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아저씨 담배 하나만 줘봐!
에디터 : 이호선

세찬 비바람의 하룻밤을 무사히 보내고 눈을 떴다. 비는 멎었으나 하늘은 여전히 오리무중으로 캄캄하다. 또 난리를 쳐대기 전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야 하기에 서둘러 보따리를 싸고 도로로 달려 나간다. 하지만 결국 나는 또 다시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나의 온 몸을 내 던진 채 앞으로 또 앞으로 달려간다.

어제의 행운은 또 다른 행운으로 결코 이어지지 않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을 비참한 비의 나그네가 되어 쉼 없이 135km를 달려 도착한, 하늘아래 유일하게 지붕이 있는 카이구나(Caiguna) 로드하우스에 도착한다. 저녁 5시 반경에 불과하나 비가 오는 탓으로 세상은 이미 어둠에 묻히기 시작했다. 이미 온 몸이 빗물로 불어있는 나에게, 오늘 밤은 지붕이 있고 4개의 벽이 있는 완벽한 공간이 필요하다.
모텔의 방값을 물으니 플라스틱으로 지어진 간이 시설의 방임에도 70불이라고 하며 그것도 단 한 개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하루 종일 쏟아진 비로 오토바이 여행객들을 비롯해 캐러밴 여행객들까지 바글바글하다. 70불을 건네는 나의 손에 쥐가 날 정도이지만 70이 아니고 100불이라도 오늘 밤은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방에는 손바닥만한 포터블 히터가 있어 젖은 옷과 장비들을 말릴 수가 있을 것 같다.

눌라보(Nullarbor) 무인지대를 지나다가 하루 종일 세찬 비바람에 두들겨 맞고
처량한 비의 나그네가 되어 70불의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고 완벽하게 방수 처리된 공간을
간신히 빌렸다.

"으잉, 이건 또 뭐야?!"
방안의 구석에 있는 간이책상 위에 서너 개의 커피믹스와 물을 끓이는 전기 포트가 있어 오랜만에 맛있고 향기 있는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따뜻하고 건조한 방안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창 밖을 내다보며 빗소리를 듣고 있는 나의 마음은 아주 각별하다.
'돈이란 때론 아주 좋은 것임에 틀림이 없는데……'
습기가 전혀 없는 뽀송뽀송한 침구 속이 이렇게 좋은 줄 예전에 미쳐 몰랐지!

오랜만에 맛있고 비싼 잠을 잤다. 눈을 떴으나 빗소리가 여전히 내 귀를 사정없이 두드린다.
"이걸 어쩌나?! 다음 로드하우스가 있는 발래도니아(Balladonia)까지 또 다시 200km를 달려야 할 판인데 비가 계속 내린다면 여기서 움직일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 하루 더 이곳에서 뭉개고 있다간 내 지갑을 뒤집어 먼지까지 털어야 할 판인데… 어쨌거나 체크아웃시간인 정오 12시까지 기다려보는 거다. 할 일 없는데 운동이나 하자!"
나는 자전거를 구석으로 몰아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한 후, 나의 과업을 시작하고 이제나 저제나  비가 그치기를 염원하며 운동을 계속한다. 비는 결국 12시 가까이되어서야 그 당당하던 기세를 꺾으며 물러가기 시작한다.
"휴-우, 살았다! 자, 또 나가자! 달려~간다↗"

70km를 달리자 어느덧 어둠이 나를 에워 싼다. 쉼터가 발에 걸려 페달 질을 멈춘다. 어제부터 오늘 낮까지 비가 엄청 내려 붉은 진흙의 땅바닥에 텐트를 차마 칠 수가 없어 뱅글뱅글 돌다가 콘크리트의 테이블 밑에 텐트를 치고 하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텐트 위에 단단히 지붕을 만든다.
녹색의 페인트 칠이 되어 있는 테이블과 긴 의자의 곳곳에 있는 영문의 어지러운 낙서들 속에 뒤섞여 있는 아주 낯익은 문자들이 반갑다. 2009 년 5월 나와 똑 같은 횡단코스를 따라 여행한 한국인 자동차 여행객이 이 곳에서 하룻밤을 지새고 떠나면서 그들의 위업을 기록해 놓고 간 것이다. 그들이 앉아 저녁과 아침을 함께 먹고 수다를 떨었을 이 자리에서 나 또한 저녁을 먹고 하룻밤을 보낸다.
예상한대로, 밤 늦게 비가 쏟아지나 단단히 방비를 한 덕에 험한 꼴 안 당하고 밤을 넘긴다.

