 섞인 이들까지 모두가 모여 성모마리아의 초상을 모시고 성당으로 행진 중이다. 대열에 있는 한 일본인 여성에게 무슨 행사냐고 물으니 매년 10월의 첫 번째 일요일에 성당까지 행진을 하면 복이 온다는 전통에 따라 행진을 하고 있을 뿐이고 이 행사의 특별한 이름도 없다고 한다.
멕시코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또 하나의 사실을 덤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일본의 토쿄에서 5년 이상 있으면서 결코 보고 듣지 못했던 일본인 천주교신자들의 행진 모습에 한 동안 어리벙벙한 채 서 있었다.


평지가 전혀 없는 경사각 3-4도의 도로가 계속 이어지나 갓길이 있고 도로도 좋다.
멕시코에선 고속도로, 국도에 상관없이 도로의 갓길을 달린다. 간혹 자전거 주행을 금지하는 도로표지판이 서 있기도 하지만 거의 의미 없는 것으로, 도로를 따라 밭이나 목장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도로를 들락 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일 우리나라의 가을날과 전혀 다름이 없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아침 저녁으론 쌀쌀하고 낮엔 곡식들을 여물게 하는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며 대기는 전혀 습하지 않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동안 수 없는 땀방울이 개울이 되어 흘러내리지만 잠깐 쉬고 있는 동안 건조한 바람에 온 몸은 다시 상쾌해진다. 사방을 둘러 보지만 한결같이 오직 높은 산들뿐이다.

변함없이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어느 자전거 경주대회에 휩쓸리고 말았다. 이 오르막길의 정점(멕시코시티에서 55km가 되는 지점)이 골인 지점으로 복장도 가지가지, 자전거도 가지가지인, 프로를 비롯 아마추어들까지 많은 선수들이 달리고 있고 많은 선도 차량들과 앰뷸런스도 따르고 있다.
코스의 중간 중간에는 참가선수들의 가족들이 그들의 차량을 세워놓고 선수들에게 물이나 바나나, 오렌지 등을 제공하고 있다. 나 또한 본의 아니게 미등록 참가선수가 되어 달리고 있는 동안 열렬한 갈채와 뜨거운 응원을 받게 된다.
그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고 이어지는 많은 질문과 사진촬영으로 주행이 순조롭지 않다. 드디어 골인지점에 도착하자 모여 있던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겨누고 많은 이들이 나를 향해 돌진해 온다. 질문들이 난무하고 카메라 셔터소리가 어지럽다.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끝내 '엘파마'가 또 스타덤에 올랐다. 다른 곳도 아니고 자전거 경주대회의 스타가 됐으니 엘파마에겐 최고의 영예임에 틀림없다. 오늘, '엘파마'는 생애 최고의 날을 맞이했다! 모여든 모든 이들은 '엘파마'를 만지고 쓰다듬고 밀고 밀리며 아우성이다.

자전거 경주 대회의 선두 선도차량으로 성모 마리아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정말 대단한 환호였다.


대회 로고가 인쇄된 기념 T셔츠

"도대체 저 친구는 어디서 굴러먹다 온 말 뼈다구인데 난데없이 나타나서 남의 판을 박살 내는 거야?! 우리들이 오늘 대회우승을 했으니 두 말 필요 없이 우리가 주역이고 스타이지 않아?!!"
"그게 말이야,………저 친구는 세계의 대륙을 달리는 바이커라고 하더라고……. 그 정도면 이 세상 그 누구라고 한들 저 친구에게 경의를 표할 만 하지 않아?!!"
"으윽…….. 아니, 뭐 뭐라는 게 아니고,…..... 일 년 365일, 많고 많은 좋은 날들 놔 두고 왜 하필이면 오늘 이 곳을 지나느냐 이 말이지. 오늘 우리 경기가 있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에이, 쐬주나 한 잔 하러 가야겠어. 야, 쐬주 마시러 같이 가자!"
"아냐, 너나 가! 나는 저 친구하고 기념사진을 찍어야 해!"
"@#$%^&*!!**&^%!!!!"
멕시코 인들의 자전거 경주대회는 결국 'Corea'와 'El fama'를 위한 대회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도로는 졸지에 내리막 길이 되고 나는 으스스할 정도의 차가운 바람을 온 몸에 받으며 또 한 줄기의 바람이 되어 달려 내려간다. 내리막 길에 이어지는 평지를 얼마 달리지 않아 프에블라(Puebla)市가 시커먼 구름과 밀려오는 어둠 속에 나를 반긴다. 계속되던 심상치 않은 바람에 이어 드디어 비가 시작된다. 市 입구에 있는 단 한 개의 유일한 여관을 발견하고 쏟아지는 비를 뿌리치며 달려간다.
사고를 당하고 9일 동안 여관에서의 재활운동 후, 다시 주행을 재개한 오늘 125km를 달렸다. 비록 통증은 아직 상당히 남아 있지만 무거운 자전거를 움직일 수 있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확인한 이상 나는 아주 흡족하다. 아자, 역시 나는 할 수 있다!

프에블라(Puebla)를 지나 다음 목적지인 와하카(Oaxaca)를 향한다. 도로는 평지에 가깝고 커브도 완만한데 바람의 횡포가 만만치 않다. 평지가 계속되어 기고만장하고 있는 나에게 바람은 무지막지하게 다가왔다. "역시 삶은 결코 만만치 않은 게임이야!"
와하카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부터 무인지경의 장대한 자연경관이 계속되고 수 많은 키가 큰 선인장들이 줄을 잇는다. 이 장대한 자연을 뚫고 굽이굽이 이어지던 도로가 갑자기 막무가내의 내리막길로 변하며 나의 숨을 죽인다. 도로가 국도가 아닌 고속도로인 탓에 도로변에 철조망을 쳐 놓아 야영지 물색이 수월하지 않다. 이미 어두워진 도로를 달리다가 겨우 도로변에 있는 바위틈바구니에 텐트를 치지만 불행하게도 바위바닥이 편평치 않아 사고 당한 왼쪽어깨가 고통스러워 밤새 잠을 못 이루고 이리저리 구르고 있는 동안 밤은 속절없이 깊어만 간다. 하늘엔 정말 많은 초롱초롱한 별들이 깜박이고 있다.

