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루키들의 자전거 행렬
에디터 : 이호선

우리는 죽는 그 날까지 죽음에의 공포와 쉼 없는 일대 접전을 벌이며 살아가지만 정작 그 심각한 순간은, 오랜 시간 동안 식은땀을 흘리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죽음에의 예상 문제를 만들고 풀어왔던 것만큼의 처절한 두려움을 느끼며 그것을 확인하기엔 너무도 짧은 순간에 일어나지.
나는 그 동안 도쿄와 뉴욕, 그리고 서울의 거리에서 수 차례에 걸쳐 죽음의 그림자를 본의 아니게 밟은 적이 있잖아.
모든 것은 죽음에의 공포나 아픔을 느낄 만큼의 최소한의 느긋함조차 배제된 채, 정말 순간 적으로 일어났어.
그 순간을 위해 그 무엇도 준비할 필요가 없지.
그 최후의 순간에 생각해도 결코 늦지 않아.
죽음에의 공포감을 이겨내기 위해 가슴 근육을 쪼이고 정권(正拳)을 단련시키고 생사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모험을 거듭한다고 한들, 죽음은 우리가 두들겨 부술 수 없고 도망칠 수 없는 인생 최고 최대의 난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우리의 운명이라 한 들, 죽음이란 우리가 그 어떤 대의명분으로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지상 최악의 제안이다.
방법은 없다. 솔직 담백하게 이 최악의 제안을 받아들일 뿐이다.
죽음은 선택의 여지가 없으나, 죽음의 방법은 종종 선택일 수 있다.
죽음과 정면대결을 벌이다 죽는 이가 있는가 하면,
죽음으로부터 끝없이 줄행랑을 치다가 검은 갓과 도포를 쓴 분들에게 잡혀 죽어가는 이도 있으며,
죽은 듯이 있다가 죽어가는 이 또한 있다.
죽음은 분명 우리의 운명이지만 죽음의 방법은 우리의 의지이며 결단이다.
백호(白虎)에게 물려가도 휴대전화만 꽉 움켜 쥐고 있으면 살수 있다는 도시인들. 하지만 세계를 홀로 달리는 대륙횡단 바이커들이 생존을 위해 최후의 최후까지 두 손에 움켜쥐고 있어야 할 것은 원초적이고 요지부동의 생존 본능뿐이다.
그저 나 자신을 믿고 또 믿으며 달려 갈 뿐이다!
믿고 또 믿어라! 좌우지간 믿어라, 무조건 믿어라, 너 자신을!

자전거로 체력 훈련중인 산 미구엘(San Miguel)시(市)의 경찰 루키 들과 훈련교관들.
모두들 준수한 용모에 순수한 미소로 나를 '넉 다운'시킨다.
V자를 그리고 있는 왼쪽 끝의 경관이 이 훈련 팀의 대장인데 넘치는 유머와 인간미로 나를 비롯한 전 대원에게 삶의 기쁨으로 온 몸을 떨게 만들었다.
오른 쪽 끝에 있는 아주 진지한 표정의 루키가 태권도7년 수련 생.
Viva, la Policia de El Salvador!!(만세, 엘살바도르 경찰!)


산 미구엘(San Miguel)을 지나 산타 로사 데 리마(Santa Rosa De Lima)까지 15여 km를 달리다가 도로변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콜라를 마시고 있는데 나의 앞으로 경찰 20-30명의 긴 자전거 행렬이 지나간다. 모두들 감청색의 경찰유니폼에 헬멧을 쓰고 허리춤에 권총을 찬 채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달려 간다.
참으로 보기 힘들고 만나기 어려운 아주 특별한 자전거 행렬이다.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 나도 그들이 이미 지나간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얼마를 달렸을까, 나의 전방, 저 멀리서 감청색의 큰 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출현에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는 그들은 바로 조금 전 나의 앞을 지나쳤던 자전거를 탄 경찰들이다.
그들은 모두 산 미구엘 시(市)의 경찰 '루키'들로 수 명의 훈련교관들과 함께 훈련의 일환으로 오르막 내리막의 왕복 30여 km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준수한 용모에 순수한 미소를 가진 청년들이다.
그들 중, 태권도를 7년 동안 수련하고 있는 한 루키가 나와 태권도, 그리고 한국 군(軍)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한다. 그는 내가 분명 태권도를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의 실력을 꼭 한 번 봐야 직성이 풀릴 태세이다. 그렇다면 7년 수련 고수인 너 먼저 해 보라고 내가 그를 다그치자 그는 비록 7년 경력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 연습한 것이 고작이라며 수줍어하며 뒷걸음 질 친다.
'에이, 대 관중 앞에서 가볍게 한 번 보여줘?!'