오랜만에 접하는 아주 낯익은 글자가 참 반갑다.
그런데, 도대체 누구야, 누구냐고?!!
열을 셀 동안 안 나오면……


발래도니아(Balladonia)의 로드하우스를 넘고 또 200km에 상당하는 길고 긴 무인지경 지대를 달린다. 그 동안 해안가를 달리며 찬 바닷바람이 불어대어 조금은 시원하게 달렸는데 노즈맨(Norseman)까지의 길이 내륙 깊숙한 곳으로 또 다시 푹푹 찌기 시작한다.
영락없이 더욱 많은 숫자의 파리떼들이 미친 듯이 나를 향해 달려든다. 배가 고파 도로변에 있는 돌 위에 앉아 로드하우스에서 산 꿀에 식빵을 찍어 먹고 있는데 파리떼들이 나와 음식물 주위를 몇 겹으로 에워싸며 나의 얼굴과 팔 다리는 물론 빵과 꿀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빵을 입에 넣기 전 번번히 그것을 한참 털고 잽싸게 입에 넣어야 한다. 기어코 2,3마리의 파리가 꿀 통에 빠진다.
나뭇가지를 주워 정말 내키지 않지만 파리를 구출해내야 한다. 파리들의 이런 무자비하고 몰상식한 횡포 속에서 나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가?!' 먹기 위해 태어난 (Born to eat) 59년 돼지가 먹는 것에 대한, 심각한 회의에 빠지고 마는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악랄하기 짝이 없는 호주파리는 최후의 최후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벌써 35일째로 하루하루가 정말 우울하다. 이런 파리떼들의 횡포에 아랑곳 하지 않고 초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호주 인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작정을 한 듯 자신의 캐러밴을 주차지역에 세워 놓은 채 도로변의 갓길에 서서 지나가는 나를 가로 막는 이안(Ian McLaren)씨와 그의 아내인 잉그리드(Ingrid).
그는 조기 은퇴한 뒤, 지난 20년 간 11차례의 호주 전국투어를 감행했는데 지금은 일 년 중 오직 한 달, 12월만 자신의 자식들을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지내 곤 끝없이 호주대륙을 방랑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그들의 캐러밴 안에는 비록 비좁지만 화장실 겸 샤워실, 그리고 대형가스 스토브가 있고 벽에는 그들 가족들의 사진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캐러밴의 천장에는 작은 태양 집전판까지 설치해서 실내에서 필요한 전기를 자가 발전하고 있다.
그들에게 여행은 곧 삶이고 삶이 곧 여행이다.


노즈맨(Norseman)에 가면 슈퍼마켓이 있다! 나는 희망을 안고 수 백km를 달려왔지만 이 번에도 또 불운으로 끝날 것 같다. 오늘이 이미 토요일이고 노즈맨에 도착하는 내일 오전에는 슈퍼마켓은 물론 온 동네가 'Dead City(죽은 도시)'의 그것이 될 것이다. 나는 이미 몇 번이나 이런 불운과 결코 내키지 않는 악수를 하며 아우성치는 뱃속을 달래야 했다.
날씨가 후덥지근해서 도로변의 나무에 해먹을 친다. 가는 사이렌소리가 불길하지만 무시해 버리고, 운동을 하고 퀵샤워를 하는 사이 찬 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지며 사이렌소리는 멎어 버렸다.
흐리거나 비가 오지 않는 한, 대부분의 지역은 건조지대이기 때문에 태양이 이글거리는 뜨거운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다. 해먹에서 자다 보면 보통 새벽에 으스스하지만 잔뜩 껴입고 자면 답답한 텐트 속에서 자는 것보다 시원하고 상쾌하다. 단지 종종 대지를 흠뻑 적시는 이슬을 대비해 지붕을 확실히 만들고 자야 한다.