밤새 하늘은 온갖 조화를 부렸으나 막강 태양의 등장과 함께 파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 온다. 도로는 역시 3,4도의 경사를 지속하며 오르막의 행진을 계속한다. 단지 자동차 전용도로인만큼 커브가 크고 완만할 뿐이다. 어제와 받침 한 개 안 틀리고 무인지경에 무지막지한 자연이 지겨울 정도로 계속되고 있다. 끝없이 펼쳐있는 키가 작은 관목들의 숲 위로 삐죽삐죽 서 있는 멋대가리 없이 굵은 나무젓가락 같은 선인장들은 정말 싱거우면서 기묘하기 짝이 없다. 이 선인장들은 산들의 정상에 이르는 높이까지 태연히 서 있다. 이 정도면 멕시코의 국기 문장에 선인장이 등장할만하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큰 도시의 입출구, 도로의 주요길목, 그리고 톨게이트에 어김없이 신장 160-165cm의 황색피부의 토종 멕시칸 병사들이 중 무장한 채 두 눈을 반짝이며 그들의 과업에 임하고 있다. 멕시코의 시골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들 또한 그 병사들과 똑 같은 단신의 황색 토종 멕시칸 들이다. 신기하게도 그 병사들의 지휘관이나, 그들과 종종 함께 서 있는 경찰들은 키가 조금은 더 크고 피부색도 한결 희고 서양인의 얼굴에 가깝다.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조금은 '괜찮다'하는 차를 몰고 다니는 이들 또한 예외 없이 그들이다.
T.V의 어느 채널의 화면에서도 멕시코의 황색 토종 인들은, 거짓말 한 방울 안 떨어트리고,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흰색 계통의 피부에 좀더 크고 잘생긴 이들뿐이다.

멕시코는 미국 캐나다보다도 더 혹독한 백인주도 사회로 보인다. 시골과 도시의 노동판을 비롯한 밑바닥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토종 황색 멕시칸들로, 그나마 시골에 조그만 땅덩이라도 있는 이들은 시골에 남아 그들의 터전을 닦는 것이고, 쥐뿔도 없는 이들은 도시의 밑바닥을 헤매거나 목숨 걸고 미국의 국경을 넘고 있는 것이다. 뉴욕의 밑바닥을 전전하고 있는 많은 불법 멕시코 인들에게 그들의 꿈을 물으면 거의 대부분이 돈을 모아 자신의 고향에 돌아 와 식당 하나 차리는 것이다.
복싱이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70, 80, 그리고 90년대까지만 해도 멕시코를 비롯한 중미의 강 펀치의 복서들이 세계챔피언을 휩쓸며 일약 돈과 명예를 거머쥐고 영웅이 되곤 했는데…… 주로 플라이급에서 페더급에 이르는 경량급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던 전설적인 그 철권 복서들의 대부분이 황색계통의 멕시코, 중미 인들이었다.
한국의 전설적인 복서, '홍 수환'씨와 수 차례에 걸쳐 명승부를 벌였던 '사모라'가 대표적인 토종멕시코인 복서였다. 이제 복싱은 좋은 시절 다 지나가고, 여성의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으로 전락한 가운데 그들에게 더 이상 돈과 명성을 약속해 주지 않는다.
내가 그 동안 멕시코를 여행하면서 멕시코 복서들이 매운 펀치를 소유하게 된 연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고기, 치즈가 주를 이루고 있는 그들의 식단은 튼튼한 뼈를 보장한다. 그들은 비록 키는 작아도 아주 단단하다. 뉴욕의 노동판을 비롯, 몸으로 때우는 모든 삶의 현장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는 이들이 그들이고, 투덜대지 않고 태연하게 그 일들을 해내는 이들 또한 그들이다.

성당 순례자들의 거의 대부분, 아니 거의 모두가 놀랍게도 멕시코의 두메 산골 내지는 깡촌에서 올라 온 토종 멕시코인 들이다.
이 성당들은 모두 옛날에 중 남미를 정복하러 온 스페인 인들이 세워 논 것이 아닌가?! 이것은 분명 지독한 아이러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토종人인 인디언들이 보호 구역 안에서 극도의 알코올중독과 최고의 자살율을 기록하며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는데 반해, 멕시코의 토종人들은 자신의 땅을 굳건히 지키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토종 멕시코 인들은 엄청나게 부지런하며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그들 자신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T.V화면을 보면서 울고 웃고 소리치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내가 9일 동안 있었던 멕시코 시티의 '라빌라(La Villa)'의 바실리카 성당에는 수 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는데 한결같이 산골과 깡촌에서 상경한 토종 멕시코 인들이다. 고풍창연한 성당들은 모두 스페인 인들이 중남미 정복기간 중 지어 놓은 것 아닌가?! 뉴욕의 모든 성당을 가득 채우는 이들 또한 백인들을 완벽하게 제외한 황색 피부의 중남미 이민자들이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중국의 엄중한 태클을 무릅쓰고 라싸(Lhasa)의 라마 성지순례를 감행하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행렬이 그들과 겹친다. 이곳에 와서 비로소 스페인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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