길 건너편에 있는 주유소와 주변의 건물에 있는 창문과 건물 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없는 경찰 자전거 부대와 대륙 횡단 자전거여행자인 나의 일 거수 일 투족을 흥미진진하게 주시하고 있다.
나는 재수생시절 처음 복싱을 배운 후 복싱에 심취해 있었으나 입대 후, 강화도에서 "전 해병의 유단자 화!"라는 사단장 방침에 따라 정말 처절하게 태권도를 했다. 기상 후 조별과업에서부터 취침 전 순검까지 총검술과 태권도로 일관했다. 중대의 장기하사를 비롯 대부분의 중 상사가 태권도 4,5단의 고수들로 전 병사들은 태권의 바다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결국 나를 비롯한 많은 태권 무지한(無知漢)들이 어쩔 수 없는 태권해병이 되어 갔다.
나는 그 때 힘겹게 배운 태권도 자세를 유지하고 체질화 시키기 위해 지금껏 연습을 계속해 왔다.
"자, 자 모두 모여!"
"과업 시작!"
허공을 자르는 훈련 교관의 단호한 구령과 함께 우리는 각자 본연의 경찰과 자전거 여행자로 냉정하게 갈라섰다.

엘살바도르의 마지막 도시, 산타 로사 데 리마(Santa Rosa de Lima)

8불의 여관.

승용차의 헤드라이트가 하나 둘 점등이 될 즈음 나는 산타 로사 데 리마(Santa Rosa De Lima)시(市)에 도착하고 시 입구에서 만난 첫 사람에게 물은 첫 질문에 8불 여관을 찾고 하루가 깔끔하게 정리된다.

아침마다 계속되는 도시의 번잡함을 뿌리치며 20여 km를 달려 또 한 번의 국경을 넘는다. 이 번엔 온두라스(Honduras, 스페인어에서 단어의 첫 머리에 등장하는 H는 묵음 처리된다)로 역시 통행세 없이 수 분만에 통과한다.
화폐가 또 다시 달라지며 렘피라(Lempira)가 된다. (10달라=180Lempira)

엘살바도르의 국경.

온두라스의 국경

온두라스의 도로를 달리는 동안, 나는 적지 않은 이곳의 사람들로부터 "Give me dollars!(돈을 내놔)"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접하고 만다.
도로 변을 걷고 있던 준수하게 생긴 시골 소년이 아주 난해한 미소의 표정을 지으며 결코 값 싸지 않은 그의 손을 주저 없이 나에게 들이 대고, 검은 드레스를 입고 그녀의 어린 손자 손녀가 지켜보고 있는 자신의 집 앞의 흔들의자에 앉아 너무도 태연하고 느글거리는 표정으로 "돈을 내놔!"를 외치며 활짝 펼쳐 흔들어 내미는 그녀의 손은 흉측하고 혐오스럽고 왕 소름 끼치는 벌레가 되어 종일토록 나의 전신을 꿈틀거리며 기어 다녔다.
그 동안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큰 도시를 지날 때 종종 경험하곤 했던 구걸행위이지만 시골지역에서는, 그 나라가 잘 사는 나라이건 못사는 나라이건, 척박하고 메마른 티베트에서도, 그리고 전기 불조차 없는 네팔에서도 결코 경험한 적이 없다.

그제 어제는 엘 살바도르에서 과일 껍질 세례를 받고 오늘은 온두라스의 시골에서 불쾌한 구걸행위를 연속으로 접하고 나니 기분이 불쾌를 넘어 침통의 수위(水位)다.
하기야 과일껍질이 아니고 돌덩이나 그 이상의 것이 날아 왔으면 어쩔 뻔 했어?!
단순히 빈 손이 아니고 흉기와 함께한 것이었으면 또 어쩔 뻔 했어?!
그저 감사하고 감사해야지.
그 어느 나라이건 '시골 민심(民心)이 곧 그 나라의 국민심(國民心)이다.'
"빨리 지나가자!"