텅 빈듯한 노즈맨에 들어 왔으나 상점들이 몰려 있는 타운센터로 들어 갈 필요도 없어 그대로 타운의 출구를 향해 달린다. 이제껏 달려 왔던 외길인 1 번 국도는 이곳에서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데, 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알바니(Albany)를 향하게 되고 94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향하면 퍼스에 도달한다.
또 다음 역, 쿨가디(Coolgardie)까지 텅 빈 165km를 달리기 위해 뱃속을 뭐든 잔뜩 채우고 물과 예비식량을 보급하기 위해서 선택의 여지없이 주유소를 향한다.

세 갈래 길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주유소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한 숨을 돌린다. 700여km가 남아 있을 뿐으로 이제 거의 다 왔다.
"엘파마야! 정말 얼마 안 남았어! 이제부터는 내가 너를 등에 짊어지고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아!"
단 한가지 심각한 문제가 타이어인데, 닳고 찢어지고 벗겨져 나가는 뒤 타이어를 덕트 테이프로 수시로 감으며 달리고 있다.
주유소의 상점에서 나오던 한 아줌마가 손에 봉지를 든 채 나를 지나 친다. 나는 뒤 타이어에 감아 놓은 테이프가 도로 면과의 마찰에 의해 닳고 끊어진 부분을 떼어내고 다시 새 테이프로 갈아 붙이고 있는데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서는 '오늘 아침에 이 곳을 향해 달려오다가 도로에서 너를 지나쳤다'고 말하더니 자신이 산 음식을 나와 나누고 싶다며 정확하게 샌드위치의 반과 종이상자에 들어있는 감자튀김을 정확하게 반으로 나눠 나에게 건네준다.

발래도니아(Balladonia)를 떠나 텅 빈 200km를 달려 만난 노즈맨(Norseman)의 한 로드하우스 앞에서 나에게 음식을 기부한 데니스(Denise).
독신으로 살아가는 그녀는 은퇴 후, 작은 밴을 사서 개조해 그 안에서 침식을 거듭하며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이 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로서 호주전역을 돌고 있는 젊은 아줌마이다.
아주 건강해 보이는 그녀의 말투와 몸놀림에는 활기가 넘쳐흘러 나를 상쾌하게 한다.

그녀, 데니스(Denise)는 은퇴한 후, 소형 밴을 자신의 캐러밴으로 개조해서 호주의 전국을 여행하며 자원봉사자로서 노인들이나 아픈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한다. 내가 그녀의 집 구경을 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이곳 저곳을 쑤신 끝에 몇 개의 말린 자두가 들어있는 봉지, 해바라기 씨가 들어 있는 봉지, 그리고 정어리 통조림 등을 찾아내어 나에게 건네준다.
그녀가 타고 있는 밴은 작지만 정말 기가 막힌 솜씨로 개조가 되어있다. 은퇴한 노인들은 샤워실, 화장실까지 갖춘 더욱 편리하고 더욱 넉넉한 공간의 캐러밴(Caravan)을 타고 여행을 하고 있는 반면, 커플의 젊은이들은 아주 치밀하게 개조된-한결같이 토요타의 소형 밴으로 일정한 방법으로 유효 적절하게 계획되어 개조 된 것으로 보아 캐러밴 여행이 대세인 호주에 이런 개조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소형 밴을 타고 여행을 하고 있는데 특히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로 호주에 와 있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호주의 비싼 물가에 견디기 위해 고안된 아주 특별한 차라고 생각된다.
 
오늘140km를 달리면 쿨가디(Coolgardie)에 도착할 텐데 오늘은 슈퍼마켓이 문닫기 전에 도달할 수 있을까?!
호주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하루의 꿈이 슈퍼마켓에 찾아가는 것이 되어 버렸으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여기가 아프리카도 아니고 부자나라 호주에 와서 지갑에 구멍이 난 듯 돈이 줄줄 새고 있는데 배속은 비어 자전거를 못 탈지경이 되었으니 도대체 어찌된 영문이냐?!
도대체 뭐가 잘못 된 거야?!!
내가 이미 수 천km를 달려 왔지만 내 눈을 잡아 끄는 특별한 풍경은 전혀 없고 한결 같이 단조로운 허허벌판뿐이었어.
내 눈앞에 자나깨나 아주 리얼하게 어른거리는 것은 오직 셀 수 없는 파리떼들과 먹을 것뿐이야.
이것이 바로 아주 특별한 나라, 호주에서 내가 겪고 있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지.
나는 쉬지 않고 달린 덕에 저녁 6시 10분 전에 쿨가디의 입구에 있는 호주의 중형 슈퍼체인인 IGA에 가까스로 도착했어.
이 곳의 슈퍼마켓들은 주말뿐 아니고 평일에도 저녁 6시면 종을 쳐 버린다구!

노즈맨(Norseman)에서 일요일이라 굳게 닫힌 슈퍼마켓에 절망했던 내가 165km를 달려 폐점 10분 전인 저녁 5시 50분에 타임카드를 찍은 호주의 중형 급 슈퍼체인인 쿨가디(Coolgardie)의 IGA.
가운데 회색 빛 셔츠의 매너저가 나의 장도(壯途)를 축하하고 격려하기 위해 자신이 산다며 나에게 차가운 음료수 한 병을 선사한다.
가족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 듯한 이곳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어쨌거나 나는 해 냈다!'
믿음직한 나의 두 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찾아간 진열대가 바로 샐러드코너지. 자전거여행을 하다 보면 과일이나 야채는 인간이 섭취해야 할 아주 중요한 품목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거의 관련이 없는 것이 되어버려. 이 샐러드를 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슈퍼마켓뿐이잖아?! 또한 과일주스를 싸게 살수 있는 곳도 이곳 뿐이지.
글쎄, 이곳의 매니저 아줌마가 나의 장도(壯途)를 축하해주고 자신이 산다며 나에게 차가운 음료수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지 않겠어! 뜻밖의 사람으로부터 받은 뜻밖의 선물에 하루의 피로가 산산조각이 나며 바람 속으로 날아가 버렸어! 슈퍼마켓 앞의 벤치에 앉아 큰 통의 샐러드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나니 나의 주위는 이미 어둠에 묻혀버렸어. 고요해진 거리를 천천히 걷다 보니 타운어귀에 공원이 하나 나오고 그 중앙에 완벽한 지붕의 큰 팔각정이 나오질 않겠어!

내가 당연하게 그 팔각정 안으로 들어가 보니 긴 벤치까지 있다. 가까이에 공중화장실이 있는데 24시간 개방되어 있는 듯하다. 간혹 고요한 밤거리를 걷고 있는 이들이란 신발도 제대로 안 신고 다니는 '아보리진'들뿐이다. 그들은 시골지역에선 전혀 안 보이다가 최소한 중형급 내지는 대형급 슈퍼마켓이 있을 정도 규모의 타운이 되면 어김없이 그들의 존재를 과시한다.
아직 초저녁이라 앵앵대고 있는 모기들을 날려보낼 차가운 바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나는 팔각정 아래서 운동을 한 후, 열려 있는 공중화장실에서 얼렁뚱땅 땀에 젖은 몸을 닦고 빨래를 한다.
나는 확실한 지붕이 있는 팔각정 안의 바닥에 자전거 포장용 비닐을 깔고 침낭만을 편 채 벤치 위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문다. 나는 이 여행을 시작한 후, 하루에 4-5가치의 담배를 피워왔지만 담뱃값이 통닭 한 마리 값(담뱃값이 11불 전후)에 해당하는 호주에선 하루 2-3가치로 줄여 피운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엔 어김없이 규정량을 초과한다.