120km를 달려 조금은 이른 시각인 4시 반경, 작지 않은 초루테카(Choluteca)시(市)에 도착한다. 싼 여관을 찾던 중, '마체테'(만도라는 정글용 긴 칼로 투박하지만 위력적인 것으로 숲이 무성하게 우거진 중남미지역에서는 거의 전천후로 사용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리에 차거나 들고 다닌다. 중남미의 남자들이 그들의 신체부위에 흉측하고 볼상 사납게 큰 흉터를 가지고 있다면 거의 대부분이 이 '마체테'에 의한 것이다. 혹시라도 그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들의 손에 가장 쉽고 빠르게 잡히는 것이 바로 이 '마체테'이다)를 허리에 찬 한 40전 후의 사내가 나에게 싼 여관을 소개해 준다며 나를 어디론가 안내하는데 으슥하고 집들이 별로 없는 곳이다.
내가 그에게 그 여관의 여관비가 얼마짜리냐고 물으니 그 여관의 여관비는 물론 시중 여관비 시세조차 잘 모르고 얼버무린다.
그는 분명 나에게 아주 특별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어! 나는 자전거를 급선회하여 발걸음을 재촉해 한 여관 앞에 선다. 나를 쫓던 그는 행인들이 많아지자 바람처럼 사라졌다.

200렘피라(약 11불)가 대세인 여관들을 상대로 더욱 싼 여관을 찾겠다고 그 여관주인을 다그치니 그는 자신의 여관에 있는 작은 창고를 급조해 간이 방을 만들고 100렘피라(5,500원)를 부른다.
어디서 주어 왔는지 보호망도 없이 날개의 여기저기에 균열이 생긴 작은 선풍기도 벽에 척하니 건다. 두 말 필요 없이 O.K! 쥐만 없으면 잘만 해.
이곳은 습한 정글지대라서 왕개미들과 도마뱀, 그리고 물방개만한 바퀴벌레가 어디든 함께한다. 이곳의 대부분의 집들은 자연통풍을 위해 벽에 구멍이 뚫려있어 이놈들이 유유자적 넘나든다.

온두라스의 초루테카(Choluteca)시(市)의 한 여관주인을 다그친 끝에 10여분 만에 급조(急造)되어 6,000원짜리 여관방이 된 창고.
보호 망도 없는 선풍기를 어디선가 주워 와 벽에 걸었고 화장실과 샤워 실은 간이 공중(公衆)으로 화장실 바닥엔 서 너 마리의 물방개(대형 바퀴벌레)가 짓 이겨져 있었다.


6000원짜리 여관을 만들어준 여관 주인.
내가 새벽같이 그를 깨우는 바람에 끌려 나오긴 했어도 잠에 취해 아직 눈을 제대로 못 뜬다.

온두라스 국경

부산을 떨어 새벽을 두들겨 깨우며 국경을 향해 달린다. 다음 나라인 니카라구아(Nicaragua)로 건너 가기 위해 지나는 남부 온두라스는 결코 길지 않아 하루 반이면 통과한다.(170km)
이제껏 그저 지나치듯 국경을 넘었는데 온두라스를 나가기 위해서는 절차가 필요한 듯, 용지에 기입해 제출하고 2불을 지불한다. 니카라구아 측으로 건너가자 이번엔 입국 세 12불을 요구한다.
화폐가 또 다시 바뀌어 코르도바(Cordova: 33불=711'코르도바')가 된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입국관리소를 나와 보니 그 동안 정말 만나기 힘들었던 건장한 체격의 서양인 관광객이 웃통을 벗어 붙인 채 대형 시보레 픽업트럭 앞에 서 있다. 나는 너무 반가워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소속을 물으니 스코트랜드 인으로 이름이 그래햄(Graham)인데 그는 최근 재혼한 그의 영국인 아내, 애미(Ammy)와 앵커리지(Anchorage)부터 애리조나주(州)의 투산(Tucsan)까지 혼다 대형 오토바이로 여행을 하고, 오토바이를 처분한 후 지금의 픽업트럭을 사서 중앙아메리카를 여행하고 있으며 파나마를 거쳐 에쿠아도르(Ecuador)까지 가서 다시 이 픽업트럭을 처분한 후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를 거쳐 브라질까지는 현지의 운송수단을 사용한 배낭여행의 형태로 여행을 계속한 후, 크리스마스 전에 스코트랜드에 돌아 갈 것이라고 한다.
그가 나의 여행에 상당한 흥미와 경의를 표하고, 내가 영국인과 스코트랜드 인들의 불굴의 모험정신과 도전정신에 경의를 표하는 와중에, 그는 나를 위해 그가 도울 것이 없냐하며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의 이 한 마디로 나는 이미 그에게서 필요 충분한 도움을 받은 것이다. 성격이 아주 급하고 변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 같은 그래햄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다. 잠시나마 오랜 고향 친구를 만난 것처럼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와 웃고 떠들었다.

니카라구아의 국경.
다리의 위를 가로지르는 현수막에는 일장기가 보인다.
온두라스와 니카라구아의 상당구간의 도로나 상당수의 교량들이 일본의 원조로 건설되었다.


여행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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