담뱃불을 붙이려다 보니 라이터가 없다. 어딘가 떨어뜨린 것에 틀림이 없다. 방법은 단 하나로, 길 건너에 있는 호텔의 1층에 있는 바(Bar)에 가서 손님들에게서 담뱃불을 붙여 오는 것이다.
내가 바에 들어서자 안에는 6,7명의 손님이 있는데 바텐더인 젊은 여성을 비롯해 모두가 한결같이 굳은 표정에 아주 의아한 표정이다. 나는 맥주를 마시고 있는 한 젊은 남자에게서 담배 불을 붙인 후 나의 호텔인 팔각정으로 돌아 와 벤치 위에 앉아, 아주 맛있게 담배를 피우던 에쿠아도르에서 만났던 루이스(Luis)의 모습을 연상하며 진하게 몇 모금인가를 들여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앉아 있는 벤치 앞의 콘크리트 바닥 위를 머리가 4개인 거대괴물의 그림자가 덮친다.
순간, 차가운 한 줄기 바람이 나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내가 뒤를 돌아다 본 순간, 가로등을 등에 짊어지고 있어 어둠이 되어 있는 4개의 얼굴은 분명 나와 같은 짙은 갈색의 그것들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10대 후반에서 20대초반의 '아보리진(Aborigin)' 청소년들이다. 그들은 신을 신지 않은 맨발이었기에 소리 없이 나에게 다가 온 것이다.

쿨가디 시내

"담배 하나 둬!"
그들 중 한 명이 나에게 소리친다.
"없어, 이 담배는 저 길 건너 편의 호텔 바에 있던 한 아저씨가 나에게 준 것이야!"
상대가 4명이기에 내가 담배 갑을 꺼냈다가는 최소한 4가치의 담배가 사라진다. '담뱃값이 얼만데!'
어린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나의 자화상이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주 특별한 호주에 와서 나 또한 이미 결코 정상이 아닌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듯, 나의 말을 그대로 믿고는 내가 피우고 있던 꽁초라도 달라고 한다.
내가 이미 피우고 남은 3/5 정도를 4명이 돌아가며 한 모금씩 빨아대더니 나에게 묻는다.
"너는 도대체 어디서 온 거냐?!"
"으-응, 시드니에서 자전거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서쪽 끝인 퍼스까지 가는 길이지."
"으-음, 시드니, 그리고 퍼스! 도대체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어?"
"시드니는 이 곳에서 아주 먼 곳이고 퍼스는 여기서 가깝지!"
"그럼 너는 눌라보(Nullarbor) 지역도 가 봤어?"
"물론이지. 100km, 200km를 달려도 아무것도 없는 무인지경의 땅이지."
내가 지나 온 타운의 이름들을 몇 개 열거 해 보지만 그들에게는 모두가 생소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명실상부한 호주 인들로 호주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삶의 현장인 이 타운을 벗어나 본 적도 없고, 호주의 지도 한 번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결국 그들은 내가 하는 얘기에 흥미가 없는 듯, "See Ya!"를 외치며 도로를 건너가더니 이내 어둠 속에 묻혀 버린다. 나는 침낭 속으로 몸을 밀어 넣어 두 다리를 쭉 펴고 팔각정의 처마 밑으로 하늘을 올려다 본다.
오늘 밤도 어김없이 찾아 온 차가운 바람으로 모기 한 점 없는 청정공기에 별들이 초롱초롱한 평화스런 밤이다. 긴 휴식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싣고 비몽사몽하고 있는데 가물가물 왁자지껄 떠 드는 소리가 들린다. 나를 스쳐 지나갔던 그들인 것 같은데 나를 향해 다가오다가 내가 침낭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한 듯 갑자기 목소리들을 낮추고는 조용조용, 그리고 살금살금 나를 지나쳐간다.
'어허, 상당한 수준의 배려다!'

4명의 '아보리진' 청소년들이 잠시나마 나를 놀라게 했던 광산 마을,
쿨가디(Coolgardie) 타운 파크의 팔각정.

충격적이나 교훈적인 설치미술품


여행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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